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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의 역사

처음에는 외로움의 개념이 지금과 조금 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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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Conversation의 「A history of loneliness」를 번역한 글입니다.


고독, 외로움이란 현대에 와서 생긴 문제일까요? 미국 의무감(醫務監)을 지낸 비벡 머시는 자신이 평생 의사로 일하며 맞닥뜨린 가장 흔한 병은 심장병도, 당뇨도 아니라 외로움이었다고 말합니다. 만성적인 고독은 하루에 담배를 15개비 피우는 것과 같다고 하는 사람도 있고, 비만보다 오히려 사람에게 치명적인 무서운 존재라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분명 고독은 이제 공중보건 분야에서도 주목해 다루는 문제가 됐습니다. 전염병처럼 다뤄지기도 하죠. 사람들은 고독의 원인을 찾아 해결책을 마련하는 데 골몰합니다.


낭만주의 시대 시인들이 고독을 어떻게 표현했는지 책으로 쓰려고 자료를 찾아보다가 사실 고독이라는 개념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는 점, 그리고 한때는 고독을 그다지 어렵지 않게 치료할 수 있다고 믿던 시절이 있었다는 점을 발견했습니다. 다만 고독 혹은 외로움이 뜻하는 바가 시간이 흐르면서 완전히 바뀌면서 해결책을 찾기도 훨씬 어려워졌습니다.


다시 그 어원부터 살펴보고, 그 뜻이 시간이 흐르면서 어떻게 변했는지 알아보죠. 이를 통해 우리는 현대적인 의미의 외로움과 우리가 이를 어떻게 다뤄야 할지에 관한 시사점을 얻을 수 있을 겁니다.

Edward Hopper’s ‘Office in a Small City’ (1953)

외로움, 그 위험천만한 이름


아주 먼 옛날부터 우주 어디에나 있었을 것 같은 외로움이라는 개념은 사실 16세기 말에 처음 등장합니다. 사실 그때 등장한 외로움이라는 개념은 지금 우리가 아는 그 개념과는 조금 다릅니다. 단지 다른 사람들에게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을 때 오는 위험의 신호 정도로 여겨졌으니까요.


근대 영국 초기, 사람들은 사회에서 멀리 떨어져 산다는 것을 사회가 제공하는 보호를 받지 못하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외딴곳에서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은 행여 그 사람이 당신을 해치려 할 때 주변에 도움을 청할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뜻이었고, 그래서 인적 없는 숲이나 산골짜기는 두려운 곳이었습니다.


설교에 등장하는 지옥이나 무덤, 사막 같은 곳이 두려운 이유 또한 다른 무엇보다도 외로움 때문이었습니다. 외로움과 고독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상기시켜 종교 지도자들은 신도들에게 죄를 지어서는 안 된다고 설교했습니다.


그러나 17세기에도 “외로움(loneliness)”이나 “고독한(lonely)” 같은 단어가 쓰인 기록은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박물학자였던 존 레이가 1674년 흔히 쓰이지 않는 용어를 총정리했는데, 여기에 외로움이라는 단어가 등장합니다. 단어의 정의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이웃에서 멀리 떨어진 곳, 혹은 멀리 떨어져 사는 사람

존 밀턴이 1667년 발표한 서사시 「실낙원」 속 악마는 아마도 영국 문학작품에서 외로움을 느끼는 첫 번째 등장인물일 겁니다. 에덴동산에 있는 이브를 유혹하기 위해 길을 떠나는 악마는 자기가 사는 지옥을 벗어나 “외로움 걸음 걸음”을 내딛습니다.

A Gustave Doré engraving for an 1866 edition of John Milton’s ‘Paradise Lost.’

밀턴은 구체적으로 악마가 어떻게 느꼈는지 묘사하거나 서술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그는 악마가 내디딘 지옥과 에덴동산 사이에 있는 궁극의 황야가 지금껏 그 어떤 천사도 발을 밟아본 적 없는 곳이라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자신이 처한 상황이 위태롭다고 하는 악마의 말 속에 외로움이 묻어납니다. 



현대적 의미의 외로움과 딜레마


오늘날 황야는 홀로 남겨지기 두려운 곳이라기보단 자연을 탐험하며 모험을 즐기는 곳이 됐습니다. 대신 외로움의 문제는 도시로 옮겨 새로 똬리를 틀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외로움을 극복하고자 사람 많은 복작복작한 곳에 살고 친한 사람을 가까이 불러 모았습니다. 그러나 1인 가정의 숫자는 급증했고, 전통적 의미의 가족은 곳곳에서 해체됐으며, 공동체도 무너졌습니다.


지난 1월, 테레사 메이 영국 총리는 고독과 싸우는 일은 정부의 과제라고 선포하고 아예 오로지 이 문제만을 전담하는 장관직을 신설해 각료를 임명했습니다. 기금을 모아 좋은 일에 쓰겠다는 자선단체 가운데 “외로움에 맞서 싸우자”는 구호를 내세우는 곳도 있습니다.


문제는 외로움을 치유하거나 외로움과 맞서 싸우자는 캠페인이 대체로 오늘날 외로움이 갖는 의미를 지나치게 단순화했다는 데 있습니다. 고독의 개념이 인적이 뜸한 도시 밖, 사회의 울타리 밖으로 국한됐던 17세기만 해도 그 해결책은 간단했습니다. 다시 사회에 돌아와 공동체에 속해 살면 되는 일이었죠.


하지만 이제 외로움은 우리의 마음속에 자리 잡았고, 이를 치유하기란 너무나 어려워졌습니다. 심지어 사람이 넘쳐나는 활기찬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마음속에도 외로움이 가득하다 보니, 이웃을 사귀고 친구를 가까이해도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게 됐습니다.

현대적 의미의 외로움이란 물리적으로 다른 사람과 거리를 둬서 생겨난 것이 아닙니다. 그보다 다른 이들과 가까이할 수 없다는 감정이자 심리 상태입니다. 실제로 다른 사람과의 거리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에게 둘러싸여 사는 사람도, 심지어 친한 친구들이나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는 사람도 외로움을 느끼고 외로워서 힘들어합니다. 이제 인적이 뜸한 황야는 우리 마음속에 있는 겁니다.



마음속 황량함을 채우는 법


오늘날 고독과 외로움이 정말 위험하다고 여겨지는 가장 큰 이유는 명확한 해결책이 없기 때문입니다. 어떤 문제의 실체가 좀처럼 손에 잡히지 않고 추상적인 관념에 머무를 때 그 해결책을 찾기란 정말 쉽지 않죠.


현대적인 의미의 외로움에 맞서는 비법은 사실 그런 감정 자체를 없애버리려 애쓰지 않고, 반대로 관념적인 외로움을 받아들이고 그와 함께 사는 법을 익히는 데 있습니다. 전혀 직관적이지 않은 해법이라는 걸 잘 압니다. 하지만 그 모순적인 상황을 받아들이고 마찬가지로 외로움을 느끼는 이들을 만나 감정을 공유하는 것은 훌륭한 해결책입니다.


노인이나 장애인, 다른 취약 계층 사람들이 물리적으로 고립되고 건강을 위협받는 상황은 당연히 구조적인 원인부터 찾아내 해결해야 합니다. 그러나 먼저 외로움이나 고독을 대단히 심각한 문제인 것처럼 여겨 쉬쉬하게 만드는 문화 혹은 우리 안의 편견부터 고쳐야 합니다.

외로움은 질병이 아닙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외로움을 느낄 수 있고, 외로움을 느낄 만한 상황에 처하면 당연히 외로워하는 것이 지극히 정상입니다. 이 사실을 모두가 받아들일 수 있어야 외로운 사람들이 스스로 더욱 고독으로 몰아넣는 껍데기를 깨고 나와 경험을 공유하고 외로움을 나눌 수 있습니다. 


모두가 현대인은 고독하며 오늘날 우리 사회에는 외로움이 만연하다고들 말합니다. 하지만 이는 단지 사람들이 고립돼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보다 왜 사람들의 마음속에 인적을 찾기 힘든 황야 같은 느낌이 그토록 뿌리 깊게 자리 잡았는지 헤아리는 작업이 중요합니다.


누구나 외로워하고 외로움을 겪지만, 그 양상은 저마다 다릅니다. 자신이 어떻게 외로운지, 왜 외로운 건지 설명하는 데 애를 먹는 사람도 많습니다. 소설가 조지프 콘래드는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흔히들 말하는 외로움 말고 정말 발가벗겨진 기분에서 오는 두려움과 같은 진짜 외로움을 누가 과연 안다고 할 수 있을까? 사무치게 외로운 이들에게조차 외로움은 가면을 쓰고 자신을 숨긴 채 다가간다.

다른 사람이 어떻게 외로움을 느끼게 되는지 이해하고 배워가다 보면 콘래드가 설명한 위와 같은 상황을 조금이나마 피할 수 있습니다.

Andrew Wyeth’s ‘Baleen’ (1982).

문학작품을 읽는 것도 마음속의 고독을 조금이나마 덜어내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합니다. 외로울 때만 책을 읽으라는 법 같은 건 물론 없지만 『프랑켄슈타인』부터 『투명인간』까지 실제로 많은 문학작품이 수없이 다양한 외로움을 다루죠. 


등장인물이 겪는 외로움을 읽는 이가 공감할 수도 있고, 무엇보다 공허하기만 한 마음에 무언가 들어차는 것처럼 느끼기에 독서만큼 좋은 것이 없습니다. 책을 읽으면 또 어떻게 해야 함께 외로워할 수 있는지 배우기도 합니다. 영국 낭만주의 시인들은 종종 다른 작가들의 외로움이 가득한 문장을 그대로 베껴 적으며 영감을 얻고 또 글을 쓰기도 했습니다.


외로움이 만연한 사회라도 우리가 외로움을 알리고 나누려 하면 공동체가 그 외로움을 달래주러 올 겁니다. 직접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를 나누든, 아니면 문자를 주고받든 방법은 다양하죠.


인간을 나약하게 만들기도 하는 외로움은 이렇게 처음에는 그저 물리적인 고립의 다른 이름이었다가 세월이 흐르며 뜻이 바뀌어 왔습니다. 시인 오션 부옹이 썼듯이 “외로움도 이 세상과 함께 세월을 보내며 변해가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원문: 뉴스페퍼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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