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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조회수 2018. 2. 22. 10:36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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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화폐 시장과 비리가 판치는 공기업 중 과연 어느 것이 헛된 꿈일까?

※ 본 글은 법무법인 평우 대표변호사 칼럼을 옮겨 온 글입니다.


철학자 니체는 인간의 욕망을 ‘푸줏간 앞의 개’로 비유했다. 푸줏간의 고기가 먹고 싶어 개는 호시탐탐 안을 노리지만, 주인의 칼이 무서워서 정작 들어가지는 못하고 그 앞에서 한참을 머뭇거리고만 있다. 이러한 모습이 현 사회의 구성원들이 가지고 있는 욕망과 닮아있다는 뜻이다.


모든 사회구성원은 욕망을 가지고 있다. 더 좋은 직업을 가지고 싶고, 더 좋은 집에서 살고 싶어 한다. 그러나 한정된 재화의 특성상 보다 더 좋은 집과 환경 등은 경쟁에서 승리한 사람들만이 차지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경쟁 과정을 제도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실질적인 정부 정책 중 대다수를 차지한다. 


실제로 ‘규제’라는 이름의 정책은 푸줏간의 칼처럼 인간의 욕망을 제도적으로 다스리고 과도한 경쟁을 막기 위한 취지에서 시작되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경쟁에서 성공하려는 사람들이 있는 한편, 기본적인 삶의 수준만을 유지할 수 있다면 꼭 필요한 경쟁에만 참여하면서 살아가려는 사람들도 있다. 어쨌든 사회구성원들은 정부가 ‘경쟁’이라는 제도를 어떻게 관리하고 보장하는지에 대해서 관심이 있을 수밖에 없다.


현 정부의 과거 선거 캠페인 중 가장 호응이 높았던 “기회는 동등하게 주어질 것이고, 과정은 공정할 것이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는 말은 ‘경쟁’을 바라보는 구성원의 시각이 어떠한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한편, 정부의 제도적 규제가 구성원들의 욕망 분출을 따라가지 못하고 사회문제화되는 경우가 있는데, 흔히 이런 상태를 ‘광풍’ 또는 ‘열풍’으로 표현한다. 가장 최근의 ‘비트코인’이 대표적이다. 몇 년 전 이루어진 최초 거래가 피자 2판을 주문하였던 것이었는데 현재가치는 무려 수백억 원 상당이라고 하니 그 열풍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다.


이에 대해서 형법 전문가인 법무부 장관은 ‘비트코인은 도박’이라고 규정하면서 전면규제 방침을 발표했다. 현재 비트코인에 대한 관심은 상당히 수그러들었지만 이면에는 새로운 투자처를 찾아온 사람들의 욕망을 일시에 규제한 것이라는 불만 또한 존재한다.


특히 비트코인은 순수 민간영역에서 발전되어온 이력을 가지는 한편, 첨단기술에 대한 이해를 필요로 하기에 20-30대 청년들에게서 크게 주목받고 있다. 모처럼 기성세대보다 경쟁우위에 있는 투자처를 발견하였는데 정부가 이를 선제적으로 막았다는 불만이 많다.


실제로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비트코인 규제와 관련하여 ‘국민들에게 단 한 번이라도 행복한 꿈을 꾸게 해 본 적이 있습니까’라는 글이 올라왔다. 게시자는 “국민을 보호한다고 생각하지만 국민들은 정부가 우리의 꿈을 빼앗아 간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하는데, 청원수 20만을 넘겼다.


실제로 공기업 채용 비리로 시끄러운 요즘의 현실과 흙수저 담론을 연결해 본다면 청년들의 불만도 이해 못 할 것은 아니다. 박노해의 시 ‘거짓희망’에서는 “희망은 헛된 희망을 버리는 것”이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과연 현재 청년에게 헛된 희망은 비리가 있는 공기업 등 채용시장이었을까, 아니면 순수하게 운이 작용하는 가상화폐 시장이었을까.


이렇게 규제 정책은 규제 이후에 발생할 수 있는 정서적인 불만과 부작용을 아울러 고려해야 한다. 특히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는 현실에서 계층 상승을 추구하는 욕망이 새로운 투자처를 찾고 있음을 이해하고 이를 달래면서 사회문제화되는 것을 막는 정서적인 접근법이 요구된다.


이러한 당연한 욕망을 그저 ‘한탕주의’로만 치부해 버린다면 민심의 이반을 막을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적어도 금번 비트코인 규제책을 발표하면서 보여준 당국의 단호함보다 채용 비리와 공정한 경쟁을 가로막는 조치에 대해서 보다 강한 규제와 단호함을 보여줄 필요가 있는 것이다.

유명 작품인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서 주인공이 마지막으로 도착한 역은 ‘천상의 낙원’(Elysian)이었다. 그곳에서 주인공 블랑쉬는 현실주의자인 스탠리를 통해서 파멸로 이끌어진다. 블랑쉬의 욕망의 원인을 이해하고 강압적이지 않은 방법을 택했다면 희곡의 결말은 달랐을지 모른다.


현실주의자일 수밖에 없는 정부이겠지만, 현대사회 역시 자본주의라는 이름 아래 구성원들의 욕망을 사회의 동력으로 활용하도록 설계되어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원문: 퓨처그래퍼의 티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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