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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급 며느리”: 이상한 사람만이 진정한 사랑을 한다

이 영화에서 결국 감동을 주는 것은 부부의 삶 그자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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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상업영화들은 초반 5분에 많은 공을 들인다고 한다. 극장은 관객의 인내심을 강요하는 공간이지만 현대인들은 그닥 인내심이 없다. 들어보지 못한 생소한 이야기에 몰입하기는 쉽지 않은 법이며, 그래서 많은 상업 영화들은 짧은 시간 안에 적절한 자극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그 시간이면 ‘신과 함께’에서는 이미 주인공은 죽어 있다).

5분만에 퀵사망하고 저승사자 만남.jpg

그런 셈법들이 일반화되면서 초반 5분마저 즐겁지 않다면 현실적으로 이 영화는 볼 게 없을 확률이 높아진다. 상업영화가 아니더라도 초반 장면들만 보더라도 컷들의 선택이나 일관성, 장면 전환정도만 보더라도 이 영화가 잘 만들어졌는지 괜찮은 태도의 영화인지 정도는 재빨리 짐작할 수 있다.


<B급 며느리>는 초반 1분을 채 보기도 전에 꽤 괜찮은 영화가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별 대단한 장면은 아니었지만 시장에서 생선을 사려는 한 진영(B급 며느리 본인) 손에 들려있는 만 원짜리 지폐에서 생선요리에 대해 말하는 진영의 목소리를 배경으로 생선들을 클로즈업하는 장면으로 옮겨가는 카메라를 보면서 왠지 좋은 영화가 될 것만 같았다.


목소리와 말투에서(대화인 듯 혼잣말인 듯 했다.) 느껴지는 진영의 캐릭터가 오묘하기도 했고 생활에 밀착되어 있는 자연스러운 짠내정도를 느꼈다고 할까?

이 영화의 내용은 간단하다. 감독 스스로 이야기하듯 아주 전형적인 고부 갈등 이야기를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약간의 차이가 있다면 고부갈등에 대처하는 며느리의 자세이다.


부인은 작은 일에 개의치 않는 사람이지만, 시어머니가 손주의 옷을 마음대로 바꿔 입히는 것과 같은 신경전이 반복되자 마음이 상한다. 그녀는 자신이 싫으면 손주를 보여줄 수 없다고 선언해 버린다. 호빈은 영화 초반부 ‘나는 이상한 여자와 결혼했다’라고 말한다. 어머니와 부인 사이에서 호빈은 중재를 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탁구공처럼 둘 사이를 튕겨져 오갈 뿐이다. 그 과정에서 호빈은 자신의 고난을 갈아 넣은 영화를 찍기로 결심한다.


이 영화의 장점 중 하나는 홈 비디오 같은 자연스러움이 배어 있다는 것이다. 나레이션을 진행하는 감독 호빈은 다양한 영상물을 찍어주는 알바로 생계로 유지한다. 많은 작가들은 그 작업들이 자신의 작품은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생각하지만 감독은 개의치 않고 그런 생계를 위한 작업들에서 자연스러운 영상을 찍어내는 수련을 한 것만 같다. 생계만큼 자연스러운 활동이 어디 있을까?


가족들 역시 평소에 어찌나 들이대었던지(실제로 감독의 어머니는 알바로 촬영했던 홈쇼핑 영상에 등장하기도 한다) 카메라 앞에서도 자연스럽기 그지없다. 단지 자연스럽기만 한 것이 아니라 플롯도 탄탄하며 상징을 배치해 내는 것도 능숙하고 편집 리듬도 좋다.


가장 웃겼던 장면이었던 부인과 어머니 사이, 서울과 대전 사이를 오가는 길을 그린 장면들은 꽤나 스피디하면서도 장면도 수려하다. 영화는 꽤나 짜증 나는 소재를 경쾌하고 유머러스하게 그려내고 있어 재미와 작품성을 모두 만족시키고 있다.

스틸컷만 봐도 홈비디오 느낌 물씬

하지만 이 영화에서 결국 감동을 주는 것은 고부 갈등을 매개로 그려내고 있는 부부의 삶 그 자체이다. 공부를 매우 잘했던 진영은, 입학하자마자 사법고시 1차를 붙었다고 한다, 호빈과 오랜 연애를 하다 아이를 가지게 되고 갑작스레 결혼을 하게 된다. 하지만 진영은 마치 시부모에 대한 사회적 관습을 개의치 않듯 자신이 그만둔 삶에 대해 개의치 않는 대인배의 풍모를 보여준다.


호빈 역시 유머를 잃지 않는다. 고부 사이를 오가면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지만 고부갈등의 이면을 탐구한다는 명목으로 자신의 어머니가 젊어 어떤 분이었는지 아버지나 이모들에게 물어보며 너스레를 떨기도 한다. 영화를 위한 펀딩을 하는 자리에서 사람들이 자신의 고통을 즐거워한다며 자신을 갈아 넣으면 작품이 한편 나올 거라며 ‘에밀레다큐’ ‘독립영화계의 사랑과 전쟁’이라며 자신의 영화를 소개한다.


이 영화가 좋았던 점은 홈비디오 같은 자연스러움이 그저 스타일이 아닌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진영은 자신이 호빈을 좋아하게 된 계기를 이야기하면서 남편이 괜히 순대 얘기를 했는데 좋았다고 했고, 아이를 씻기는 장면에서도 발가벗은 장면을 노출하고 있다.


진영이 호빈을 좋아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고사리 공장에서 남편이 일하고 있을 때였는데 그게 그냥 좋았다고 하며 자신은 고사리를 무척 좋아한다고 말한다. 이런 장면들에서 진영의 남다른 성격을 느낄 수도 있지만, 서사를 구성하는 과정에서 어떤 정치적 올바름에 슬슬 눈치 보고 있지 않음을 느낄 수 있었다.


정치적 올바름은 사회적으로 중요한 요소이지만 그보다 우선해야 하는 것은 인간의 삶 그 자체, 에 대한 사랑이다. 영화가 포착해야 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 영화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던 장면은 영화 ‘b급 며느리’를 위한 펀딩 1000만 원을 받고 부부가 풀밭에 누워있는 장면이었다. 호빈이 진영에게 ‘영화 그만둘까?’라고 했을 때 진영은 ‘빨리 영화로 돈 벌어와’라고 대답했다. 과연 진영은 영화로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일까?

이 장면에서 영화 내내 조금씩 드러나는 진영의 캐릭터들이 한꺼번에 다가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집을 잃은 고양이를 데려오고 눈과 꽃을 좋아하고 작은 풍경에 감탄하는 진영의 캐릭터는 임신으로 갑자기 결혼을 하게 된 주부로서의 자신의 삶뿐만 아니라 호빈의 삶을 그 자체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녀는 사람들이 중요하다 여기는 것보다 자신의 삶 한 순간순간을 더 소중히 여기고 있는 것이다.


나는 좋은 영화를 보면 영화를 표현할 수 있는 좋은 구절을 찾아보곤 한다. 이 영화를 보면서는 이런 말이 떠올랐던 것 같다.

이상한 사람만이 진정한 사랑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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