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릇의 의미

조회수 2018. 3. 21. 18: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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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이 스테인리스 밥그릇이 국가 권력의 상징이다."

밥그릇으로 식량 부족 해결!?


tvN 채널에서 ‘종합 인문학 예능 버라이어티’로 시작했던 <알쓸신잡>. 개인적으로는 김영하 작가를 좋아해서 시즌 1을 더 애청했던 기억이 있다. 당시 목포 편에서, 각자의 일정을 마치고 돌아와 그야말로 ‘알쓸신잡’을 나누던 대화 도중 황교익 칼럼니스트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이 밥그릇이 국가 권력이 밥그릇도 통제한다는 것의 상징이다. 이건 박정희 정부에서 만들어진 밥그릇이다. 밥을 한 사람이 너무 많이 먹으니까 모자랐다. 그래서 밥그릇을 작게 해가지고 매 끼마다 많은 사람이 먹게 하면 되지 않을까, 그런 정책을 쓴 거다. 당시 10.5cm, 높이 6cm의 규격과 다른 밥그릇을 사용하면 식당이 영업정지를 당했다. 그것이 지금 쓰고 있는 저 모양의 밥그릇이다.”

방송 시청 당시엔 그저 하나의 알쓸신잡으로 받아들일 뿐이었는데, 수개월이 지나 음식 인문학자 주영하 선생의 『한국인은 왜 이렇게 먹을까』를 읽으며 그 자세한 내막을 더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스테인리스 밥공기 통제의 역사


우선, 통제 대상은 일반 가정의 밥그릇이 아니라 음식점에서 사용되는 스테인리스 밥공기였다. 1960년대 후반부터 식량 수급이 불안정해지자, 음식점의 밥공기 양을 일괄 제한해 쌀밥 사용을 통제하겠다는 발상을 펼쳤던 것이다.


‘티끌 모아 태산’의 역발상이랄까. 아무튼, 조선시대까지도 지금의 국그릇보다 더 큰 밥그릇에 고봉밥을 즐겨 먹어왔던 국민들의 식사를 순전히 경제성과 효율성을 이유로 스테인리스 밥공기에 재단했던 처사였다.


<알쓸신잡>에서 황교익 칼럼니스트가 말했던 지름 10.5cm, 높이 6cm의 기준이 최초의 기준은 아니었다. 1973년 서울시에서 제시한 스테인리스 밥공기의 표준 크기는 지름 11.5cm, 높이 7.5cm로 지금 기준으로 보면 그리 작지는 않은 크기였다. 하지만, 강제성이 없는 일종의 캠페인에 불과했기 때문에 이를 따르는 음식점은 거의 없었다고 한다.


이후 1974년에는 정부가 직접 나서서 음식점에서는 돌솥밥 금지, 스테인리스 밥공기만 판매하도록 행정명령을 내렸고, 이어 1976년에는 서울시 전체 음식점이 지름 10.5cm, 높이 6cm의 스테인리스 밥공기만 사용하도록 의무 규정을 만들어버렸다. 이 기준을 어기면 1회 위반에 1개월 영업 정지, 2회 위반에 허가 취소라는 무시무시한 규제와 함께.

이후 1981년부터 서울시의 밥공기 규격을 전국에 적용하면서 대부분의 음식점에서 지름 10.5cm, 높이 6cm의 스테인리스 밥공기를 사용하게 되었다.


비교적 최근인 2000년대 이후 탄수화물이 비만의 주범이라는 설이 강력하게 대두되면서 지름 2012년부터는 9.5cm, 높이 5.5cm의 더 작은 밥공기가 대부분의 음식점에 보급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그럼 뭐해. 밥공기가 더 작아진 만큼 나는 2그릇, 3그릇을 먹는데.


 

경제성과 효율성을 지닌 스테인리스 밥공기


지금에 와서는 음식점들이 애초의 ‘식량 수급 불안정’의 이유로 스테인리스 밥공기의 규격을 지킨다고 볼 수는 없다. 과거에 비해 식사가 서구화되고, 워낙 음식의 종류가 다양해지다보니 밥공기 제한만으로 어떤 효과를 기대하기도 어려울 뿐더러, 메뉴에 따라서는 스테인리스 밥공기를 아예 사용하지 않는 업장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스테인리스 밥공기가 대중적으로 사용되는 이유는 경제성과 효율성 때문이다.


스테인리스 소재는 가볍고, 튼튼하고, 관리가 쉽다. 동일한 용량에 밥을 담을 수 있고, 시대를 거쳐 오며 더 작아진 용량 덕분에 불필요한 쌀밥 퍼주기를 방지할 수도 있다.


80년대 중반부터는 공깃밥 온장고가 대중화되면서, 손님이 몰리는 식사 시간에 바쁘게 밥을 퍼다 나를 필요 없이 스테인리스 밥공기에 미리 퍼놨다가 온장고에서 꺼내기만 하면 되는 효율성까지 챙길 수 있었다.


1973년, 정부가 국민들의 식생활을 경제성과 효율성의 이유로 재단하려 했던 것의 산물인 스테인리스 밥공기가 현대에 와서는 같은 이유로 점주에게 환영받고 있는 것이다.

 


경제성과 효율성만으로는 채울 수 없는 것


스테인리스 밥공기의 사용 이유가 경제성과 효율성이라는 대목에서, 문득 진부한 단어인 ‘집밥’이 떠오른다. 우리네 가정, 그 집밥의 밥상에서 스테인리스 밥공기를 본 기억이 있던가. 


가볍고, 튼튼하고, 관리가 쉬운 특징이 음식점에서만 유효하고 가정에서는 무의미 할 리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통의 우리네 가정에서는 스테인리스 밥공기를 쓰는 경우가 거의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집밥은 경제성과 효율성의 밥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밥상을 준비하는 사람의 기호와 취향이 들어가 있고, 함께 밥을 먹는 가족에 대한 애정과 연민이 담겨 있다. 무겁고, 설거지하기 불편한 자기 그릇이라도 밥상을 준비하는 사람이 아끼는 그릇이라면 스테인리스 밥공기의 경제성과 효율성보다 더 큰 의미가 있다.


굳이 반찬통에 있는 반찬을 하나하나 꺼내 아기자기한 반찬 그릇에다가 옮겨 담는 일에는 조금 번거롭고 귀찮은 일 정도는 얼마든지 감수할 만큼 소중한 사람과의 식사를 준비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 한 마디로 집밥, 그 밥상에는 ‘경제성과 효율성’만으로는 채울 수 없는 무엇이 있었던 것이다.


간혹 제대로 된 정식 집에서 밥을 먹고 아주 만족스러울 때 “아, 집밥 먹은 것 같다.”는 말을 하곤 했다. 그럴 때의 ‘집밥’의 기준이 되는 건, 얼마나 정갈하고 맛있는 음식들이 잘 차려져 있었는지 여부였다. 앞으로는 음식점에서의 식사를 평할 때, 스테인리스 밥공기가 아닌 다른 그릇에 담겨 나오는지 여부도 살펴보게 될 것 같다.


설령 그 그릇이 자기나 놋그릇이 아니라 멜라민 수지로 만든 대단치 못한 그릇이라 하더라도 상관없다. 적어도 몇 시간 전에 스테인리스 밥공기에 담아서 온장고에 넣어눴다가 꺼내 온 밥이 아니라, 주문하자마자 막 밥솥에서 그릇으로 옮겨 담은 정도만 되어도 좋겠다.


한낱 밥그릇의 아주 얕은 역사를 되짚어보면서 나는  

밥상 위에는 음식의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릇에도 그릇의 의미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원문: 8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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