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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은 '잡탕'이다?!

조회수 2018. 1. 4. 10:53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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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이란 뭘까? 심리학자란 무엇을 하는 사람일까?

"과학적인 인문학"


"심리학이 뭐 하는 학문인가요?" 라는 질문에 내가 가장 자주 활용하는 표현이다.


철학으로부터 파생된 역사, 그리고 인간에 대한 탐구를 목적으로 한다는 점에서 심리학은 인문학의 한 갈래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단지 심리학이 인문학으로만 규정될 것이었다면 애초에 '심리학'이라는 별개의 학문이 따로 있어야 할 이유는 없었을 것이다.


심리학은 철학, 역사학, 문학, 종교학 등등 역사와 전통이 깊은, 저력 있는 경쟁자들 틈바구니에서 도대체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많은 분들이 아시다시피 그 비결은 바로 '연구 방법론'에 있었다. 과학적인 연구 방법론. 연구 대상은 관찰 가능해야 하며, 측정이 가능해야 하고, 반복 검증이 가능해야 한다는 전제들을 받아들임으로써 심리학은 그 자신만의 정체성을 다질 수 있었다.


심리학의 본질은 융합 학문이다. 인문/사회/자연과학 분야를 아울러 심리학은 다양한 하위 분과(division)들을 구축하고 있다. 그리고 이는 분명한 심리학의 장점이다. 심리학만큼 자유자재로 분야를 넘나들 수 있는 학문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어떨까. '심리학은 이것저것 다 하는 학문이다.', '인문학도 아니고, 과학도 아니며, 그 사이 어딘가쯤에 있는 학문이다.' … 애매하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일까.



'융합'의 다른 말은 경계의 모호함, 그리고 정체성의 빈곤이다


가끔 심리학이 '잡탕' 같다는 생각을 한다. 흔히 심리학도들 사이에서 떠도는 우스갯소리 하나가 있다. 어느 학문 이름에나 뒤에 '심리학'이라는 단어를 붙이면 그 자체로 하나의 학문이 된다고.


한 번 볼까? 학교심리학, 군사심리학, 법정심리학, 디자인심리학, 광고심리학, 생물심리학, 교육심리학, 철학심리학, 경제심리학, 통일심리학, 종교심리학 등등등등등.


과연 심리학이란 뭘까? 심리학자란 무엇을 하는 사람일까? 심리학의 하위 분야가 넓어지면 넓어질수록, '심리학'이라는 본연의 이름에 관한 정체성이 점차 애매모호해져 가는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현재까지 약 60여 가지에 임박하는, 저 수많은 심리학 하위 분야들을 한 데 어우르는 '본질'은 과연 무엇일까 하는 걱정과 불안.

결국 질문은 '인간은 무엇이냐' 일 텐데 말이다.

중도(中道)를 좇는다는 것은 어렵다. 특히 각 하위 분야로부터 빠져나와 '심리학', '심리학자', '심리학 전문가'로서 세상에 서게 될 때면 더더욱 그러하다. 심리학으로 강연을 하고, 책을 써 대중을 만나려 한다면 더더욱 더더욱.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과학적인 인문학'이라는 구절에서 어느 부분에 방점을 찍어야 할지 애매하다. '과학'에 보다 초점을 맞추려면 소위 '써먹어야 한다'는 생각이 주는 압박감이 상당하다. '인간에 대한 과학은 얼마나 유용한가?' 사람들의 관심사는 바로 이 지점으로 모이니 말이다.


게다가 심리학은 하나의 정답을 주는 학문이 아님에도, 통계로 말하는 것이기에 이론대로 흘러지 않을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정적으로 말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항상 있다. '자존감이 높으면 행복감이 높은 '경향'이 있다'라고 말해야 하는데, '자존감이 높으면 행복감이 높다'라고 단정지어 말해야 한다.


한편 심리학이 지닌 인문학적 특성을 강조하자니 스토리가 빈약하다. 다른 인문학 분야처럼 길고 긴 역사를 가진 것도 아니다. 독일 라이프치히 대학에 심리학 실험실이 만들어진 1879년부터 오늘날까지 약 140여 년. 결코 짧다고만은 할 수 없는 역사지만 문학이나 철학, 역사학 등에 비하면 댈 것도 아니다.


역사가 짧아서일까? 흥미진진한 이야깃거리가 넘치는 것도 아니다. 기껏해야 말할 수 있는 것은 각종 기발하고 재미있는 심리학 실험들 뿐이다. 하지만 심리학 실험들이 '인문학'적으로 활용된 적은 과연 얼마나 있던가? 단편적인 심리학 결과만을 소개하고, '여러분들도 이렇게 해보세요~'라고 마무리 짓기 급급할 뿐, 해당 심리학 연구에 대한 풍부한 논의는 대개 없다. 인문학이라면 으레 가지고 있어야 할 사유와 통찰을 시도하지 않는다.



나는 왜 혼자 사회로 나오게 되었는가?


대학원에서 나는 문화심리학과 사회심리학을 공부했다. 석사까지만 마친 뒤 혼자서 사회 속으로 뛰어들었다. 개인사업자가 되어 심리학 강연도 다니고, 워크샵도 하고, 책과 칼럼도 쓰고, 컨설팅도 해 왔다.


그러기를 약 1년.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됐다. '과학적인 인문학'이라는, 듣기 좋으려면 융합이요, 통섭이지만 한편으로는 정체성이 애매하기 짝이 없는 학문인 심리학을 대중 영역에 끌어들이려면 어떤 참신함이 필요할까?


처음 주목했던 것은 '두 개의 벽'이었다. 심리학이 너무 말랑말랑하게 소개되는 것도 싫었고, 대학원 이상에서 다루듯 지나치게 딱딱해지는 것 또한 싫었다. 그래서 일반사회(학부 & 대학원), 학계를 구분하는 두 개의 벽을 관통하는 구멍을 좀 내 보고 싶었다. 그리고 여기에 더해, 과학적이지만 인문학적인 요소가 함께 살아 있는 심리학. 그것이 내가 심리학 강연 컨텐츠들을 만들면서 일관되게 추구해 온 원칙이다.


하지만 아직도 어렵다. 때론 인기에 편승해보고 싶어 심리학의 본질을 포기한 적도 있다. 잘 팔리는 심리학 키워드들을 찾아 주렁주렁 강연에 매달아본 적도 있다. 하지만 어찌하겠나. 나는 그렇게 뻔뻔하지가 못한 것을. 결국 나는 내 길을 가야겠다, 싶어 남들 다 하는 뻔한 소리는 그만두었다.


그리고 다시 새롭게 다짐해본다.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러하다. 과학적인 인문학. 과학으로도 비치고, 인문학으로도 비치는 심리학. 내가 앞으로 계속 사람들에게 선보일 심리학의 모습이다. 아직 그 구체적인 상이 분명치는 않지만, 꾸준히 정진하다 보면 언젠가 이에 관한 답을 낼 수 있는 날이 오리라 믿는다.


그것이 잘 되어서 부디 '아아, 좋아요. 잘 들었어요, 강연. 근데 그거 어디에 써먹어요?', '좀 말랑말랑하게, 쉽게 좀 갑시다.', '요즘 잘 팔리는 거 있잖아요. 힐링, 자존감, 자아탐색, 강점 같은 거. 그런 거 안 하세요?' 따위의 질문에 보다 자유로워질 날이 찾아오기를 꿈꿔본다.


원문: 허용회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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