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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그렇게 꼰대가 되어간다

조회수 2018. 6. 22. 10:15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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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꼰대다. 아니, 꼰대가 될 운명이다.

○○스 광고처럼 우리는 예전 시절을 늘 그리워하기도 하지만, 실제 그 모습인 이들의 철없는 모습을 보며 혀를 차곤 한다. 일상도 직장도 비슷한 모습인 것 같다. 그렇게 윗사람들은 ‘꼰대’라는 누명(?)에서 평생 벗어나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이를 먹고 그 ‘꼰대 자리’가 내 자리가 되기도 한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환영받지 못하는 꼰대가 되는 건 순식간이다.



우리는 꼰대가 될 운명이다

출처: 드라마 〈미생〉

나는 꼰대다. 아니 꼰대가 될 운명이다. 개구리가 올챙이 시절을 생각하지 못하는 것처럼, 신입사원을 거쳐 십수 년이 지나 부장 또는 팀장이 되어 “옛날에는 안 그랬는데…”라는 이야기를 때와 장소와 관계없이 늘어놓는다. 


생각해보면 그 XX께서도 올챙이 시절은 있었다. 하지만, 개구리가 된 이후 올챙이적의 성공스러운(?) 고생담만이 남는다. 그 고생이 지금의 서투른 나처럼 ‘잘 몰라…’ 등의 내용은 빠져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지금의 팀장에게도 ‘팀장’이라 불리는 ‘꼰대’가 존재했을 것이고, 그 X의 XX는 누구인지 모르지만 이렇게 훌륭한(?) 부장님을 만들어 내려주셨다.


언젠가부터 심심치 않게 ‘꼰대’라는 말이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꼰대를 검색해보니 “자신의 경험을 일반화해서 남에게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럴싸하다. 경험의 일반화로 상대방을 판단하고, 객관적 검증 없이 강요하는 모든 행위를 꼰대 짓이라고 할 수 있다. 일종의 확증편향,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로 자신의 경험이 절대 진리인 양, 오늘도 나이와 경험이 부족한 이들이 있는 모든 부문에서 활약한다.


한 가지 재밌는 것은, 꼰대는 “나이 든 사람이 나이 어린 사람을 훈계하거나 볼멘소리를 늘어놓을 때” 나이 어린 사람이 나이 많은 사람을 비유해서 쓰는 말이다. 결국, 나 보다 나이 많은 사람이 하는 ‘듣기 싫은 소리’를 ‘꼰대 짓’ 또는 그런 소리를 자주 하는 이를 ‘꼰대’라고 할 수 있다.


본인보다 나이 어린 친구들과 이야기할 때는 설사 그런 의도가 없다고 하더라도, 어느새 나는 ‘꼰대’가 되어버렸다. 그러고 싶지 않다고 해도, 나이가 먹어갈수록 이상하게도 그렇게 되어간다. 왜 이렇게 어린 친구들과 이야기하는 것이 어려울까? 그들에게 꼰대로서 기억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분명한 것은 기왕 꼰대가 되려거든 ‘현명하고 열린 꼰대’가 되라고 권하고 싶다.



직장에서의 생존과 ‘꼰대’는 어떤 관련이 있을까

수년 전부터 핵가족, 또래 문화의 발달은 10년 차 이상 세대를 넘는 소통을 단절시켜왔다. 명절 또는 특별한 이벤트가 있을 때만 친인척을 만나고, 나보다 나이 많은 이와 만나는 횟수가 많지 않다. 그러다 보니 세대 간 소통의 필요성이 유일하게 남은 곳이 ‘직장’이 되었다. 업종 및 기업의 특성에 따라서 차이는 있지만 ‘전통적 직장’의 개념을 가진 대부분의 조직이 여기에 해당한다. 


막 들어온 신입사원과 사장님의 나이차가 적게는 10여 년부터 많게는 30여 년 이상 차이 나기도 하며 ‘이들을 어떻게 하면 한 마음 한 뜻으로 움직일까’가 HR 및 조직문화 담당자들의 고민이었다. 현재는 전사적인 문제로 번졌고, 단순히 개인적 성장과 조직 안정의 문제로 치부했다가, 조직의 생존에 까지도 영향을 미치는 중요 요인이 되었다.


이때 대다수 조직은 안타깝게도 세대를 뛰어넘으려는 노력보다는 윗 세대의 보이지 않는 강요에 의해 예전 방식을 그대로 답습하는 안전한 형태의 ‘업무가 주가 된 소통’을 한다. 기존의 일하는 방향성에서 벗어나는 일은 가차 없이 거절당한다. 당연히 그 범주 안에서 누군가의 손과 발이 되어야 하는 사람들은 조직에 남아 있어야 할 이유를 점차 잃어간다.


위와 같은 조직 내 만연된 꼰대 정신은 비즈니스 전반에 영향을 미쳐, 수년째 변하지 않는 비즈니스가 되어 제자리 매출 또는 저하되는 이익을 수년째 지속시키기도 한다. 심지어 불황 등의 외부 상황으로만 돌리기도 하고, 부하직원의 무능력만을 탓하거나, 그 결과로 ‘찍어내리기’ 방식의 업무를 지향한다. 당연히 각자가 자신의 직장 생명을 연장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고 보겠지만, 결국 조직의 변화와 혁신을 가로막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위와 같은 상황이 지속되면, 조직 안에서 성장해야 할 개인에게도 큰 걸림돌이 된다.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로 긍정적 영향력을 발휘해야 할 개인들은 ‘하지 마 그리고 예전 방식대로 해’식의 업무 소통으로 도전과 응전을 즐기는 모험적 인재의 유입 또는 유지 또한 기대하기 어렵다.


당연히 조직 또는 리더가 추구하는 비즈니스 철학과 부딪히면서 ‘인재’라고 불렸던 이들이 해당 조직에서 ‘인재(人災)’로 찍혀서 남아있을 수 없게 된다. 그렇게 조직은 고인 물이 되어 버리고, 스스로 조직 생명력을 단축시키는 일을 윗자리 다수를 차지한 꼰대 스스로가 하게 되는 형국이 된다.


기획(안)의 경중을 따지기는 어렵지만, 만약 기업의 명운을 좌우할 수 있는 일의 최초 발의자가 대리(30대 초반)라 하고, 최종 의사결정자(60대 초반)라고 한다면 적어도 3~4 세대를 통과해 최종 승인을 받아야 한다. 다소 극단적인 경우일 수 있지만, 적어도 1~2세대를 통해서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는 것은 규모와 역사가 있는 기업에서는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다만, 이미 조직 내 세대 간 인사이트, 경험, 정보 등의 격차는 기업의 의사결정 속도 및 방향 모든 부분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사실이다.


이를 개인의 ‘직장에서의 생존 관점’에서 해석하면, 개인과 조직 성장 테두리 안에서 끊임없이 악영향을 미침을 알 수 있다. 더불어 이직할 때 주요 고려사항이 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깊이 있는 소통 가능한 연령대가 주축 세대인 A 기업에서 일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B기업에서 일하는 것을 비교한다면 어떤 조직에서 일하는 것이 좋을까? 답은 정해져 있다. 이런 상황을 버텨낼 만한 가치가 없다면 개인의 입장에서는 충분한 결격 사유가 된다.


이처럼 ‘꼰대 정신’은 조직의 기여도 및 개인의 성장에도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일은 함께 해야 하는데, 꼰대들과 함께 시간 보내는 조차 다른 조직에 비해 몇 배의 힘이 든다고 하면, 결국 개인과 조직 모두가 바라는 성과는 기대하기 어렵다. 여러모로 손해 보는 ‘꼰대’를 과연 그대로 두어야 할까?



꼰대 정신을 굳이 일방적으로 주입해야 할까

출처: 드라마 〈미생〉
신입사원도 1년이면 그걸로 끝이다. 초록이 동색이라고 비슷해지거나 튕겨져 나간다.

이제 막 직장에 들어온 신입사원은 열의에 가득 차 있다. 학습 의지가 가장 강력한 시기이지만, 온고지신(溫故知新)의 정신을 살려, 옛것을 통해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라는 식으로 ‘사내 교육’이 진행되곤 한다. 그리고 꼰대 정신에 입각한 교육과 업무 방식과 패턴, 과정 등은 충만한 학습의지를 서서히 꺾어 놓는다. 


OJT 때 “우리 회사 대단하지”식의 메시지는 금방 들통난다. 허황된 미션, 철학, 비전 등은 나 혹은 우리의 비전으로 삼기에는 무리가 있다. 비전(Vision)인지는 알지만, ‘내 거’라는 생각에는 크게 미치지 못한다. 강요해 기억하기에는 무리가 없지만, 가슴에 새기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조직에서 붙여준 멘토는 “회사는 그냥 다니는 거야”식의 이야기만 늘어놓는다.


업무상 OJT는 FM을 알려주기보다는 기한 내에 업무를 할 수 있는 꿀팁(AM)부터 알려주기 바쁘다. 그렇게 우리는 1년도 채 안 되어 누군가의 자리를 메우는 땜빵 인력이 된다. 1년의 세월이 지나 신입사원 티를 벗어날 때쯤 퇴사를 결심하거나, 그전에 그만두거나, 1년 적응 이후에 다른 곳에 갈만한 사고나 역량 등은 전혀 쌓지 못한 채 앞으로 다가올 1년을 잘 ‘버티기’위해 준비한다.


과연 무엇이 잘못됐을까? 참으로 안타깝다. 조직 내 개인 간 소통도 ‘꼰대식’인데, 조직 전반에 흐르는 DNA도 큰 차이가 없다. 지시와 명령, 복종하지 않으면 축출당하거나, 뱉어지는 식이다. 점점 심해지면 결국, 조직 내 나이, 직무, 계층별로 소통이 단절되는 현상이 벌어게 된다. 그렇게 향후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점점 심화된 세대별 소통의 단절은 기업 명운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리고 이를 최대한 제거하기 위한 노력으로 열심히 리더십과 커뮤니케이션 교육을 실시한다. 과연 교육으로 바뀔 수 있을까? 그러한 기대는 이미 한 물 간지 오래다. 그냥 위에서 하라고 하니까 하란다. 당연히 교육의 질은 떨어지고, 결국 소통을 위해 섭외하는 강사는 최대한 ‘웃기는 사람’이 된다.


최신 정보를 포함 주요 실무를 담당하게 될 조직 속 어린 세대는 나이 많은 세대를 설득할 수 있어야 하고, 함께 현안에 대해 가감 없이 대화가 가능해야 한다. 당연히 지위고하를 막론한 조직 전반의 격의 없는 소통을 위해 모든 이들의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실무자의 고민은 점점 잘못된 방향으로 흐르게 된다. ‘윗분들이 원하는 것’ ‘우리 고객의 니즈’ 중 한 가지에 집중해야 하는데, 결국 고객보다 윗분들의 생각과 니즈가 더 중요하다.


따라서 그들이 가진 노하우 및 권한과 책임을 부하직원에게 내려서 일이 진행되는 경우는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옛것을 충분히 익힌 선배들의 경험이 축적된 노하우를 후배를 위해 풀기 위한 소통이 절실한데도 자신의 밥그릇을 빼앗길까 봐 무서워 존재를 감췄다. 그리고 후배 사원도 이미 만들어진 소통 장벽(문화)으로 선배로부터 지혜를 얻어내는 것을 불가능에 가깝게 만들었다. 주지도 않고, 설사 준다고 해도 전부 주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조직 안에서 사람을 키우려는 철학은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장기적으로 성과를 저해하거나 조직을 붕괴시키는 데 한몫을 차지한다. 이 모든 것이 ‘꼰대’를 만드는 시스템과 문화, 꼰대를 바라보는 시선으로부터 나타난 결과다. 이러다가 모두 전멸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개인과 조직이 꼰대 문화에서 벗어나려면

대한민국의 사회학적 세대별 분류는 전쟁 이후의 베이비붐 세대, 386·486 세대, 뉴 베이비 붐 세대에 이어 밀레니엄 세대, 그리고 뉴 노멀 세대(New Normal Generation)로 분류된다. 분명 각 세대가 인지 가능한 범주 내의 문화는 다르다. 누구는 삐삐부터, 누구는 PCS부터, 최근에는 태어나자마자 스마트폰을 경험한다. 


그만큼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것이 누군가에게는 새로울 수 있으며, 옛 것이라고 믿었던 것들이 새롭다고 느껴질 만큼 매 순간 새로운 것이 만들어지고 경험할 수 있는 범주와 깊이 자체가 ‘예측 불가능의 시대’이자 ‘상대적 개념이 진리가 되어버린 시대’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논리는 조직에서도 마찬가지다. 조직과 조직의 비즈니스는 매 순간 정답을 만든다. 다만 이는 ‘과거의 답’일 뿐이다. 절대 미래의 정답이 될 수 없다.


물론 수년 동안 ‘정답’만을 만들어냈던 이들 또는 정답만을 기억하는 이들에게는 인정하기 어려운 부분일지 모른다. 불과 얼마 전까지 수년 동안의 ‘성공 경험’이 유사한 다른 분야에서도 성공을 이끌 수 있다고 믿었지만, 이제는 어렵다. 이걸 인정해야 한다. 이처럼 개인 또는 조직은 과거와 현재 등에서 만들어낸 모든 것에 대해 끊임없이 의심해야 한다.


동서고금의 그 어떤 진리라고 할지라도 마찬가지다. 말 그대로 뉴 노멀(New Normal) 시대이기 때문이다. 이른바 새로운 ‘보통’을 만들어내야 하는 시대이다. 따라서 무조건 따르라 식의 ‘꼰대 정신’을 발휘하기보다는 현시대에 맞는 소통 방식을 통해 조직 모두가 바라는 목적에 부합하는 과정과 결과를 이끌어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세 가지를 제안한다.


1. 솔직해져야 한다: 과정과 결과를 투명하게 공유해야 한다


불안감은 ‘투명성’의 반대말이다. 투명하다면 불안하지 않다. 조직 내 많은 이들이 걱정하는 것은 ‘투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조직에 기여하는 것, 조직에서 개인 또는 팀에게 기대하는 것에 대한 모든 내용을 오픈하고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 더 이상 무슨 뜻인지도 정확하게 모를 비전과 목표의 공유는 의미가 없다. 그 보다는 합리적으로 만들고, 공유하고, 끊임없이 이에 대해 이야기해 볼 필요가 있다. 이른바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열어놔야 한다. 이는 지속 가능한 성장을 넘어 생존을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필요하다.


2. 유연해야 한다: ‘그럴 수도 있겠다’식의 사고가 필요하다


뉴 노멀 시대에 과거의 정답은 더 이상 정답이 아닐 수 있다. 예전 방식으로 일 처리를 하는 것이 ‘안정적’일 수는 있지만, 과거와 유사한 실적을 내는 것과 거리가 멀 수 있다. 원하는 방향의 변화를 통해 방법의 변화를 만들어내야 성과를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방법에 치중한 나머지 방향성에 대한 유연한 사고에 익숙하지 않다. 각 조직의 ‘정도(正道)’가 다르겠지만, 적어도 지금 하는 일의 방법 정도는 스스로 만들고 결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권한과 책임을 내리고, 의사결정에 여러 경로의 기회와 영향을 주고받는 분위기가 필요하다.


3. 합리적이어야 한다: 건설적으로 서로를 비판할 수 있어야 한다


조직의 합리성은 조직의 ‘이익’과 연결된다. 특정 개인의 이익에 국한되기보다는 모두가 조직의 이익을 위해 동일한 의사결정기준을 갖추어야 한다. 이를 위해 지위고하에 관계없이 누구나 비판할 수 있어야 한다. ‘넌 나이가 어리기 때문에, 혹은 경험이 적기 때문에, 인사이트가 적기 때문에’ 식의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보이는 고압적 태도는 조직의 합리성이 아닌 ‘특정 개인만의 합리성’이 된다. 따라서 자주는 아니지만, 일부 글로벌 기업처럼 타운홀 미팅 등의 형식을 통해 조직의 비즈니스에 대해 서로 공개적으로 이야기하는 자리가 지속적으로 만들어져 합리적 관점의 소통 문화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건전한 꼰대, 합리적 꼰대 정신이 필요하다

출처: 영화 〈인턴〉

무엇이 건전한 꼰대 정신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다만 유연한 사고와 충만한 학습의지를 통해 늘 배우려고 노력하고, 함께 일하는 이들과 솔직하게 이야기 나눌 수 있으면 그걸로 꼰대가 아님을 증명할 수 있다고 본다. 영화 인턴의 로버트 드니로가 했던 캐릭터처럼 개성을 잃지 않으면서 새로운 곳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역할을 스스로 찾아 만들고, 무엇보다 함께 일하는 이들과의 조화를 위해서 다방면으로 노력하는 이들이 많이 나타나길 바란다. 


더불어 꼰대를 무조건 나쁘게만 볼 수 없다. 그들은 조직을 제일 앞에서 이끌었던 이들이다. 그들이 가진 경험과 노하우를 절대 무시할 수 없다. 오히려 조직 안팎에서 제대로 활약할 수 있을 만한 무대가 필요하다. 그리고 언젠가 우리가 그 자리를 물려받아 훌륭하게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평소의 준비와 노력이 필요하다. 언제가 될지 모르는 꼰대이지만, 노력 여하에 따라 합리적 꼰대가 될 수도 있다.


위의 영화 속 캐릭터처럼 일하는 이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조직은 점차 건강한 조직이 될 것이다. 일하는 문화는 일의 성과 그리고 비즈니스의 생존과 지속성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나마 합리적 꼰대가 되기 위해 오늘도 끊임없이 배우려고 노력한다. 배워서 남주자 정신으로 말이다.


원문: 김영학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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