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생각하는 직업관에 대해

조회수 2017. 11. 30. 19:0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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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히 하기 싫지 않으면서도, 남보다 잘할 수 있는 것

얼마 전부터 저는 페이스북 페이지에 건설 만화를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만화의 제목은 ‘아빠가 그리는 건설 이야기’인데, 줄여서 ‘아그건’이라고도 합니다.


이렇게 만화를 통해서 건설이라는 딱딱한 분야에 대해 그리는 이유는, 우리 아이들에게 아빠가 어떠한 일을 하고 있는지 자세히 알려주고 싶어서입니다.저는 해외 인프라 견적과 시공 관련 일을 하고 있는데, 언제 또 출장이나 파견으로 해외에 나가서 아이들과 떨어져 살지 모르는 일입니다.


물론 요즘은 기술의 발달로 인해 세계 어디에 가든 페이스타임 등으로 아이들과 소통을 할 수 있지만, 그러한 몇십 분의 시간으로 아빠의 생각을 전달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지요. 그러한 측면에서 이같이 만화를 통해 아빠와 아이가 교감하는 것은 꽤나 괜찮은 생각이지 않나 싶었습니다.


아이들을 데리고 가면 되지 않겠냐는 이야길 할 수 있겠지만, 해외 인프라의 경우는 대략 소득 기준 지구의 상위 20% 국가에 가는 것도 아니고, 하위 80% 국가로 발령이 나게 되는데, 그러한 곳에 가족을 데리고 가는 일은 그렇게 쉬운 결정은 아닙니다.


자녀가 어리면 의료시설 때문에도 그러하고, 자녀가 학생이면 교육과정 때문에도 그러하며, 맞벌이 부부라면 서로의 경력관리 때문에도 그러합니다.


가끔 어떠한 위인이나 잘 된 사람이 언론에 나와 어린 시절 외국에서 자란 기억을 이야기하면 우리는 보통 부러워하는데요, 이는 그렇게 어린 시절을 외국을 돌아다니며 자라 잘 된 케이스일 뿐입니다. 실제로는 지나친 외국 생활의 전전으로 적응을 잘 하지 못하여 힘들게 사는 경우도 꽤나 존재합니다.


이게 중고등학교라는 입시제도 하에 있는 상황에서는 더더욱 선택의 폭이 좁아지게 됩니다. 개인적으로 중산층 가정에서 대학은 가성비 측면에서 적어도 한국에서 나오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는데, 그렇다면 선택은 조금 더 어려워집니다.


외국에 가족들을 데리고 다니는 것이 정답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장황하게 저의 이야기를 이야기하는 까닭은, 지구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다 각자의 인생이 다르고, 그 선택의 연속은 매번 깊은 고민과 판단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때론 겉으로 보이는 사람들의 모습만 보고, 다른 사람들은 다들 평범하고 편하게 살아가는 것 같은데, 왜 나만 힘들까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어린 시절 품어왔던 꿈, 그러니까 연예인이나 과학자, 파일럿, 대통령과 같은 꿈은 대부분 이루지 못합니다. 그래서 대부분 먹고사니즘으로 대학의 전공을 구하고, 일자리를 구하며 살아가지요.


그렇다면, 그러한 인생의 대부분은 가치가 없는 인생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심지어 그러한 꿈을 이룬 사람들조차 매우 만족스러운 삶을 살아가지만은 않습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조명하는 직업의 세계는 제한적입니다. 의사나 변호사, PD나 건축사, 재벌 2세 혹은 신데렐라, 어찌 보면 상당히 클리셰스럽게도 우리에게 보이는 직업의 세계는 제한적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다른 직업의 세계는 사회경험이 제한적인 작가나 PD가 구현하기 어렵기도 하거니와, 그렇게 만들어 봐야 시청률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지요.


그렇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는 드라마나 영화에서 조명하는 직업 외에도 무지하게 많으며, 이 글을 읽는 우리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러한 직업에 종사하거나 그러한 직업에 종사할 것입니다.

상기 고용노동부 노동통계 포털 자료를 참조해보면, 2016년 전체 근로자 약 1,718만 명 중 예술, 스포츠에 근로하는 근로자는 약 25만 명입니다.


그리고 전문 과학 및 기술서비스업은 약 96만 명, 출판, 영상, 방송통신 서비스업은 56만 명입니다. 그런가 하면 건설업은 약 123만 명, 도매 및 소매업은 213만 명, 제조업은 무려 363만 명에 이르게 됩니다.


그렇게 우리 대부분은 특별히 방송이나 책과 같은 매체에서 조명하지 않는 직업을 종사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렇다면 그러한 부분에 근무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드라마틱한 일상이나 사연 없는 로봇처럼 매일같이 다람쥐통 같은 일상만 챗바퀴처럼 살고 있을까요?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건설업의 경우만 보자면, 가끔 부실공사로 인해 건물이나 가시설이 무너지는 뉴스도 나오고, 서로 뇌물을 주고받거나 담합을 하여 공정위 과징금 등을 부과하는 것들이 언론을 통해 보입니다. 바뀌어야 할 이 사회의 어두운 단면이지요.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대부분의 건설업 종사자들이 그런 인생을 살아가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도 어떻게 하면 제한된 예산 안에서 튼튼하고 지속적인 구조물을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하는 설계자들도 존재하며, 설계도면을 가지고 어떻게 고품질의 구조물을 안전사고 없이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하는 시공자들도 존재합니다.


그런가 하면, 국민의 소중한 세금을 바탕으로 한 예산을 어떻게 적재적소의 인프라로 구현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공무원도 있을 것이고, 오늘 들어온 철근을 어떻게 빨리, 그리고 튼튼하게 맬 수 있을지 고민하는 철근반장님도 있을 것입니다.


저는 그 건설업에 종사하는 한 명의 근로자로서, 조금은 그 건설업이란 것이 어떤 것인지 우리 아이에게 설명하고 싶었습니다. 물론 이 아이는 저의 아이일 수도 있겠지만, 자라나는 후세대를 모두 통칭할 수도 있겠지요.


문득 대학을 졸업하고 십여 년 전, 처음 건설현장에 갔던 기억이 나네요. 월화수목금금금 일만 하는 건설현장을 보며 숨이 턱턱 막혔습니다.


게다가 통영이라는 지방도시에서 아침 6시부터 출근하여 아침체조를 하며 밤늦게까지 야근을 하다 보니, 이게 과연 내가 이런 일을 하려고 그동안 초중고대 12년 교육을 받았나 하는 자괴감도 들었습니다. 대학 다닐 때는 9시에 시작하는 1교시 수업을 피하고자 시간표 잘 짜려고 무진 노력도 했는데 말이지요.


부천에서 일할 때는 안전모를 쓰고 백화점 앞을 지나다니면, 공부 못하면 저 아저씨같이 된다고 말하시는 아주머니도 계셨지요.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겪는 일입니다.


나름 학교 다닐 때 그래도 반에서 2-3등은 하는 실력이었는데, 조금 서운하기도 했습니다. 주변에 변호사나 회계사가 된 친구들도 가끔은 신세한탄을 합니다.


그렇게 공부 열심히 하면 무언가 특별한 사람이 될 줄 알았지만, 지나 보니 월급 꼴랑 이거 받으려고 그렇게 열심히 공부를 했나 싶다고.


그런데 조금 시간이 지나고 나서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밤에 잠을 편히 잘 수 있는 이유는, 경찰과 군인이 밤새 안보와 치안을 안전하게 유지시키기 때문이기도 하고, 지역난방공사 직원들이나 한국전력 직원들도 밤새 유지보수를 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주말에 아파도 응급실에 가서 언제든 치료받을 수 있는 것은 의사나 간호사, 병원 직원들, 그리고 버스나 택시기사 분들이 주말에 근무하기 때문이고, 나는 기분 내서 주말에 외식을 하지만 그곳에서 일하는 자영업 사장님과 직원들은 일을 하는 것이라고.


그렇게 근로라는 것은 학교 시간표 밖에 있는 것이며, 그 모든 직업들은 각자 나름의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저는 자라나는 우리 아이들이 세상의 직업을 조금 더 구체적이고도 자세하게 바라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정말로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을 확률이 높겠지요.


직업을 꼭 그렇게 낭만적으로 묘사할 필요도 없을 것 같습니다. 있는 그대로, 이 직업엔 어떠한 장점이 있고 어떠한 단점이 있는지, 있는 그대로 알려줄 필요도 있겠지요.


마지막으로 평소 제가 가지고 있는 직업관을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직업을 어떠한 자기 특기와 적성을 살려 자아실현의 결정체로 표현하시곤 하는데, 저는 반대입니다. 주관적인 관점에서 직업선택의 기준은 ‘적당히 하기 싫지 않으면서도, 남보다 잘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예컨대 내가 음악을 좋아하니 나는 가수가 꿈이다. 나는 축구를 좋아하니 나는 축구선수가 꿈이다. 이러한 평면적인 직업선택은 그 수많은 가수 지망생들 중에 아이유 씨 정도만 이룰 수 있는 것이고, 그 많은 초등학교 축구부원들 중에 손흥민 선수 정도만 이를 수 있는 꿈입니다.


세상이 아무리 좋게 변화한다 하더라도 아이유 씨나 손흥민 선수와 같은 사람이 앞서 언급한 백만 명 천만명 나올 리 만무합니다. 그렇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패자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건설업에 종사하지만, 영화를 사랑하고 음악을 좋아합니다. 책으로 역사를 읽는 것을 좋아하고, 요즘엔 취미로 경제공부도 종종합니다.


굳이 직업으로 삼지 않는다 할지라도 그러한 문화나 스포츠는 향유할 수 있는 것이고, 때론 그렇게 먹고사니즘과 연관이 없을 때 더 순수하게 즐길 수도 있습니다.


직업은 인생의 전부가 아닙니다. 그저 세상을 살아가며 적당한 수준의 경제력이 있어야 사는데 지장이 없는데, 여기서 직업은 그 경제력을 갖추기 위한 도구일 뿐이지요. 경제력을 갖추면 그것을 바탕으로 다른 특기와 적성은 취미로 즐기면 그만이지, 그것이 꼭 일치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그 직업이라는 것을 선택하는 것도 너무 어려운 숙제는 아닐 것입니다. 아울러 아무리 공부를 열심히 한다 할지라도, 편한 직업을 얻기란 쉽지 않습니다.


사회에서 말하는 그 좋은 직업이라는 것들은 대부분 더 큰 책임을 요하는 직업들이기 때문이지요. 의사는 의료사고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며, 판사는 매번 누군가의 인생을 결정해야 하는 책임이 있지요.


그런가 하면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장차관들은 매번 언론과 대중에게 혹독한 검사를 받고, 유명한 과학자는 한 번의 논문 조작으로 명예와 권리를 모두 박탈당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지나치게 출세를 하거나 어떠한 큰 인물이 되겠다는 생각은 오히려 결말이 좋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오늘도 묵묵히 자기 자리에서 자신의 직업을 가지고 사회의 한 구성원이 되어 살아가는 많은 근로자들, 우리의 아빠, 엄마, 삼촌, 이모, 다들 그 나름의 직업의식이 존재하며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가치가 충분히 있습니다.


그리고 조금 힘들고 그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할지라도, 자기만의 전문성이나 직업의식을 가지고 생활한다면, 우리 사회가 조금은 더 나아지지 않을까 생각을 해봅니다.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근로자들을 응원합니다.


원문: 퀘벤하운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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