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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원 경력 12년, 지역을 떠나 청와대로 갔던 그가 춘천에 돌아온 까닭

조회수 2018. 5. 15. 10:4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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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지방선거 특집: 춘천시장 후보 이재수 인터뷰

숫자보다는 가치를 앞세우는 춘천시장


이승환(ㅍㅍㅅㅅ 대표, 이하 리): 아까 오다가 보니까 시위가 있던데, 어떤 일인가요?


이재수(춘천시장 후보, 이하 이): 춘천시가 쓰레기 소각 업무를 지자체에서 직접 하지 않고 위탁 운영을 하는데요, 새로 위탁을 맡은 업체가 내건 조건이 황당했던 모양이에요. 원래 고용되었던 노동자들을 승계하는 것이 원칙이고 상식이잖아요. 그런데 몇몇 사람이 부담된다고 제외했던 모양이에요.


리: 어쩌다 이런 일이 생긴 거죠?


이: 지금까지 한 번도 위탁업체가 바뀐 적이 없다가 이번에 처음 바뀐 거예요. 노동자분들이 노동 환경과 고용 불안정에 대한 문제점을 제기하면서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춘천시 직고용을 통해 이를 처리해 달라고 요구하셨죠. 그런데 그런 요구를 하는 과정에서 위탁업체가 바뀌어요. 이를 주도한 사람들을 제외하고 나머지 부분만 고용 승계하겠다는 방침이 있었나 봐요.


리: 이게 서울에서 터졌다면 작은 뉴스감이 아닌데요?


이: 그렇죠. 처음에는 지역 이슈였는데, 전국적인 이슈로 확장되고 있어요. 계약서에 고약한 내용이 많이 담겨 있다고 해요. 그래서 파업을 하고, 부분적인 재고용을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선언을 했어요. 제가 노동조합 분들을 만나서 진심을 담아 말씀드렸어요. 장기화된 갈등이기 때문에 그냥 넘길 수는 없다. 최우선 과제로 깊이 들여다보되, 혼자가 아니라 양측 관계자들이 다 함께 검토해 해결의 실마리들을 찾겠다고요. 만일 시장이 된다면 행정력, 동원력을 갖고 법률로 시비를 가리겠다고요.


리: 그럼 현재 시의 입장은 어떤가요?


이: 시장은 할 만큼 했다는 입장이고요. 고용 승계와 관련된 이야기를 새 업체에 전달도 했고, 조건 없이 고용 승계해 달라는 주문도 하는 등 성의 있게 접근했다. 그런데 그건 의회에서도 동의하지 않아요. 여러 차례 지적이 나왔고요. 시민단체도 춘천 시정이 매우 불성실했고 무책임했다고 지적하고 있어요. 행정이 대화하고, 푸는 노력이 부족한 것 같아요.

춘천시에서는 2017년부터 촉발된 환경미화원 위탁 고용 문제가 1년째 계속되고 있다.

여전히 고통받는 사회적 약자들


리: 선거운동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발생한 일인데요. 무력감을 느낀다고 해야 할까요?


이: 그런데 제가 이것뿐 아니라, 춘천에서 여러 건의 유사 사건을 경험했어요. 불합리한 공공에 민원을 제기하는 일들이요. 촛불이 세상을 바꿨잖아요. 상식의 세계,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고 있는데, 과거의 말도 안 되는 이런 일들이 아직 다 사라지진 못한 거죠. 제가 청와대에 있느라 현장을 못 봤던 것도 있겠지만요.


리: 새 정부 출범에 기대가 엄청 크셨나 봐요.


이: 그럼요. 그랬는데 여전한 불합리와 비상식이 일어나고 있는 거예요. 어느 기관에 90명의 노동자가 있었어요. 청소 노동자인데, 처음엔 가벼운 민원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들어보니 5년 동안 정말 아오지 같은 생활을 했다는 거예요. 폭언을 일삼는 건 다반사고, 가혹한 노동 조건도 그렇고요.


리: 제가 예전에 공공기관에서 알바를 했는데요, 거기 청소하시는 분들이 원래 휴게실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자리가 없다고 그걸 없애버리고 쓰레기 있는 곳에서 쉬라고 하는 거예요. 그걸 보고 굉장히 이해가 안 갔었는데…


이: 더 가혹한 게 있어요. 노조를 만들고 협상을 시작하는데, 상대가 협상대상자로 일절 인정하지 않을뿐더러 상스러운 말들도 너무 쉽게 해요. 노조위원장이 띠동갑 수준으로 나이가 많은데도. 그날 밤 술도 많이 먹고 속상했던 게 ‘아니 우리가 바꾼 나라가 이거였나’ 하는 거죠. 그래서 그 기관장에게 이야기해서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이를 공론화하겠다고 했지요. 덕분에 아직 과도기적 단계입니다만 다소 안정을 찾아가고 있어요. 재개발지역 문제도 있었어요. 자기는 동의한 적도 없고, 회의에 나간 적도 없는데 자기 집이 재개발지역으로 묶였다는 거였죠.


리: 묶였다고 마음대로 치울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나요?


이: 재개발법이라고 하는 것이 일정 기준 이상의 동의를 얻으면, 동의하지 않은 쪽이 있더라도 재개발이 가능한 게 있어요. 그래서 재개발은 늘 주민과 주민, 주민과 기관, 주민과 업자 간의 갈등이 상존하죠. 상식적 범주 내에서 이루어지는 갈등은 이해가 되는데, 250세대 중 거의 100세대가 동의한 적이 없다는 거예요. 그런데 서류상 동의가 되어 있더라는 거죠.

소수의 반대가 있어도 다수의 동의에 의해 전개되는 지금의 재개발 절차는 공익이라는 명분으로 개개인의 주거권을 박탈한다는 비판에 놓여있다.

리: 서울에 있다가 지방에 오면 참 신세계에 온 거 같아요. 어떻게 이런 일들이 벌어질 수 있죠? 


이: 그 얘기죠. 제가 2년 만에 춘천에 왔는데 이런 일들이 벌어졌어요. 반대하는 분들은 밥을 먹어도 막 벌벌 떨면서 먹어요.


리: 이상한 질문을 하나 드려볼게요. 만약에 100가구가 있어요. 그러면 그중에 몇 가구까지 동의하면 재개발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세요?


이: 제 상식으로는 단 한 가구가 원치 않는다면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해요. 재개발법의 속살을 잘 들여다보면, 이건 결코 주민들을 위한 개발이 아니에요. 이익을 취하는 어떤 특정 집단에 의해서 진행되는 것이죠. 가슴 아픈 사례가 있어요. 춘천시가 도시를 새롭게 재정비하면서 복개된 약사천을 다시 복원해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만든다는 계획을 세웠는데요. 그때 제가 시의원이었어요. 버티는 집들이 있었죠. ‘난 억만금을 줘도 이 집 못 팔아’ 하더라고요. 그 말 때문에 돈독이 올랐다는 식으로 동네 여론이 돌아갔는데, 알고 봤더니, 그 집이 아들의 사고 보상비로 지은 집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그 집을 자기 분신 같은 집, 죽을 때까지 아들을 생각하며 살 집이라고 생각했던 거죠. 이런 분은 그 집이 자기 삶이고 전부일 수 있잖아요. 그런데 행정에서 그분한테 그런 잔인한 혐의를 씌운 거죠.



거창한 정책이 아니라 소통과 협의로 도시의 문제를 바라본다


리: 이제 시장 선거에 나오셨잖아요. 하나의 동을 맡아도 그런 갈등 단계에서 소통이 힘든데, 전체 시를 맡다 보면 정말 합의 불가능한 소수로 인해 사업을 아무것도 추진하지 못하게 되는 딜레마도 있지 않을까요?


이: ‘정책 만들어라, 공약을 빨리 좀 달라’는 얘기를 참 많이 하는데, 저는 공약에 대한 두려움이 하나 있어요. 시의원을 할 때 보니, 사람들이 자기가 던져 놓은 공약에 발목을 잡히고 강박증에 시달려서, 다른 부분을 거의 안 보는 걸 수없이 봤거든요.


리: 그래서 저는 매니페스토 운동을 사실 별로 안 좋아하거든요. 그러나 방향성이라도 선심성 공약을 일단 좀 넣기 마련인데, 공약이 너무 소박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 보여주기식 공약이 여문 공약일 수가 없어요. 타당성 평가나 시민 의견 수렴 등, 객관적 평가를 거친 후에 만들어진 게 아니거든요. 그런데 공약에 집착하다 보면 사람들의 다양한 의사가 오히려 무시돼요. 문제 제기를 무시하고 밀어붙이죠. 관의 일방성이 4년 내내 계속된다는 것이에요. 그래서 제가 내건 슬로건이 ‘이제는 시민이 주인입니다’ 거든요. 시민이 생각하고 있는 것을 받드는 행정이 되게 하자는 거예요. 내 주장에 동의가 한 명이라도 더 많으면 밀어붙인다는 게 대한민국 정치인들이 그동안 내세웠던 덕목이에요. ‘불도저’ 같은 거죠. 이제 이런 것들이 더 이상 지도자의 덕목이 되어서는 안 돼요. 소수의 반대도 걸림돌로 보는 게 아니라, 당연한 주장이라고 봐야 해요. 소수를 존중하자는 거예요. 협의하고 숙의하는 구조를 만들어보자는 거죠.

서울의 도시개발을 이끈 ‘불도저’ 시장 김현옥은 와우아파트 붕괴사고로 불명예 퇴진했다.

리: 제가 볼 때는 제도로써 해결될 일이 아니라 거의 공무원들이 마인드를 다 바꿔야 할 수준이에요. ‘효율성이라는 잣대 자체를 버려야 한다’, 이런 생각까지 들거든요. 


이: 제가 시의원 12년 내내 이런 고민을 했어요. 우리 도시의 기준은 무엇인가. 지금 우리 사회는 어떤 프레임에 갇혀 있어요. 제가 기자회견을 하면 꼭 받는 질문이 있어요. ‘미군부대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 ‘레고랜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런데 전 이게 일부 집단에 의해 강요된 의제라고 생각해요. 30만 도시 사람들이 이 두 가지에 모두 깊이 관심 갖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프레임으로 몰고 가는 것이죠. 그 프레임에 갇혀버림으로써 오히려 사고가 제한되고 있어요. 그러니 수많은 사람에 주목하자는 거예요. 그분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봐야 해요.


리: 그렇죠. ‘우리가 이 문제를 잘 풀었어’라고들 하는데, 사실 그 문제가 중요하지 않았을 수도 있잖아요.


이: 그렇죠. 이게 중요한 거라고, 그렇게 생각하라고 강제하는 것뿐이지, 사실 사람들은 그리 중요하게 생각 안 해요. 나름대로의 중요한 문제들이 있죠. 오늘의 생계, 아이의 통학, 어머니와의 소박한 생활… 수많은 사람이 각기 다른 삶을 만들어 가고 있거든요. 이걸 일방으로 묶는다? 이것처럼 어이없는 일이 어디 있냐는 거예요.


리: 춘천 사람들은 이렇다 하는 고정관념이 있지만 사실 이를 쪼개면 굉장히 다양한 집단이 있잖아요. 그만큼 다양한 생각을 해야 할 텐데, 기존과 어떻게 다른 방향성을 가져야 할까요?


이: 일단 관이 일방적으로 주도해 왔던 것을 이제 멈추어야 할 때가 됐다는 것이죠. 관료주의, 관성에 의해 돌아가던 지역사회가 끝나야 해요. 이제 시민들이 스스로 참여하여 지역사회를 바라봐야 하는 거죠. 이를 위해선 참여예산제 정도 가지고는 안 돼요. 지금은 춘천시 예산이 한 1조 된다 하면, 그 중에 한 30억 정도 가지곤 ‘참여예산제 했다’고 하거든요. 근본적으로 다르게 가야 해요. 예산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면 너무 어이가 없습니다. 공무원들이 시책을 발굴하는 과정을 보면 자기 경험의 세계를 벗어나지 않아요. 그걸 넘어서 진짜 호응도 높은 그런 정책들은 새로 만들어지지 못하거든요.

브라질의 포르투알레그레에서 시작된 주민참여예산제도가 한국에 도입된 지 수년이 흘렀지만 “주민 없는 주민참여예산”이라는 비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일방적인 위임을 넘어서, 권한을 시민의 품으로


리: 어떻게 하면 시민들의 의견을 끌어내고 경청할 수 있을까요?


이: 경청이 아니라 구조를 바꿔야 해요. 관료사회가 전지전능, 무소불위 취급을 받는데, 그 이유가 이들이 정책을 결정도 하고 집행도 하기 때문이에요. 원래는 집행만 해야 해요. 집행부라고 하잖아요.


리: 그런데 사실, 행정을 그렇게 무시할 만한 것이 아닌 게, 국회에서도 여야가 있고 이들이 충돌을 통해서 합의하지 않습니까? 시에서도 마찬가지로 시의원들이 있는 것이고요.


이: 그런데 우리가 행정에 정말로 그런 권한을 줬냐는 거예요. 더 멋진 행정 상품을 개발하고 이를 통해 시민의 행복을 찾아내겠다는 얘기는 많이들 하죠. 그러나 그 속에도 행복은 없었다고 저는 진단해요. 지방자치시대가 열려 단체장을 우리의 손으로 뽑았는데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요.

여전히 중앙 위주로 돌아가는 지방자치

리: 간접민주제를 통해 위임하는 거잖아요? 


이: 위임한다는 건 뜻과 생각을 위임하는 거지 내 행복을 모두 위임하는 것은 아닌데, 마치 다 위임한 것처럼 대표성을 행사해서 문제라고 봐요. 아주 매력적인 상품을 만들면 잠시 행복할 수도 있겠죠. 잠시, 그런데 그것도 근원적인 행복은 아니에요. 지금은 시민의 것이 없어요. 자발성이 개입할 여지가 없다는 거예요. 스스로 결정한 것을 시가 집행하고, 이를 향유할 기회가 만들어지면 지역사회가 정말 달라질 수 있다고 보는 거죠.


리: 이런 생각이 다른 지역, 혹은 다른 나라에서라도 적용되어서 성공적으로 잘 된 사례가 있을까요?


이: 스위스를 비롯해 유럽 여러 나라에서 오래 진행된 흐름이에요. 제가 얘기하는 건 직접민주주의에요. 의사결정에 구체적으로 개입하고, 책임을 지고 자치단체장이 따라오게 하는 거죠. 전부 위임해버려서 시장의 실책을 시민이 그대로 감수해야 하는 그런 상황을 깨보자는 거죠. 저는 민회라는 표현을 쓰는데, 제도 설계를 통해서 시민들에게 권한을 주자는 겁니다. 가장 근원적인 권한을 가지고 있는 단위, 시민들이 자주성을 발휘할 수 있는 지역공동체가 기본이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민회라고 한다면 고대 그리스 시절의 아고라를 떠올리게 된다. 후보자가 이야기하는 ‘직접민주주의’의 도입이라는 점에서 큰 차이는 없을 것이다.

대화로 갈등을 풀어나간 시의원 시절


리: 지역공동체라고 하더라도 춘천 정도가 그렇게 작은 지역은 아니거든요. 의사결정자가 너무 늘어나면 갈등도 켜지지 않을까 생각하는데요?


이: 시의원 하면서 ‘왜 그렇게 얘기를 안 하고 행정이 일방적으로 갑니까?’라고 따지면 항상 ‘얘기했어요’ 라고 말을 해요. 그래서 확인해보면, 행정이 무엇인가를 던져 놓으면 찬반이 생기잖아요. 그럼 찬성하는 사람도 있고 반대하는 사람도 있으니 그게 시민의 의견 아니냐, 이런 식으로 해놓고 의견을 물었다는 거죠.


리: 얘기는 했네요. 확실히.


이: 지극히 요식적인 행위가 되는 게 ‘봐라. 이렇게 시민들에게 물어보면 결과를 못 내니까 어쩔 수 없이 우리가 하는 거 아니냐.’라고 주장하는 거죠. 딱 한 번 던져놓고 마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정말로 시민들하고 이야기를 해봤어요. 자꾸 대화하는 자리를 만드니까 서로 싸우던 시민들도 여유가 생기고, 이견을 좁혀나가는 거죠. 그런데 정말 시민에게 맡겨본 적도 없는 공무원들이 ‘시민들에게 맡기면 배가 산으로 가고, 절대 시민들은 결론을 못내’, 이렇게 얘기해요. 그건 그냥 결론을 못 낸 상황만 봤기 때문이에요. 정말 시민들이 그 문제를 책임지고 결정해야 하는 상황이 되잖아요? 그럼 아마 다른 결론이 나올 거예요. 서로 이야기하는 방식이 익숙하지 않을 뿐인 거죠.


리: 그런 사례가 진짜 있었나요?


이: 네. 춘천에 오면 사람들이 제일 먼저 찾는 것이 풍물시장입니다. 풍물시장이 원래 지금처럼 남춘천역 옆의 다리 밑에 있던 게 아니라, 약사천을 복개한 위에 포장마차 형태로 존재했어요. 이분들은 원래 춘천시 명동에서 노점을 하다가 노점을 철거하면서 이주한 분들이라 부유한 분들이 아니었어요. 그런데 약사천을 복원하면서 이분들이 또다시 이전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 거죠. 이주 조건들을 놓고 갈등이 생기면서 대책위원회가 만들어지고 싸움이 시작되었는데, 제가 중재를 섰어요. 제가 한 10차까지 협의를 이끌어봤죠.


리: 둘 다 질기네요(…)


이: 처음에는 정말 웅성웅성하다 끝났는데 서너 번째부터 이야기가 부드러워지고 행정 관계자와 이야기를 섞는 방식에도 자정력이 생기고 조정이 되는 거죠. 서로 얘기하면 된다는 거예요. 의논하면, 숙의하면 되는 거죠. 이제까지 행정은 항상 손쉬운 방법이라면서, 폭력적이고 일방적으로 자기 의견을 강조했던 것이지, 사실 그게 무슨 효율적인 것도 아니에요. 그냥 강제지.

풍물시장은 도로정비사업과 하천복원사업으로 두 차례 이주하는 고난을 겪었지만, 이제는 춘천을 대표하는 재래시장의 명소로 자리 잡았다.

실패한 도시 개발, 공간 민주화로 답을 찾다


리: 이해관계가 걸린 문제는 겉으로 드러나기라도 하지만, 제대로 나오지 못하는 얘기들도 많은 것 같아요. 레고랜드 같은 이슈에 묻힌, 춘천 밑바닥의 이야기들은 무엇이 있을까요?


이: 너무너무 많아요. 춘천시의 문제 중에서 이 공간을 계획하고 설계한 사람들이 정말 잔인한 일을 했다는 생각도 들어요. 어떤 때에는 구도심이 주요 상권으로 강조되었다가, 이제는 도시 팽창을 한다고 부도심을 만들면서 구도심이 공동화되고. 상권이 만들어지는 게 지속성을 가져야 하는데, 지금은 금방금방 바뀌어요. 새로운 개발에 의해 또 새로운 도심을 만들잖아요. 그러면 또 그쪽으로 상권이 쏠려가고 여기는 상권이 죽어요.


리: 구도심만 남아있는 곳은 쇠퇴하는 도시지만, 신도심이 생기는 도시는 발전하고 있다는 의미 아닌가요?


이: 외견상 건물이 많이 들어선 것이 발전인지는 모르겠는데, 몇 년 전에 생긴 신도심이 처음 생길 때는 정말 장사가 잘되는 곳이었어요. 그런데 지금 와서 다시 가보면 아주 텅 빈 곳이 되었죠. 상인분이 고민을 토로하는데, 세상을 엄청 원망하시더라고요. ‘저 가게가 2년 전에는 잘되었는데 이제 안 되는 건 저 사람의 책임인가?’ 이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5년 전에 잘나가던 상권은 지금은 더 잘 안 됩니다. 도시를 팽창해 나가면서 새로 상권을 만드는데, 공간을 깊이 있게 고민하고 설계하지 못해서 구도심만 늘려가는 상황이 된 거죠.


리: 큰 틀에서 관이 공간 설계를 폭력적으로 했다는 문제가 있을지 모르지만, 또 동시에 장사가 되고 안 되고는 이렇게 자영업자가 과밀한 나라에서는 나라님도 구제할 수 없는 문제 아닐까요?


이: 장사가 된다, 안 된다를 넘어서 공간에서 기본적인 상권 형성이 불가능하도록 양산하고 있는 거죠. 수요 문제도 있지만, 사실 도시 운영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언어는 공동체가, 도시가 지속 가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5년 뒤, 10년 뒤 미래에 사람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것이 행정에서 제1원칙으로 삼아야 하는 것이죠. 5년 뒤의 일도 판단하지 않고 개발을 밀어붙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리: 그런데 또 도시개발계획에서 신단지 건설을 반대하는 경우는 적거든요. 신도심이 형성돼서 발전하고, 구도심이 조금씩 쇠퇴하고 이런 것은 어느 곳이나 마찬가지인 것 같은데요.


이: 제 얘기의 핵심은, 행정이 도시개발계획에 대해 비밀스럽게, 하향식으로 결정한다는 것이에요. 사실 개발계획이 비밀을 전제할 수 없는 건 불가피한 측면도 있는데, 저는 공간민주화라는 관점에서 도시개발을 다시 바라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공간에 대한 시민의 의사결정 구조에서 행정 독과점, 행정 일방주의를 버리겠다는 것. 지금 춘천은 10년 전 시장의 일방적인 도시계획에 대해서 제대로 책임도 물을 수 없는 상황이죠. 가버리면 끝인 거예요. 얼마나 무책임한 일이에요?


리: 그런데 본인은 행정의 장이 되려고 하고 있잖습니까?


이: 행정의 장이라기보다는, 행정이 더 이상 일 처리를 그렇게 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제가 나섰다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행정의 관성을 깨는 것, 시민들이 결정하도록 하는 것, 이게 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시민이 고민하고 시민이 직접 결정하는 춘천


리: 후보자님이 이런 뜻을 관철하기 위해서는 당선 후에 시청 안에서도 갈등을 겪고 해결해 나가야 할 것 같은데요.


이: 공무원, 관료들하고 갈등이 있을 수 있죠. 예전에도 아주 깊게 논쟁한 적이 있는데 4-5급 정도 되는 지역 고위직 공무원분하고 이야기를 나눴어요. 우리가 자치하면 시민자치, 주민자치라고 떠올리잖아요? 근데 그 공무원분이 “우리 사회에 시민 자치가, 주민자치가 정말 있습니까?”라고 하는 거예요. 솔직한 얘기로 ‘단체 자치’라는 거죠. 시민들에게 권한을 받는다기보다는 중앙정부로부터 위임받은 권한을 시청, 자치단체가 행사하는 게 자치라는 거죠.


리: 뭔가 정말 일 잘하실 분일 거 같은데요 (…)


이: 지방자치법에서 시민들에게 속한 권한이라고 하면 아주 미세하거든요. 자치단체장이 실질적 책임자가 되어 있죠. 그래서 공무원들이 권한이라는 부분에 대한 집착이 강한 거예요. 개헌 과정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논의가 있지만, 우리가 단체자치에서부터 근본적으로 새롭게 해석하고 논의를 해야 해요. 자치단체에서 결정하는 방식들을 미세한 부분부터 시민에게 돌려주는 구조를 설계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리: 그렇게 하면 구체적으로 어떤 변화가 생길까요?


이: 12년 동안 시의원 하면서 장애인 정책도 많이 제시하고 장애인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듣고 하면서 마치 장애인 정책 전문가인 양 행동했어요. 몇몇 정책은 각광 받기도 했는데, 지난 선거에서 실패한 다음에 장애인분들이 저를 찾아왔어요. 근데 이분들을 만나면서 정말 부끄러워진 게 제가 12년 동안 했던 장애인 정책이 사실 장애인의 실제적인 요구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거죠. 만나서 밥을 먹으러 가면 같이 갈만한 식당이 없어요.

장애인에게 이 문턱은 너무나도 높다

리: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이: 식당마다 방지턱이 있는데, 방지턱에 경사로가 있어서 휠체어로 지나갈 수 있는 가게가 거의 없어요. 두세 명일 때는 문제가 없지만 열 명 이상 모이면 정말 갈 곳이 없어요. 회의하고 밥 먹으러 갑시다, 하면 두 시간이 걸리기도 하고 그래요. 이런 기초적인 것도 해결 못 하면서 장애인에 대해 아는 척하는 게 부끄럽고 민망한 거예요. 그래서 제 생각은, 장애인 정책을 우리가 한다? 행정이 한다? 공무원이 한다? 장애인이 아닌 사람이 한다? 이게 말이 안 된다는 거죠.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된다는 겁니다. 장애인 정책은 장애인에게 맡기는 게 가장 좋은 정책일 수가 있어요.

비장애인의 눈으로는 별거 아닌 계단이지만, 장애인에게는 에베레스트산처럼 다가온다는 공익광고

리: 단순히 말로만 지방자치를 하자는 게 아니라 실질적으로 지방자치를 어떻게 하는가의 문제인 것 같군요. 


이: 아까 이야기했듯 권한이 나온 곳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 정답에 가까운 것 같아요. 대의민주주의에서 대의라는 것은 유권자의 생각을 읽는다는 것인데, 시민들을 대의하는 게 아니라 자신이 시민들의 대표자라는 이야기를 자꾸 해요. 저도 그렇게 실수할까 봐 걱정인데, 대의민주주의에서는 시민들을 대의하는 것이지, 대표를 자임해서는 안 됩니다. 권한을 위임해준 사람들의 뜻을 잊어버리고 권한을 행사해서는 안 된다는 거죠. 시민들에게 권한을 돌려주고, 실제로 행사하게 해야 합니다. 왜 우리가 이명박근혜를 만났을까요?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기에 뿌듯한 일들도 많았는데…


리: 이명박, 박근혜한테도 시민들이 스스로 위임한 거잖아요.


이: 그러니까, 그게 위임한 거예요. 위임한 것에 대해서 절실함이 없었어요. 시민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권리, 권한이 정말 소중한 가치라고 생각한다면 그걸 지키기 위해서 노력할 거예요. 그런데 실제로 그 권한을 행사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권리에 대한, 권한에 대한 절실함이 없었던 거죠. 그래서 그렇게 어이없는 정권이 나타났던 거고… 우리가 정말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가지고, 그 권리를 생활에서 경험할 수 있도록 하자. 그래야 우리가 함부로 위임하지 않는, 그런 정부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해요.


리: 그런 경험은 정말 지방자치가 아니면 할 수 없겠네요. 중앙 정부에서는 절대 할 수 없는…


이: 그러니까요. 그래서 저는 청와대에 있는 것보다 지역에서 이 일에 충실한 것이 더 의미 있다고 느껴요. 제가 농정, 현장 농업이라는 부분을 놔두고 지역으로 왔는데, 그러면서 “당신이 농정에 있어서 농민들이 숙원해 왔던 것들을 팽개쳐두고 왔느냐”라는 질타도 듣고 왔지만, ‘지역이 이런 부분에서 더 중요합니다’라는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대한민국 국민을 행복하게 하는 문재인, 춘천 시민을 행복하게 하는 이재수 


리: 이번에 문재인 정부에서 정부를 꾸릴 때, 좀 놀라울 정도로 지방에서 오래 일한 분들을 많이 행정관으로 데려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이: 대통령이 지역에 대해서 깊게 배려했다고 해요. 제가 있던 농업 분야에서도, 제가 1991년도에 생활협동조합을 시작했거든요. 스물일곱 살부터 협동조합을 통해 농업 현장에 결합했는데, 그렇게 만난 농업 현장의 이야기들이 지금 50살이 넘어서도 계속 가지고 가는 이야기입니다. 대통령께서 농민 단체 만나면서 하신 말씀이, 청와대 참모들을 현장 출신으로 뽑아서 반드시 여러분의 이야기를 반영하겠다고 하셨어요. 현장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기는 분이라는 거죠. 지역에서, 현장에서 호흡한 생생한 경험을 국정 운영의 바탕이 되도록 하겠다는 의지가 강하신 것 같아요.


리: 중앙에서 보고 느낀 게 굉장히 여러 가지가 있을 거 같아요. 지금의 그런 철학에 어떠한 영향을 줬던 경험이 있을까요?


이: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솔직한 감사와 감동이 있어요. 제가 매우 측근으로 있던 것은 아니지만 2011년 대통령 후보 시절부터 지역에서 그분을 위해 활동하면서 대통령의 발언이나 배려 같은 것을 느꼈죠. 그 부분을 청와대에서도 많이 실감할 수 있었고요. 대통령의 진정성이 기적을 만들고 있다는 생각. 지금 그분의 진심, 자세와 행동들이 대한민국 전체를 행복하게 하고 있잖아요? 이걸 배워와서 이 도시에서 제가 가지고 있는 진심이 시민들에게 전달이 되고, 그것이 도시의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내는 중요한 힘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문재인 지지율이 워낙 높다 보니 다들 서로 같이 찍은 사진을 자랑 중이다

리: 아이들을 키우시니까, 아이들을 위해서 이 도시가 어떻게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있으신가요? 


이: 제가 아이들을 정말 좋아하잖아요. 그런데 정작 아이들을 잘 몰라요. 아이들의 요구와 생각, 생태계에 대해 잘 몰라요. 그래서 제가 청년들 만나는 자리에서 그런 얘기들을 했어요. 청년의 문제를 내가 안다고 할 수 없다. 내가 너무 좋아하고 사랑하는 아이들, 자식조차도 그 아이들이 현재 가진 고민을 모르는데 춘천의 청년, 그들의 생태계를 어떻게 알겠느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청년청 같은 것을 만들어서 그들의 생각을 받쳐주는 것이다. 청년의 문제를 어른의 눈으로, 공무원의 관점에서 자기식으로 해석해서 답을 내리는 건 옳지 않다, 라고요.


리: 하긴 자기 애도 이해하기 힘든 게 세상인데…


이: 그렇죠. 장애인의 일은 장애인에게 맡겨야 하는 것이고, 아이들의 일은 아이들에게 맡겨야 한다는 것이고요. 행정에서 일방적으로 주도해왔던 방식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은 행복하지 않은 일이라는 거고요. 사실 저보고 사람들이 추상적이라고 많이 얘기해요. ‘왜 뭐가 없냐, 구체성이 없냐’ 이런 얘기를 많이 해요. 왜냐하면, 지금까지의 프레임에 제가 들어가지 않기 때문이죠. 문재인 대통령도 사실은, 출마 선언 할 때 굉장히 추상적으로 얘기하셨거든요. 정치 공학적으로 보면, 우리가 얘기하는, 이 가치를 얘기하는 게 안 맞을 수도 있어요.


리: 맞아요. 정치공학적으로 잘 먹히는 건 747 공약 같은 (…)


이: 그런 거예요. 제가 정말 가슴 아픈 게 청소노동자들의 이야기 속에서 내가 할 일을 찾는 건데, 자기 집을 빼앗긴 분들의 삶 속에서 제가 무엇을 해야 할지를 결심했거든요. 지금 수개월째 시청 앞에서 천막 농성하는 분들의 이야기가 제가 하고자 하는 일과 무관하지 않잖아요. 저에게는 그런 이야기가 더 중요한 것이지, 자기들이 정한 프레임 속에 들어와 있지 않다는 식의 문제 제기에 대해서는 쉽게 동의할 수 없다는 거예요. 그래도 시민들은 제가 이런 얘기를 하면, 금세 동감해요.

눈에 보이는 숫자를 제시한다고 해서 구체적이고 실현 가능한 공약은 아니라는 점을 몸소 보여준 그분

리: 이번에 시장이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는데, 만약에 시장을 하고 4년 뒤에 물러나게 되면, 시민들이 자신을 어떻게 기억해줬으면 좋겠어요? 


이: 제가 결심한 것이 있어요. 기존의 시장 자리하고 제가 되고자 하는 시장은 분명히 다르다는 건데요, 제가 만약 당선되면 또 한 번 출마할 가능성이 높을 거예요. 근데 제가 되어야 하는 이유를, 제가 찾는 게 아니라 시민들이 먼저 찾고, 함께 하자는 이야기들을 듣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시장이 주인공이고, 시장이 스타가 되고, 시장이 지역의 장악력을 가지는 게 아니라, 시민들이 스스로 자주관리 시스템을 갖는 시도가 정착이 되는 그런 사회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자기들이 결정하고 그 결정에 대해 책임지고 향유하는 것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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