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ㅍㅍㅅㅅ

창의성으로 뭘 꼭 ‘만들어내야만’ 하나?

그저 우리를 즐겁게 하고, 너무 신나고 재미있기 때문에 좋다는 말로는 안되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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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성이란 무엇인가?


너무나도 모호하고 애매한 개념이라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라는 것을 안다. 오죽하면 ‘창의성을 정의하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창의성이 아니게 된다’는 말까지 있을까. 


그 중요성에 비해, 창의성에 대한 심리학자들의 실질적인 관심과 연구는 별로 이뤄진 것이 없다. 창의성이랍시고 관련 연구를 수행하고 결과를 내어놓아도 과연 그게 창의성이 맞긴 한 건지, 아무도 확인해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 중요한 것을 마냥 놔둘 수는 없었기에, 그건 마치 직무유기와도 같이 느껴졌기에, 심리학자들은 창의성의 실체를 밝히고자 나름 여러 가지 노력을 기울여 왔다.


그리하여 다수의 연구자들이 동의하는 창의성의 대표적인 특징 두 가지가 나왔으니, 그것이 곧 ‘독창성’과 ‘유용성’이었다. 한마디로 말하면, 창의성이란 기존과 다른 새로운 것이면서도 다수의 사람으로부터 유용하다고 인식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기존 창의성에 대한 심리학 연구 결과들을 살펴보면, 이 ‘독창성’과 ‘유용성’에 초점을 맞춰 창의성을 발견하고 통제하려는 노력이 많았음을 알게 된다.


가령 ‘외계 생명체 묘사 과제’는 심리학자들이 ‘독창성’ 기반의 창의성 측정을 위해 사용해왔던 도구 중의 하나로, 실험자가 참여자들에게 외계 생명체를 그려보도록 주문했을 때, 얼마나 외계 생명체에 관한 전형적 속성 혹은 인간 중심적 사고들에서 벗어난, 독특한 형태의 대상을 그려 보이는가를 곧 창의성의 지표로 삼는 방법이다.


한편, 심리학자들은 이른바 확산적 사고(divergent thinking)로부터 기인하는 각종 다양한 창의 아이디어들을 어떻게 하면 창의적인 결과물로 연결시킬지 고심하였다.


이를 위해 여러 가지 실험 조건들을 마련한 후, 어떤 조건 하에서 더 ‘창의적인 결과물’이 만들어지는가를 확인하는 형태의 연구들이 다수 등장했다.


누가 더 ‘창의적인 이야기’를 잘 지어내는가, 누가 ‘창의적인 연구 주제’를 잘 떠올려 내는가, 누가 ‘창의적인 사고가 요구되는 문제’를 더 빨리 풀어내는가 등등 결과에 초점을 맞춘 시도들이 많았다.

창의력 대장들의 소굴, 캐치마인드

혹은 창의성과 현실의 창의적인 결과물 간 관계성을 확인하기 위해 역사 측정적(histriometric)인 접근 방법을 시도한 사례도 있었다.


심리학자 Simonton의 연구들이 대표적이다. 그는 시대를 구분하고, 각 시대별 창의적이었던 인물이나 창의적인 결과물의 수를 계산하는 한편, 사회 안정성이나 문화적 다양성 등 시대적 배경 변인들을 지표화하여 어떤 시대, 어떤 사회적 배경 속에서 창의적인 사람, 창의적인 결과물이 더 많이 등장하였는지를 추적하였다


(참고로 Simonton은 높은 창의성을 보유한 천재들은 전체 인류 역사 기간 동안 무선적으로 나타난 것이 아니라, 특정 시기에 집중되어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는 문화 인류학자 Kroeber의 주장에 영향을 크게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Simonton이 언급했던, 특정 시기/지역 내 창의적 분포의 양을 결정하는 거시적 변인으로는 정치적 분화, 그릭도 제국의 불안정성이었다. 쉽게 이야기하면 정치적 분화 양상이 심화할수록, 그리고 국가나 시민사회의 불안정성이 높아질수록 특정 사회가 보유한 ‘다양성’의 정도가 높아지고, 이것이 곧 창의적인 인물의 출현으로 귀결된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창의성에 대한 심리학자들의 연구 결과들을 살펴보면 으레 떠오르는 생각이 있다. 개인적 신념의 문제인 것인지, 연구비 등 현실적인 문제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시대적 요구에 의한 것인지 모르지만 어찌하였든, 창의성 연구의 ‘목적’을 한 가지 방향으로 정해두고 있지는 않았는가 하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쓸모 있는 창의성’에 대한 강박이다.


말하자면, ‘창의성은 개인, 혹은 사회의 생산성/효율성 향상에 도움이 된다’는 전제에만 골몰한 채, 창의성 탐구를 지속해오지는 않았는가 하는 의문이다. 실제로 창의성 개념에 대해 매우 많은 관심을 두고 있는 분야들은 바로 조직학과 교육학이다.


조직학에서는 혁신적인 업무 생산성 향상을 위해, 교육학에서는 국가/사회, 혹은 개인의 커리어 발전에 창의성을 활용할 수 있는 인재를 길러내기 위해 오래전부터 창의성에 대한 비범한 관심을 보여 왔다.

정리하자면, ‘어떻게 하면 새롭고 쓸모 있는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새롭고 쓸모 있는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능력을 기를 수 있을까?’가 많은 창의성 연구자들이 줄곧 마음속에 지니고 있었던 목적의식이었다.


그러나 어쩌면 이는 창의성이라는 개념이 지니는 가치에 대한 저평가가 아닐까? 창의성의 가치는 ‘쓸모 있는 방향으로의 활용’, 단지 그것으로 충분한 것일까? 물론 그런 목적이 아니라면 왜 굳이 우리가 창의성을 연구해야 하냐고 반문할 이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늘 이야기하지 않는가. ‘국가 경쟁력을 위해’, ‘조직의 체질을 근본적으로 개선하기 위해’, ‘직업적 성공을 거두기 위해’ 창의성을 연구하고, 교육하고, 장려해야 한다고 말이다. 창의성에 관한 사회적 담론의 형성에서 항상 빠지지 않는 전제들이다. 무엇을 만든다거나, 무엇을 얻는다거나, 무엇을 이룬다거나 하는 등등의 전형적인 목적 지향 말이다.


하지만 이는 창의성이 안고 있는 잠재력을 딱 절반밖에 활용하고 있지 못하는 것이라 말하고 싶다. 창의성은 새롭고 쓸모 있는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데 필요하다. 그러나 한편, 창의성은 우리가 인생을 즐기며 살아가는 데 있어 절대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 이유로는 안 되겠는가? 창의성을 추구하는 이유가, 어떤 진취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단지 그것을 행하는 우리의 마음이 너무 신나고 재미있기 때문에, 행복하고 기쁜 기분을 느끼게 하기 때문이라는 것으로는 안 되겠는가?

이렇게, 창의력은 때로 그 자체만으로 우리를 즐겁게 한다

현재 ‘유용성’ 측면으로 경도되어 있는 감이 없지 않지만, 사실 창의성의 본질은 ‘새로움’이다. 그리고 ‘새로움’이란 인간으로 하여금 쾌락과 흥분을 느끼게 하는 중요 원천이자 자기실현의 수단이 된다(이 점을 잘 지적한 심리학자가 바로, 몰입(flow) 개념으로 유명한 칙센트미하이(Csikszentmihalyi)다).


매일매일 반복되는 뻔한 것들에 대해서는 우리가 그다지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그러나 예상치 못했던 새로움을 발견할 때면 우리는 신기하다는 느낌과 함께 ‘재미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흔히 스포츠가 재미있는 이유를 가리켜, 각본 없는 드라마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맞다. 스포츠는 창의적이고 그래서 재미있다. 매 순간 다른 맥락과 상황과 조건들이 어우러져 항상 새로운 모습들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우리는 그 새로운 모습으로부터 재미를 느낀다. 결과가 뻔히 예상된다면? 지금만큼 스포츠가 재미있게 느껴지지는 않을 것이다.


다른 예를 들어보자. 아이들이 재미있게 노는 순간들을 볼 때면, ‘새롭다’는 것이 얼마나 본능적으로 쾌감을 주는 행위인지를 확실히 이해할 수 있다. 아직 본격적인 사회화 과정에 들어서지 않은 어린아이들은 놀이를 창조적으로 꾸며낼 줄 안다.


즉, 아이들은 어른들이 정해진 용도대로 사물/공간을 활용하려 들지 않는다. 그들은 자기 마음대로 이름 붙이고, 의미를 부여하고, 역할을 부여한다.


그리고 ‘가만 놔두면’ 마음대로 때려 부수고, 마음대로 던지고, 마음대로 칠하고, 마음대로 움직이고, 마음대로 논다. 그 창조적 놀이를 하는 아이들의 ‘행복하고도 열정적인’ 표정을 당신은 목격한 적 있는가?

‘유용성’이 아닌, ‘독창성’과 ‘쾌락’에 초점을 맞춘다면 창의성 실현에 있어 중요한 것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 어떤 결과물을 내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사회적으로 써먹을 만한 유용한 결과물이 아니면 뭐 어떤가. 오히려 꼭 그런 결과물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강박은 창의성이 내포한 본질적 즐거움을 해친다. 


끝이 어떻든지, 일단 창조적으로(자기 마음대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야말로 ‘창의적 행복’의 포인트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현재 창의성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이 쾌락적이고 자기실현적인 기능이 아닌, 생산성 기능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직장에서는 창의성에 대한 직무교육을 정말 많이 한다. 어떻게 하면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산출해낼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그런 아이디어들을 바탕으로 개인/조직의 업무 성과에 기여할 수 있는지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한 것은, 창의적인 활동은 본질적으로 재미있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만들어내려 노력하는 직장인들의 표정이 그리 밝지 않다는 사실이다. 창의적인 결과물 생산을 직/간접적으로 강요받고 있는 처지이기에 결과적으로 직장인들은 창의적 활동으로부터 별다른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는 듯하다. 막연히 생각해보자면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창의성 교육에 많은 시간과 예산을 투입함에도 기대한 만큼의 창의성 교육의 성과가 나타나지 않는 것은 아닐지.


 

왜 꼭 창의성으로 뭔가를 만들어내야만 하는가?


직원들의 행복, 만족감, 쾌락, 자기실현 등을 위해 창의성을 활용하면 안 되는 것인가? 굳이 창의적인 결과물을 내지 않더라도 창조적 활동에 몰두하는 이들이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다면, 스스로 무언가 해낼 수 있다는 느낌인 이른바 자기효능감(Self-efficacy)을 느꼈다고 말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추측이지만 결과를 강요하지 않는, 과정에 초점을 둔 창의적 활동이어야 결국 더 순수하게 창의적인 결과물이 많이 나올 수 있지 않을까. 맹목적인, 창의적 결과물에의 집착은 그다지 ‘창의적’이라 볼 수 없다.


창의성이 짐이 되고, 스트레스가 된 지금의 현실은 창의성에 대한 명백한 모독이다.


원문: 허용회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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