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그렇지 세상이 장학금을 그냥 줄 리 없지

조회수 2017. 9. 1. 22: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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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니가 노력을 더 했으면 되는데 왜 이렇게 징징대냐고?

대학 생활을 굉장히 미련하게 한 편이어서, 외부장학금이라는 게 있다는 걸 아는 데 꼬박 5학기가 걸렸다. 참고로 나는 국가장학금만으로도 나랏님께 덩실덩실 만족이며, 편의점 야간알바로 가끔 좋아하던 음반이나 사면 그것이 사치인 줄 알던 사람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친구가 외부장학금이라는 단어를 꺼냈다. 아니, 세상에 그런게 있단 말인가? 자세하게 알아보니, 자기소개서를 중심으로 기회만 잘 타면 장학금을 받을 수 있다는 정보를 얻었다.

난 정말 몰랐었네

즉시 서류 꾸미기에 착수했다. 이런저런 증명과 사본에 덧붙여, 자기소개서가 필요하다고 했다. 자유 형식이라고 했다. 그래 바로 이거다 싶었다. 사전적 의미의 장학금이라는 게 뭔가. 단지 돈 때문에 포부를 펼치지 못하는 학생들을 위해 그 유일한 걸림돌을 치워 주는 제도 아니던가. 그렇다면 그 포부를 멋있게 상세하게 적을수록 어필이 되겠군.


정말로 신나서 나를 소개했다. 평소 주변 사람들에게 잘 말하지 않는 나의 수줍은 꿈도 조금 적었을 정도로. 돌이켜 생각해 보면, 이 외부장학금 덕분에 유일하게 얻은 성과는 바로 이것—그 꿈이 왜 그렇게 말 못할 것인지를 돌이켜 보는 일—이었다. 이분들의 스폰서십을 받아 정말로 그 작은 꿈을 펼쳐 본 다음, 그분들께 감사 인사를 전하는 내 모습을 상상해 봤었다. 거기까진 참 좋았더랬다.


입을 수 있는 가장 예절바르고 단정한 코디로 학교에 갔다. 다들 “무슨 일 있어?”라고 물어보고 싶은데 못 물어보는 기색이 역력했지만, 그런 걸 신경쓸 정신이 없었다. 나올 만한 질문에 뭐라고 답할지를 열심히 생각하며, 통지를 받은 대로 정시에 학생지원실에 들어갔다. 이제 나는 ‘장학금 면접실’로 안내를 받을 거고, 서류를 검토하는 면접관들과 다른 장학금 지원자들 사이에서 경쟁하듯이 면접을 하겠지. 절대 쫄지 않을 거야. 그건 자신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준비를 하고 들어갔다

학생지원실 교직원이 나를 부른다. “○○재단 장학금 지원하러 오셨죠? 이쪽으로.” 그가 열어준 문은 학생지원실의 응접실이었다. 그냥 소파 두 개가 놓여 있고 그밖의 아무 준비도 되어 있지 않은, 그냥 방금 자리를 비운 응접실이었다. 내가 당황하지 않은 체하려고 적당히 응시자석이라 생각되는 위치에 앉았는데, 내게 그곳을 안내한 ‘교직원’이 따라 들어오더니 내 맞은편에 앉았다.


그러고는, 지극히 사무적인 것들을 물었다. 이를테면, 입학년도와 군 제대여부. 그리고 “이 장학금 다른 장학금이랑 중복수혜 안 되는 거 알죠?” 같은 뻔한 것들. 처음으로 내 꿈을 누군가에게 들려주겠다는 설레임은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막판에는 그저 빨리 나오고 싶어서 예 예 하고 나왔다. 응접실 문을 닫고, 학생지원실 문을 닫은 다음 탄식을 한번 크게 했다. 그럼 그렇지. 세상이 이럴 리가 없지.


나는 내게 관심을 보여 주기만 하면 얼마든지 어필할 준비가 되어 있는 상태였지만, 이곳은 그런 것에는 관심이 없는 세계였다. 그것 보다는 내 바깥의 것들, 이를테면 부채증명서에 찍힌 숫자의 자릿수, 아니면 내가 다른 장학금은 뭘 받았는지 같은 것들에만 관심이 있었다. 이쯤되면 당신도 짐작했겠지만, 내 자기소개서는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참고로, 나는 그 학기에도 꾸준하게 편의점에서 알바를 했고, 그 알바비는 편의점 도시락을 먹는데 사용되었다. 당연히 ‘자기소개서’에 써넣은 수줍게 적은 꿈은 준비할 시간이 없었고, 먹고 살기 힘든 나머지 아쉬워 할 틈도 없이 지운지 오래다.

내 인생이 그럼 그렇지

그리고 공교롭게 나랑 같은 꿈을 가진 사람이 있었다. 내가 오백원이 모자라서 콜라를 내려놓고 쥬시쿨을 집어들 때, 그는 학식은 맛이 없어서 절대 안 먹는다는 말을 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는 내가 편의점에서 시간을 보낼 동안, 관련 학원에 들어가 관련 능력을 쌓을 수 있었다. 누군가는 어른스럽지 못하고 하겠지만, 나는 그게 참 부러웠다.


아, 니가 더 노력을 했으면 해결될 문제인데

뭘 이렇게 장문으로 징징거리냐고?


그러게 말이다.


OECD 국가 중 세 번째로 등록금 높은 나라에서 사는

당연한 대가라고 생각해야지.


뭐 어쩌겠는가?


…서울시 청년수당은 청년들의 어려움에 대한

긴급한 처방의 하나로 선정자격을 갖춘 장기 미취업 청년들에게

6개월 범위에서 월 50만원의 활동지원금을 지원해

구직 등 청년들의 사회진출을 돕고자 하는 취지에서 추진하는 제도입니다.


…지원된 청년수당은 취·창업과 연관된 활동

구직활동에 필요한 각종 기술학원·취업학원 비용 및 면접을 위한

교통비나 스터디 비용을 위해 사용할 수 있습니다.


원문: TWENTIES TIMELINE  / 필자: 몰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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