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대통령의 감빵생활, 그리고 '생각나는 그 사람'

조회수 2018. 3. 30. 14:29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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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중률 100% 박스나 이번에도 캐삭빵 승리

보수정권 9년, 국가정보원의 오욕


정보와 기밀을 다루며 총칼 없는 전쟁을 수행하는 위대한 영웅들, 음지에서 일하며 양지를 지향하는 무명의 헌신.

국가정보원의 역대 원훈. ‘이랬어야 했는데’.

… 이어야 하는데, 그게 이상처럼 잘 되지만은 않았다. 국가정보원 얘기다. 


특히 이명박/박근혜 보수 정권 9년 동안 일어난 사건들은 좀 많이 심각했다. 노무현 ‘논두렁 시계’ 여론조작 사건, NLL 대화록 유출 사건, 블랙리스트 작성, 간첩 사건 증거 조작 사건… 특히 정치 개입은 노골적인 수준이었다. 2012년 18대 대선을 전후하여 벌어진 여론조작 사건은 대표적으로, 이 사건이 없었다면 대통령 탄핵에 이르는 비극적인 역사도 없었을지 모른다.


국정원이 박원순 서울시장을 겨냥하여 벌인 정치공작은 그 지속성, 심각성 면에서 대선 여론 조작에 비견할만하다. 이 사건은 광역단체장 한 사람을 지목해 우익 관변 단체를 동원하여 장기간에 걸쳐 집요하게 공격한 유례 없는 사건이었다.



‘박원순 제압 문건’


‘박원순 제압 문건’이 세간에 등장한 것은 2013년, 민주당 진선미 의원의 폭로를 통해서다. 문건 작성 시점은 박원순이 서울시장에 당선된 지 한 달 만인 2011년 11월 24일이었다.

진선미 의원이 폭로한, 소위 ‘박원순 제압’ 문건.

국정원이 작성한 것으로 추정된 이 문건은 ‘서울시장의 좌편향 시정운영 실태 및 대응방향’이라는 제목으로, 박 시장을 어떻게 ‘제어’할 것인지에 대한 내용이 담겼다. 박원순 취임 이후 종북 좌파 인물들이 시정에 깊숙이 개입하고 있어 공직사회가 좌파이념에 오염될 것이 우려된다는 이유에서였다. 


문건은 이를 위해 ‘건전단체’(어버이연합 등의 극우 관변 단체를 뜻한다)를 동원하여 규탄 시위를 벌이는 것은 물론, 저명 교수, 논객, 언론을 이용하기도 했다. 심지어 정부 조직까지 동원되었는데, 감사원, 행안부는 물론 검찰, 경찰까지 박 시장의 시정을 제압하는 데 나서야 한다고 썼다.

건전단체라니 뭔가 이런 느낌

그러나 2013년 당시 이 문건은 그다지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다. 민주당에서 원세훈 전 국정원장 등을 고발하긴 했으나, 국정원은 문건의 정체를 부인할 뿐이었다. 검찰 수사도 지지부진하다가, 이 문건이 “국정원의 기존 문건과 글자 폰트나 형식이 다르다”며 각하 처분해버렸다. 사건의 실체에 대한 조사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 문건이 진짜 국정원 문건이었다는 것이 드러난 것은 2017년 9월,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후의 일이다. 국정원의 자체 조사 결과였다. 문건이 작성된 시점으로부터는 6년, 폭로된 시점으로부터도 무려 4년 동안 진실이 은폐된 것이다. 그동안 수도 서울을 책임지는 광역단체장이자 야권의 유력 정치인을 향한 탄압이 계속되었다.



국정원은 어떻게 박원순을 ‘제압’하려 했나


문건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건전단체’를 동원하자는 부분이다. ‘건전단체’란 당시 국정원에서 보수 시민단체를 지칭해 쓴 표현으로 대표적인 단체로는 어버이연합이 있다(…). 건전단체란 말은 물론 보수단체란 말도 어울리지 않는, 실상 관변단체에 가까운 단체다.

건전단체의 건전한 모습

국정원과 이들 관변단체의 유착관계 역시 정권 교체 이후에서야 본격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국정원 직원의 진술에 따르면 국정원은 이들과 박원순을 성토하는 집회를 벌이기로 사전에 조율하고 200~300만 원가량의 사례금을 전달했다. 


왜 국정원은 이토록 집요하게 박원순을 공격했는가? 역시 진술에 따르면, 원세훈이 국정원장이 그 범인인 것으로 보인다. 그는 특히 박원순 시장을 싫어해서 “종북좌파” “초장부터 싹을 잘라야 한다”는 등의 언급을 자주 했다고 한다(…) 박원순을 공격하라는 지시가 ‘국정원장 말씀 자료’에 명기된 것도 최소 49회.


보수단체는 항의집회뿐 아니라 고소 고발을 통해 야권 정치인들을 압박하기도 했다. 일단 고소 고발이 들어오면 검찰이 수사에 나설 수밖에 없다. 여기에 언론이 나서 사건을 대대적으로 보도하기까지 하면 별 것 아닌 의혹도 얼마든지 크게 부풀릴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각본’에는 청와대 또한 깊이 개입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박주신 씨 병역비리 의혹 선동 사건


박원순 제압 계획 중 아직도 많은 사람이 ‘사실’로 믿고 있는 가장 악질적인 사건이, 박원순 시장의 아들인 박주신 씨의 병역비리 의혹을 선동한 사건이다. 당시 상황은 이렇다.


박주신 씨는 허리디스크 질환으로 공익근무요원 판정을 받았다. 그런데 한나라당 출신의 강용석 의원이 병무청에 제출된 박주신 씨의 MRI 사진을 어딘가에서 입수하여, ‘이런 체형은 20대에게선 나올 수 없다’고 주장하며 사진 바꿔치기 의혹을 제기했다. 

너 병역비리!

바로 역시 보수단체가 나섰다. 항의시위를 벌였고, 즉각 의혹을 규명하라는 목소리가 커졌다. 박원순 시장이 취임한 지 4개월여 만의 일이다. 결국 박주신 씨가 직접 세브란스 병원으로 가 재촬영을 했다. 결과는 강용석의 완패. 사진은 바꿔치기 되지 않았다. 박주신 씨의 사진이 맞았다. 


그러나 보수단체의 시위는 심지어 이미 이 의혹이 거짓으로 드러난 이후에도 계속되었으며, 재촬영을 한 세브란스병원은 물론 수사를 시작한 검찰까지 규탄하였다. 보수 세력을 중심으로 재촬영마저 가짜라는 의혹이 불거지기도 했다. 훗날 드러난 사실에 따르면, 이 뒤에도 역시 국정원의 지시가 있었다고 한다.


여기엔 또 한 가지 중요한 지점이 있다. 애당초 의혹을 제기한 사람이 무려 국회의원이었으며, 입수 경로가 의심스러운 개인의 의료 정보를 쥐고 있었다는 것. 게다가 나름 저명한 의학 교수는 물론, 전국의사총연합(전의총)과 같이 영향력 높은 의사 단체마저 의혹에 힘을 실어주었다는 것.


어버이연합 같은 관변단체만 나선 게 아니었다. 박원순 한 사람을 죽이기 위해, 이 우스운 스캔들에 일종의 ‘보수 총궐기’가 일어난 것이다.

오직 의학적 소견을 피력하겠다고 주장했다. 그 소견 틀렸다

보수의 품격


일간베스트 저장소(일베)에서 ‘좌익효수’라는 아이디를 만들어 활동했던 국정원 직원은 박원순을 원숭이로 묘사하고 비하하며 박주신 씨의 병역 의혹을 조롱하는 그림을 디시인사이드 등 커뮤니티에 꾸준히 올렸다. 모두 허위였을 뿐 아니라 표현의 수위도 저열했다.


보수는 시스템을 수호한다. 시스템에 대한 신뢰가 그만큼 더 필요하다. 그런데 그 시스템을 보수를 자칭하는 이들이 이만큼이나 망쳐놓았다. 그렇게 해서 지킨 것이 고작 개인의 사익에 불과했다는 것이 또한 탄식을 불러일으킨다. 정체불명의 비선실세의 사익, 대통령 본인의 사익.

그리고 그 결과
흑큽…

원세훈 원장 시절의 국정원은 어떤가. 안보가 아니라 정권을 지키는 데 혈안이었다. 원세훈 원장이 싫어한다는 이유로 박원순이란 광역단체장 한 명을 공격하느라 엄청난 자원을 낭비했다. 검찰은 심지어 이명박까지 닿아 있던 이 비리를, 국정원이 기존 작성하던 문서와 이 제압문건의 폰트가 다르다며 대강 묻어버렸다. 


훗날 문건이 사실로 드러나고, 박원순이 정치인으로서 처음으로 이명박을 직접 고발한 이래 대통령 이명박의 범죄 행각이 비로소 낱낱이 드러나기까지, 우리는 너무 많은 시간과 자원을 낭비해야 했다.


박원순 시장 아들 박주신 씨의 병역비리 의혹을 선동했던 사건은 더 문제였다. 음모와 공작의 영역에서 시작되었으나, 보수 논객과 언론, 심지어 전의총과 같은 전문가 집단까지 합류하며 일종의 ‘보수 총궐기’로 발전하기에 이르렀다. 한 사람을 ‘제어’하고 ‘싹을 자르기’ 위해 보수는 이만큼이나 망가져 버린 것이다.


다행스런 일이지만, 싹을 자르는 데 성공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박원순은 지금 가장 유력한 서울시장 후보이며 지방선거를 앞두고 모든 여론조사에서 어떤 후보를 상대로 하든 우위를 점한다. 원세훈은 현재 파기환송심에서 국가정보원법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으며 대법원의 판단을 재차 기다리고 있다.

캐삭빵에서 또다시 승리하신 그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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