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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 영화가 말하지 않는 몇 가지

조회수 2018. 1. 25. 18:21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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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그 이름을 부르기를 삼가지 않으면 안 되게 된 이 사람은 누구인가?

※ 본 글은 영화 <1987>의 스포일러를 포함합니다. 내용 누설을 원하지 않으시면 이 글을 닫아주세요.


제 5 공화국 시절, 한 대학생이 경찰에 고문을 받던 중 사망하자 경찰과 검찰이 이를 은폐한 사건이 언론을 통해 세상에 알려진다.


국민에게 공포를 심고, 정치 공작을 펼치고, 억울한 사람들에게 간첩 누명을 씌웠던 정부의 ‘빨갱이 색출 작전’이 끝내 앞날이 창창했던 청년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것.


정부는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 모든 저항을 무력으로 제압하지만, 보잘것없던 개인의 일탈은 어느새 크고 단단한 민심으로 응집한다.

‘1987’의 포스터

장준환 감독의 ‘1987’은 격동의 1987년을 다루며 거창한 애국심을 덜어내고, 비범한 위인 대신 개개인을 조명하며 정의 구현을 이야기한다.


그저 진실을 구했던 기자, 절차를 준수했던 검사, 직업윤리를 지켜낸 의사, 세상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았던 대학생 등.


사실은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았거나, 나랏밥을 먹거나, 사회적으로 영향력 있는 지위 또는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재구성했지만 서사 전반이 소위 ‘잘난 사람들’에게 편중된 점은 다소 서글프다.


제작에 난항을 겪었던 영화는 내로라하는 배우들의 지지와 시국의 변화로 인해 세상에 나왔고, 영화는 이전보다 자유롭게 역사와 신념을 그릴 수 있게 됐다. 그렇다면 이제 눈과 귀가 잘 닿지 않는 곳으로 향할 때다. 


이 글은 카메라 프레임 밖에서 치열하게 살았던, 역사에 기록되지 못한, 영화가 발화하지 않는 몇 가지 이야기다.

 


하나. 연희가 투쟁하지 않았던 이유

모두가 말한다. “너만 죽어나는 거야. 그런다고 세상이 달라질 것 같아?”

연희(김태리)는 위험한 일에 뛰어들려는 삼촌(유해진)을 못마땅히 여긴다. 연희는 삼촌을 뜯어말리며 권력자들과 같은 말을 한다. 너만 다친다, 세상은 달라지지 않는다, 라고. 그러나 그 함의는 완전히 다르다.


그녀는 세상이 바뀌지 않기를 바라는 게 아니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이 더 이상 다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연희가 5.18 광주 민주화운동 영상을 보며 오열하는 이유는 희생자를 떠나보내고 남겨진 사람들에 공감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소중한 사람을 잃은 뒤의 통탄을 알고 있기에 ‘투쟁’이란 단어에 몸서리친다.


연희가 가진 상실에 대한 두려움은 비단 죽음만의 문제가 아니다. 연희는 연대의 상실을 두려워한다. 연희의 아버지는 정당한 임금을 받기 위해 노동 투쟁을 하다가 동료들에게 배신당했다. 술에 의존해 하루하루 시들어가던 아버지는 어느 날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삼촌은 사고였다고, 사장이 잘못이지 같은 노동자가 무슨 잘못이 있냐고 연희를 설득하지만, 그녀는 납득하지 못한다. 아버지에게 터무니없는 바람을 불어넣고서, 정작 상황이 어려워지자 그를 버리고 떠난 건 사장이 아니라 아버지의 ‘동료’였다. 연희에겐 그들이 나쁜 사람들이다.

연희는 삼촌을 위해 위험천만한 현장에 뛰어든다.

연희는 결국 삼촌의 활동을 돕게 되지만, 그녀의 주장에도 일리가 있다. 실제로 단결이라는 이름 안에서 비참한 분열이 발생해왔다. 


예컨대 2000년 ‘운동사회 성폭력 뿌리 뽑기 100인 위원회’는 운동권 내 성폭력 가해자 명단을 공개해 큰 파문을 일으켰고, 당시 ‘이런 것도 성폭력이라고 우는소리를 하냐’ 따위의 2차 가해가 빈번히 일어났다.


폭리를 취하는 대기업과 경제 구조가 큰 문제지만, 먹고살기 힘들다며 아르바이트, 비정규직, 하청업체 등을 쥐어짜는 ‘을’도 문제다. 그들은 ‘갑’에 목소리를 내는 대신 ‘병’, ‘정’을 찍어 누른 뒤 그들의 권리를 밟고 올라선다.


이는 계급을 타파하고 약자를 권리를 찾고자 하는 그들의 가치와 상반된 불의(不義)다. 연희의 삼촌처럼, 모든 것을 외부의 권력 탓으로 돌리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집단 내 문제 제기가 단결력을 흐린다고 분노할 것이 아니라, 드러난 문제를 냉정히 바라보고 해결해 보다 나은 사회로 나아가는 성숙한 접근이 필요하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현재의 문제를 공론화하고 반성해야만 (그들이 척결하려는 대상과 다를 바 없는) 폭력이 반복되지 않을 것이다. 점차 흐릿해져 버린 연희 개인의 목소리는 그래서 더 아쉽다.


 

둘. 정미, 연희, 그리고 한열

정미의 이야기를 더 듣고 싶었지만.

정미(박경혜)의 인물 성격은 전형적이고 평면적이다. ‘주인공의 친구’로서 친구의 연애에 충실히 관여하고, 적당한 타이밍에 프레임 밖으로 사라진다.


첫 미팅을 맞아 한껏 꾸미고 나온 정미는 거리 시위 때문에 모든 계획이 무산되자 “대체 왜 데모 같은 걸 하는 거야”라며 신경질 낸다. 그러던 정미가 어느 날 투쟁에 동참하기로 한다.


하지만 그녀의 중대한 결심은 ‘정미도 나가기로 했다’는 대사 한 줄로 처리되고 만다. 그녀가 무엇을 계기로, 어떤 모습으로 거리에 나서는지 알 수 없다. 다만 정미가 워터프루프 화장으로 무장하고서 독재 타도와 호헌 철폐를 외치는 당당한 순간을 상상해볼 뿐.


시대가 강요하는 여성의 모습으로 존재하지 않으면 위험에 처한다. 연희가 빨간 코트에 마이마이를 손에 들고 헤드셋을 낀 채 당당히 걷던 모습은 1980년대의 ‘신여성’이다.


음흉한 시선과 추파의 휘파람까지 온갖 희롱에도 담담하다. 그래야 빨갱이(빨간 코트인데!)로 의심받지 않는다. 바람직한 ‘여대생’은 짙은 화장에 사회 운동 따윈 관심 없는 듯, 영문 원서 하나를 가슴팍에 끼고 걸어야만 한다. 


‘옷차림이 멋지고 화려한 화장을 하면서도, 정치에 관심이 많고 사회 운동에 적극적인 여성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회의 편견에 기인한 것이다. 


사실 화장이 짙은 사람이 시사에 밝을 수 있고, 공부를 열심히 한다고 야한 옷을 입지 말란 법은 없다.

최대한 태연한 척 하는 연희.

연희는 읽지도 않는 교재를 거추장스럽게 들고 다니는 정미를 놀리지만, 곧 그녀를 따라 무거운 원서를 가슴에 품고 캠퍼스를 거닌다.


잘생긴 오빠(강동원)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그 잘생긴 청년이 치명상을 입고서 신문 1면에 실렸을 때, 연희는 그토록 거부하던 투쟁에 나선다.


그제야 관객은 그의 이름이 ‘한열’이라는 걸 알게 된다. 한열에 대한 묘사, 특히 연희와 한열의 관계는 영화의 주제의식과 몰입도를 흐트러뜨린다(강동원 배우가 우산을 들었을 때는 <늑대의 유혹>이 떠오르기도 했다).


‘위기에서 구해준 잘생긴 오빠’는 연희를 수동적으로 보이게 하는, 거추장스러운 장치다. 애초에 연희는 정치적 신념이나 무지가 아닌, 아버지의 죽음과 그 상처로 인해 사회 운동에 회의적이었다.


그녀는 ‘세상은 개인의 노력으로 바뀌지 않는다’는 명제가 뒤집힌 순간, 즉 아버지를 비롯해 소중한 사람들의 노력이 헛되지 않음을 깨닫는 때, 거리로 나설 것이었다.


이는 실존 인물인 이한열 열사를 그리는 데에도 불필요한 지점이다. 굳이 잘생긴 오빠가 아니더라도, 생명의 은인이 아니더라도, (커플 신발을 신은) 호감 가는 남자가 아니더라도, 이한열 열사의 희생과 그가 가져온 변화는 충분히 고귀하다.


 

셋. “부천서 사건 때 경찰 말만 믿고 기소유예했다가 독박 쓴 사건 기억 안 나요?”

검찰의 가벼운 독박은 누군가에게 평생 잊히지 않는 상처로 남아있다.

최환(하정우)은 박종철 쇼크사를 부검 없이 처리하라는 상관의 명령에 불복하며 “부천서 사건 때 경찰 말만 믿고 기소유예했다가 독박 쓴” 선례를 언급한다. 1986년 실제로 일어났던 ‘부천 경찰서 성고문 사건’이다. 자세한 내용은 링크 기사로 접할 수 있다.


권인숙은 서울대학교 의류학과에 다니던 중 노동 운동에 뛰어들었다. 그녀는 가명으로 공장에 취업했다가 경찰에 붙잡혔고, 당시 조사계 형사 문귀동은 모든 사실을 시인한 권인숙에게 갑자기 5.3 인천 사태 관련자의 행방을 물었다.


문귀동은 권인숙이 원하는 대답을 하지 않자 끔찍한 고문을 시작했다. 불을 모두 끈 뒤 뒷수갑을 채우고 그녀의 속옷을 벗겼다.


강제로 권인숙의 신체를 훑던 문귀동의 손은 곧 그의 허리춤으로 향했다. 성기를 꺼내 보였고, 권인숙의 몸에 바짝 가져다 댔다. 동시에 계속해서 폭언을 퍼부었다. 공권력과 젠더 권력을 악용한, 말 그대로의 성고문이었다.

애국자로서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는 경찰들. 이미 폭력에 도취됐다.

권인숙은 여성으로서 견뎌야 할 수난을 각오하고 자신이 겪었던 일을 고발했지만, 현실은 예상보다 더 추악했다. 


권인숙의 이름은 지워졌고, 그녀의 일은 ‘부천서 권양 사건’ 따위로 축소 보도됐다. 권인숙이 문귀동을 고소한 당일, 검찰은 그녀를 공·사문서 위조 혐의로 구속 기소했고, 문귀동은 맞고소(명예훼손과 무고)로 대응했다.


보수 언론은 권인숙을 두고 불량 학생, 급진 좌파, 심지어는 ‘혁명을 위해 성도 도구로 이용하는’ 부끄러운 줄 모르는 여성이라 칭했다. 이때 검찰은 문귀동이 폭언과 폭행을 한 것은 맞지만 성적 모욕은 하지 않았다며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다.


검찰은 축소 수사, 피해자를 향한 2·3차 가해도 모자라 권인숙에게 징역 3년을 구형했다. 이것이 최환이 상기시킨 검찰의 독박이다. 


영화에선 가벼운 한 마디로 스쳐 갔지만, 가부장제 내 남성 중심의 시민 사회에서 언제나 묵인해왔던 여성의 피해를 수면 위로 끌어올린 중요한 역사다.


권인숙은 저서 『대한민국은 군대다』에서 이러한 암묵적 우선순위에 대해 분석한 바 있다.

“1980년대 운동권은 집단·군사주의적인 동원 문화, 가부장적 남성 중심적 문화와 권위적이고 위계적인 조직 문화에 대한 비판과 대안을 생산해 내지 못했다.”

터질 것 같은 머리를 수습하기 위해 절박하게 여성학을 공부했다던 그녀는 현재 대학에서 여성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아들의 죽음 앞에 할말을 잃었던 아버지. 세상이 바뀌었다고, 또 계속 달라질 거라고 환히 웃으며 말해주셨기를.

살기 좋아졌다고, 독재자가 물러났다고들 하지만 아직도 세상은 척박하다. 여전히 사회적 약자가 외면받고 있고 소외된 사람들이 제 목소리를 내기 어렵다.


권인숙의 변호인이 재판 당시 법정에서 낭독했던 변론요지(199명의 변호인단이 참여)는 30년이 지난 지금도 유효한 질문이다.

우리가 그 이름을 부르기를 삼가지 않으면 안 되게 된 이 사람은 누구인가?

온 국민이 그 이름은 모르는 채 성만으로 알고 있는 이름 없는 유명 인사, 얼굴없는 우상이 되어버린 이 처녀는 누구인가?

그녀는 무엇을 하였는가?

그 때문에 어떤 일을 당하였으며 지금도 당하고 있는가?

국가가, 사회가, 우리들이 그녀에게 무엇을 하였으며 지금까지도 하고 있는가?

원문: 소란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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