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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쁜 사람들의 아우라

조회수 2017. 12. 17. 17:55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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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쁘지 않아도 된다, 나의 리듬으로 하루를 살 수 있다면
자본주의의 아우라에서 서로 한 꺼풀 씌어진 채 사랑했구나, 깨달았다. 우리의 사랑은 환경에 따라 부피가 늘었다 줄었다 하는 것이었다. 아무 양념 없이 그를 그로, 나를 나로 받아들이는 것은 처절한 과정이었다. 그리고 사랑하지 않으면 우리가 멈춰 선 이곳은 금세 지옥이 된다는 걸, 깨닫게 했다.

– 김선영 『가족의 시골』을 읽다가

인맥이 좁은 나는 알고 지내는 사람이 많아 늘 바쁜 사람들에게서 느껴지는 아우라가 부담스럽다. 그러니까 그들은 어딘지 나와 다른 세상에 사는 것처럼 여겨진다. 아주 가끔, 어쩌다가 그런 사람들과 어울리는 내가 스스로 낯설게 느껴질 정도다.


어떤 사람은 자신과 반대의 성향을 가진 이들에게 끌리곤 한다. 나처럼 낯을 많이 가리고 수줍어하며 인맥도 좁은 사람들이 내가 갖지 못한 대범하고 활발하고 방대한 인맥을 가진 사람에게 끌린다는 거다. 왜? 사람은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더 갖고 싶어 하니까. 백 프로 공감하긴 힘들다. 그런 사람들은 그저 나와 깊은 인연을 맺을 수 없다고 치부해버린다. 그래서 속에 있는 이야기까지 나누기가 꺼려지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희한한 것은 내가 이처럼 저 사람은 나와 달라서 절대 가까워질 수 없어,라고 생각한 사람과 친해지는 것뿐만 아니라 베프(베스트 프렌드)가 되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더러 있었다는 건 나의 몇 안 되는 지인으로 봤을 때 확률이 매우 높다는 게 포인트다.


결국 나는 아니라고 하면서도 그들에게 끌리고 그들과 가까워지고 싶어 하는 건 아닐는지.



약속이 취소되면 왠지 좋다


아는 사람이 많고 친구가 많다는 건 그 사람이 굉장히 부지런하단 뜻이기도 하다. 어찌 됐건 인맥이란 만남을 비롯해야 벌어지는 결과이기 때문에 나가기 싫은 모임과 약속도 어기지 않고 반드시 챙겨야 한다. 자신의 피로도 보다 그들과의 관계가 우선인 것이다.


반면 나는 어떤가? 나는 워낙 귀차니즘을 타고났기 때문에 어쩌다 잡은 약속도 취소가 되면 쾌재를 부른다. (약속 취소가 너무 좋다! 그렇다면 약속은 왜 하는 건지!) 그 약속을 기다렸음에도 불구하고 일단 취소가 되면 마음에 안정이 찾아온다. 무릇 나는 혼자 있는 게 가장 편하다. 오랜만에 친구들이나 동료를 만나면 재미는 있지만 알게 모르게 나의 에너지가 소진되는 걸 느끼면서 피곤이 몰려온다. (어떤 이들은 사람을 만나면 에너지를 얻는다던데) 아무 말도 하기 싫지만 호응을 해주고 고개를 끄덕여줘야 하는 시간들을 버티는 게 한편으론 버겁다.


하지만 싫다고 대범하게 표현하지도 못한다. 소심하기 때문이다. 약속을 잡았는데 내가 너무 피로해서 못 나갈 것 같아도 선뜻 먼저 다음에 만날래?라고 말하지 못하고 누군가가 취소해주길, 하고 바란다. 그러다가 약속을 취소하는 사람이 나타나면 내 입장에선 손 안 대고 코 풀기다.

illust by 이영채

그러고 보니 나는 늘 가던 길만 걷고 식당도 좋아하는, 아는 식당만 (맛있다는 확신이 있는 곳) 간다. 만나던 사람만 만나고 옷을 산 경험이 있는 쇼핑몰에서만 산다. 나의 영역(나와바리라고 하지요)에서 벗어나길 두려워하는 게 분명하다. 그 좁은 영역에서 벗어나길 두려워하니 만나는 사람도 한정적일 수밖에. 그렇게 인맥을 넓히고 싶은 야심도 없고 말이다.


어떤 이들은 일부러 인맥을 넓히기 위해 생소한 모임을 찾아다니거나 어떻게 해서든 자신을 낯선 장소에 집어넣는다. 처음 만나는 사람을 가장 반가워하고 자신의 호기심에 발동을 거는 이에게 관심을 기울인다.



나에게 적당한 관계를 맺으면 된다


인맥이 넓고 좁음과 바쁘고 한가한 정도는 인생을 잘 살았다 못 살았다와 전혀 관계가 없다. 그런 잣대로 삶을 판단하는 건 매우 어리석다. 다만 늘 만나는 한 사람을 만나더라도 거기서 내가 어떤 즐거움을 맛보면 그만인 것이다. 집순이라 해도 삶을 잘못 산 게 아니란 뜻이다. 활동 영역이 좁을 뿐이다.


혼자 있길 좋아하고 집에서 안 나가는 이에게 사람들은 밖으로 나가라, 많은 관계를 가져라, 라고 충고하지만 우선되어야 할 것은 당사자에게 그런 삶의 패턴이 맞을지부터 확인해야 한다. 누구에게나 맞는 옷이 있듯 관계도 마찬가지다. 우선은 내가 즐거워야 한다. 사람 만나는 게 불편하고 언짢은데 거기서 괜찮은 관계가 싹트기는 힘들다. 그렇게 시작된 관계가 뭐 그리 대단하겠는가.


자신의 리듬에 맞게 살면 된다. 바쁘게 사는 사람을 보며 내가 그러지 못함에 대해 안절부절못할 것 없다. 나답게 살면 그만이다. 잘 안 되는 것에서 애쓰지 말지어다.


원문: 이유미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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