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리전' 양상의 시흥시장 선거, '대리인' 아닌 '대안'이 되다

조회수 2018. 4. 23. 17:08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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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흥시장 예비후보 김영철 인터뷰

‘70만 대도시 시흥’의 미래를 정초(定礎)할 사람, 김영철


최 : 시흥시장 후보로 나섰습니다. 출마의 변을 한마디로 하신다면?


김영철 : 정치는 정의를 바로 세우는 일입니다. 무신불립(無信不立) 공동체가 유지되기 위한 최소한은 군대나 식량이 아닌 지도자와 구성원의 신뢰입니다. 2500년 전 공자님 말씀입니다. 지도자와 구성원을 연계하는 신뢰의 핵심은 공정과 정의입니다.


공정과 정의 속에는 인간 존엄의 철학이 내장되어 있어야 합니다. 정치는 시민들을 무섭게 생각하는 일입니다. 시민은 배를 띄울 수도 있지만, 배를 뒤집을 수도 있습니다. 민심이 물이라면 정치는 배입니다. 늘 긴장하여야 하며 시대를 성찰해야 합니다.


저는 시민을 모시는 시장이 되고 싶습니다. 갑과 을이라는 이분법적 구분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저는 시민을 철저히 갑으로 모시는 시장이 될 것입니다. 막연한 얘기가 아니라 저의 전 인생을 통해 실천한 철학이자 지론입니다. 저는 시민이 주인이고 시민이 ‘갑’이 되는 세상을 오랜 세월 꿈꿔왔습니다.

출처: 주간시흥

최 : 시민이 ‘갑’이라… 막연한 정치구호처럼 들립니다만.


김영철 : 지금은 시민이라는 말로 통일됐습니다만 한때 정치경제적으로 민중이나 서민이라 불렸습니다. 저는 한평생 그분들과 함께 하려 했던 의지로 살아온 사람입니다. 그게 곧 저의 인생역정이기도 하고 말입니다. 선거를 앞두고 급조한 말이 아니라 오랜 세월 다듬어왔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최 : 한마디로 시흥시민이 현재보다 훨씬 안정된 삶을 살 수 있는 시흥을 만드시겠다는 말씀인 듯한데,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김영철 : 수도권 대부분이 개발 사업을 이미 진행 중이거나 끝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시흥은 수도권에서 유일하게 개발의 여지가 많은 도시입니다. 구도심과 신도심 사이에 커다란 개발제한지역이 있어서 도시가 두 동강이 난 것 같은 모습이기도 합니다. 저는 도시의 공동화를 막는 매우 현실적인 개발과 발전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20세기형 난개발을 물리치고 21세기형 스마트개발에 역점을 두면서 시흥을 인구 70만의 대도시로 만들어 명실공히 수도권 제1의 산업도시로 거듭나도록 할 것입니다.

출처: 시흥신문
실제 시흥시는 전체 면적의 62.3%가 개발제한구역이지만 이 중 36프로가 그린벨트로서의 기능을 상실한 훼손지이다. 현실적인 발전계획이 필요한 시점이다.



시민이 ‘갑’, 시장은 ‘을’. 시흥시민은 ‘갑’으로 모시겠습니다.


최 : 산업단지라고 하니까 굉장히 큰 사업으로 들립니다만, 그게 실질적으로 시민의 삶을 바꾼다고 보시는지요?


그렇습니다. 시민의 삶은 지역경제의 활성화와 매우 밀접하게 연동돼 있으니까요. 그러나 개발과 발전에만 매진하면 또 다른 갈등과 혼란, 일테면 투기 열풍이나 개발독점 문제 등이 야기될 수 있습니다.


시는 그러한 갈등요인을 관리하는 곳이어야 하고, 그러자면 시장은 단지 행정 경험과 정치 경험만이 아니라 시민의 삶 속으로 들어가서 모든 사안을 시민의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저는 오랜 기간 시민사회운동에 매진해 왔고, 또한 재선 시의원이자 시의회 의장으로서 시민적 삶에 대해 남다른 경험과 철학을 가진 사람입니다. 정리하자면 시민 중심 개발, 삶의 질 향상을 위한 발전 방향을 세우겠다는 말씀입니다.

출처: 중부일보
현재 시흥시의 큰 이슈 중 하나인 광명시흥 테크노밸리.

최 : 굉장히 복잡한 문제일 수 있지만, 오랫동안 준비하셨으니 한마디로 정리할 수 있을 거라 생각됩니다. 시장님의 미래시흥은 한마디로 무엇입니까?


김영철 : 저의 공약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더 큰 시흥, 더 튼튼한 교육, 더 좋은 문화, 더 나은 지역 경제, 더 촘촘한 복지, 더 깨끗한 환경”입니다. ‘더’라는 말은 지금보다 나아지는 발전을 상징합니다. 저는 발전하는 시흥의 설계자가 될 준비를 마친 후보입니다.


최 : 자칫 개발지상주의자로 비치기도 합니다. 3선 시장을 역임한 김윤식 시장에 대해, 다시 말해 지금(현재)의 시흥을 평가하신다면?


김윤식 시장님은 모든 면에서 무리 없이 시정을 잘 이끄셨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3선을 하셨으니 이제는 지역의 어른으로서 후임자를 믿고 맡기시길 바랍니다. 저는 김윤식 시장의 정책을 이어가면서 거기에 저의 지역발전 계획과 철학을 덧붙일 생각입니다.


어려움에 봉착할 때는 지체 없이 전임자인 김윤식 시장님과 상의할 것이며, 그 외 시흥의 발전을 위해서라면 누구와도 머리를 맞대고 상의할 생각입니다. 그것이 바로 열린 시정의 첫걸음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김윤식 시장. 3선한 사람의 자신있는 미소가 눈에 띈다…

최 : 선거구도와 관련해서 시흥시장 선거는 지역의 유력 정치인들의 대리전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 점에 대해 말씀해주신다면.


김영철 :시흥에는 우리 당의 소중한 정치자원이 많습니다. 이미 정치적 중량감을 가진 분들이기도 하고요. 3선 시장을 역임한 김윤식 시장과 재선의원에 더해 현재 청와대에 계신 백원우 전 의원, 4선의 중량감을 가진 조정식 의원이 있습니다. 아무래도 시흥에선 그분들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조정식 의원의 비서관을 역임했던 저는 조정식 의원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정치적 인연을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저는 누구를 정치적으로 대리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이미 시 의장까지 한 마당에 누군가의 대리라는 건 어불성설입니다. 저는 김영철의 이름으로 정치합니다. 시장이 된다면 당연히 김영철의 이름으로 시정을 펼칠 것입니다. ‘대리’가 아니라 ‘대안’이 되는 시장이 될 것을 시민들께 다짐하고 있습니다.


최 : 이번 선거에선 유난히 고 노무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과의 인연을 내세우는 후보가 많습니다. 후보님도 고 노무현 대통령과 깊은 인연이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노무현, 문재인 이름 내세우기보다 그분들의 “삶의 자세”를 따를 것.


김영철 : 그 역시 저는 반대합니다. 인연으로 따지면야 누구 못지않습니다. 그러나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대통령의 이름을 내세우는 선거여선 안 됩니다. 설령 그분들을 거론한다면 그분들의 삶의 자세를 따르는 것이어야지 이름이나 팔아먹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절박함이야 모르는 바 아니지만 모두 자중하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문통과 찍은 사진이 없다고는 안 했다)

최 : 대리가 아니라 대안이 되고자 하신다는 말씀, 인상적입니다. 어쩌면 김영철 후보님 전 인생이 현실의 대안을 찾는 과정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만.


김영철 : 그리 말씀해 주시니 고맙네요. 나름 열심히 살았다고 자부합니다.


최 : 학생운동을 적극적으로 하셨고, 시민사회운동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김영철: 80년대 초반 학생운동을 했습니다. 4학년 때 수배 생활 끝에 구속이 되기도 했었고요.


최 : 옥고까지 치렀으면 보통의 운동권은 아니셨나 봅니다.


김영철 : 80년대 대학가에는 언더서클이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제가 다녔던 한양대에 두어 개의 언더그룹이 있었는데 그중 한 곳에서 사회과학을 공부했습니다. 결국, 전두환 정권의 폭압을 참을 수 없어서 선봉에 섰고, 꼬박 1년을 감옥에서 보냈습니다. 80년대 감옥에 다녀온 건 그리 대단한 경험이라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풋풋하던 시절

최 : 사회과학을 공부하셨다고 했는데, 인상 깊게 읽은 책은 무엇입니까?


김영철 : 일반적으로 마르크시즘 공부를 하게 되는데 저는 고 리영희 선생님이 저술하신 『전환시대의 논리』가 가장 인상 깊었습니다. 지금도 제 삶의 지침이 되는 책이라 할 수 있고요. 본격적으로 문학을 공부하지는 않았지만 신동엽 시인의 『금강』은 지금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최 : 리영희 교수님은 한양대 은사님이기도 하시네요.


김영철 : 예, 평생 존경하는 스승님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그분처럼 치열하게 살고 싶고 또 그분처럼 소신 있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최 : 정확한 구속 사유는 무엇입니까?


김영철 : 85년 4학년 2학기 때 광주학살 진상규명과 군사독재 타도를 주장하며 한양대학교 삼민투위를 결성 수차례 집회와 시위를 주도하던 중 1985년 11월 4일 구속 수감됐습니다. 이듬해 1월 집시법 위반으로 서울지법에서 징역 1년형을 선고받고, 86년 11월 4일 만기 출소했습니다.

당시 작성했던 항소이유서.

최 : 이후의 삶은…


김영철 : 석방 후 계속 민주화 운동을 했고 87년 7월 대통령 특별사면을 받았습니다. 87년 복학하여 이듬해 졸업한 뒤 줄곧 지역에서 시민을 조직화하는 일에 매진했고, 민주화를 앞당기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활동무대를 시흥으로 옮긴 후 시의원에 재선됐고, 이번 선거 직전까지 시흥시의회 의장을 역임했습니다.


최 : 집안에선 애물단지였을 것 같습니다. 이 대목에서 부모님 얘기를 듣고 싶습니다.


김영철 : 90세가 되신 아버님은 현재 시흥에 살고 계십니다. 어머니는 고1 때 돌아가셨고요. 본적은 충청도인데, 원적으로 살펴보면 어머니의 고향은 시흥입니다. 돌아가실 때도 시흥에 사셨고요. 그러니까 시흥은 어머니가 태어나신 곳이자 돌아가신 곳이기도 합니다. 어머니의 고향에서 시민을 위해 봉사하는 건 어쩌면 저의 숙명일지 모르겠습니다.


 

민주화 운동으로 1년 동안 옥고 치러


최 : 동기 관계는 어떻습니까?


김영철 : 8녀 1남 중 막내입니다. 위로 누님이 여덟 분이나 계시지요.

최 : 현재 가족 관계는…


김영철 : 아내와 아들 한 명 있습니다. 아들은 대학생이고, 아내는 공무원입니다.


최 : 아내 덕분에 시민사회운동을 할 수 있었겠네요.


김영철 : 동지적 관계였죠. 그렇다고 둘 다 운동적 삶을 살 수 없으니까. 아내가 공무원 시험을 보게 됐고, 덕분에 저는 시민운동과 정치에 매진할 수 있었죠.


최 : 결코 순탄치 않은 삶을 사셨네요. 다시 선거 얘기를 좀 해보죠. 솔직하게 본인의 승리 가능성은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십니까?


김영철 : 선거에 나선 후보는 누구나 자신이 당선된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그렇고요ㅎㅎ. 막연한 얘기는 아니고요. 시흥은 크게 ‘갑’ 지역과 ‘을’ 지역으로 나눠집니다. 저는 ‘을’ 지역에서 나름 경쟁력이 있습니다. 다만 현직 시장이 밀어주는 후보와 지역에서 재선을 했던 정치인이 밀어주는 후보들과 경쟁한다는 점에서 결코 만만하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최 :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은 어디에 연원한 건지요.


김영철 : 저는 선거 캠페인이 답답합니다. 솔직히 경험이나 삶의 과정에서 어느 누구보다 경쟁력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걸 효과적으로 알릴 방법이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시정의 비전을 놓고 타 후보와 끝장 토론도 하고 싶습니다. 시민들에게 심판하게 하는 거죠. 누가 더 시장직에 적합한 후보인지. 그런 과정이 진행된다면 단연 저에게 기회가 주어질 것이라 확신합니다.


최 : 다시 한번 시흥의 미래에 대해 여쭙습니다. 김영철의 시흥 비전은 무엇입니까?


김영철 : 주변에 유명 대도시가 많습니다. 수원이나 부천 등에 비해서 시흥의 인지도는 떨어집니다. 여러 이유가 있겠습니다만 랜드마크가 없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서울대 시흥캠퍼스가 향후 랜드마크가 될 가능성이 큽니다. 교육도시로서의 위상도 올라갈 테고요.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시민의 삶의 질 전반을 향상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부문별, 지역별 저의 공약을 알리기 위해 저는 발바닥에 땀이 나도록 지역을 돌아다닐 것입니다.

자신이 돌아다닐 곳을 알아보는 김영철 후보

최 : 학생운동, 시민운동을 거쳐 정치 운동을 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실제 몸 운동은 좀 하십니까. 두주불사시라는 얘기를 들었습니다만 건강관리는 어떻게 하시는지.


‘무브먼트’는 잘 하는데 ‘스포츠’는 그다지 즐기지 않습니다. 나름 건강에 신경 쓰고 있고 아직 걱정할 정도는 아닙니다. 두주불사라는 소문은 근거 없습니다. 다만 워낙에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다 보니 그런 말이 나돌았나 봅니다.


최 : 끝으로 어떤 시장이 되고 싶으신지요.


양정고 1학년 재학 때 에피소드가 생각납니다. 화학 선생님이 다른 참고서 다 버리고 자신이 집필한 참고서만 사라는 것이었습니다. 실제 그 참고서에서 시험문제가 그대로 출제되었습니다. 참을 수 없어서 시험지 답안지에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자기 참고서 팔아먹으려는 게 아니냐는 글을 썼습니다.


누구나 불만이 있었지만 선생님의 권위에 눌려 아무 말도 못 하던 걸 제가 나서서 문제를 제기했던 겁니다. 이후 그 선생님한테 엄청나게 얻어맞았습니다. 그러나 결국 동료 학생들이 저의 편이 되어주었습니다. 불의에 맞서 용기를 낸 첫 사건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저는 평생 그 일을 잊을 수 없습니다.


직책에 연연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습니다. 잘못된 일이라면 과감하게 잘못됐다고 인정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권위를 앞세우는 시장이 되기보다 시민의 권위를 존중하는 시장이 되겠습니다. 시민을 ‘갑’으로 모시는 시장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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