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개가 치면 응급실에서는

조회수 2017. 10. 4. 22: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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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락을 맞아 죽은 자기 어머니의 시신을 보고 그는 비명을 질렀다

1.


비가 억수로 내리는 날입니다. 장마철의 날씨는 역시 종잡을 수가 없지요. 출근하는 아침 나절만 해도, 참으로 맑고 공기가 서늘했습니다. 비 예보가 있기는 했지만요. 지금은 온  세상을 구석까지 씻어버릴 것처럼 비가 쏟아집니다. 쿠르릉 거리는 천둥번개 소리와 함께요.


이 복잡한 건물 외벽을 타고 모인 비가 줄줄 흘러 내려가는 것이 답답한 실내에서도 느껴질 정도입니다. 에어컨으로도 감출 수 없는 어디선가 쏟아져 들어오는 습기와, 건물을 무엇인가 두드리고 있다는 비의 둔중한 감각이 같이 전해져옵니다.


응급실 자동문이 열리고 들어오는 사람들의 행색에서도 바깥의 기운은 충분히 떠오르지요. 우산을 든 사람은 어딘가 한 쪽이나 소매, 그리고 바짓단이 흠뻑 젖어 있습니다.


아니면 고스란히 비를 맞고 온 젖은 생쥐같은 사람도 있고요. 그리고 그 빗줄기를 뚫고 온 복장 만큼이나 무엇인가 분명히 불편해 보이는 모습으로 짠 입장하는 겁니다. 상당한 행색이지요.


유비무환이란 말이 있습니다. 준비가 있으면 우환이 없다는 말이라고요? 아닙니다. 비가 있으면 환자가 없다는 말이지요. 이건 보통 병원에서 잘 통하는 말입니다. 아픈 일이 빗줄기를 뚫는 귀찮음을 이겨야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삼라만상의 응급실은 다릅니다. 비가 억수로 오고, 요란한 소리와 함께 벼락이 떨어져도, 이 틈을 비집고 들어와 응급실 침대를 한 자리 차지해야만 할 이유가 사람들에게는 분명 있는 법이니까요.


 

2.


‘비오는 날’ 하면 무엇이 생각나십니까? 역시 잘 구운 파전에 막걸리나 동동주 한 잔인가요. 아니면 따뜻하고 얼큰한 국물에 소주 한 잔이나 방금 튀겨나온 치킨에 청량한 맥주 한 잔인가요.


그것도 아니라면 기름기 흐르는 곱창도 괜찮겠어요. 치즈가 듬뿍 올려있는 피자나, 윤기 흐르는 짜장면은 또 어떻고요. 그런 식으로, 사람들의 욕망은 비슷합니다.


물어보면 이런 것들을 먹었댑니다. 파전을 먹고 체한 사람, 치킨을 먹다 넘어진(?) 사람, 매운탕을 먹다가 서로 멱살을 드잡고(?) 싸운 사람, 곱창을 먹다가 두드러기가 난 사람, 이런 사람들은 대체로 술냄새가 어찌나 독하고 구수하게 나는지.


그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람이 먹었던 음식이 들어오는 것 같습니다. 땀흘린 비오는 날 사람에게서 나는 악취와도 함께요.


그 느낌은, 시골 천막이 쳐 있는 장터 있지 않습니까. 앞에서 작은 돼지를 검어질 때까지 빙빙 돌려 굽고, 주로 전 냄새와 고기 냄새가 가득찬 벅적거리는 시장통 같은거요.


거기 가운데 앉아서 사람들과 부친 전을 놓고 땀냄새와 비냄새 맡으며 탁주를 까 마시는 느낌입니다. 그런 환자들이 들어올 때마다 의료진끼리 지나다 눈을 찡긋, 하는 겁니다. 이건, 있다 나가서 파전에 동동주 한잔이라는 뜻이지요.

3.


빗줄기가 점점 더 심해져, 밖은 이제 엄청난 폭우가 내리고 있습니다. 우르릉 거리는 천둥소리도 정말 대단합니다. 이런 날이 있을까 싶어요. 아무리 시장통이여도, 이만큼 비가 오면 파장날 정도지요.


하지만, 응급실은 절대로 파장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점입가경의 시장바닥이 되지요. 그 한창인 응급실에, 갑자기 눈에 띄는 한 무리의 추레한 사람들이 쏟아져 들어옵니다.


119 대원들의 정중한 호위를 받으면서, 비에 홀딱 젖은 생쥐꼴로 서로 부축하면서 말이지요. 40대에서 70대로 보이는 사람까지, 남녀도 뒤섞여 있습니다.


어디 산악회에서 왔는지, 전부 등산객의 복장이고, 그야말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젖어 있습니다. 행색이 지치고 넋나가 보이는 것은 당연하지요.


서로 손을 잡고 어깨동무를 하면서, 전쟁에 나갔다 온 패잔병들처럼 침체된 표정입니다. 왜 산에서 곧장 응급실로 날아와야 했는지, 그것도 한 무리나 되는 사람들이요, 궁금하지 않습니까? 저도 그랬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침대에 눕자마자 곧장 물었지요. ‘어떻게 오셨습니까?’


그리고 대표로 보이는 한 남자가 대답했습니다.


“아… 저 저 저 저희는… 드… 등산을 하고 이… 있었어요.”


아무래도 말문을 여는 모양새가, 이 이야기는 참으로 길어질 것 같다는 느낌입니다.


“아… 아침에는 맑아서 등산을 갔었어요… 저는 정상에 갔다가 내려오는데, 갑자기 폭우가 쏟아지지 않습니까. 정말 도저히 어쩌지도 못할 정도로 비가 왔어요.


아직 산 중턱이고 내려가려면 한참 남았는데. 근데, 산에서 비를 피할 곳이 따로 없잖아요. 그래서 비를 피할 곳을 찾다보니깐 정자가 하나 있더라구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어요. 거기 비집고 들어가 앉았지요.


아침엔 날이 좋아서, 등산객이 제법 많았어요. 그리 넓지 않은 정자라서, 벌써 삼사십명 되는 낯선 사람들이 서로 살을 맞대고 앉아 있었지요.


그것만 해도 벌써 갑갑하고 끈적끈적한 느낌 있잖습니까. 정자라는 데가 옆이 훵 하니 뚫린 데다가 바람이 심하게 불어서 비가 그냥 들이치는 느낌이었어요.


그래도 고스란히 맞는 것보다는 나아서 다들 거기 개미떼처럼 비집고 앉아 있었어요. 언제 그칠지 기약도 없었는데, 그냥 그 습기랑 다른 사람들의 땀냄새를 맡고 서로 말없이 부둥켜 앉아 있었던거죠. 그… 그 그런데, 갑자기 세상이 번쩍 하더니 정자가 번개를 맞은 겁니다.”


“네… 네?”


“정자 꼭대기에 번개가 떨어졌다구요. 정말 전류가 순식간에 찌릿하게 온 몸을 훑고 지나갔어요. 거기 있는 삼사십 명이 한꺼번에 감전된 거요. 하이고, 그 비가 쏟아지는데, 노인네도 있고 아줌마도 있는데, 한꺼번에 감전이 되니깐,


다들 제정신으로 제자리에 아 번개가 지나갔구나 이러겠소? 각자 이리 눕고 저리 눕고 사지를 부들부들 떨고 기어다니고 발광을 하는데,


그 모르는 사람들끼리, 그 좁은 정자안에서, 앉아있는 사람 하나 없이 서로 포개 누워서, 그 비를 생쥐처럼 맞으면서 온 몸을 바들거리는데, 아이고, 그런 아비규환이 없었소.”


그는 방금 그 장면이 다시 떠오르는지 손사래를 치며 이야기했다.


“저 아줌마는 고개를 좌우로 뒤흔들고, 저 노인네는 사지를 뻗고 누워있고, 구석에 있던 사람들은 날아가서 진흙뻘에 처박히고, 지옥도였어요, 지옥도.


근데 다들 보니깐 정신도 멀쩡하긴 하던데, 놀라고 겨를 없으니깐 더 그랬던 것 같아요. 그 와중에 누가 번개가 또 칠 수 있으니깐 이걸 피해야 되지 않냐고 그래서 사람들이 우르르 기어 바깥으로 나갔는데, 감전은 당했고 비는 이미 다 젖었고 전부 바들바들 떠는데 가관이더라고요.


근데 또 누가 한번 벼락친 곳에 또 치냐고 하길래 다시 정자로 몇 명 들어가고, 그리고 몇 명은 불안하다고 또 나오고, 그러다 결국 탄 냄새 맞으면서 노인네들 우왕좌왕 하는데 눈뜨고 볼 수가 없었다고요, 근데 그거 또 안 떨어지는거 맞긴 맞아요? 아후 나는 진짜 홀라당 맞고 있었네.”


“그건 저도 잘… 근데 워낙 그게 드문 일이라…”


“그 와중에 누가 119 신고한 것 같은데, 그 친구들은 또 뭐 그렇게 안 오는지, 하긴 산 올라오려면 힘들긴 했겠다만은요. 그래서 우리끼리 계속 지옥에 떨어진 것처럼 펼쳐져 있었지요.


아이고, 누구는 이거 좀있다 다 죽는거다고 소리치고, 누구는 하나님 찾고, 부처님도 찾고, 저 아줌마는 기운없다고 혀빼고 누워 있고, 세상에 제가 벼락을 맞다니 헌금도 열심히 했는데 하면서 기도하고,


그 아저씨는 그야말로 비맞고 염불 외는 땡중 같더만요. 그리고 119 대원들이 나타났는데, 그 친구들이 삼사십명 들고 내려올 수 있겠소. 별 수 없죠. 그냥 비맞으면서 전부 줄서서 내려왔소. 번개가 아니라 얼어 죽을 뻔 했네.”


이 아저씨의 벼러두었던 이야기가 너무 실감났기 때문에, 그리고 사람들이 일단 멀쩡해 보였기 때문에, 나는 도저히 실소를 참을 수가 없었다.


생각만 해도, 그런 지옥통이 없었다. 그 사람들의 꼬질꼬질한 분위기 하며, 생판 모르는 사람들이 뒤섞여 살을 맞대고 굴러다녔을 그 광경이, 어찌 보면 비극적이지만, 또 어찌 보면 아주 희극적인 장면이였다. 뒤에서 인턴이 외친다.


“선생님 저 사람들 네이버 기사 떴네요.”


참 빠르기도 하지.


그 사람들은 옷 말리고, 발 닦고, 정해진 검사와 관찰을 거치고, 집에 편안하게 걸어서 나갔다. 번개에 맞을 확률은 180만 분의 일이라는데, 삼십여 명이 한 번에 맞으려면 도대체 어떤 확률인 건지.


그리고 그게 전부 멀쩡히 살아남으려면 그것은 또 어떤 확률인 건지. 정자와 삼십명이 나누어 같이 맞았으니깐 가능한 일일지도 몰랐다. 그렇다면, 정말 전쟁터에서 맞서 싸운 전우 아닌가.


어떤 적인지도 몰랐던, 일생에서 도저히 한 번이라도 겪을 수가 없는 확률이라는 벼락맞기를 같이 옆에서 겪고, 그에 맞서 싸워서 이겨낸 전우회. 그렇다면 대단한 연맹이자 연합이 아닌가.


그래서, 이들은 혹여 인터넷 카페나, 산악회 같은 것을 만들지도 몰랐다. 아닌게 아니라, 그들은 좀 안정되자 친밀하게 이야기도 주고받고, 전화번호도 주고받는 기색이더니, 가끔씩은 웃기도 했다.


그렇다면 이름은, 모월 모일 XX산 천둥번개 산악회쯤 되려나. 그래서 다음주 쯤 단톡방에서 맑은 날 잡아 실내에서 막걸리에 파전이나 한 잔쯤 합시다. 이러겠지.


그리고 술에 취해, ‘아, 김형이 그때 정자에 또 벼락이 내리친다 그래서 우리 참 처참하게 젖었지 뭡니까!’ 내지는, ‘아니, 그런데 이형은 무슨 기도를 그렇게 필사적으로 하셨슈.’ 이런 생각으로 집에 갔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하, 다들 멀쩡해서 하는 말이지만, 세상엔, 참 별 우연이 다 있다.

4.


한 무리의 사람이 물러갔으나 비는 여전히 쏟아지고 있었다. 이미 180만 분의 일의 확률인 벼락 맞은 사람 한 무리를 진료했고, 이제 그런 우연은 또 일어나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런 일은 또 일어났다.


자동문이 열리고, 온 몸에 소방용 방수복을 입은 대원 세 명이 탄 냄새가 나는 여자를 하나 싣고 왔다. 여자는 온 몸이 그을려 있었고, 전기로 살아있는 생명체를 구운 냄새가 났다. 번개에도, 냄새가 있었다. 아까의 그 무리의 사람들보다도 더 극심하게 탈진해 보이는 대원이 말했다.


“북한산 정상에서 벼락을 맞았습니다. 출동하니 심정지였습니다. 심폐소생술을 유지하면서 왔습니다.”


간단한 말이였지만, 정말 엄청난 의미와 노고가 들어있는 말이였다. 이들은, 벼락을 맞았다는 신고를 받고, 방수복을 입고 산을 뛰어 올랐다.


비가 오지 않아도, 산은 그냥 걸어 올라가도 힘들다, 그걸 뛰어 올랐다. 그리고 심정지를 인지했다. 환자를 포기할 수 없었으므로, 심폐소생술을 해야 했다. 그리고 산에서도 내려와야 했다.


세 명이니 두 명이 환자를 들것에 실어서 나누어 들었다. 산 속이니 카트도 사용할 수 없어, 직접 드는 수밖에는 없었다. 무게는 70~80kg쯤 되었고, 그 위로 비가 계속 심하게 내렸다. 그리고 두 명이 나누어 들고 있던 들것 위로, 한 명이 환자의 흉부를 푹 들어갈 정도로 세차게 눌렀다.


버텨야 하는 힘도, 눌러야 하는 힘도 어마어마했을 것이다. 지친 대원들은, 그 폭우속에서 그 상태를 유지하고, 서로 역할을 바꾸어가며 경사진 북한산을 내려왔다.


심폐소생술은 제대로 되었을 리가 없지만, 조금의 힘이라도 떨어지면 이 사람이 죽는다는 생각으로 최선을 다했을 것이다.


그런 소명을 가진 사람이, 그런 상황에서 환자를 앞에 두고, 힘을 빼는 일은 있을 수가 없다. 그리고 차에 실어 이곳, 응급실로 뛰었다. 환자와 같이 전신이 흠뻑 젖은 몰골로.


이 과정은 두 시간이 넘게 걸렸다. 환자는 이미 푸른 기색이였고, 그을린 냄새가 심했으며, 차가운 비를 맞아 사후강직이 완연했다.


그들은 시신을 데리고 온 것이었다.


나는 그들에게, 이분은 시간이 너무 오래되서, 해볼 도리가 없이 돌아가신 분이라고 전했다. 그것도 거의 즉시 대답한, 냉철하고 돌이킬 수 없는 판단이였다. 탈진한 두 대원은 허탈한 표정으로 현장에서 바닥에 주저앉아버렸고, 리더인 듯한 한 명도 간신히 서 있었다.


“죽… 죽었습니까?”


“네… 돌이킬 수 없을 정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아……. 아… 네… 그렇군요. 네… 알겠습니다.”


그는 뭐라 말을 이으려다 이내 접었다. 그들은 그 힘겨운 사투 속에서, 그녀가 살아나는 장면을 상상했을 것이다. 적어도, 목숨이라도 붙어나는 장면과, 따뜻하게 수고했다는 말을 떠올렸을 것이다.


다른 사람의 목숨을 눈앞에 둔, 그리고 자신에게 그것이 달려있다고 생각했던 인간의 태도란, 그럴 수밖에 없다. 하지만, 벼락에 맞았던 그녀도, 그리고 소명을 다해 뛰었던 그들도, 완벽히 패배해 버렸다.


이것을 비극적인 우연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다. 장비를 챙겨 돌아가는 대원들의 뒷모습은, 내가 본 수많은 사람중에서도, 가장 지친 모습이었다.


그 여자의 시신은, 핸드폰이 유실되었으므로, 보호자 연락이 늦어 응급실 한 구석에 굳어 있었다. 세 시간이 지나서야 연락을 받은 이십대의 아들이 도착했다. 그는 많은 것을 묻지 않았다.


그야말로, 벼락을 맞아 죽은 자기 어머니의 시신을 보고 그는 비명을 질렀다.


그 소리는 너무 처절해서, 난리통에 있던 의료진과 진료를 받던 환자와 보호자, 그리고 지나가던 사람들이 하던 일을 모두 멈추고 소름이 돋은 살갗을 어루만지며 남은 자의 슬픔을 피부에 새기게 하는새된 비명이였다.


그리고, 곧, 그 시신도 다른 시신과 마찬가지로 영안실로 조용히, 사라져버렸다.


 

 5.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응급실은 특유의 희노애락을 내뿜으며 돌아갑니다. 태연한 표정으로 밝게 빛나는 응급의료센터 간판과는 다르게 말이지요. 그곳은 정말, 비극과 희극이 교차하는 세상입니다. 희극적인 비극과, 정말로 깊은 비극은 변덕스러운 날씨와 비견할 정도도 아니지요.


그보다도 더 복잡한 세계가, 그 안에는 혼재되어 있습니다. 그곳에선, 백팔십만 분의 일이라는 우연이 엄연히 몇 번씩 쏟아지기도 합니다.


그것을 몸으로 받아내고, 사람들은 즐거워하거나, 노여워하거나, 아니면 아무 것도 남지 않을 정도로 지쳐버리곤 합니다. 오늘도, 그 소우주안의 사람들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역시 분주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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