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지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 데 있어 성별이 뭐가 중요한 것일까

조회수 2017. 11. 30. 10:48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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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글을 쓰는 것이 딱히 두렵지 않다

늘 감명 깊은 글을 생산하는 손아람 작가와 정현석 작가의 페이스북을 보고 세바시 사태를 알게 되었다. 세바시에서 최근 공개한 강동희 강연자의 ‘성소수자도 우리 사회의 분명한 구성원입니다’ 강연이 비공개 처리되었다. 교회의 교단과 교인들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았다는 것이 그 주된 이유였다.


다른 성적 지향을 가진 이들 역시 우리 사회의 구성원이라고 뻔하게 말하는 강연이 과연 그렇게도 충격적인 내용인가. 단지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 데 있어 성별 따위가 얼마나 중요한 걸까.


같은 성별의 사람을 좋아하거나 성별 정체성이 불명확한 사람을 좋아하는 일이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 인정받지 못할 만큼 사회 구성원에게 죽을죄를 지은 것인가.


그리고 그들의 외침, ‘성소수자도 우리 사회의 구성원’이라는 간단한 담론에 연대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LGBT가 굳이 타인에게 알리고 싶지 않은 자신의 성적 지향을 커밍아웃해야만 이 간단한 의제가 성립되는 것인가. 이 슬픈 절규를 강요하는 사회의 구성원들은 일말의 죄책감이라도 가지고 있나.


나도 보탬이 되고 싶다. ‘성소수자도 우리 사회의 분명한 구성원이다’라는 아무것도 아닌 당연한 의제에 힘이 되고 싶다. 이 지긋지긋한 차별과 편견 사이에 사람이 서 있음을 알리고 싶다.

이 글을 쓰기까지, 25년이 걸렸다. 이 글을 쓰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가연이의 의사였다. 그러나 동시에 그녀의 의견이 중요하지 않기도 했다. 우리는 혼인을 약속한 부부 관계이기도 하지만, 그 이전의 내 삶은 고유한 나의 것이기 때문이다. 


가연이는 늘 나를 사랑하듯, 오늘 글을 쓰는 것을 역시 허락해주었다. 아니 그녀가 허락했다기보다, 망원에서 석관동으로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그녀가 먼저 그들에게 힘이 되어줄 것을 먼저 제안했다.

나는 남자를 좋아했다. 아니,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성별을 단  한번도 염두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러니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여자도 있었고, 남자도 있었다.


나는 그렇다고 스스로를 바이 섹슈얼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접두사(Bi-)가 갖고 있는 이분법적으로서의 성이 아닌, 제3의 성을 가진 사람도 내가 사랑한다면 그 자체로 사랑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가연이와 연애하기 전에 만났던 사람은 남자였다. 그는 나에게 친절한 사람이었다. 그의 가족 중에는 몸이 많이 아픈 사람이 있었다. 그는 가족을 간호하는 것에 대해 힘들어했고, 집을 빠져나와 나와 데이트하는 시간을 기다렸고 즐겼던 사람이다.


나는 장애인으로 사는 삶에 대해 자존감이 땅에 떨어졌었고, 그는 나를 아껴주었다. 헤어지기 전까지 함께했던 그와의 관계도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로부터 일 년이 지나 가연이를 만났다. 연애 당시 가연이에게 먼저 고백하였다.


“나는 모두 사랑한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남자이건 여자이건 크게 상관하지 않는다.

나는 분명 지금 너를 사랑하지만, 너를 만나기 전의 애인은 남자였다. 너와 연애하기 전에 이 사실을 알려두고 싶다. 이러한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헤어져도 좋다.”

이 얘기는 내게 있어 중요한 것이었다. 불륜을 저지르겠다거나, 바람을 피우겠다는 의도로서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성별을 개의치 않는다는 생각을 인정받고 싶었다.


그녀는 그러한 나를 그대로 이해했다. 그리고는 아무렇지 않게 전 애인에 대한 얘기를 들려달라고 했다. 나는 있는 그대로 말했으며, 그녀도 그녀의 관계를 나에게 있는 그대로 말했다.


애초에 이 당연한 서로의 과거는 딱히 허락받을 것이 없었다. 내가 이 사실을 숨긴다고 철저한 ‘이성애자’로 살아가는 것도 아니며, 가연이가 이 사실을 안다고 호모포비아가 되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우리의 인생을 각자 스물 몇년씩 살아왔을 뿐이며, 지금에 와서야 서로 만났고 사랑하게 된 것이다.


정리를 하자면, 내가 남자를 좋아하는 사람으로 규정된다면 남자를 좋아하는 사람이 될 것이고, 여자를 좋아하는 사람으로 규정된다면 여자를 좋아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사랑하는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일 뿐이다. 그리고 나는 가연이를 사랑한다. 그게 내가 나를 규정지을 수 있는 유일한 전부이다.

이 글을 쓰며 유일하게 마음에 걸리는 것은 장인어른과 장모님 정도지만, 그들도 내가 ‘남자’ 사위라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소중한 가연이 옆에 존재하는 사랑스러운 재원이기 때문에, 아끼고 사랑해준다는 사실을 잘 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이 글을 쓰는 것이 딱히 두렵지 않다. 굳이 사랑하는 사람의 성별을 허락받지 않아도, 애초에 우리는 모두 우리 사회의 구성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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