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ㅍㅍㅅㅅ

평준화가 이뤄평준화가 이뤄지면, 서열화가 사라질까?지면, 서열화가 사라질까?

한국 사회 밑바탕에 깔린 패거리 문화의 아이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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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정치 이야기를 빼면 안줏거리가 없을 정도로 정치 이야기를 많이 하고 있다. 특히 몇 달 전에는 대통령선거가 코앞이었던 지라, 각 후보들의 정책에 대해 관심 있게 지켜보곤 했다. 내 성향은 보수 쪽이지만 특정 후보를 지지하거나 반대하지는 않았다. 그러다 최근 재미있는 심리학 강연을 보아서, 예전에 생각했던 몇 가지를 정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할 이야기는 수학과 크게 관계가 없다. 그래도 태생적 한계(?)로 관련이 있기에, 자유롭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풀어가 볼까 한다.

<어쩌다 어른>의 한 장면.

출처tvN

당시에는 대통령 후보였던 모 분이 외고·자사고에 대한 일반고 전환 공약을 내세운 바 있다.

이즈음에 드는 생각 한 가지. 과연 고등학교 평준화를 하면, 서열화가 사라지고 기회가 균등하게 보장될까?



패거리 문화의 아이러니


대한민국이라는 동네는 패거리 문화이고, 어떤 패거리에 속해있느냐가 개인의 심리적인 부분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이러한 패거리 문화는 때로는 공동체라는 이름으로, 때로는 공감이라는 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감성팔이에 정치적으로 이용당하곤 한다.


특히 대한민국 젊은이들이 가지고 있는 패거리 문화에 대한 인식이 아이러니하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전체주의를 욕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집단에서 튀는 사람들을 욕한다. 군대 문화를 욕하면서 대학 신입생 환영회 때는 선배들이 후배들에게 군기를 강조한다. 기존 사회의 규범은 집단주의라고 반발하면서, 정작 또래집단에서 왕따는 지극히 두려워한다.


이러한 패거리 문화에 대한 아이러니를 들자면 끝도 없지만, 그중에 가장 아이러니한 것은 바로, 다 함께 더불어(패거리) 사는 것을 이야기하면서, 또 다른 (작은) 패거리를 형성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의 큰 패거리 내에서 (작은) 패거리를 형성하는 것, 그것이 바로 서열의 시작이다.


얼마전 TV에서 보았던 심리학자(위 사진 참조)가 이야기하기를, 한국 사람들은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한다. 내 개인적으로도 이 이야기에 동의한다. 다만, 이러한 '관계'라는 것은 당시 TV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좋은 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타향에서 사적인 자리든, 공적인 자리든 나이가 있으신 분들을 만나게 되면 처음 듣게 되는 질문이 보통은 이렇다.

어디 사나?
고향이 어디?
대학은 어디?
아버지는 뭐 하시노?
본가가 어디? (몇 대손?)

그리고 젊은 사람들은 이렇게 질문하는 어른들을 보고 '꼰대'라 칭한다. 하지만 이렇게 꼰대를 욕하는 젊은 남자들도 정작 누군가를 알게 되고 안면을 트게 되면 대부분 이런 질문을 한다.

학번이 어떻게?
나이는? (혹은 띠가?)
군대는 어디? (기수가?)
학교는? (초/중/고/대)

그리고 이때 나이에 대해 대답할 때 해당하는 사람들은 굳이 '빠른 XX년생'이라고 붙여야 한다. 심지어 저런 질문들을 전혀 하지 않을 것 같은 십 대들조차도 이렇게 묻곤 한다.

아빠 직업?
동네는 어디?
집 몇 평?
자동차는?
나온 유치원은?
학원은 어디?

물론 요즘은 많은 사람들이 사생활 보호를 목적으로 이러한 질문들을 대놓고 하지는 않는다. 적어도 젊은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다. 그리고, 여전히 그러한 질문을 대놓고 하는 나이 든 사람들을 꼰대로 욕하기도 한다. 그러나 당신이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위의 질문들을 누군가에게 꼭 한 번 즈음 해 보았을 것이다. 한국인들은 남녀노소에 관계없이 어딘가에 속하고자 하는 패거리 문화를 가지고 있으며, 그러한 이유로 위와 같은 질문들을 통해 상대와의 관계를 정의하고자 한다.


대한민국의 패거리 문화는 또 다른 특징이 있다. 단순히 '패거리'에 속하기만 원하는 것이 아니라, 같은 패거리 내에서 내가 상대보다 나은 위치(혹은 서열)에 있기를 원한다는 점이다. 즉, 단순한 패거리 문화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패거리 속 또 다른 패거리를 만드는 문화, 즉 서열 문화로 귀결되는 것이며, 저 질문들의 이면에는 바로 저 서열 문화가 깃들어 있는 것이다.


즉, 한국 사람들은 다른 누군가와 관계를 맺을 때 상대가 나와 같은 집단인지를 확인(고향, 학교, 학원, 사는 곳, 고향, 군대 등)하고, 그다음은 같은 집단 내에서의 서열(생년, 학번, 군대 기수, 졸업 기수 등)을 정리한다. 그리고 이러한 서열 정리를 통해서 얻는 상대적 우위를 통해 자신의 우월감를 갖고자 한다. 이러한 집단과 서열을 나누는 기준은 조직 체제나 사회적 지위(직업군)같은 사회적으로 공식화된 기준이기도 하지만, 지극히 개인적인(하지만,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기준으로 나눠지기도 한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한국 사람들이 이러한 (패거리 내의) 서열에 따른 상대적 우위를 확보하지 못하면, 불안해하고 힘들어한다는 점이다. 상대적 우위를 확보한 이는 뭔지 모를 편안함으로, 상대적으로 열등을 보인 사람들은 박탈감 내지는 위화감을 느낀다. 보통 이러한 서열정리의 시작은 사회적으로 공식화된 기준으로부터 시작된다. 예를 들면 아래와 같은 질문들이다.

직업이 무엇이냐?
직급이 무엇이냐?
어느 회사에 다니느냐?
최종학력은 무엇이냐?

돌아오는 대답으로 통해 상대가 자신보다 우위에 있다고 느끼게 되면 추가로 질문을 하게 되는데,

학번은?
나이는?
군대는?

등을 묻는 것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이러한 질문들은 자신이 상대보다 우월한 무언가가 나타야지만 멈추게 된다. 이러한 질문들을 통해서 자신이 상대보다 우위에 있는 것이 하나라도 발견되면, 그 (별것 아닌) 우월한 점 하나를 가지고 상대를 무시하려 든다. 

나보다 나이도 어린 게 벌써 부장이야? 아부를 잘했겠지?
20대에 박사학위? 군대는 나왔나?

대한민국이 가지고 있는 서열화의 문제는 비단 국가가 가지고 있는 제도 문제에서 멈추지 않는다. 상대와 같은 패거리에 속하는 동시에 그 패거리 내에서 상대적 우월감을 느껴야지만 만족하는 관계적 습성 때문이다. 패거리에 속해 있으면서 그 안에서 우월감을 느껴야 하기 때문에, 자신이 왕따가 되지 않을까 불안해하는 동시에 서열에서 뒤처지지 않을까 불안해한다. 이러한 성향이 남자들은 술자리에서, (결혼한)여자들은 학부모 모임을 통해서 드러난다. 서열에 뒤처져 있다는 게 느껴지면 어떻게 해서든지 그 서열에서 상위로 올라서려 하거나, 상위 서열에 속하지 못할 이유가 있을 경우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서열조차 무시해 버리려는 경향을 지닌다.



기회균등( Equity)의 의미


학교를 평준화한다는 의미는 학생의 학습 능력에 관계없이 같은 레벨의 교육을 시킨다는 의미를 가진다. 또한 반대로 학교를 서열화(혹은 특수화)한다는 의미는 학생들의 학습능력에 맞게 맞춤식의 교육을 시킨다는 취지를 내포하고 있다. 기회균등의 원래 의미로 봤을 때, 특성화 학교들이 존재하는 것이 오히려 기회균등에 부합하는 제도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기회균등의 혜택은 능력이 모자른 이들(장애자)에게도 그들에게 맞게 돌아가야 하지만, 잠재 능력을 가진 이들에게도 그들에게 맞게 돌아가야 하는 것이 타당하다.

Equaltiy vs. Equity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이러한 제도가 욕을 먹는 이유는 바로 집단 내에서 서열 우위를 느끼고 싶은 한국 사람들의 성향이 크게 한몫을 하고 있다. 그리고, 자신이 그러한 서열 우위에 속할 수 없다고 판단할 경우 그 서열 우위에 속해있는 집단을 욕하고 서열 기준을 뭉개버리려고 하는 성향 또한 포함된다. 또한 이렇게 서열 기준을 뭉개려는 마음속에는 자신이 서열적 우위를 차지할 수 있는 새로운 기준을 만들었으면 하는 마음이 동시에 존재한다.


따라서 제도적으로 어떤 한가지 서열의 기준을 없앤다고 하더라도, 또 다른 기준이 새로 생길 것이고, 이러한 패거리 내의 기준으로 다시 서열을 정리할 것이며, 이에 따른 패거리 속 패거리는 늘 존재 할 것이다. 적어도 한국 사람들이 대다수로 존재하는 곳에서는 어디든지 말이다.



마무리


고등학교 평준화가 나은 정책이냐, 아니면 서열화(혹은 특목고) 정책이 나은 정책이냐에 대해서는 논하고 싶지 않다. 더 엄밀하게 말하자면, 크게 의미가 없다. 두 정책 모두가 장점과 단점을 모두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를 들자면, 어떤 나라에는 명문고의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어떤 나라에서는 명문고의 개념이 틀림없이 존재한다. 정작 중요한 것은 어떤 정책을 선택하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정책을 사용할 주체가 어떻게 사용하느냐 문제라는 것이다. (참고로, 대한민국 교육정책의 사용 주체는 대한민국 학부모와 학생들이다).


오히려, 이러한 잦은 제도변경으로 인해 생기는 혼란과 손실 비용을 훨씬 크게 발생시킬 수 있다. 아무리 좋은 도구라도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서 좋은 연장이 되기도 하지만 사람을 죽이는 흉기가 되기도 한다. 제도나 정책의 질을 결정하는 것은 제도 '자체의 선택'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제도 '실행 주체의 수준'에 의해서 결정이 된다는 점을 이제는 알아야 하지 않을까?

장인은 연장을 탓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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