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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원에게 질문의 자유를 허하라

조회수 2017. 11. 17. 10:08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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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무 효율성, 직원 역량 개발 측면에서도 바람직합니다.

Question

글로벌 기업에서 최근 국내 대기업으로 이직한 직원입니다. 저희 상무님께서는 회의를 마치기 전에 꼭 “질문 있나?”라고 물어보십니다. 그런데 이때 정작 질문을 드리면 짜증스럽게 반응하십니다. ‘그것도 몰라?’ ‘생각 좀 하고 살아!’라는 뉘앙스를 강하게 풍기시죠. 그래서 웬만하면 다들 질문을 드리지 않습니다. 국내 대기업은 다 이런 식인가요?

Answer 


글쎄요, 다 그런 식이라고는 말씀드리기는 힘들지만 그런 경우가 매우 많습니다. 물론 기업문화, 부서, 상사에 따라 다르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훨씬 더 많을 것 같네요. 국내 대기업 중에서도 보수적 기업문화로 유명한 회사와 자유로운 분위기의 글로벌 회사를 모두 다녀본 저 또한 질문하신 분과 같은 문화적 충격을 여러 차례 겪었습니다. 몇 가지 사례를 공유 드립니다.



사례 1. 통역 게임


보수적인 B(Bosu(…))그룹의 경우 회장님께 보고를 드리고 나면 보고에 참석한 임원들끼리 모여서 ‘통역 게임’을 길게는 한 시간 넘게 벌입니다. 통역 게임이란 ‘회장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는데 과연 어떤 의미로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 의견을 교환하며 추측하는 회의를 의미하죠.


이걸 ‘게임’이라고 부르니까 실감이 잘 안 나는데 사실 매우 중요한 회의입니다. 회장님 의중을 잘못 파악해 엉뚱한 업무를 진행하면 최악의 경우 임원 모가지가 날아갈 수도 있기 때문이죠. 그냥 보고 자리에서 회장님께 여쭤보면 될 걸, 다들 바쁜 분들일 텐데 왜 한 시간 넘게 써가며 이렇게 비효율적으로 일하는 걸까요? 회장님께 질문하는 게 그렇게 힘든 일인가요?


예, 그렇습니다. 회장님께 질문하는 건 매우 힘든 일입니다. 사실 그런 자리에서 회장님께 질문하는 것은 다음 두 가지 경우 중 하나로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1. 저는 회장님 말씀을 잘 이해하지 못할 만큼 이해력이 떨어집니다.
2. 회장님, 좀 알아듣기 쉽게 다시 말씀해주세요. (불명확하게 설명해주셨다니까요.)

둘 다 좋은 건 아닙니다. 매우 보수적인 국내 기업에서는 회장님께 질문하는 걸 불경스러운 행동으로 간주하기도 합니다. 만에 하나 질문했는데 고민을 별로 안 하고 지시하셨는지 답을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경우… 생각만 해도 아찔하지 않으세요? 설상가상으로 답을 못하고 ‘어버버버’ 하는 모습을 보이셨어요. 얼마나 민망하시겠어요. 이 경우 다른 회의 참석자들은 질문한 임원에게 아마 이런 반응을 보일 겁니다.

아니, 오 이사는 회장님께서 곤란하게 왜 그런 질문을 해요? 그 불똥이 우리한테까지 튀게 생겼잖아요!

이처럼 회장님의 의중을 파악하기 힘들 경우 빛을 발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회장님의 비서실장입니다. 회장님의 말씀을 많이 들어서 그분의 의중을 누구보다도 잘 알기 때문이죠. 많은 경우 임원들은 회장님 보고 후 비서실장을 따로 찾아갑니다. 그러면 “그동안 회장님 말씀에 비춰볼 때…” 하면서 해석해줍니다. 임원들은 “아, 그게 그런 뜻이었구나. 역시 비서실장님 촉은 대단하네요.” 하면서 감사를 드립니다.

출처: NH농협은행

이런 이유로 많은 그룹에서는 비서실장 출신이 권력의 실세가 됩니다. 이게 다 ‘열린 소통’을 하지 않는 권위적인 기업문화 때문이죠. 



사례 2. 눈치 게임


또 다른 보수적인 C(Conservative)그룹의 경우 사장님께서 회의를 마치기 전에 “질문 있는 사람?”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때 최소한 한 사람은 질문하길 권장합니다. 질문이 없으면 다 같이 ‘업무에 별로 관심 없는 사람’ 심한 경우 ‘생각 없이 지시만 따르는 무뇌충’으로 간주되기 때문이죠. 그렇다고 아무 질문이나 함부로 할 수는 없습니다. 사장님 마음에 안 드는 질문을 하면 여러 사람 앞에서 정말 심하게 무안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사장님께서 질문하라면 직원끼리 그 순간부터 ‘눈치 게임’에 들어갑니다. 누구 한 명의 똘똘한 질문으로 이 곤란한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기만 간절히 기원하면서요. 처음에는 그중 가장 후배 사원에게 눈치 주죠. 팔꿈치로 쿡쿡 찌르기도 하고요. 하지만 “○○는 질문 한번 잘못해서 사장님께 찍혔다더라” 심지어 “△△는 바보 같은 질문 해서 한직으로 밀려났다더라” 같은 믿거나 말거나 식의 소문을 이미 들은 후배 사원은 온갖 압박에도 버티기 모드에 들어갑니다.


결국 화살은 가장 선배 사원에게 돌아갑니다. ‘최고참이라면 응당 이런 난감한 상황에서 후배들을 위한 탈출구를 제시해야 할 의무가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과 함께요. 하지만 선배 사원도 선뜻 나서지는 못하죠. 엉뚱한 질문을 할 경우 본인의 체면이 구겨지는 것은 물론이고 자칫 잘못하면 모든 사원이 도매금으로 깨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마냥 시간을 끌 수만은 없습니다. 결국 선배 사원은 총대를 메기로 결심하고 조심스레 말문을 열죠.

사장님 말씀을 듣고 보니 저희가 생각이 조금 짧았던 것 같습니다. 왜 저희는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깊은 반성을 하게 되었습니다. 며칠 전 서광원 작가가 쓴 『사장으로 산다는 것』이라는 책을 보니까 오너는 월급쟁이와는 사고방식 자체가 다르다고 나와 있던데 오늘 사장님 말씀을 듣고 갑자기 그 책이 생각났습니다.

질문을 하라고 하셨는데 이건 또 무슨 말인지. 물음표가 없는 문장인데… 어쨌든 사장님께서 이 말씀을 듣고는 기분이 나쁘시지는 않으셨나 봅니다. 껄껄 웃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죠.

그 책을 이제야 봤나? 나는 몇 년 전에 그 책을 읽었는데… 어쨌든 더 이상 질문 없으면 여기서 회의를 마치기로 하지.

사장님 회의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아까 질문(?)을 한 선배를 향해 후배 사원 한 명이 ‘엄지 척’을 합니다. “부장님, 정말 대단하십니다”라는 칭송과 함께요.

출처: NH농협은행

질문을 허용하는 단계 


보수적인 두 회사의 사례를 살펴보았습니다. 조금 극단적이지만 실화입니다. 국내 기업에서는 그만큼 질문하기가 어려운 게 아닐까요? 국내 기업에서 질문을 허용하는 단계를 한번 정리해 보았습니다. 세부적으로는 더 많은 단계로 구분할 수 있겠지만 편의상 다음 5단계로 나눌 수 있습니다.

1. 질문을 웬만하면 하지 않는 경우
2. (질문을 하지만) 상사가 좋아할 만한 질문을 하는 경우 
3. (질문을 하지만) 상사가 답변은 거의 안 해주고 질문한 사람을 혼내는 경우
4. (질문을 하고 상사가 답변도 해주지만) 상사의 답변이 곧 지시사항이 되는 경우
5. (질문을 하고 상사가 답변도 해주면서) 상사와 팀원들이 자유롭게 의견을 교환하는 경우

1단계는 팀원들이 상사에게 질문하지 않는 경우입니다. 왠지 하면 안 될 것 같은 분위기. 앞서 사례 1에서의 B그룹이 여기에 해당하겠죠. 2단계는 질문은 하지만 이를 궁금증을 풀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상사와의 훈훈한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 활용하는 경우입니다. 질문을 빌어 평소 상사에 대한 존경심을 표현하거나, 실제 존경심은 없지만 있는 것처럼 표현하거나, 아니면 상사를 돋보이게 하는 상황을 연출하는 수단으로 활용하죠. 앞서 사례 2에서의 C그룹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사실 1단계나 2단계는 오십보백보, 도긴개긴입니다. 질문을 했다, 안 했다의 차이는 있지만 궁금한 사항에 대한 답변을 얻지 못한 점에서는 똑같죠. 3단계는 질문을 통해 궁금한 사항에 대한 답변을 얻을 수는 있지만 답변과 함께 꾸지람을 듣는 경우입니다. 많은 경우 답변보다는 꾸지람의 비중이 더 크죠. 보통 이런 식입니다.

이런 바보 같은 친구를 봤나. 그것도 모르고 여태까지 어떻게 일했어?

답변은 해주지만 중간중간에 혼내고, 또 답변 조금 해주고 또 혼내고. 결국 궁금증은 풀렸지만 그 과정에서 심한 내상을 입게 됩니다. 어쩌겠어요. 답변을 위해서라면 이 정도 출혈은 감수해야죠. 그런데 그냥 질문에 답만 해주면 될 걸 왜 상대방 사기 떨어지게끔 이렇게 심하게 혼내는 걸까요? 아마 다음 두 가지 경우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1. 상사와 팀원 간 지적 능력의 간극이 너무 커서, 상사가 답답한 나머지 어쩔 수 없이 화를 내는 경우
2. 상사와 팀원 간 지적 능력의 간극은 별로 없지만, 상사가 그냥 성격이 더럽고 나빠서 화를 내는 경우
출처: 서울경제

물론 1번 가능성도 전혀 없지는 않지만 2번이 대다수일 것으로 추정됩니다. 4단계는 질문도 자유롭게 할 수 있고 상사가 답변도 잘 해주지만 한 가지 문제는 상사의 답변이 곧 지시사항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식이죠. 

상무님, 이렇게 하면 이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그럼 이렇게 하면 되잖아. 이렇게 하게.
예, 알겠습니다.

질문을 통해 답을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는 좋지만 여전히 문제는 남습니다. 무슨 문제가 있을까요? 팀원의 질문에 상사가 답을 하고 그게 곧 지시사항이 될 경우 팀원들은 단지 그 지시에 맞춰서 일하게 됩니다. 그리고 점차 이런 업무방식에 익숙해져서 상사가 시키는 일만 하는 직원이 되죠. 이렇게 오래 일하면 그냥 ‘일하는 로봇’이 됩니다.


이것보다 진일보한 단계가 바로 5단계입니다. 5단계는 팀원이 질문하면 상사와 팀원들이 자유롭게 의견을 교환하는 경우입니다. 이런 식이죠.

상무님, 이렇게 하면 이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여기까지는 4단계랑 똑같습니다.)
그래?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한번 의견을 제안해 보게.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
그러면 이런 문제가 있을 것 같은데. 이렇게 하면 더 좋지 않나?
그것도 좋은 방법이긴 한데 그 경우에는 이런 문제가 있습니다.

사실 업무 효율성이나 직원 역량 개발 측면에서는 5단계가 가장 바람직합니다. 하지만 5단계가 팀원과 상사 입장에서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팀원들은 질문할 수 있고 의견을 제안할 수 있는 ‘자유’를 누릴 수 있지만 동시에 좋은 의견을 제안해야 하는 ‘책임’도 함께 지게 됩니다. 원래 자유에는 책임이 수반되기 마련이죠.

이런 분위기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오히려 답답할 수 있습니다. 가령 상사가 모든 질문의 답을 알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팀원도 있을 수 있습니다. 또한 자유롭게 의견을 교환하기보다는 그냥 상사가 모든 일을 알아서 지시하고 자신은 그냥 이를 수행하길 바라는 팀원도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런 분들은 5단계보다는 4단계를 더 선호할 수 있죠. 4단계에서는 모든 사항에 대해서 상사의 지시를 받고 이행만 하면 되니까요. 하지만 이렇게 일하면 개인도 조직도 발전이 없겠죠. 


상사들도 잃는 게 많습니다. 먼저 권위를 어느 정도는 내려놓아야 합니다. 권위를 내세우면 팀원들이 자유롭게 질문할 수 있는 분위기 조성이 어려워지겠죠. 팀원들로부터 도전을 받을 준비도 해야 합니다. “부장님, 그건 아닌 것 같은데요”라는 말을 들을 각오는 해야죠. 본인이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하니 ‘가오’가 상할 수도 있습니다. 또한 모든 것을 본인의 뜻대로 하기 어려워질 겁니다. 매우 저속하고 무척 상스러운 표현이지만 ‘까라면 까’라는 말을 할 수 없기 때문이죠. 상사 입장에서 손해가 너무 큰가요?



제안


그럼에도 언젠가는 5단계로 가야 하지 않을까요? 지금 당장 5단계를 실현할 수 없다면, 언젠가는 이를 실현한다는 목표를 갖고 한 단계 한 단계 조금씩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요? 직장생활을 오래 해본 분이라면 5단계를 실현하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라는 데 동의하실 겁니다. 권위를 내려놓는다는 걸 회사의 직급체계 전체를 흔드는 일로 생각하는 분이 아직도 많으니까요.


잠깐 제 경험담을 말씀드리죠. 저는 선배들한테 인사를 할 때와 똑같은 방식으로 후배들의 인사를 받아줍니다. 회장님이나 사장님을 뵈면 90도 각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어색하지 않은 각도까지는 고개를 숙여서 인사를 드리거든요. 후배들의 인사를 받아줄 때도 같은 각도로 고개를 숙입니다. 그러자 동료 임원 한 분이 이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예의를 갖추는 건 좋은데 후배들한테 너무 깍듯이 인사하는 것도 남들이 보기에 썩 좋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임원으로서 어느 정도 권위는 갖춰야 한다는 게 다른 임원분들의 생각입니다.

제게 이 말씀을 하신 분은 제가 매우 좋아하는 선배님이십니다. 다른 뜻이 있었던 건 아니고 저를 위하시는 말씀에서 하신 것이죠. 어쨌든 저의 ‘지나치게 예의 바른 행동’이 다른 임원분들의 눈에는 임원의 권위를 손상하는 행동으로 보인다는 게 이분 조언의 요지였습니다.


이처럼 권위를 내려놓고 후배들의 자유로운 질문을 허용하는 게 절대 쉬운 일은 아닙니다. 본인의 일이 많아지는 건 둘째치고 (후배들의 질문에 일일이 답해주고 함께 토론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죠) 조직에서 눈치를 줄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앞에서 드린 말씀을 다시 드리죠. 그럼에도 언젠가는 5단계로 가야 하지 않을까요? 지금 당장 5단계를 실현할 수 없다면, 언젠가는 이를 실현한다는 목표를 갖고 한 단계 한 단계 조금씩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요?

Key Takeaways


  1. 기업문화, 부서, 상사에 따라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국내 기업에서는 상사에게 질문하는 게 쉽지 않다.
  2. 업무 효율성이나 직원 역량 개발 측면에서는 팀원들이 질문을 자유롭게 하고 상사가 답변도 해주면서 상사와 팀원들이 자유롭게 의견을 교환하는 경우가 가장 바람직하다.
  3. 국내 기업에서 지금 당장 이런 단계까지 실현하는 것은 어렵다. 하지만 언젠가는 이를 실현한다는 목표를 갖고 한 단계 한 단계 조금씩 나아가자(물론 힘들다, 나도 안다).


원문: 찰리브라운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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