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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학생회장 출신 운동권 학생, 노무현에 눈을 떠 주민들 속으로 들어가다: 부산 부산진구청장 후보 서은숙 인터뷰

조회수 2018. 5. 29. 14:45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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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지방선거 특집: 부산 부산진구청장 후보 서은숙 인터뷰

이승환(ㅍㅍㅅㅅ 대표, 이하 리): 이 긴 정치의 시작은 어디입니까?


서은숙(부산진구청장 후보): 제가 부산여대(현 신라대) 86학번인데, 어쩌다 학생운동을 하게 되어서…

‘압도적인 정치경력’ 맞는 듯;;

리: 86학번 때면 들어가자마자 학생운동이 있을 땐데… 어쩌다가 하시게 되셨어요? 


서은숙: 고등학교 때 선생님이 전태일, 박노해 등을 보여주셨어요. 박노해의 『노동의 새벽』이었는데 시를 이렇게도 쓸 수 있구나, 라는 걸 느꼈어요. 그걸 읽고 갖다 드리니까 이번에는 전태일 평전을 주시더라고요. 그분 나중에 전교조 들어가셨어요.

추천도서부터 너무너무 꿘의 냄새가 난다…

리: 선거운동은 안 도와주세요? 


서은숙: 선생님의 남편이 도와주고 계십니다, 하하하. 학생운동 하다가 노동운동 열심히 하시는 분을 만났는데 그분이 선생님의 남편이셨어요 (웃음)


리: 86, 87, 88 해서 학생운동이 엄청 치열했잖아요?


서은숙: 제가 1988년도에 통일선봉대 1기였어요. 남편과 제가 동기였죠. ‘가자 북으로! 오라 남으로! 만나자 판문점에서!’ 이렇게 외치면서 운동하던 게 삼십 년 전인데, 삼십 년 만에 세상이 뒤집어졌어요. 그 세대들은 남북정상회담을 보기만 해도 눈물이 나는 그런 게 있어요.

인터뷰 편집하는 동안 또 이런 일이(…)

리: 그렇게 열심히 학생운동을 하다가, 졸업할 때는 앞으로 뭘 해야 할지 갈등되잖아요? 


서은숙: 저는 학교 마치고 학생운동을 좀 더 했고… 그 뒤에는 뒤늦게 공부를 좀 했어요. 부산에 있는 대학원에 갔어요. 대한민국이 먹고살 길은 통일밖에 없을 것 같았거든요. 그렇게 석사 따고, 1999년에는 주민단체 들어갔죠.


리: 왠지 시간이 훅 뛰는데요? 중간에는 뭐 하셨어요?


서은숙: 중간에 학교 앞에서 장사했어요. 지금 부경대랑 경성대 입구 앞에서 ‘민족의 젖줄 압록강’이라는 이름의 가게를 열어서 학생들이랑 막걸리 먹으면서 한 2년 놀았죠.

크으… 술집 이름도 너무너무 꿘답고…

리: 장사 잘됐으면 오래 하시지! 


서은숙: 오래 할 건 아니었어요, 학생들이 워낙에 외상을 많이 해가지고 그때 저한테 외상 많이 먹던 애들이 지금 선거를 열심히 돕고 있어요.ㅋㅋㅋㅋ


리: 사실 학생운동이 시대정신을 많이 담기도 했지만 동시에 좀 치기 어린 게 있었죠. 공부를 해보니까 어떠시던가요?


서은숙: 공부를 더 해야 되겠다(웃음) 더 체계적이고 논리적인 생각이 필요하겠더라고요. 논문도 DJ의 3단계 통일론에 대해 썼어요. 남한 중심의 통일이나 북한 중심의 통일이 아니라 완벽한 통일로 가기 이전 경제-협력-교류가 차례대로 이루어지는 것, 이것이 실질적인 통일이라는 거예요. 그런 것들을 하기 위해 대한민국의 정치 수준이 높아져야 한다고 생각했고요. 대학원을 마치고 주민단체 생활을 시작했죠.

그러니까 이분의 의견은 틀렸다는 것(…)

리: 주민단체 생활은 어떠셨어요? 


서은숙: 공부하면서 든 생각이, 학생운동 가지고는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 실제로 사람이 사는 공간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때가 99년, 2000년 이럴 때인데, 한참 ‘마을 단위의 모임’ 같은 것들이 태동했어요. 마을 축제도 하고, 시화전도 하고, 그때 한참 꽃을 피우다가 새로운 내용이 없어서 확 죽었다가, 다시 새롭게 태동하고 있죠.


리: 구청장 나가면서도 마을 이야기를 하시나요? 실질적으로 서울도 성미산 같은 특이한 케이스 아니면 마을이 성공하기 어렵거든요.


서은숙: 마을은 관에서 마을 만들자고 얘기해서 되는 게 아니에요. 주민들 스스로 필요해서 만들어야 해요. 그러다 그 마을 안에서 필요한 게 생기고 그걸 마침 관이 도와줄 수 있으면 그때 관이 나타나야 해요. 부산진구에도 호천마을이나 아창마을 등 여러 마을이 있어요. 관은 어쨌든 철저하게 서포트해주는 곳이지, 이끌고 나가는 곳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리: 말씀하시는 걸 들어보니 확실히 관련 활동을 해보셨던 티가 나네요.


서은숙: 산업화된 사회에서 마을이라는 건 지금 큰 의미가 없어요. 하지만 주민들 간에 뜻이 맞아서 우리가 조그마한 도서관이라도 하나 만들어볼게요, 동네 축제라도 해볼게요, 아이들에게 다 같이 미디어 교육해볼게요, 이런 건 얼마든지 관에서 도와주고 필요한 걸 제공해 드릴 수 있죠. 선언적으로 뭘 어떻게 해보겠다 주장하는 건 무의미해요.

‘마을 자치’가 잘 이루어지고 있는 곳은 수도권에서도 ‘성미산 마을’ 정도로, 손에 꼽히는 실정이다.

구의원만 2선, 나보다 진구를 더 잘 아는 사람은 없다


리: 주민단체 생활 이후에는 어디로 가셨어요?


서은숙: 한 달 반 정도 베트남 여행하다가, 노무현 대통령이 민주당 경선에 나갔다는 소식을 듣고 돌아왔죠.


리: 노사모셨어요?


서은숙: 좋아했죠. 노무현 대통령이 1988년도 동구에 국회의원 출마하셨는데, 제가 동구 출신이거든요? 노 대통령의 유세장 쫓아다녔어요. 완전히, 거침없이, 자기의 말을 하는 사람이었거든요. 아, 저런 정치인이 다 있구나! 진짜 짱이다! 거침없이 자기의 말을 하고, 주눅 들지 않고 자기의 얘기를 하는 정치인. 아, 저런 정치인이 있었구나! 그거보다 먼저 1985년도인가, 그때는 제가 김정길 장관 유세하는 걸 보러 갔었는데…


리: 참 어린 나이부터 관심이 많았군요, 고등학교 때부터…


서은숙: 그쵸, 어릴 때부터 쫓아다녔는데. 김정길 장관을 그때 사모님이 소복 입고 나와 있고 그랬어요. 우리 남편 살려달라고… 그래서 동정표로 1등 했어요. 그런 걸 보다가 지르는 걸 보니까 멋있는 거지…


리: 그래서 노무현 대통령 경선과 대선을 돕게 되었나요?


서은숙: 맞아요. 그때 부산에는 노사모가 있었는데, 노사모는 노사모대로 움직였고 저희는 희망연대라는 단체를 만들었어요. 문재인 대통령이 대표였고(웃음) 제가 간사였어요. 부산에서는 자주 뵀죠.


리: 같이 일해 보니까 어땠어요?


서은숙: 칼 같았어요. 맺고 끊는 게 분명하고 합리적이고 정확했죠. 그러면서도 저에게 한 번도 반말하신 적 없어요. 늘 ‘은숙 씨’ 이렇게 부르셨고, 제가 의원 된 뒤에는 ‘서 의원’이라고 부르셨죠. 2002년 그렇게 대통령이 되셨고, 저는 2003년 1월에 애를 낳았어요. 애 좀 키우다가 2006년부터 구의원으로 일을 시작했어요.

출처: 오마이뉴스
구의원으로 활동하던 시절의 서은숙 후보.

리: 처음 구의원 해보시니까 어떻던가요? 드디어 행정 안쪽으로 들어간 건데. 


서은숙: 그때 우리 부산진구 의원이 부산 시내에서 제일 많았거든요? 총 19명이에요. 그런데 민주당 의원은 저 한 명이었어요.


리: 세상에!


서은숙: 1:18. 민주당에서 비례대표 하나, 나머지 열여덟 명 전부 한나라당. 얼마나 죽여줘요. 나이도 젊고, 여자고, 야당이고… 그래도 저는 제 실력을 믿었어요. 그게 있으면 건드릴 사람이 없다.


리: 실제로 해보니까 어떻던가요?


서은숙: 남들이 안 하는 일 했어요. 예를 들어 사회단체 보조금을 왜 이따위로 쓰냐고 따지는… 그 당시에는 그런 문제를 제기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어요. 또박또박 논리적으로 반박할 수 없게 따져서 제도를 많이 바꿨죠. 예를 들어 절대 현금으로 지급하지 못하고, 반드시 카드로만 지급할 수 있게 바꿨어요. 간이영수증은 절대로 안 되고.


리: 현금으로 줬어요? 개꿀인데, 이거!


서은숙: 그쵸. 대다수 공무원이 야당 사람 들어오면 약간 쫄아요. 무슨 미친 소리 할까 싶어 쫄아드는데, 저는 합리적으로 의정활동을 했어요. 예로 저희 지역에 백양산이라는 산이 있어요. 그런데 거기에 롯데가 골프장을 지으려고 했어요.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라, 전국에 골프 칠 데가 얼마나 많은데 동네 사람들 운동하는 산을 골프장으로 짓겠다고 하냐, 그러면서 주민들하고 골프장 저지 활동 같은 것을 했어요. 주로 주민들의 이야기를 듣고 의견을 반영하는 편이었죠.

출처: 오마이뉴스
‘백양산 골프장’ 이야기는 신격호 회장까지 나서서 본격적으로 추진한 건으로, 결국 주민 반대에 부딪혀 무효화되었다.

리: 구의원이 할 수 있는 역할이 많다고 생각하세요? 


서은숙: 하려면 끝도 없고, 안 하려면 아무것도 안 해도 돼요. 견제와 대안 제시. 서로 발전하고 협조할 수 있다면 되게 할 일이 많아요. 그런데 갈등 관계가 되는 경우도 무척 많죠.


리: 결국 우리 당이 다 먹어야 된다는 걸로…


서은숙: 아유, 훌륭한 결론으로 갔네요. (웃음)


리: 첫번째 구의원 마치고 나서는 또 재선 들어가셨죠?


서은숙: 구의원은 어쨌든 두 번 할 생각이었어요. 출마해서 압도적인 표 차로 1등 했죠. 그리고 4년 더 일하면서 다시 결심했어요. 아, 구청장을 해야겠다. 남이 해 놓은 것에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게 별로 재미없네. 내가 생각하는 부산진구를 디자인해 보자, 이렇게. 출판 기념회도 하고 잘 하고 있는데…


리: 그런데 왜 그때는 안 하신 건가요?


서은숙: 그때 안철수가 우리 당에 들어오면서 정당 공천을 없앴잖아요 그래서 제가 그랬어요. 난 정당 공천 없으면 출마 안 할 거다. 난 당이 중요하다. 그래서 바보같이 시의원 출마했고, 떨어졌죠. 그리고 4년 후, 또 이렇게 나오게 된 거죠.

출처: 연합뉴스
형이 왜 여기서 나와…?

리: 4년간 공백기 동안에는 무엇을? 


서은숙: 여성의 전화 같은 데에서 여성 문제와 관련된 활동도 하고 부산 교육청에서 감사관 활동도 했죠. 서울시청특보 하면서 서울시의 잘 되는 부분을 공부하기도 했고요.


리: 서울은 부산에 비해서 좀 앞서있다는 생각이 들던가요?


서은숙: 시스템화도 잘 되어 있고, 서비스의 질이 비교가 안 된다고 생각해요. 행정이 사람을 향해 가고 있다는 느낌도 받았고요. 예로 서울 시내 어느 식당의 화장실에 갔는데, 그 앞에 팻말이 붙어 있더라고요. 여기는 여성 몰카를 점검하기 위해 여성 경찰관이 수시로 점검하는 지역이라고요. 여성 입장에서는 그게 실제로 이루어지든 이루어지지 않든, 행정이 나를 굉장히 많이 신경 쓰고 있다는 게 느껴지죠.


또 마을버스, 9시가 넘으면 정차장이 따로 없어요. 원하는 데 세워줘요. 버스 기사 분들 있죠? 그분들이 직업 수행 중 가장 괴로운 게 화장실 문제예요. 그런데 버스 기사를 위한 화장실을 곳곳에 만들어 두었더라고요. 행정이 사람을 향해 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리: 그렇게 사람을 향해 행정이 가려면 제일 필요한 게 뭘까요?


서은숙: 단체장의 철학. 굉장히 중요한 문제예요. 예산을 쓰는 데 있어서 ‘시민을 중심으로’라는 철학을 가진 단체장과 그렇지 않은 단체장은 굉장한 차이가 있어요. 저는 박원순 시장으로부터 행정은 사람을 향해야 한다, 사람에 투자하는 행정이 되어야 한다는 걸 배웠어요. 최소한 제가 일하는 동안에는 그 철학을 가장 중심에 놓고 일할 거예요.



꼰대와의 전쟁: 20년 해먹은 전임 구청장, 사사건건 충돌하다


리: 기존 구청장에 대해서 평가해 보시면 어떨까요? 같이 일하는 입장에서.


서은숙: 일단 꼰대에요. 왕꼰대.


리: -_-;;;


서은숙: 물리적 꼰대일 뿐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심각한 꼰대 증상에 시달리는 분이에요.

출처: 부산일보
앞으로 두고두고 까이실 분이니 얼굴 한번 뵙고 갑시다

리: 예를 들어서 어떤 일이 있었나요? 


서은숙: 제가 구의원 할 때 구청장에게 정책 제안을 했어요. 직장 어린이집이 필요한데, 구청부터 그걸 만들어야 한다고. 구청에 여자 직원이 50%를 넘고 기혼 여성도 아주 많았어요. 문제를 제기했더니 구청장님이 딱 답변하길, “서 의원, 애가 몇 명이에요?” “한 명입니다.” 이랬더니 글쎄, “우리 서 의원은 애를 많이 낳아서 국가에 애국해야 하겠네” 이런 미친 소리를 하고…


리: ……


서은숙: 그다음에는 뭐라고 하는 줄 알아요? “엄마들이 직장에 애 데리고 오는 걸 싫어해요.” 아니, 물어나 봤나? 기본적으로 여자는 집에서 애를 키워야 된다고 말하는 사람이에요. 이 분 별명이 있어요. ‘불통’이라고. 우리 구청장이 대통령보다 더 만나기 힘들어요.

출처: 노컷뉴스
약간의 검색으로도 그분의 불통 사례를 몇 개씩 찾을 수 있었다…

리: 힘드셨겠군요… 


서은숙: 너무너무 주민들을 안 만나는 거예요. 주민들이 구청장실로 오면 뒷문으로 빠져나가요. 근데 이분이 행시 출신이거든요? 이분도 초선 때는 잘했어요. 그런데 20년을 구청장 했어요. 관선부터 시작해서… 시대가 바뀌고 있는데 세상이 이상하다고 얘기하는 꼴이었죠. 자기는 그대로 앉아 있고. 구청장에게는 주민들과의 소통 능력이 중요해요. 지역에 다니면서 어려운 일 있으면 얼굴도 좀 보이고, 주민들 얘기도 들어줘야 해요. 그분이 그걸 안 했죠.


리: 또 어떤 문제가 있을까요?


서은숙: 이분이 3선 동안 사용한 교육 예산이 전체 예산의 0.0001%쯤 될까…? 거의 안 썼어요.


리: 아무리 안 써도 1%는 쓰지 않나요? 교육 예산으로 50억(주: 진구 총예산 5,200억)을 안 썼다고요…?


서은숙: 그렇죠? 말이 안 되는 이야기죠. 사실 교육감이 있으니까, 구청장들이 교육 문제는 교육감에게 밀어버려요. 서울 구청장들은 서로 교육 외치는데 부산 구청장들 마인드는 전혀 그렇지 않아요. 예산을 대부분 노인들에게 써요. 노인들이 자기 표의 텃밭이거든요. 여기서 지금까지 새누리당 말고 민주당 사람이 구청장 된 적은 한 번도 없어요. 부산 전체 구청장이 16명, 시의원이 42명인데 단 한 명도요.


리: 심각한데요?


서은숙: 심각하죠. 구청장은 세대 교체된 적이 한 번도 없어요. 그러니 부산의 구청장들이 그 예산을 자기들의 표밭인 노인에게 쓰지, 아이들이나 청소년들에게 쓰지 않아요. 예산이라는 건 현재 필요한 것에 쓰기도 하지만, 미래에게도 쓰는 것이 중요해요. 그런데 지금 부산진구는 전혀 쓰지 않았다는 거죠.


리: 그러면 어디 들어가는 예산을 줄여서 교육과 보육으로 돌리는 게 낫다고 생각하세요?


서은숙: 사실 다이어트를 할 곳이 그렇게 많지는 않아요. 국비를 받아와야 하죠. 하지만 국비는 그냥 주지 않아요. 그러니까 공무원들이 열심히 아이디어를 짜내서 중앙정부에 사업을 잘 올려야 해요. 그러려면 우리 구에 뭐가 필요한지 알아야 하고요. 적어도 구청장이, 나는 앞으로 교육과 보육 부문에서 주민 만족도를 높일 수 있는 사업 중심으로 움직이겠다, 이렇게 선언해야 공무원들이 이 사업 중심으로 고민하게 돼요. 그러면 저절로 예산 확충으로 이어지겠죠.



‘사람을 향하는 행정’을 해야 한다


리: 시급히 해결할 문제는 뭘까요?


서은숙: 부산진구는 일단 주민들을 좀 달래줘야 해요. 어루만져줘야 해. 다른 게 서러운 게 아니에요. 예전에는 부산에서 진구가 제일 인구가 많았는데 지금은 다 빠져나갔어요. 일단 서면이 죽었고, 두 번째로 교육환경이 좋지 않아서 애가 초등학교 6학년 되면 엄마들이 다 전학을 가요.

출처: 일간리더스경제신문
부산의 고령화는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리: 가뜩이나 젊은 사람 없는 부산에서 심각한데요, 그건? 


서은숙: 예전 구청장이 어떤 식으로 일을 했냐면, 노인들에게 경로당을 지어 줘요. 그걸 짓는 데 몇억이 들어요. 그런데 지어 놓으면 20명이 들어와요. 그리고 그 이후부터는 못 들어와요. 노인들은 굉장히 배타적이에요. 자기 경로당에 회원으로 등록된 사람 말고는 못 들어오게 해요. 그래서 20명을 위한 몇억짜리 경로당이 되어 버리는 거예요.


리: ……


서은숙: 그렇다고 제대로 들어간 것도 아니에요. 노인들에게 실제로 필요한 건, 일자리와 말벗과 소일거리예요. 하지만 그동안에는 기껏해야 경로당이나 지었어요. 요즘 노인들이 아이들 통학로 앞에서 통학 지도하거든요. 그게 노인과 아이가 만나는 장면이에요. 세대를 아우를 수 있는 그런 일자리를 노인들에게 확대해서 만들어줘야 해요.


리: 굉장히 힘든 얘기입니다. 일자리는 모두에게 부족하잖아요? 그러면 우선적으로 젊은 층에게 줘야 하지 않을까요? 또 이런 힘든 일에 굳이 구에서 나설 필요가 있나…


서은숙: 그렇죠. 지금 노인 얘기해서 그렇지, 사실 필요한 건 청년·노인·여성 일자리죠. 일자리 문제가 힘들지만, 구 단위에서 고민하지 않으면 안 돼요. 국가가 이 모든 걸 다 집행할 수 없거든요. 사실 우리가 ‘일자리’라는 단어로 표현해서 그렇지, 지금 진행되는 일을 양질의 일자리로 만들면 돼요.


리: 그건 더욱 불가능한 얘기 아닌가요? 국가 전체적으로 양질의 일자리가 없어서 문제인데.


서은숙: 예를 들면 동네에서 폐지 주우러 다니는 노인분들 계시잖아요. 지금 폐지값이 엄청 떨어졌어요. 예전에는 150원 하던 게 지금은 70원, 60원 이렇게 해요. 이전에는 한 달에 10만 원 가져가던 노인들이 5-6만 원도 못 가져가요.

출처: 전국자원봉사연맹 블로그
말 그대로 뚝 떨어졌다.

리: 흐음… 


서은숙: 노인들이 제일 필요한 게 ‘의식주’거든요? 이 ‘의’가 옷이 아니라 ‘의료비’예요. 의료비 내고 밥 먹고 집세 내는 데 최소한 오십만 원 정도가 필요한데, 이십만 원이 부족한 거예요. 그걸 폐지 줍는 걸로 할당해 왔고요. 그런데 이제 폐지는 돈이 안 돼요. 그래서 서울의 금천구에서 쓴 정책이 뭐냐면, 노인들에게 돈을 보전해 주기로 한 거죠. 20만 원을 맞춰주고, 노인들은 폐지를 가져오고, 구청은 폐지 업체와 협약을 맺어서 일종의 재활용센터를 만든 거죠. 거기에 예산 별로 안 들어가요. 그러니까 그런 식으로! 기존에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조금만 예산을 투여해서 노인들의 일자리를 만드는 거죠.


리: 오… 청년 일자리에 대해서도 대안이 있으신가요?


서은숙: 사실 청년 문제가 더 시급하죠. 부산에는 카페 거리가 있어요. 여기에 청년 창업자들이 몰려요. 카페도 하고 빵집도 하고 술집도 하고 그러는데, 이 친구들이 소위 젠트리피케이션 때문에 아우성이에요.


리: 그건 막을 수 없지 않습니까?


서은숙: 그쵸. 건물을 가진 사람들도 본인의 재산권을 행사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그래도 저는 이 사람들의 이야기를 구청이 들어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최소한 뻘짓은 안 할 수 있어요. 여태까지 구청에 카페거리에 뭘 했냐면, 상징물 하나 만들어 놓은 거. ‘타임이 선정한 명물 거리’ 이런 거 걸어준 거. 이렇게 해놓으면 이 안에서 장사하는 청년들의 상실감이 굉장히 커져요.

출처: 인터파크투어
이거 하나 서 있다. 짜증 날 만하다(…)

제가 아까 말했던, 부산진구에 사는 사람들의 아픔을 쓰다듬어 줘야 한다는 이야기가 이런 데에서 나온 거예요. 근본적인 해결은 두 사람이 한다 하더라도, 거기까지 가기 전에 서로의 입장을 알아야 한다는 거죠. 중재하고 연결하고, 필요한 게 있으면 도와주고. 


리: 아까 금천구 얘기를 잠깐 하셨는데요, 그런 얘기를 알고 계신 거면 서울과 연줄이 있었던 건가요?


서은숙: 제가 박원순 시장 정책 특보를 지냈어요. 그분이 특보 제도를 작년 7월에 만드셨어요. 그때부터 계속 특보를 한 거예요. 그것도 그렇고, 금천구청장님이 부산 출신이신 것도 있어요. 부산에서 활동하시다가 금천구 가신 거예요. 또 성북구의 김영배 청장도 계시고… 이런 분들은 공부를 많이 한 분들이세요. 그래서 저도 그분들이 쓴 책 읽어보기도 하고, 만나보기도 하고, 부산에 데리고 와서 강의도 좀 듣고 했어요. 벤치마킹하려고.


리: 말씀하신 것 중에 여성, 노인, 청년 이런 약자층 얘기를 많이 했는데 정작 활력이나 재미와 관련된 정책 얘기는 안 나왔어요. 그런 쪽으로 생각하신 건 있나요?


서은숙: 서면. 서면을 좀 살려야 해요. 거기가 되게 재밌는 공간이에요. 세대별로 공간이 갈리거든요. 이쪽은 20대, 이쪽은 30대, 이쪽은 40~50대, 이쪽은 70~80대. 70~80대 가는 공간 보면 콜라텍이 많아요. 하루에 3,000명씩 오고 그래요.


리: 네?! 콜라텍 하나에요?


서은숙: 엄청 커요. 내가 조만간 우리 콜라텍 사장님을 만날 거거든요? 만나서 제안하려고. 사장님, 부산진구청장배 노인댄스경연대회를 합시다… 그리고 태화쇼핑 뒤에 가면 클럽도 그렇게 많아요. 클럽대회를 했으면 좋겠다고 얘기하려고요. 볼거리를 만들어줘야 해. 이것도 관에서 주도하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스스로 즐길 수 있게 공간을 열어주는 거죠.


리: 그런데 문화예술도 그렇고 스타트업도 그렇고, 지방 청년들이 다 서울로 쏠리잖아요? 이쪽에서도 그런 게 가능할까요?


서은숙: 여전히 뭔가 부산에서 하려는 청년들은 많아요. 예산도 있긴 한데, 눈먼 예산도 많고… 이 친구들이 예산 받아서 뭐 하려고 하면, 관이 많이 괴롭혀요. 간섭하려고 들고요. 저는 관이 그런 꼰대질 하는 걸 막아주고 싶어요. 이런 건 몇 년 안에 안 되거든요. 10년 계획을 세워서 가야죠. 뭔가 계속 시도해볼 수 있도록 말이에요.



여성 정치인의 벽, 실력으로 돌파한다


리: 여성정치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총선 이외의 지역구는 남성이 많이 잡고 있잖아요?


서은숙: 대놓고는 아니지만 알고 보면 꼰대스러운 게 정치이기 때문에, 저도 이번에 그런 걸 느꼈어요. 시의원 나갈 때까지만 해도 별말 없다가 구청장 나가겠다 하니까 견제가 되게 많이 들어와요.


리: 구체적으로 어떤 식으로 견제가 들어오나요?


서은숙: 여자는 너무 약하지 않아? 이런 식이에요. 그런데 제가 부산지역에서 민주당으로 15년 굴렀거든요? 할 거 다 했어요. 지역 경제구 위원도 하고, 사무처장도 하고, 비례대표도 하고, 대통령 선거 사무실장도 하고… 하여튼 온갖 잡일과 궂은일과 앞서는 일 뒤서는 일 다 했는데도 여성이 어쩌고 하는 건, 여전히 정치 안에서 여성이 장 혹은 국회의원을 하는 것에 대한 꼰대스러움을 못 벗고 있는 것이라 생각해요.


리: 당에 변화를 요구하고 싶은 생각은 없나요?


서은숙: 요구해서 될 문제는 아니라고 봐요. 이미 제도적으로 갖춰져 있잖아요. 여성 가산점도 있고… 뭘 내놔라 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닌 것 같고, 여성 정치인 스스로 깨치고 나가는 과정이 필요한 것 같아요. 내가 그렇게 한다면 후배들에게 본보기가 될 수 있겠죠. 그래서 저는 부산에서 정치하는 후배들의 롤모델이 되고 싶어요. 안 그래도 제가 경선을 부산의 16개 구 중에서 제일 빡세게 했어요.


리: 아무튼 축하드립니다. 무엇 때문에 승리했을까요?


서은숙: 어쨌든 저는 부산에서 학생운동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계속 있었으니까요. 한 번도 지역 안 비웠어요.


리: 이번에 여론조사 보면 오거돈이 계속 앞서가고 있는데, 구청장 단위까지도 그런 변화가 일어날 것 같아요?


서은숙: 네. 부산시민들도 정당 하나가 계속 오래 해 먹은 것에 대한 염증이 있죠.


리: 박근혜가 정말 큰 역할을 했군요.(웃음)


서은숙: 그것도 그렇고, 이 선거에서 제일 잘하는 선거 운동원은 문재인 대통령이세요. 지지율도 높고, 호감도도 되게 높고. 대통령이 마음을 비우고 일을 잘한다, 노인분들도 그 말을 자주 하세요.

두 거물 운동원을 데리고 선거를 치르는 셈(…)

리: 이번에 청장이 되신다면, 기존의 구와 미래의 구는 어떻게 바뀔까요? 


서은숙: 예전의 부산진구는 갑갑하게 머물러 있고 활력이 전혀 없는 곳이었어요. 하지만 서은숙이라는 사람은 주민들의 마음을 읽어주고 가려운 데를 긁어주는 ‘효자손’ 같은 구청장이 되고 싶어요. 거기에 민주당으로 바뀌니 좀 낫네, 라는 말도 듣고 싶고요. 저는 되게 정당주의자예요. 대한민국 정치에 정당이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에요. 여의도 중심의 정당이 아니라, 진짜 제대로 된 지역에서의 정당 활동을 해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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