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상연맹의 볼드모트, 그를 둘러싼 사람들

조회수 2018. 2. 20. 17:0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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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들의 선택은 파벌의 문제이기도 하거니와 파벌의 문제가 아니기도 하다.

1.


전명규가 오랜 빙연 파벌 문제의 중심에 서 있는 인물인 거야 두말해 봐야 잔소리겠지만, 한체대 파벌의 건너편에는 D대를 중심으로 해서 만들어졌었던 비한체대 파벌도 존재한다. 호사가들의 얘기처럼 전명규가 정말 빙연 파벌의 절대적 존재라면 비한체대 파벌이라는 게 과연 존재나 했을까.


파벌 문제는 복잡하게 얽히고설켜 있다. 소위 전명규파에 속했던 안현수는 훗날 양쪽으로부터 모두 미운털이 박히기 전까지는 한체대 파로서 비한체대 파의 견제의 희생양이었고, 마찬가지로 한체대 파에 속하는 이승훈은 비한체대 파가 득세했던 시기의 쇼트트랙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고 당시 마찬가지로 쇼트트랙에서 밀려나 롱트랙에서 선수들을 양성하고 있던 전명규의 권유로 롱트랙으로 건너와서 비로소 빛을 보기도 했다.

출처: 연합뉴스

전명규가 한국 빙상 역사에서 이름을 지우기 힘들 만큼의 존재감을 가지고 있는 건 사실이다. 혹자는 그를 두고 그래서 ‘빙연의 볼드모트’라고 까지 하는데, 사실 그의 힘이 막강하던 특정 시기에는 그를 두고 이름 대신 ‘그 사람’이라고 부르기까지 했었으니 이는 아예 우스개 소리로 치부하기도 힘든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 힘 얻은 과정을 보면 여기서도 경계가 희미해져 버린다.



2.


쇼트트랙에서 김기훈이 금메달을 따며 소위 전명규 라인이 약진을 하기 전, 대표팀의 이런저런 선수 선발 과정에 빠질 수 없이 등장했던 건 ‘돈’이다. 부모의 재력이 대표팀 자리를 만들었다는 얘기다. 빙상만의 문제는 아니다. 이미 수많은 학원 스포츠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니깐 사실 낯선 풍경은 아닌데, 전명규는 이 ‘규칙’을 깨버렸다.


전명규가 문제가 없었던건 물론 아니다. 구타 문제는 차치하고서라도, 익히 알려졌다시피 메달을 딸 수 있는 선수의 메달 획득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팀플레이라는 미명 하에 실력이 부족한 선수들의 희생을 강요하기도 했다.


하지만 적어도 실력이 안 되는 선수가 부모의 재력으로 대표가 되고 에이스가 되는 일은 그의 치세(?)에는 잠시나마 사라졌고, 그렇게 만들어 진 경기력은 앞서 얘기한 그의 ‘팀플레이’와 더불어 그대로 대표팀의 경쟁력이 되기도 했다.


동계 올림픽 쇼트트랙 시상대에서 하루가 멀다고 애국가가 울려 퍼지던 한국 쇼트트랙 전성기의 여명에는 그렇게 전명규의 빛과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그런데, 그러면 그 ‘돈’으로 대표팀 자리를 사서 좋은 학벌을 만들어 낼 수 있었던 부모들과 그 부모들이 주는 돈으로 기득권을 만들고 라인을 만들던 그 이전의 기득권들은 어디로 갔을까. 빙연의 지리한 파벌 싸움의 초기에 ‘전명규파’와 ‘비 전명규파’는 그렇게 나눠지기 시작했다.



3.


‘빙연의 볼드모트’가 메달 리스트들을 양산해내 가며 승승장구했더라도 빙연의 모든 인물들이 전명규 라인으로 바뀐 건 아니었다. 전명규 이전에도 빙연은 있었고, 그 인물들은 라인이 쪼개지기 전에는 하나의 기득권이었다. 그 기득권의 해체가 ‘파벌’이라는 결과물이다.


부자 망해도 3년 가는데, 오랜 기간 기득권과 그 기득권을 중심으로 한 라인의 중심에 있던 이들이 단순히 그리 밀려나지는 않는다. 전명규도 전명규대로 메달리스트들을 중심으로, 그리고 자신이 재직하고 있던 한체대를 중심으로 선수들을 키워 나가면서 라인을 만들고, 그 밖에서는 D대를 중심으로 비한체대 파라는 이름 하에 라인이 만들어졌다.


그 둘의 싸움은 익히 알려져 있다시피 대표팀 선발과 메달 몰아주기를 이용해서 이뤄졌다. 그 두 가지에 자신의 인생이 걸려 있는 선수들은 약자였고, 약자라서 비겁해질 수 밖에 없었다. 혹자는 그 안에서 공범이 되기도 했고, 변천사 같은 이들은 공범이 되길 거부하고 스스로 양쪽의 미움을 사기도 했다. 그 안에서 안현수나 진선유 같은 전 국민이 아는 피해자들이 나오기도 했고, 한번 떠 보지도 못하고 파벌의 그늘에서 사라진 선수들도 나왔다.

이 풍경 안에서 가해자와 피해자를 구분해 내기란, 그래서 쉽지 않다. 전명규의 한체대 라인이 주도권을 잡았을 때는 비한체대 선수들이 불이익을 받기도 했지만, 비한체대 라인이 주도권을 잡았을 땐 돈을 받고 대표팀에 선수를 넣어주는 구태가 다시 등장하기도 했다.


이 안에서는 흔한 수사로 쓰는 말이 아니라 정말 모두가 가해자가 되기도 했고 모두가 피해자가 되기도 했다.


4.

출처: KBS2

김보름, 그리고 박지우의 선택은 사실 파벌의 문제이기도 하거니와 파벌의 문제가 아니기도 하다. 언제나 선택은 선수 본인의 몫이다.


이승훈은 한체대 라인의 선수이자 전명규의 수제자 중 한 명이고(사실 밴쿠버 올림픽에서 엄청난 성과를 거둔 스피드스케이팅 대표팀의 뒤에는 당시 쇼트트랙에서 비한체대 파에 밀려 주도권을 잠시 놓고 롱트랙에 전념하던 전명규의 존재를 빼놓고 얘기하기는 힘들다), 또한 노선영이 밝힌 것처럼 다른 비한체대 선수들과 따로 훈련하기도 했지만, 경기에서는 그와 상관없이 후배들을 이끌고 뒤에서 밀어주며 세계 랭킹 1위인 네덜란드를 2위로 밀어내고 팀추월 예선 1위로 4강에 진출하는 결과를 만들어 냈다.


이승훈 본인이 한때 파벌의 희생양이기도 했거니와 개인의 인격, 그리고 적지 않은 나이에서 오는 이성적 판단도 한몫했겠지만, 어쨌든 파벌은 파벌이고, 팀추월에서 저런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건 본인의 선택이라는 얘기다.


즉, 김보름과 박지우의 ‘선택’은 파벌의 결과물이지만 본인들의 선택이기도 하다. 그래서, 비난은 본인들의 선택에 대한 결과물이고 본인들이 책임지고 감수해야 하는 영역이다.


다만, 한가지 얘기하고 싶은 건 저렇게 얽히고설킨 빙연의 오랜 파벌 문제, 그것도 누가 피해자이고 누가 가해자인지, 선악의 구분도 제대로 되지 않는 공간 안에서 아직 어른들의 수 깊은 욕망과 그 욕망에 따른 셈법을 이해 못 하는 어린 10대 시절부터 사회와 격리되어 스포츠만 바라보고 살아온 선수들이 도덕적으로 완벽한 판단을 하는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예전에 한번 여자 쇼트트랙 선수들 간의 미니홈피에서 비슷한 문제가 불거진 적이 있었을 때 ‘저 세계’에 몸을 담았었던 이가 대략 이런 내용의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운동하는 애들 단순합니다. 어떻게 보면 군대랑 비슷해요.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하고 위에서 얘기하는 거 그대로 믿고 따르는 게 익숙한 애들이예요.

그렇게 10년 넘게 커온 애들이니 위에서 쟤 나쁜 놈들이다 하면 그대로 믿는 거예요. 쟤네 안 밀어내면 너네들 대표팀 떨어져서 평생 해온 거 물거품 된다 하면 그대로 믿는 애들입니다. 얘네들 그렇게 만드는 건 코치들이고 협회 어른들이지 애들이 아니에요.

쟤네들 엄청 못된 애들처럼 보이지만 운동 얘기 빼고 보면 그냥 또래 애들하고 똑같아요. 드라마 보고 꺄르르 거리고 예뻐 보일려고 화장 어떻게 해야 하는지 셀카 각도 어떻게 해야 더 예뻐지는지 고민하는 평범한 10대, 20대 애들입니다.’

물타기 하는 거 아니다. 다만, 이런 면도 봐주라는 얘기다. 적폐 청산은 언제나 구조와 시스템을 향해야지 사람을 향하면 실패한다. 저들은 한 사람의 성인으로서 자신의 선택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지만, 동시에 저들을 그렇게 만드는 시스템도 주목해야 한다는 얘기다.



5.


오늘 여기저기서 언급되고 있는 저 ‘빙연의 볼드모트’만 척결하면, 그래서 한체대 파벌을 몰아내고 나면 빙연의 파벌 문제는 해결될까?

출처: 연합뉴스

빙연의 파벌 문제는 그 시작과 원인의 지점에서조차 선과 악을 단순하게 나누기 힘들만큼 복잡한 구조 안에서 오랜 기간 문제가 문제를 낳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해결책이 또 다른 문제를 만들며 켜켜이 쌓여 만들어진 결과물이다. 당장 빙연 파벌 문제의 대표적 피해자인 것처럼 알려져 있는 안현수조차 어떤 부분에서는 가해자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 안에서 피해자와 가해자를 구분하는 것도 힘들 뿐더러 그렇기 때문에 몇몇을 제거하거나 하는 방식으로 해결될 문제도 아니다.


오랜 기간 누적되어 만들어진 폐단을 우리는 적폐라고 부른다. 빙연의 파벌 문제는 그야말로 그 적폐라는 말이 너무나 잘 어울리는 문제다.


이런 적폐를 해결하는 건 인적 개혁이 아니다. 잘못된 시스템 안에서 모두가 가해자일 수도 있고 모두가 피해자일 수도 있는 누적된 폐단 안에서의 인적 개혁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전명규를 날려봐야 또 다른 전명규가 나올 거고, 한체대파를 없애봐야 비한체대파가 나뉘어져서 또 다른 XXX파와 비XXX파가 만들어진다.


사실, 시스템을 개혁해야 한다는 말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얘기다. ‘어떻게’가 중요하다는 건 말할 필요가 없다. 그 ‘어떻게’를 얘기하지 않는 문제 제기는 그래서 공허하다.


하지만, 그래도 이런 얘기라도 해야 하는 건, 지금 이 문제가 한 사람의 ‘악’만 제거하면 해결될 듯한 분위기로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제거될 ‘악’도 아니거니와 그렇게 단순한 문제도 아니고 그렇게 하면 또 다른 ‘악’이 그 자릴 차지할 뿐이고, 그렇게 어른들이 만들어 내는 기득권의 쟁탈전 안에서 욕먹고 상처 입고 서로를 미워하는 괴물이 되어 또 다른 기득권의 중심이 되어 가해자가 되는 건 어린 선수들일 뿐이다. 난 이걸 좀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이다.



PS.


한가지 덧붙이자면, 저 ‘빙연의 볼드모트’가 그렇게 힘이 세다면, 어떻게 오늘 같은 저격 기사들이 여기저기서 나갈 수 있는지 한 번쯤 생각해 보라는 것이다.


어디나 마찬가지지만, 특히나 스포츠 기자들은 해당 협회와 척을 지면 취재가 힘들어진다. 전명규가 정말로 빙연의 처음이자 끝으로서 빙연의 모든 것이라면, 오늘 같은 기사가 나갈 수 있을까? 그 기사는 누가 기자들에게 내보낼 수 있게 해주는 것일까? 박수 소리는 두 손바닥이 마주쳐야 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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