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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나 혼자 산다' 처럼 깔끔하게 살지 못할까?

조회수 2018. 3. 27. 18:12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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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여유가 없으면 청소할 여유도 없습니다

고시원에서 <나 혼자 산다> 찍기


MBC <나 혼자 산다>를 열심히 챙겨봤다. 나 혼자 살았기 때문이다. 혼자 살다 보니 혼자 사는 남들의 인생이 궁금해지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특히 청소하는 장면들이 좋았다. 무력하게 늘어져 지내지는 않겠다는 나름의 각오를 다질 수도 있고 말이다.

괜히 보는 사람이 기분 좋아진다

남들의 인생으로 자극을 받았으니 이번엔 내가 직접 실천할 차례였다. 그래, 미니멀리즘이 어디 멀리 있겠는가. 쓸고 닦으면서 나만의 공간을 미니멀하게 추구하면 그만이지. 내일부터 나의 빨래바구니에는 옷더미가 쌓여 있지 않을 것이요, 설거지는 마치 방금 꺼낸 듯 깨끗하게 닦여 있을 것이다.하지만 핵주먹 마이크 타이슨이 나 같은 사람을 두고 한 말이 있다.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 처맞기 전까지는.”

나의 굳건한 의지는 파도처럼 몰아치는 현실에 무참히 쥐어 터지고야 말았다. 계획과는 다르게, 3평 남짓한 고시원에서 무기력을 떨쳐내는 일은 참으로 쉽지 않았다. 아니, 그 좁은 고시원에서 뭐 그렇게 관리할 것이 많냐고?


살아본 사람은 안다. 외출을 위해 잠깐만 옷을 꺼내도 폭탄 맞은 듯 난장판이 벌어지며, 단 하루라도 신경 쓰지 않으면 어김없이 쓰레기 처리장이 되어버린다. 자기 전에 읽던 책을 잠시 책상에 놓아둘 여유도 없다. 아침이 밝아오면 그곳은 아침을 위한 식탁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최소한의 공간을 활용하기 위해서는 곱절의 부지런함이 필요하다

지친 몸을 이끌고 돌아오자마자 곧장 다시 쓰레기를 버리러 나가던 어느 날이었다. 나는 비로소 청소라는 단어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고야 말았다. 그것은 ‘전투’의 다른 이름이었다. 매분 매초 사람의 형상으로 살기 위해, 마치 백조의 바둥거림처럼 쉴 틈 없이 지속해야 하는 종류의 것이었다. 꽉 짜여 돌아가는 하나의 톱니바퀴가 된 기분이었다. 벗어날 수 없는 비루한 일상이 더욱 비참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만약 그때, 단 한 번이라도 “청소, 대체 뭘까…” 하고 멈춰 생각해봤다면 어땠을까. 의미가 생기면 고통도 잊히는 법. 만약 청소를 뜻깊은 일로 생각할 수 있었다면 단순히 괴로운 노동으로 치부되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일상 또한 조금이나마 더 즐겁게 느껴졌을 테고 말이다.


인문 에세이 『청소 끝에 철학』은 내가 미처 성찰하지 못했던 ‘청소의 의미’에 대해 다룬 책이다. 저자 임성민 씨에게 결코 청소란 싸워도 싸워도 끝이 나지 않는 ‘전투’ 따위가 아니다. 오히려 살아갈 힘을 채워주는 ‘충전기’에 가깝다. 우리는 정말 저자처럼 청소를 통해 방전된 마음을 가득 채울 수 있을까?

청소… 하기 싫은 그것…



힘들지만, 힘들수록 청소를 해야 한다


내가 고시원에 들어가게 된 건 복학 이후였다. 이제는 정말 뭔가를 제대로 해내야 한다는 부담감이 컸다. 통학에 들어가는 시간과 체력을 아낄 요량이었지만, 점차 어느 쪽이 이득인가 싶어질 정도로 환경은 열악했다. 그래도 지금이 타이밍이라며 스스로를 밀어붙였다.

“당장 해야 하는 일에만 초점을 맞추다 보면 주변의 환경에 무심하게 된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주변 환경 때문에 일이 지연되거나 능률이 떨어질 수도 있다. 지금은 여력이 없다는 핑계로 우선 이 일을 마치고 나서 주변을 돌아보겠다고 미루면, 그 미뤄놓은 일들 때문에 하고자 하는 일이 마음처럼 안되는 것이다.”

– 202p

그렇게 살다 보니 조금씩 긁힌 마음의 상처들, 걱정이나 후회, 미래에 대한 기대나 고민이 먼지처럼 가슴 속에 뽀얗게 쌓여갔다. 하루를 제대로 소화하지도, 알아채지도 못하면서 무작정 노력을 꾸역꾸역 쑤셔 넣었다. 그것만으로도 그저 뿌듯하던 때였으므로 내 주변을 돌보는 일은 계속해서 유예될 뿐이었다.

“공간을 익숙하고 친근하게 만드는 데는 청소가 가장 좋은 방법이다. 청소를 하면서 공간을 가깝게 접하고 이를 다루는 방법을 익히게 된다. 그러면서 공간이 익숙해진다. 사람도 자주 만나야 익숙하듯이.”

– 216p

막연히 허둥지둥 살기보다는 조금 멈춰서 내 공간을, 내 마음을 자주 청소하며 살았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그 좁은 방에서의 시간을 불필요한 감정의 공회전으로 인해 탈진했던 기억 대신, 나 자신과 더욱 가까워졌던 경험으로 채울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생각해보면, 그 치열한 시기에 나는 언제나 고독했다



나로 인해 나온 쓰레기, 알고 보니 내 삶의 산물이었네


그러나 저자는 그러한 감정의 공회전마저도 내가 열심히 살고 있다는 증거라고 설명한다. 이는 그저 얄팍한 위로가 아니다. 진정 노력하지 않았다면 겪지 않았을 고통이었으므로 실제로도 사실이었다. 간단한 발상의 전환을 통해 내 마음의 고통은 어떻게든 성과를 내고자 했던 노력의 산물로 탈바꿈했고, 긍정적으로 이해될 수 있었다.

“청소를 할 때야 비로소 보이는 먼지와 쓰레기들은 존재를 느끼게 해준다. 생물의 분비물이 살아있다는 증거이듯 공간에서 나오는 쓰레기는 생활의 증거이다.”

– 6p

이제까지 우리는 ‘마음속 먼지’를 청소하는 방법과 그 중요성을 잊고 지냈을 따름이다. 지저분해지면 그때 또 치우면 된다. 살아있는 한 쓰레기를 만들어내는 건 피할 수 없는 일이지만 동시에 살아있다면 청소할 수 있다. 때가 묻을 것을 미리 두려워할 필요가 전혀 없는 것이다.

“먼지가 ‘생긴’ 것을 불편하게 느끼는 것과 먼지가 ‘생길까 봐’ 불편해하는 것은 다르다. 쌓인 먼지를 청소하는 것은 그 공간에서의 자유로운 행동에 제약을 주지 않기 위해서지만, 조금이라도 생길 먼지를 우려해 청소하는 것은 평소의 행동 자체를 제약하기 때문이다. 청소가 주는 자유를 아는 사람은 언제든지 다시 깨끗해질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공간을 자연스레 더럽히는 행동을 오히려 구속하지 않는다.”

– 9p
생각해보면 부산물 없는 도전은 없었다.



나와 잘 지내기 위한 연습, 청소


광고인 박웅현 씨는 “삶의 행복은 일상의 매 순간 속에 있고, 그 풍요의 크기는 감상의 폭에 따라 결정된다”고 말했다. 즉, 행복은 일상의 감각을 적극 계발하는 데서 온다는 뜻이겠다.


『청소 끝에 철학』의 저자 역시 우리에게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지속적으로 청소를 하며 일상의 구석구석을 만져봐야 한다고 조언한다. 손바닥으로 직접 주변을 쓸어보며 괜찮냐고, 잘 지내고 있느냐는 말을 걸어보라는 것이다. 청소는 일상을 돌아보며 내 스스로의 행복과 안부를 묻는 일이기 때문이다.

“청소는 나의 주변과 나의 행동을 돌아보게 함으로써 결국 나를 돌아보게 한다. 내가 누구인지 알고 싶다면, 나의 손길이 머무는 주변을 살펴보면 된다. 청소 끝에 보이는 것은 ‘나’이고, 바로 ‘삶’이다.”

– 9p

문득 오늘을 사는 당신에게 괜찮냐고 묻고 싶다. 만약 긍정적인 대답을 망설이는 당신이 있다면 나는 자신 있게 권하겠다. 어디든지 좋으니 잠시 멈춰보라고 말이다. 이왕이면, 청소라도 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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