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 두 번 울리는 한국교회의 무지와 편견

조회수 2017. 11. 2. 10:07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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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이 문제의 근원이라는 인식

청소년 사역을 하던 유명 목사의 성범죄 사건이 또 터졌다. 요즘은 목회자 성범죄가 놀랍지도 않은 뉴스가 되어 버렸다. 지면에 자주 오르내리는 탓이다. 그런데도 청소년 사역으로 유명한 문대식 목사에게 당한 피해자 중에 미성년자도 있다는 사실은 큰 충격을 주었다.


문대식 목사에 대한 기사를 읽고, 기사에 달린 댓글들을 보니 여러모로 전병욱 목사 사건이 떠올랐다. 전병욱 목사 사건 때 기사에 달린 댓글 중에 지금도 화가 나는 댓글 유형이 있었는데, 그것 또한 비슷했다.


“이 목사님을 아는 분이라면 이 기사가 거짓이라는 걸 알 것이다.”

“그분의 사역이 귀하게 쓰임 받고 영향력이 커지자 사단의 시험과 유혹이 온 것이다.”

“고작 몇 명의 말을 어떻게 믿을 수 있나.”

여지없이 이런 댓글들이 달린 것이다. 사안이 워낙 충격적이라서 당황스럽고 믿고 싶지 않을 수 있다. 그 심정이 충분히 이해가 간다. 사실관계를 더 신중하게 밝혀 줬으면 하는 마음도 있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내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반응이 있다. 이런 류의 사건이나 불미스러운 소식이 들렸을 때 피해자들을 매도하고 그들에게 화살을 돌리는 행태다.


전병욱 목사 사건 때도 피해자를 매도하는 사람이 있었다. 피해자가 목사를 노골적으로 유혹한 꽃뱀이라든지, 피해자가 이단에서 파견받은 여성이라든지…. 교인들 사이에 말도 안 되는 이야기가 퍼졌다.


이런 루머와 헛소문이 퍼져 나간 데는 교회의 책임이 크다. 정확히 무슨 일로 전병욱 목사가 사임했는지 2년 넘게 침묵했고, 교인들에게 사실을 공개하지 않았다. 나와 친했던 후배에게 전임 목사의 사임 사유를 아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이단에서 파송된 꽃뱀 때문에 오해를 샀다고 하던데요.”

전병욱 목사 성범죄 피해자들은 꽃뱀이나 이단으로 매도당하면서 2차·3차 피해를 입고 있었다.


면직 운동을 하면서 파악한 피해자들은 신실하게 교회에 봉사하고 헌신했던 간사, 부서 리더, 평범한 청년 등이었다. 피해자들은 피해 사실을 밝히기가 어려웠다고 고백했다.


교회에서 교인들의 존경과 신뢰를 한 몸에 받는 명망 있는 목사가 성범죄를 저질렀다고 이야기했을 때 자기 말을 믿어 줄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절망했다.


속으로 상처만 곪다가 전 목사의 성범죄가 언론을 통해 알려지고 공론화되자 용기를 얻어 피해 사실을 제보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피해자 인터뷰에도 이런 대목이 나온다.


“사건이 일어난 후 교회 안에서는 피해자들이 꽃뱀이라거나 악한 세력이라는 얘기가 나왔다. 제일 많이 들은 얘기가 ‘그런 목사인 것 알면서 왜 (집무실에) 가느냐, 왜 (삼일교회에) 남아 있느냐’였다.

전병욱을 옹호하는 글이 계속 올라왔다. 피해자를 비난하는 사람들은 이 일을 빨리 잊고 싶어 했다. 좋은 일도 아니고 자기 일도 아니니까…. 피해자들이 얼굴 다 드러내 놓고 교회 앞에서 시위할 수 있는 것도 아니지 않는가.”
출처: 뉴스앤조이 최승현
2016년 1월, 전병욱 목사와 함께 평양노회 재판국 현장에 온 홍대새교회 교인들

목회자 성범죄를 접할 때마다 피해자를 매도하거나 피해자에게 책임을 돌리는 교회와 교인의 반응 패턴은 교단을 가리지 않는다. 어떤 형태의 사건이든, 어느 교단이든 간에 반응 패턴이 유사해서 데자뷔(déjà vu)를 느낀다.


왜 교인들은 교회 안에 성범죄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피해자를 왜곡된 시각으로 바라보면서 매도하는 것일까. 교회 내 공통된 문화 때문이다. 왜곡된 인식을 낳는 교회 문화가 있다.


이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과 반성 없이는 전병욱, 이동현, 문대식 같은 인물이 또 나오더라도 피해자는 2차·3차 피해를 입으며 반복적으로 아픔을 겪을 것이다.


왜곡된 인식의 배경이 되는 몇 가지 공통된 무지와 편견을 살펴보자.

 


1. 교회 흔드는 것이 최고의 악


교회의 안정이 최고의 가치라는 인식이다. 불미스러운 사건이 터져서 피해자가 발생하더라도 교회 안위를 흔드는 일을 최고의 악이기에 진실을 밝히지 않는다. 진실을 밝히는 것은 불편하고 지난한 일이기 때문이다.


소수를 입막음하는 게 선(善)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이야기를 나눠 본 많은 교인이 실제로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놀랍게도 피해자 말이 사실이더라도 가해자 목사가 목회를 계속하면서 교회를 안정화하는 일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진심으로 믿고 있었다.


상습적으로 성추행·성폭행하는 목회자를 감싸서 교회를 지킨다고 해도 그것이 어떻게 하나님이 원하는 교회일 수 있을까. 피해자가 양산되고 지속적으로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면 그 교회가 무너지는 것이 하나님 뜻에 가깝지 않을까.


 

2. 목회자 맹신과 우상화


목회자 맹신과 우상화가 지나쳐 “우리 목사님은 절대 그럴 분이 아니야”라고 믿고 있는 교인도 상당히 많다. 자신이 믿고 따르는 목사가 절대 타락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교인이 상당하다.


기독교의 근간이 되는 기본 교리는 인간의 원죄를 이야기하고 있다. 인간이 누구나 타락할 수 있다는 것을 믿는 종교가 기독교라는 점을 보면, 목사의 일탈이나 타락을 믿지 않는 교인은 이미 목회자를 하나님 수준에 버금가는 우상으로 여기고 있는 셈이다. 이런 인식을 강화하는 것이 성과와 열매를 보고 그 목회자를 믿을 수 있다는 사고방식이다.

출처: 뉴스앤조이 이은혜
청소년 전문 부흥사로 알려진 문대식 목사.



3. 열매에 대한 착각


목회자가 타락하고 상습적인 죄를 범해 왔다면 하나님이 부흥과 성장의 열매를 허락하실 리 없다는 논리를 무장하고 있는 사람이 꽤나 많다. 이런 인식은 죄를 범한 목회자를 맹신하고 두둔하는 근거다.


성장하고 부흥한 교회나 사역의 크기가 객관적 증거가 된다. 죄를 범했다면, 어떻게 그렇게 은혜롭고 감동적인 설교를 할 수 있느냐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이는 목사를 믿는 주관적 증거가 된다.


주관적 증거로 거론되는 설교와 사역의 감동은 은혜를 받은 자신의 영성과 판단력에 대한 믿음과 연결돼 있다. 그 생각을 깨뜨리기가 쉽지 않다. 내가 받은 은혜가 진짜였는데, 감동을 전달한 사역자가 거짓일 리 없다고 믿는 것이다.


냉정하게 생각해서 목회자가 범죄를 저질렀다고 설교 능력이나 사역 능력이 갑자기 없어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일은 비논리적이다. 목회자의 설교든 찬양 사역자의 노래든, 그의 행위는 일정 부분 숙련된 기술이기도 하다.


숙련된 직업적 기술을 통해 전달할 수 있는 감동과 여운을 영성과 신앙의 이름으로 객관화하며 판단 기준으로 삼고 있다. 결국 자기 느낌이 가장 중요한 판단 근거가 되는 셈이다.

많은 기독교인이 감동과 여운을 영성과 신앙의 이름으로 객관화한다.

4. 여성이 문제의 근원이라는 인식


성 평등하지 않고 전근대적이고 퇴행적 사고방식이 팽배한 공동체가 교회일 것이다. 성범죄가 발생했을 때 여성을 꽃뱀이나 이단 취급하거나 “여성이 먼저 유혹했을 것이다”라고 매도하는 식의 인식이 교회 내에 깔려 있다.


여기에는 결국 여성이 문제라는 뿌리 깊은 여성 혐오가 자리하고 있다. 여성 혐오와 남성 중심적 교회 문화 속에서 여성은 무시해도 되는 존재로, 교회를 흔들고 시험에 들게 하는 문제의 근원으로 매도돼 왔다.


전병욱 목사 사건이 처음 공개됐을 때 역사와 전통이 있는 어느 교회 부목사가 아는 선배에게 이렇게 조언했다고 한다.


“지금 삼일교회는 크게 잘못하고 있는 거야. 목회자의 허물을 들추어내면 안 돼. 크게 쓰임받는 하나님의 종들은 누구나 그런 실수를 해. 우리 원로목사님께서도 젊은 날에 그런 실수를 하셨지만 성숙한 장로님들이 조용히 덮었어. 그래서 그분은 결국 한국교회를 위해 크게 쓰임받는 위대한 종이 되셨지.”

개신교인이라면 알 만한 존경받는 그 교회 원로목사가 성과 관련한 죄를 저질렀다는 사실도 놀라운 고백으로 다가왔고, 부목사의 간증도 충격적이었지만, 무엇보다 나를 분노하게 했던 것은 ‘피해 여성’에 대한 인식이었다.


위대한 목회자를 연단하기 위한 여정에서 피해 여성은 도구나 걸림돌에 불과했다는 말인가. 그것이 그 목사가 위대해지기 위한 한때의 실수라면 피해 여성에게는 그것이 어떤 의미라는 말인가. 그 한때의 실수가 피해자에게는 평생 안고 가야 하는 상처일 수 있다.


교회 내에 깔려 있는 지독히 남성 중심적인 세계관에서 여성이 설 자리는 거의 없다. 성범죄 피해자는 더욱 자신을 자책하며 교회의 안녕과 크게 쓰임받거나 쓰임받을 목회자를 위해 조용히 사라져야 하는 셈이다.


교회 내 성폭력 사건이 대부분 이름 있는 목사가 우월적 지위를 이용하는 데서 발생한다는 사실을 교인들과 목회자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위계에 의해 폭력과 성추행을 당할 때 피해 여성이 일방적 피해자가 되거나 소극적으로 대처할 수밖에 없는데, 도리어 여성에게 책임을 돌리는 문화가 교회에 팽배하다.


 

5. 성범죄에 대한 무지


“물증이 없는데 어떻게 피해자 말만 믿고 판단할 수 있는가”라는 말도 항상 나오는 이야기 중 하나다. 이는 성범죄 사건에 대한 기독교인의 이해가 얼마나 무지한지를 드러내는 대표적인 말이다. 물증이 확연히 남는 성폭행을 제외하고 성범죄는 물증이 남을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상습적인 가해자는 대부분 CCTV가 없거나 이목을 받지 않는 장소에서 집요하고 지능적으로 성추행한다. 이런 사건을 전문적으로 판단하는 검사나 판사가 피해자 진술을 중요한 판단 근거로 삼는다.


다수 피해자의 진술 속에 가해자의 공통된 행동 패턴이 발견되기도 한다. 가해자는 지능적으로 물증이 남지 않도록 행동하고, 피해자는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서 급작스레 성추행을 당한다. 그 상황에서 물증을 내놓으라는 요구가 얼마나 억지스러운 주장인지 모르는 교인이 많다.

기독교인의 잘못된 인식과 편견으로 피해자는 2차·3차 피해를 입는다.

앞서 언급한 교회 내 인식과 문화 때문에 피해자들은 피눈물을 흘리며 조용히 교회를 떠나고 있다. 목회자 성범죄가 일어난 것만 봐도 충격인데, 교회는 이들의 아픔을 보듬거나 치유하지 않고 피해자를 공동체를 흔든 문제의 근원이자 꽃뱀으로 매도한다. 상처에 소금을 뿌리고 피해자들을 교회에서 쫓아내고 있다.


무지와 편견의 중심에는 진실에 기초해 상처받은 이들의 아픔을 풀어 주기보다 거짓된 평화 속에서 자기 교회와 신앙생활의 안위를 지키려는 기독교인의 지독한 이기심이 자리 잡고 있다.


어느새 우상이 돼 버린 목회자에 대한 맹신과 성공의 열매를 하나님의 임재로 착각하는 번영신앙 때문이다. 교회 내 성범죄 원인이 여성에게 있다고 믿는 뿌리 깊은 여성 혐오와 남성 중심적 세계관도 피해자를 두 번 울리는 왜곡된 인식이다.


이렇듯 교회 내에 있는 뿌리 깊은 편견과 왜곡을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까. 이 문제에서만큼은 적어도 교회가 사회를 철저하게 흉내 내고 배우기 위해 힘써야 한다. 일반 회사처럼 1년에 최소 1번 이상 전 교인과 목회자를 대상으로 한 성 평등 교육 및 성희롱 예방 교육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목회자의 지나친 권위와 교회 내 계급의식을 없애야 한다. 목회자도 언제든 죄를 범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권징 기준과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를 대비해 교회 차원에서 대응 매뉴얼과 조직을 갖춰야 하며, 교육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교인과 목회자의 인식 변화다.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이지만, 죄성을 가진 인간인지라 돌발 상황과 문제는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


2016년 한국 경찰청이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전문직 성범죄자(1,258명) 중 가장 많이 검거된 직종이 성직자(450명)였다. 목회자 성범죄가 언젠가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대비하는 일이 현실적인 대응일 것이다.

경찰청은 종교 특유의 폐쇄성이 성직자 성범죄를 불러온다고 분석했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당장의 안정을 위해 문제를 덮는 데 급급하고 거짓된 평화를 추구하려는 행동이 얼마나 교회의 근간을 흔들고 피해자에게 큰 상처를 주는 일인지 알아야 한다. 교인들 모두가 아프고 불편해도 억울한 피해자가 생기지 않게, 피해자가 상처를 치유하고 회복할 수 있도록 돕는 정의롭고 신중한 처리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피해자가 2차·3차 피해를 당하지 않도록 상처와 아픔을 보듬는 일을 교회는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 대부분 피해자는 진실을 바르게 드러낼 때 가장 위로받는다고 이야기한다. 진실을 왜곡해 죄를 덮으려 하는 한국교회 행태가 피해자에게 얼마나 상처가 되는지 모른다. 피해자의 말을 직접 옮긴다.


“전 씨가 공식적으로 피해 자매들에게 사과하지 않았고, 그가 치리되지 않은 상태로 저를 비롯해서 피해 자매들의 상처가 해결될 수가 있을까요? (예장)합동 총회에서 전 씨를 치리하지 않았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제 온몸에서 피가 다 빠져나가는 것 같았어요.

전 씨가 지금 삼일교회TF팀에서 진행하는 민사재판에서 제 이름과 함께 피해 자매들 이름을 들먹이고, 같이 찍은 사진을 보여 주며 억지 주장을 늘어놨다고 하는데, 정말 역겨운 일이에요. 그 이야기를 듣고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습니다.

아직도 전 씨가 억울하게 쫓겨난 것으로 알고, 피해 자매들이 거짓말을 했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아요. 어떤 목사와 소개팅을 한 친구가 하는 말이, 그 목사도 전병욱 성범죄 사건이 모두 거짓말이라고 믿고 있다고 해요.

교단 책임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교단에서 책임을 묻고 제대로 해결을 하는 건 기본 중의 기본 아닌가요? 그런데 전 씨를 그대로 내버려 둠으로써, 사실이 사실 아닌 걸로 만들어 버렸어요. 또 다른 범죄를 양산하는 거지요. ‘이 정도’ 목사는 ‘그래도’ 된다는…. 이건 정말 아니지 않나요? 교회는 장사 터가 아니잖아요.”

한국교회에 피해자 아픔을 위로하고 다른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하려는 의지가 있을까. 몇 년간 전병욱 목사 면직을 요구하며 현장에서 부딪친 경험으로 솔직히 말하면 한국교회에 그런 의지와 의욕은 없다.


그저 한국교회의 수치를 핑계 대면서 목사들 안위를 지키기 바쁘다. 자신들 안위를 지키는 일이 가장 소중할 뿐이다. 그래서 더욱 쓰리고 안타깝다. 피해자가 억울하게 매도당하는 가슴 아프고 낯익은 광경을 얼마나 더 반복적으로 봐야 하는 것일까.


원문: 뉴스앤조이 / 글: 권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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