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감인가? 폭망징조 빙고를 해보자

조회수 2017. 10. 29. 21: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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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이 글을 본 것부터 폭망의 징조가 보인다.

일찍이 이효리 선생은 말했다. 내 이름은 이효리, 거꾸로 해도 이효리.


마감도 마찬가지다. M-A-G-A-M, 마감은 거꾸로 읽어도 마감이라서 도대체 끝이 안 난다. 하나 간신히 막았다 싶으면 어김없이 다음 것이 찾아와 끝이나 시작이나 결국엔 똑같아지는 이 빌어먹을 회문(回文) 구조.


나 같은 글쟁이만 그러겠는가. 그림 그리는 자, 홍보회사 다니는 자, 디자인업계에서 일하는 자, 코딩하는 자, 심지어는 조별과제 PPT 만들어야 하는 자까지. 마감이란 언제 해도 즐겁지 않은 일이다. 도저히 끝이 안 난다는 점만으로도 마감은 인류에 유해한 일인데, 결과물이 폭망을 피해갈 확률이 매우 적다는 점까지 꼽으면 마감이야말로 감기 바이러스와 함께 인류가 정복하지 못한 최악의 적(敵) 임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만들어 봤다. 무엇이 마감을 망하게 하는지, 마감이 망할 거라는 징조를 미리 알아볼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 다음은 본인이 다년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 본 ‘마감 폭망 징조 빙고’다.

  1. 일을 하려니 책상이 너무 더럽다.
  2. 5분만 자고 일하면 살 것 같은 기분이다.
  3. 노동요로 틀어둔 라디오에서 들은 CM송이 중독적이다.
  4. 너무 졸려서 커피를 진하게 타 먹었는데 이젠 심장이 너무 빨리 뛴다.
  5. 개/고양이/동거인이 잠에서 깼다.
  6. 밖에서 누가 함을 판다.
  7. 거의 완성된 단계라 Ctrl+S를 눌렀는데 화면이 얼어붙으며 상태표시줄 ‘응답없음’이 뜬다.
  8. 엉덩이가 저리다.
  9. 클라이언트에게 야심차게 완성작을 보냈더니, 문자로 “네, 이런 느낌으로 진행해주세요”라고 답이 왔다.
  10. 설사의 기운이 몰려온다.
  11. 데드라인이 어제였음.
  12. 만족스레 작업하다 한 숨 돌리고 돌아와 작업 중인 물건을 다시 열어봤더니 웬 흉물이 있음.
  13. 구 남/여친이 톡을 보냄.
  14. 참고자료를 찾다가 존잘님이 이미 나와 같은 주제로 엄청난 결과물을 남겨둔 걸 발견함.
  15. 너무 배고파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 맥 딜리버리 시켰는데 최소주문이 팔천 원이라 가격 맞춰 시키고는 배달온 걸 다 먹었더니 이젠 졸리다.
  16. 어디서 본 건진 모르겠는데 내가 방금 만든 물건이지만 이상하게 구면 같다.

SNS에 올리자 열화와도 같은 반응과, 빠진 게 있다는 제보가 잇따라 개정판도 만들었다.
  1. 메모해뒀던 아이디어 스케치를 찾다가 예전에 읽다가 만 만화책을 찾았다.
  2. 트위터/페북 알림ㅊ망에 뜬 숫자 1이 자꾸 신경쓰인다.
  3. 작업하다 보니 애초에 지녔던 작업의도가 뭐였는지 기억이 안 난다.
  4. 샤워하고 싶다.
  5. 볼펜이 잘 나올 때까지 신문 위에 낙서를 시작했는데 도저히 멈출 수 없다.
  6. SNS에서 드립배틀에 돌입했다.
  7. 해가 떴다.
  8. 쒸프트키까 뜰어까 또쩌히 빠찌찌 않아써 찌씪IN예 끌을 올렸는뗴 따뜰 웄끼만 한따.
  9. 이런 걸 만든다.

이미 개인 SNS를 통해 유포해 인터넷을 한 바퀴 돌았으므로, 영 새로운 내용은 아니다. 오래 된 떡밥을 새 것처럼 다시 포장해 던지는 까닭은, 그저 이런 징조가 보인다 싶으면 국번 없이 111… 아니, 정신을 차리고 다시 마감에 돌입하시라는, 한 마감노동자가 다른 마감노동자에게 건네는 형제애의 윙크를 한 분이라도 더 보시길 바라는 마음이라고 해두자.


탄광 안에 카나리아를 데리고 들어가 가스가 새는지 아닌지를 살펴보았던 광부들처럼, 이러한 징조를 발견하면 침착하게 어디서부터 뭐가 망하고 있는지 짚어보아 마감 폭망을 피하시길 바라는 마음뿐이다. 물론 이 글을 클릭하시고 이 빙고를 하고 계신 시점에서 이미 글러먹었단 생각을 지울 수가 없지만… 뭐, 내 마감 아니니까.


출처: 이승한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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