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ㅍㅍㅅㅅ

우주 부동산 시대, 달을 분양하다

후손들이 ‘조상님 달 땅값 쌀 때 안 사뒀냐’고 원망하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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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38 꽤 괜찮은 원룸

내 방은 보증금 1,000만 원에 월세 38만 원 원룸이다. 원래는 40만 원인데 2만 원 깎았다. 그런대로 불편하지 않게 잘살고 있다. 여름에 모기가 많은 것만 빼면 채광, 수압, 습기, 모든 면에서 만족스럽다. 외부적으로는 교통 편리하고, 관공서 가깝고, 무엇보다도 도보 10분 이내 거리에 광안리 바다가 펼쳐진다. 광안리 불꽃축제 때는 집 앞마당 나서듯이 감상하고 오기도 했다. 


1년이 넘도록 사는데 여전히 1000/38이면 괜찮다고 생각한다. 쭉 이 원룸에서 살겠다는 뜻은 아니다. 투룸이나 소형 아파트, 전세로라도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뭐 요즘은 전세나 매매나 별 차이 안 난다는 게 흠이지만. 아무튼 지금의 나는 이 정도 크기의, 이 정도 금액으로 내 삶을 지탱하고 있다. 가끔 길을 걷다가 부동산 창에 붙은 각종 월세·전세·매매 소식을 보고 있노라면 막막해지는 것도 사실이지만 ‘우선은 나쁘지 않다’며 종종 스스로를 위로한다.



“달, 화성 땅 사요” 몰려든 사람들… 우주 부동산 호황?


처음엔 웃자고 올린 낚시성 기사인 줄 알았다. 아니면 어느 간 크고 황당한 사기꾼의 한바탕 시트콤쯤일 줄 알았는데, 진짜였다. 진짜, 누군가가, 달이나 화성의 땅을, 돈을 받고 팔고 있었고, 또 누군가는 그 땅을 샀다.


미국인 데니스 호프(Dennis Hope)는 1967년 UN이 우주조약을 통해 “국가와 특정 기관이 달을 포함한 천체를 소유할 수 없다”고 정한 내용에서 ‘개인이 소유할 수 없다는 내용은 없다’는 사실을 간파(?)하고 재빨리 달·화성 등 천체의 소유권을 획득(?)해 우주 부동산 분양 사업(?)을 시작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팩트인 문장을 작성하면서도 물음표가 뒤따르는 일이다.

달 파는 사람 데니스 호프

더 당황스러운 건 호프를 통해 우주 부동산을 구입한 사람이 전 세계에 600만 명이 넘는다는 사실이다. 600명도 아니고 600만 명! 톰 크루즈나 니콜 키드먼 같은 배우와 부시 및 카터 등 전 미국 대통령도 포함한다. 게다가 약 1만 명이 한국인이라는 사실 또한 충격이었다. 달을 산다고? 화성을 사? 당장 원룸에서 투룸으로 승격(?)하는 것도 어려운 마당에? 



달이라면 나도 땅 부자!


충격을 잠시 가다듬고 나니 문득 궁금해지는 거다. 가격이 비싸지 않을까? 달인데? 뭐 우주에서 떨어진 운석이 ‘하늘 로또’라고 불리는 걸 보면 말이다. 그런데 호프 이 사람 이거 일말의 양심은 있는 사람이었다.


땅의 가격은 1에이커, 약 4000㎡ 당 각종 비용을 모두 더해 24달러에 일괄 분양 중이었다. 대충 5만 원 정도면 국제 규격의 축구 경기장 크기의 땅을 살 수 있는 셈이다. 그러니까 내 원룸의 보증금 1000만 원이면 축구장 200개 크기의 달 표면을, 또는 월세 38만 원이면 축구장 8개 정도 크기의 화성 표면을 살 수 있는 거다. 우주 부동산이라면 나도 땅 부자 되는 건 어렵지 않아 보였다.

달 분양회사 루나 엠버시의 달 토지 소유권.

실제로 우주 부동산, 달의 땅을 구입한 한국인인 조준형 씨는 “우리 때는 그냥 꿈같은 얘기였지만 우리 자녀한테는 현실이 될 수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해서 그럼 조금 투자의 개념이 있지 않을까 하고…”라며 구입 이유를 말했다. 세상에, 이렇게 들으니까 꽤 그럴싸하기도 하다. 꿈만 같던 얘기가 현실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지금, 현실의 돈으로 미래의 꿈을 산다는 거 아닌가. 



발은 땅을 딛고도 우리, 별을 쳐다보며 걸어갑시다


그런데, 그래도, 나는 잘 모르겠다. 단돈 5만 원에 달에 내 축구장이 하나 생긴다고 하면 꽤 멋진 것 같다가도, 그 5만 원으로 세울 수 있는 당장 오늘 내 하루의 계획을 생각하면, 어쩐지 후자에 무게가 실리는 것이다. 박준 시인의 어느 산문에서 읽은 글처럼, 그건 ‘내 기질이 가난하기 때문’ 일 수도 있겠다. 한편으로는, 꿈이나 낭만에 대해 말해야 하는 작가로서, 너무 현실적인 것 아닌가, 너무 땅만 딛고 사는 것 아닌가 하는 괜한 성찰도 하게 되고.

나무가 항시 하늘로 향하듯이
발은 땅을 딛고도 우리
별을 쳐다보며 걸어갑시다

노천명 시인의 ‘별을 쳐다보며’ 의 첫 연이다. 고등학교 문학 수업처럼 도식적으로 말하자면 ‘땅’은 현실·속세쯤이 될 것이고 ‘별’은 이상·희망·꿈 정도가 되겠지. 뭐가 되었든 땅과 별이 서로 다른 의미라는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우주 부동산 사업으로 여태 약 70억 원을 벌었다는 호프의 기사를 읽고 난 후 노천명 시인의 시를 읽으니 새삼 별을 보는 일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무용하고도 아름다운 일이 인간을 인간답게 한다


별을 쳐다보는 것, 광안리 바닷가에서 파도에 발을 담그거나 지는 노을을 쳐다보는 것. 하나 같이 무용한 일이다. 돈이 되지도 않고, 눈에 보이는 어떤 경력이나 자격이 되지도 않는 일들. 적어도 자본주의 시대에 있어서, 무용함을 넘어서 지극히 소모적인 일들. 동시에, 공급과 수요, 합리와 이성, 효율의 가치로 작동하는 자본주의 시대에, 다행스럽게도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주는 일들. 무엇인가를 사랑하는 일이 꼭 그렇게 무용하고도 아름답다.


달을 바라보는 일도 마찬가지 아닐까. 달나라의 토끼 이야기를 믿었던 유년기의 순수함을 차치하고서라도 달은 언제나 우리에게 무용하지만 아름다운 것이었다. 아니지, 역사의 어느 시절엔 달빛이 나그네의 고마운 벗이자 빛으로 유용하기도 했겠다. 아무튼 지금에 와서 저 달의 한 귀퉁이를 다시 쓸모의 기준으로, 자본주의의 공식대로 사들이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아주 먼 미래의 내 후손들이 “왜 우리 조상님은 달 땅값이 제일 쌀 때 땅도 안 사두셨나.” 하며 나를 원망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불 꺼진 부동산 앞에서 전세, 매매 가격을 보며 한숨짓고, 단돈 5만 원으로 달의 땅을 살 것인지, 하루 식비와 생필품을 살 것인지를 고민해야 하는, 지극한 ‘쓸모의 삶’을 사는 내게 ‘무용한 것을 무용한 대로 지키는 일’ 은 꽤 중요하다.

결국 계산이 끝난 후에도 남아있는 것이 인간이니까. 달 한 귀퉁이를 돈 주고 사버리면, 이제 달도 쓸모의 대상이 되고 말 테니까. 소유하고 나면 결국 잃을 것을 두려워하는 일밖에 남지 않으니까. 무엇인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런 게 아니니까. 나는 달을 갖기보다, 그냥 사랑하기로 했다. 


원문: 8F – Front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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