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ㅍㅍㅅㅅ

한산했던 응급실의 어느 주말 이야기

어느 주말, 응급실 A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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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병원A의 응급실은 한산합니다. 특별한 일 없이 늘 그렇습니다. 복잡한 환자나 중환자는 근처 대학병원으로 가버리고, 병원A의 응급실을 찾는 사람들은 그들의 판단으로 중소병원인 A에서 치료 받으면 될 정도라고 생각한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환자 본인의 판단은 대부분 정확합니다. 그래서 유흥가 근처에 위치한 병원A의 응급실은 찰과상이나 감기, 두드러기가 반절 정도, 나머지는 밤새 볶고 지진 음식에 술을 먹다 배탈난 사람들이 환자군의 거의 전부입니다.


찰과상은 소독하거나 간단히 봉합하면 집에 갑니다. 두드러기나 감기는 주사맞고 약 받으면 집에 갑니다. 복통은 수액을 매달고 눕혀 놓으면 한 두시간쯤 있으면 집에 가겠다고 성화를 부립니다. 이 몇 안되는 환자군의 프로세스가 이렇게 간단하니 별다른 고뇌라든지, 전문고견 같은 것은 크게 필요가 없습니다. 가끔은 몇 명이 겹쳐오는 환자를 줄 세워놓고 그들이 필요한대로 해주면 되는 일입니다.


그것은 어찌 보면, 담배가 필요한 사람에게 담배를 팔고, 복권이 필요한 사람에게 복권을 파는 편의점 같습니다. 도심 유흥가 속에 간편하고, 경환들이 잠깐 들렀다 가는, 그런 병원이 바로 병원A입니다.



2.


전직 대학병원 레지던트인 응급의학과 전문의 B는 병원A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오만상을 다 겪던 대학병원에서 이렇게 한산한 병원으로 옮겨오니 처음에는 참으로 편하고 좋았습니다. 사람들이 오는 대로 척척 세워놓고 몇 안되는 질환군에서 이렇습니다 저렇습니다 이야기해주는 겁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이렇군요 저렇군요 하며 딱딱 집에 갑니다.


이런 식으로 얼마 일해보니, “어디가 아파서 오셨습니까?”보다, “무엇이 필요해서 오셨지요?”가 더 먼저 나올 것 같은 느낌입니다. 어제부터 감기기운이 있고, 기침 가래가 나오면 감기 아닌가요. 새우 알러지가 있는데 새우가 들어있는 볶음밥을 먹고 피부에 발적이 나면 두드러기 아닌가요. 저녁으로 삼겹살을 먹고 야식으로 짜장면을 먹고 새벽에 술안주로 돈가스를 먹고 배가 아프면 배탈 아닌가요. 환자 본인들도 그렇게 알고 오는 내용은, 대부분 크게 틀리지 않습니다. 병원A를 찾아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러하니까요.


처음에는 이게 참 편했지만, B는 갈수록 이 생활이 조금 무료해집니다. 피가 철철 흐르고 보호자들이 떼로 몰려들어 곡하는 응급실이 가끔 그립다는 생각까지 들어 무섭기도 하고요. 그곳에 다시는 가지 않겠다고 맹세하고 나왔지만, 응급의학과 전문의 B의 본능은 아직 살아 있습니다. 여기서 이런 경환들을 붙들고 근무하는 것이 좀 낭비같은 일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요.


어쨌든, B는 맡은바 임무에 충실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것도 자기에게 주어진 일이니까요.



3.


병원A에도 바빠지는 시간이 있습니다. 그건, 주변 유흥가가 유난히 흥청거리는 주말 밤부터 새벽시간이지요.


사람들은 주중에 못 먹었다고 생각한 술과 안주를 볶고 삶고 튀겨 밤새 먹고 탈이 나고 설사를 해서 병원A에 몰려듭니다. 아니면, 취기에 손을 베고 발을 삐고 머리를 부딪히기도 합니다. 사람들이 밤 활동을 활발히 하는 시간, 응급실도 아주 활기찹니다. 그리 달갑지는 않은 활기참이죠. 사람들이 유흥을 즐기는 시간은 생각보다 대중없지만, 대체로 그 시간만 넘기면 응급실은 다시 고요해집니다. 그것이 병원A의 생리입니다.


전날 푹 쉬고 주말 출근하는 B는 혼자서 생각합니다. 오늘은 사람들이 제법 모여들겠어. 근데 좀 중한 환자도 하나쯤 와주었으면 좋겠군. 피 튀기고 한 명쯤 죽어 나가야 응급실 근무하는 의사 같잖아. 이리 생각하다 B는 황급히 방금 떠올린 생각을 지워버립니다. 이러다 꼭 실제로 오면 후회한다니깐. 망할 나쁜 생각같으니라고. 아까 한 생각은 취소다. 취소.


그리고 그의 주말 근무는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약간 더 유난스러웠다는 것 외에는요.



4.


오늘 밤은 복통의 날인가봅니다. 워낙에 복통환자 비율이 많은 병원A임에도, 유난히 배를 움켜잡은 환자들만 몰려듭니다. 복통 환자들은 진경제와 수액을 맞고 호전 양상을 지켜보게 됩니다. 그것도 모니터링을 위해 오픈된 공간인 진료실에서 마주볼 수 있는 침대에 나란히 누워서 B와 눈을 맞대며 안정을 취하게 됩니다.


스테이션에 앉아있으면 각자의 배를 붙잡은 사람들이 죽 누워있는 광경이 보입니다. 50대 남자가 말합니다. 볶음밥을 먹고 설사해요. 볶음밥이 잘못했군요, 7번 침대에 누우시죠. 40대 여자가 말합니다. 회를 먹고 설사해요. 회가 잘못했군요. 8번 침대에 누우시죠. 20대 여자가 말합니다. 개고기를 먹고 배가 아파요. 개고기가 잘못했군요. 9번 침대에 누우시죠. 이런 식으로 B는 바쁩니다. 사람들은 각각 볶음밥과, 회와, 개고기가 잘못했다는 아프면서도 담담한 표정으로 정해진 침대에 눕습니다. 사람들이 몰려들어도, 급박하지는 않고 그냥 바쁜 느낌인 병원A 답습니다.


환자들의 표정도 병원A만큼이나 무료합니다. 그냥 어서 정해진 치료를 받고 호전되면 집에 가서 남은 주말 쉴 생각으로 누워 있습니다. 동네병원 의사 B를 쳐다보는 시선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정해진 치료를 받기 위해 거쳐야 하는 자동문으로, 그리고 여기서 체한 복통 환자나 연달아 진찰하는 무료한 서생으로 생각하는 눈길이지요. B는 그런 시선이 익숙합니다. 그냥, 바쁜 나절에 묵묵히 일하고 있을 뿐이지요.


그러던 한창, 병원A에 사건이 터집니다. 멀리서 봐도 급박해보이는 119가 갑자기 응급실 문을 열고 들이닥친것입니다.



5.


제길, 이 생각이 방정이야. 생각이.


B는 일순간 후회했지만, 심폐소생술을 하며 이송카를 밀고 뛰어오는 119 대원들을 보자, 약간 지쳤던 몸에 힘이 솟으면서 야생의 본능이 일어납니다. “무슨 환자에요!” “심정지에요. 심정지.” 40대 가장이 돌연 그 주말 새벽에 쓰러졌습니다. 병원 근처에도 가보지 않았던 건강한 사람이 집에서 갑자기 의식을 잃고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목석이 된 것처럼 바닥에 고꾸라졌다고 합니다.


그의 아내는 평생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당황스러움에도 의료지도를 받고 심폐소생술을 시행했고, 119도 빨리 도착했습니다. 쓰러지고 곧 심폐소생술을 유지하면서 20분만에 이 병원으로 온 것입니다. 근처 대학병원으로 가기에는 시간이 급박해서 그들은 병원 A를 골랐습니다. 확인하니 아직 심정지입니다. 보호자가 괴성을 지르고, 여고생인지 여중생인지 앳된 딸 둘이 울면서 엎어져 있는 것을 보자 B는 옛날로 돌아간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B는 소리지릅니다.

간호사! 삽관 준비. 한명은 CPR 유지. 블레이드 건네주고. 7.5 프렌치 튜브. 제세동기 준비 해놓았겠지! 아이브이 달고 바로 에피 슈팅! 3분마다! 모니터링 지속해! 이거 되면 환자 탈의.

B는 40대 가장의 목구멍을 젖힙니다. 오랫만에 기도로 빨려들어가는 7.5 프렌치의 튜브의 느낌. 이 느낌입니다.  

인투베이션은 잘됐어! 체스트 불러. 이 엠부를 잡으라고, 아니 CPR을 그렇게 하면!

B는 장갑을 바꾸어 끼고 온 힘을 다해 심폐소생술을 합니다. 곧게 뻗은 양 팔의 힘이 강하게 들어갑니다. 환자의 흉부가 요란하게 꿀렁거립니다. 이 사람은 젊고 시간도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분명 살릴 수 있다고 본능이 이야기합니다. 두 번째 싸이클에 요란한 심전도 리듬이 보입니다.  

차지! 200J 차지 눌러. 한명 CPR 그대로 유지하고 차지!

온 응급실의 사람들이 숨죽여 보고 있는 동안 B는 꿀렁거리던 흉부에 그대로 전기 충격을 가합니다. 환자는 다이나믹하게 공중으로 붕 떠올랐다가 털썩 주저앉습니다. B는 제세동기를 훌쩍 뒤로 던지고 다시 흉부를 압박합니다. 거친 압박에 환자의 손과 발은 늘어져 풀썩거리고, 피부색은 위태위태하게 불그죽죽한 색깔입니다. 손을 떼자, 성공입니다. 약하지만 환자의 맥이 돌아왔습니다.


남편을 잃을 것이라고 아직 상상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아내는 아무것도 보이는 것이 없습니다. 눈물바람으로 괴성을 지르고 B의 바짓단을 붙듭니다. ‘선생님! 멀쩡히 이제 살아 돌아오는거죠? 정말로 살아야해요. 절대로 죽을 수는 없는 사람이에요.’ 온 의료진과 두 딸, 그리고 저 멀리 열을 맞춰 누워있는 복통 환자들까지 온 시선이 B에게 쏠립니다. B는 지긋지긋한 복통 설명만 하다가 갑자기 중한 선고를 할 차례가 오자 목소리에 힘이 들어갑니다.

자, 제가 일단 살렸습니다. 심장이 돌아왔어요. 지금 부군의 심정지 원인은 알 수 없습니다. 지금은 누구도 알 수 없어요. 원인은 대부분 심장이나 머리입니다. 이 두 군데의 중한 질환이 오면 방금 보신 것처럼 사람이 목석처럼 쓰러져 버리게 됩니다. 지금은 아마 심장쪽일거라고 생각합니다만, 그 원인이 무엇이든 일단 응급처치를 해서 살리고, 그 다음 검사와 치료를 해나가는게 순서입니다. 일단은 앞에서 훌륭하게 처치해주셨고, 이 병원까지 와서 방금 심장이 돌아오게까지는 해냈어요. 이제 뒷선 일은 기도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간호사 아트로핀! 아트로핀 0.5미리 아이브이 슈팅! 머리일 경우 수술하는 방법이 있고, 심장일 경우 막힌 관상동맥을 찾아내서 뚫어야 합니다. 그 와중 심정지가 이미 제법 경과된 부군께서 좀 버텨주셔야 합니다. 향후 경과는 절대 장담할 수가… 간호사 다시 CPR!

B는 다시 환자에게 달라붙습니다. 그리고 아까와 같은 과정으로 다시 환자의 맥이 돌아옵니다. B는 땀에 절어, 약간 피로한 표정으로 말을 잇습니다.  

아… 장담할 수가 없어요. 여기는 작은 병원입니다. 어떻게든 큰 병원으로 이제 나가서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부군께서 그 전의 모습으로 다시 돌아오는 것은 어찌 보면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어요. 심정지 환자의 대부분이 그렇습니다. 하지만 여기 있는 저희들은 최선을 다할 겁니다. 가까운 곳에 저희 병원이라도 있어서 일단 운이 좋았다고 생각해주세요. 시간이 없습니다. 근처 대학병원으로 부군의 목숨을 붙들고 갈 겁니다.

설명을 들은 아내는 드라마 여주인공처럼 자지러지게 웁니다. ‘제발 살려만 주세요. 돌아와야해요. 돌아… 와야해요.’ B는 스테이션의 전화기를 급히 들어 근처 대학병원에 전화합니다. ‘…자 아니 그렇다고요. 저희병원 처치가 안 되지 않습니까. 병실 없다고 이 환자 죽일겁니까? 네, 네 알겠습니다.’

자, 가는겁니다. C병원에서 부군을 기다리고 있겠답니다. 얼마 걸리지 않을겁니다.

B는 ‘원인을 알 수 없는 심정지’라는 소견서를 써서 동봉하고, 약물을 넉넉하게 챙겨 40대의 가장을 대학병원으로 이송합니다.


아주 분주한 과정입니다. 병원 A의 당직 의료진은 몇 명 되지 않아, 한 환자에게만 온 인력이 집중됩니다. 그것도 발에 불이 붙도록 뛰어야 신속하게 심정지 환자가 처리됩니다. 조마조마한 순간들이 지나고 환자를 실은 구급차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정신을 못 차리는 아내와 두 딸을 싣고 사라집니다.


병원 A의 드물게 급박한 상황은, 이것으로 일단락 되었습니다.



6.


B는 완전히 지쳐버렸습니다. 한 시간도 훨씬 넘는 시간을 한 환자에게 집중했고, 육체적인 소모도 심했기 때문이죠. 하지만, 나쁘지 않은 결과를 얻어서 그나마 보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몸이 지친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게다가 대여섯명의 복통 환자들이 퇴원 시간을 놓친 채 전혀 신경도 못 쓰고 깔려 있었습니다. 이들이 새벽시간에 차를 놓쳤느니, 자신을 방치했다느니 신소리를 하면 또 어쩔까요. 지친 데다 그들 앞에 나서려니 약간 두려운 마음도 듭니다. 정말로 두세 시간은 다들 상태 한 번 확인 못 하고 누워만 있었으니까요.


B는 챠트를 열어 그들을 일단 확인합니다. ‘이 사람이 개고기, 이 사람이 볶음밥 그리고 이 사람이… 멸치국수던가. 비빔회국수던가…’ B는 남은 기운을 정비해서 복통 환자의 구역으로 갑니다. 그리고 힘빠진 목소리로 의례적 질문을 던집니다. “좀, 어떠셨어요?”

아. 넵. 괜찮습니다. 저는 아!주! 괜찮습니다. 싹 나았습니다.

‘으응?’ 아직 젊은 B에게 50대 남환은 갑자기 군대식 말투로 존칭을 씁니다. 느낌이 이상해서 B는 주위를 둘러 봅니다. 볶음밥을 먹었던 50대 아저씨의 눈빛이 초롱초롱하게 그를 바라봅니다. 그 곁에 앉아있던 볶음밥 아저씨의 아내도 비슷한 동경의 눈빛입니다. 옆에 누워있는 40대 아줌마도 B를 선망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어서 저 멀리까지, 대여섯명의 복통과 그 보호자가 숫제 그를 전부 비슷한 눈빛으로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습니다.


B는 상황을 깨닫습니다. 그들은 방금 라이브로 펼쳐지는 의학드라마를 한 편 본겁니다. 그것도, 난생 처음으로 눈 앞에서 펼쳐지는 생생한 화면으로요. 절규하는 보호자와 아비규환 속에서 냉철하게 상황을 지시해 목숨을 살리는 의사가 나오는 드라마를, 처음부터 끝까지 마른 침을 삼켜가며 지켜보고 있었던 겁니다. 게다가 주인공은 방금까지 자신의 배를 어루만져주던 B였고요.


그들의 눈빛은 막 TV속에서 튀어나온, 지구의 평화를 지킨 아이언맨이나 슈퍼맨을 보는 그것이었습니다. 동네 병원에 무료하게 앉아서 볶음밥을 먹었다면 볶음밥이 잘못했다던 촌부서생은, 실은 지구를 지킬 수 있었던 영웅이였던 겁니다. 그런 사람이 신분을 숨기고 자기 배를 어루만지고 있었던 거지요.


옆 자리의 40대 여환은 손이 배에 닿자마자 아유 뭘 이렇게까지 해 주시고, 하며 황송하다며 말을 읊조렸고, 그 옆에 20대 여환은 아예 서글서글하면서 정감있게 ‘저… 근데 참 수고가 많으시네요…’까지 붙여 줍니다. 옆 친구가 ‘저 근데 얘가 방금 선생님 진짜 멋있다고 했어요’, ‘얘는 뭐래니! 주책이야!’ 같은 드라마식 대사도 선보입니다. 그들은 정말 안 아픈, 황송한 표정으로 손이 닿자마자 전부 가 버립니다.


한 명씩 응급실 문 앞에서 구십도 인사를 하면서 귀가하는데, B는 받아주는 것이 오히려 힘이 들 지경입니다. 급기야 마지막 환자는 스테이션에서 악수를 청하는 바람에 B는 비집고 일어나 고개를 숙이고 악수를 받아줍니다.

아 네에, 조심히 가시고요. 불편한 일 있으면 언제든 또 와주시고요.


7.


이제 평소처럼 한산한 새벽, 병원A의 응급실과 B가 남았습니다. B는 하얀 린넨이 깔린 침대와 쌓여있는 챠트들을 보면서 생각합니다. ‘이건 참 재미있는 직업이야. 그럼. 참 재미있는 직업이고말고. 하하. 하하하.’ B는 간만에 보람찬 느낌으로 혼자 웃습니다. ‘하하. 하하하하하.’


원문: 남궁인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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