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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던 동네에는 양아치가 참 많았다

조회수 2017. 10. 2. 17:41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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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이 없는 음울한 현실을 살아가는 청소년들

“넌 뭔데 그렇게 잘난 척인데?”


나는 지방의 공단지구에서 중학교 시절을 보냈다. 그 동네는 동네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도서관으로 향하는 골목은 머리를 노랗게 물들이고 배꼽을 내놓은 소녀들과 학교를 그만둘 예정인 소녀들, 그 소녀들과 어울리는 소년들이 괴상한 춤을 추며 무리 지어 다녔다. 지금 생각해보면 몹시 위험천만하고 살벌한 환경이었다.

음침했던 그 골목은 〈친절한 금자씨〉의 배경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나는 자식 성적을 부풀리고 거짓말하는 아버지 때문에 본의 아니게 엄청난 수재라고 잘못 소문이 나서 그 동네 아이들에게 완전히 찍혀 있었다. 잘난 척하는 게 재수 없다고, 싸가지없는 년 손 좀 봐줘야겠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그러던 어느 날, 도서관에 앉아있는데 불량해 보이는 소년들이 내게 쪽지를 보냈다. 어린 나는 겁대가리 없이 그 쪽지를 쫙쫙 잡아 찢어 쓰레기통에 버렸다. 다음부터 그딴 쪽지 보내지 말라는 의미였다. 


그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쪽지 보낸 녀석들이 따라왔다. 나는 무서워서 사람들이 많은 쪽으로 뛰어가 모르는 아줌마한테 속삭였다. 저하고 좀 같이 가주세요, 하고 말이다. 아줌마는 눈치를 슥 긁고는 나를 꼭 안고 갔다.


전날 스트레스 때문이었는지 몸이 아파 도서관에 가질 못했는데 도서관에서 나와 친한 애들이 아무 죄도 없이 끌려가 대신 맞았다. 그날 몸이 안 아팠으면 친구들하고 뒷골목으로 끌려가 무릎 꿇린 채 맞았을 것이다.


사과했지만 친구들은 더 이상 나와 놀아주지 않았다. 나하고 놀면 재수 없는 일이 생긴다고 믿는 게 분명했다. 나중에 보니 끌려가 맞은 친구 하나는 어찌 된 영문인지 그 패에 섞여 있었다.



“선생 년이 나한테 뭘 해줬는데?”


중학생일 때 우리 반에 할머니와 단둘이 사는 소녀가 있었다. 소녀의 호구지책이 궁금했지만 나는 한 번도 묻지 않았다. 절대 건드려선 안 되는 비밀스러운 어떤 게 있어 보였던 것 같다. 우리 동네에 살았고 같은 반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자주 마주쳐도 가깝게 지내지는 못했다.


소녀는 침을 찍찍 뱉고 껌을 짝짝 씹었다. 치마는 서너 단 접어 입었으며 스타킹에는 항상 구멍이 나 있었다. 입에서 나오는 말 중에서 욕 아닌 말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일반적인 중학생치고는 너무 분명한 색깔을 띠는데 학교에서는 그런 색깔을 도저히 감당해낼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이 있었다.

자신을 거부하는 상대에게는 당연히 불만이 생긴다.

소녀가 풍기는 이상한 기운의 비밀을 훗날 알게 됐다. 소녀가 퇴학을 당했을 때였다. 매춘을 했기 때문이었다. 소녀는 할머니와 살기 위해 매춘을 했다고 했다. 결국 학교에서는 소녀를 내쫓았다. 소녀가 마지막으로 학교에 나오던 날, 담임이 울면서 말했다. 

그래, 이제 네 멋대로 네가 원하는 방식으로 돈을 벌게 돼서 좋으냐.

소녀가 학교에서 쫓겨난 이후, 나는 소녀를 만난 적이 있다. 야하게 차려입고 일을 나가던 길에 나와 마주친 것이다. 소녀는 담임 욕을 세게 했다.

X발년. 제가 뭔데 내 인생을 이래라 저래라야. 쌀 한 톨을 줬어 뭘 했어. X 같은 년.

나는 가만히 서서 대꾸 한마디 못하고 욕을 뒤집어썼다.



고등학교 때 친구는 살인으로 감방에 갔다


나는 주변 환경에 지나치게 예민한 감각을 갖게 되었다. 길을 걸을 때는 언제 어디서 뭐가 날아올지 모른다는 불안과 공포를 참으며, 엄청난 조심성과 관찰력으로 이리저리 살피며 다녀야만 했다.


저녁 7시만 되어도 밖을 나가지 못했다. 선생이 포기해버려서 쫓겨난 애들은 신문 사회면에서 나올 것 같은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치, 그 동네 어른들처럼 말이다.

관심받지 못하는 청소년들을 노리는 검은 손길들

저녁만 되면 길에 소리 지르고 싸우는 술 취한 사내들. 집마다 흘러나오는 가정폭력의 비명들. 문이 벌컥 열리고 피투성이가 되어 튀어나오는 여자들. 그들이 남편 없는 대낮엔 평상 같은 데 앉아 허벅지를 걷고 화투 치며 욕을 하고 술을 마셨다.


동네 꼴이 하도 그러니 날이 어둑해지면 내로라하는 망나니인 아버지조차도 자식들에게 술·담배 심부름을 안 시킬 정도였다. 누군가 맞았다는 소식을 들으면 내가 안 맞아서 다행이구나, 난 좀 재수가 좋다고 여겼다. 폭력이 너무 일상화되어 있어서 폭력에 대한 문제의식이 고작 그 정도였다. 그곳에서 벗어나는 것이 유일한 꿈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다 어느덧 서른이 넘었다. 옛날 친구들 소식을 듣곤 한다. 주먹 쓰고 다니던 동창 녀석은 고등학교 때 살인으로 감방 갔단다.



아이들이 환경 탓을 할 수 없도록 해야 한다


이것이 과연 내가 살던 곳만의 문제일까? 교육받지 못하고 가난한 사람들이 몰려 사는 동네의 풍경은 내 고향이 아니더라도 세계 어느 곳이라도 그렇다. 개개인의 폭력성의 문제라기보다는, 성장발달과정에서 벌어지는 해프닝이라기보다는, 실은 꿈도 미래도 없을 만큼 가난하고 음울한 현실이 빚어낸 참혹한 징후이다.


소년법 폐지? 개정? 그런 게 과연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 근본적 원인은 참혹한 가난과 꿈의 부재, 완전히 무너진 어른들이다. 사창가, 개시장, 기차역이 몰려 있었던 그런 지역을 경험하지 못한 분들이 함부로 떠드는 거 보면 기가 막히고 답답할 뿐이다. 미성년자를 사형시키고 감빵에서 오래 썩게 한다고? 소가 웃을 일이다.

과연 정답이 될 수 있을까?

여고생 폭행 사건으로 세상이 시끌시끌한 지금, 이 글은 그 학생들을 처벌하지 말자는 것이 아니다. 단순하게 소년법의 제한을 푸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에게 죄를 물을 때는 방식을 섬세하게 다뤄달라는 것이다. 최소한 아이들이 환경 탓, 어른 탓을 할 수 없도록 해야 한다. 


쾌적한 환경에서 관심과 배려, 존중, 지지와 응원을 받고 자란 악마는 없다. 꿈에서도 못 잊는 그 동네. 서른 넘은 나를 새벽에 베개가 젖도록 울게 하는 그 동네. 한 번씩 지독하게 나를 아프게 하는 그 동네의 기억이 나한테 어떤 고통을 주었는지 말로 할 수 없을 정도다.


가해자가 이뻐서, 피해자가 가엾지 않아서 이러는 게 아니다. 내 자식이 유치원에서 싸우고 얼굴이 다 긁혀서 들어왔을 때는 화가 너무 났다. 초등학교 때 왕따 사건에 휘말린 것을 보면 피가 거꾸로 솟기도 했다. 나도 가해자가 미치도록 싫다.


하지만 그 전에, 이런 곳들이 좀 더 말해질 필요가 있다. 좀 더 주목받고 더욱 관심받아야만 한다. 이를 통해 단순한 처벌을 넘어 이 사회가 좀 더 안전해지길 바란다.


원문: Twenties Timeline / 필자: 최이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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