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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온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

조회수 2018. 4. 3. 09:18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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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해 달라"고 빌면서 도착한 곳은 '싱가포르'
출처: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노수복 할머니는 42년 만에 한국에 있는 동생과 위성중계로 만났다. 당시 할머니가 태국에 있었던 이유는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갔기 때문이었다.
“나, 광산 노가, 노수복이. 안동군 풍천면 광덕리 안심부락. 내 동생 노수만이, 여동생 노순음이.”

1984년 3월 할머니 한 분이 방콕에 있는 한국 대사관을 찾아왔습니다. 태국인처럼 보였던 할머니의 입에서는 어눌한 한국말이 터져 나왔습니다.


태국에서 40년 넘게 살았던 할머니의 이름은 노수복, 한국에서 이산가족찾기운동을 한다는 소식에 동생을 만나기 위해 한국 대사관을 찾은 것입니다.


1984년 3월 12일 노수복 할머니는 태국의 BB TV 스튜디오에서 위성중계를 통해 KBS 스튜디오에 있는 동생 노순음씨와 막sot동생 국현씨를 TV 화면으로 만납니다. 30여 분간의 화면 상봉을 했던 할머니는 두 달 뒤인 5월, 42년 만에 고국땅으로 돌아와 동생과 극적으로 만났습니다.

 


‘일본 순사에게 강제로 끌려가 위안부가 됐던 노수복 할머니’

노수복 할머니의 강제 동원 및 위안소 이동 경로

1921년 경북 안동군에서 태어난 노수복 할머니는 가난 때문에 14살의 나이에 한센병 환자에게 시집을 갑니다. 혹독한 시집살이와 배고픔에 친정으로 도망쳤으나 다시 아버지에게 쫓겨나, 식모살이를 하러 부산으로 갑니다.


1942년 가을, 부산 근교의 우물가에서 빨래를 하던 노수복 할머니는 갑자기 나타난 일본 순사에게 붙잡혔습니다. 할머니는 “용서해 달라”고 빌면서 잡혀가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쳤지만 소용없었습니다. 어디로 끌려가는지도 모르고 40여 일가량의 항해 끝에 도착한 곳은 ‘싱가포르’였습니다.

“막사로 가서 방을 하나씩 배정받은 후 조금 있으니 장교 한 사람이 들어왔다. 나는 ‘살려 달라’고 매달리며 애원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몇 차례 실랑이 끝에 나는 매를 맞고 정신을 잃고 말았다. 다시 깨어났을 때 나는 이미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지옥 같은 ‘위안부’ 생활이 시작되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군인들의 옷을 빨거나 청소를 해야 했고, 오후에는 탄약통 등을 져 나르는 중노동을 했다. 어떤 때는 하루 60여 명의 병사들을 맞는 고통을 겪기도 했다. 이런 날은 겨우 목숨만 붙어 있는 산송장이나 다름없었다.”

(노수복 할머니의 증언)

싱가포르에서 7.8개월을 지낸 노수복 할머니는 군용 트럭을 타고 다시 방콕으로 이동합니다. 방콕에 억류됐던 노수복 할머니는 일본군이 연합군에 항복하면서 영국군 포로수용소에 수용됩니다. 당시 포로수용소에는 태국이나 버마에서 온 조선인 위안부가 무려 200여 명이나 됐습니다.


전쟁이 끝났지만 돌아갈 곳이 없었던 노수복 할머니는 포로수용소를 탈출한 뒤 말레이시아와 태국 등지를 전전한 끝에 태국 핫야이에 정착해 결혼도 하고 가족을 이루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한시도 고향을 잊지 못했습니다.

출처: 서울시
서울시가 기획하고 서울대 연구팀이 발간한 『끌려가다, 버려지다, 우리 앞에 서다 2』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간 여성들의 처절한 증언과 생생한 기록 등이 담겨 있다.

‘끌려가다, 버려지다, 우리 앞에 서다’


노수복 할머니의 이야기는 서울시와 서울대인권센터 정진성교수연구팀이 만든 『끌려가다, 버려지다, 우리 앞에 서다 – 사진과 자료로 보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 여성 이야기』에 실린 내용입니다.


서울시는 2017년 국내 최초로 위안부 피해자의 증언과 자료를 바탕으로 사례집을 발간했습니다. 이후 노수복 할머니를 비롯한 6명의 피해자 증언과 4건의 위안부 관련 주제를 담아 이번에 새롭게 발간했습니다.


기존 증언집이 피해 상황 설명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면 이번 ‘위안부 이야기’는 식민지 사회에서 어떠한 생활을 하다가 끌려가게 되었는지부터 멀고 먼 귀환 여정, 그리고 귀환 후 생활까지 상세히 담겨 있습니다.


또한, 전쟁 수행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기업에 의해 관리되고 이용당한 ‘기업 위안부’ 피해 여성들과 2000년 ‘일본군 성노예 전범 여성 국제법정’에서 피해를 증언하고 일본의 가해 책임을 물었던 남・북한, 중국, 대만, 필리핀 피해 여성 등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이야기도 포함됐습니다.

출처: 서울시
아시아 각 지역으로 강제 동원된 일본군 위안부, 그들에 대한 화해와 치유는 오직 진정한 사과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과거에는 할머니들의 증언을 통해 일본군 위안부의 피해가 세상 밖으로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생존자가 줄어들면서 증언을 기록해 사료로서 체계적으로 관리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기록물의 중요성은 일본이 ‘일본군 위안부 기록물’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Memory of the World) 등재를 방해한 사례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지난해 한국과 중국, 일본, 타이완 등 9개국은 공동으로 일본군 위안부 자료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신청했습니다. 그러자 일본 정부는 유네스코 분담금 지불을 거부하며 일본군 위안부 자료 등재를 막았습니다. 결국, 일본군 위안부 기록물의 유네스코 세계기록 유산 등재는 보류됐습니다.


아픈 역사라도 기록하고 기억해야 합니다.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되기 때문입니다.


원문: The 아이엠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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