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사람들이 나치의 만행을 기억하는 방법\

조회수 2018. 1. 23. 12:38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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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 대해 눈 감는 자는 미래에 대해서도 눈 감을 것."

이 글과 사진은 최근 주독일대사로 부임한 정범구 선생이 베를린에서 촬영해 페이스북에 올린 것이다. 독일이라는 나라가 역사의 비극을 어떻게 기억하고 교훈으로 삼고 있는지를 알 수 있는 글과 사진이어서 정범구 대사의 허락을 얻어 기록으로 남긴다.

 


과거를 잊지 않는 나라


주말을 맞아 가벼운 마음으로 숙소 주변과 베를린 이곳저곳을 돌아보았다. 그러나 가는 곳마다 맞닥뜨리게 된 것은 독일의 어두운 과거 흔적들과의 만남이었다. 과거 나치가 저질렀던 만행의 흔적들이 덮이고 잊혀지지 않도록 곳곳에서 역사가 증언, 고발되고 있는 것이다.


“과거에 대해 눈 감는 자는 미래에 대해서도 눈 감을 것”

이라고 경고하면서, 왜 독일 젊은이들이 과거 독일이 저질렀던 일에 대해서 책임을 느껴야 하는지 설파했던 바이채커 전 독일 대통령을 새삼 떠올리게 된다.


“위안부” 문제에 대한 아베 등 일본 정치인들과는 정말 클라스가 다른 인격이요, 독일 사회가 지닌 품격을 대변하는 것 아니겠는가?

“여기 1883년생 프리다 칼리셔가 살았음. 1942년 12월 14일 아유슈비츠로 끌려가 1943. 12. 31일 살해됨”
프리다 칼리셔가 살았던 집과 그 앞의 동판.
“17번 플랫폼. 1941~1945년간 독일제국철도를 통해 죽음의 수용소로 끌려간 이들을 추모하며. 1998. 1. 27. 독일철도공사가 세움”
수용소로 가던 17번 플랫폼.
“이 집에 오토 바이트 시각장애인 공방이 있었음. 1940~45년간 이곳에서는 주로 유대인 시각, 청각장애인들이 일하고 있었다. 바이트는 자신의 목숨을 던져서까지 이들을 죽음으로부터 건져냈다. 목숨을 구했던 여러 명이 그의 은덕을 기리며”
이곳에서 살다 1943년 아우슈비츠로 끌려가 살해당한 슈니바움 가족을 기리며.

원문: 김주완 김훤주의 지역에서 본 세상

/ 글.사진 : 정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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