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의 미학

조회수 2017. 8. 31. 09:2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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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 빈곤은 상대적인 개념이다

마산에서 태어나 7살에 서울 구로동으로 이사 와서 중학교 때까지 구로공단 한 가운데인 가리봉동 단칸방에 살았다.


그 뒤 형편상 가출하신 어머니를 뒤로하고 아버지의 사정으로 이사한 곳이 부산 남부민동 산동네. 고지대 무허가 주택 지역이라 수돗물이 제한 급수되던 곳. 대한민국 제1, 2 도시 중 가장 빈촌이라 할 수 있는 곳에서 자라왔다.


어떤 때는 며칠이고 어머니도 아버지도 집에 들어오시지 않아 하염없이 굶은 적도 있고, 돈 되는 것 없는 슬레이트 지붕 집 셋방 세간에 빨간 압류 딱지가 붙은 적이 몇 번인지도 모르겠다.


동네 구멍가게에 외상으로 먹거리를 먹다가 제때 갚지 않는다며 아줌마에게 혼나거나 맞기도 다반사. 아주 어린 티를 벗고 나선 공병 줍기, 신문 배달 등으로 생존법은 익혔다.

자라는 동안 먹고 싶은 것 먹어 본 적도, 갖고 싶은 것 가져 본 적도, 배우고 싶은 것 배워본 적도 기억에 거의 없을 정도이니 “가난”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20대에 일을 시작하면서는 세후 월급 45만 원을 받으며, 완전 지하 또는 반지하 방에서 꽤 오래 살기도 했다.


월세 30만 원 정도를 내고 나면 교통비와 식비가 턱없이 부족했다. 라면 가격이 부담될 정도. 한동안 양파구이 반찬만 먹거나 맨밥에 간장만 비벼 먹으며 고추장이면 좀 더 배부르고 맛있을 것 같단 생각을 한 것도 기억난다. 구구절절한 이야기 하자면 끝이 없겠지만, 배경으론 이 정도면 될 것 같다.


얼마 전 태어난 딸 아이에게 가장 물려주고 싶은 것을 뽑는다면 “가난”이라고 하고 싶다. 잘사는 것을 마다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마는 일생을 절반 정도 산 듯한 시점에서 모순적이게도 내 인생에서 가장 값진 것은 그것이다. 그로 인해 많은 것을 배우고 얻었기 때문이다.


가난은 진정한 “친구”를 두게 한다. 이익이 되는 사람만 사귀는 부류를 드물지 않게 본다. 그런 이들에겐 한동안의 나는 눈에 띄지 않는 존재였을 거다.


사회생활을 하기 전까지 친구들 사이에서 물질적으로 이익이 되는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음에도 언제나 친구가 많은 편이었고, 대부분 그들과 세월이 지나도 변치 않는 우정을 이어오고 있다.


물질과 배경을 배제하면 사람에게 남는 것은 내면의 매력이다. 그것을 보는 친구를 사귄다는 것은 나에게 그러한 매력이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나 또한 상대방의 진심을 접할 기회를 얻게 되는 것이기도 하다.


한 예로 초등학교 동창인 와이프와는 우정과 사랑에 손익을 따져본 적이 없던 것이 인연을 길게 이어가며 결실을 볼 수 있는 중요한 요소가 아니었나 싶다.


세월이 지나서는 진정한 친구를 두어 본 경험이 사심으로 접근하는 사람을 구분 짓게 해주며, 누구든 대할 때 껍데기가 아닌 본질에 집중할 수 있게 해주고 있다.

누구나 상상할 수 있는 장점으로는 매사에 “감사”한다. 한 끼만 굶으면 두 끼 굶지 않은 것에 감사했고 하루 굶으면 이틀 굶지 않은데 감사해 했다. 돌아보면 작은 것도 힘들게 얻었기 때문에 당연한 것은 없다는 것을 일찍이 깨닫고 사소한 것이라도 주어진 것에 진심으로 고마워하게 되더라.


그렇게 자그마한 것에도 감사해 하다 보니 긍정적으로 된다. 사회에 나와 종종 사람들로부터 내가 놀랍도록 긍정적이고 그렇기에 발상이 다르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아마 이 글도 그렇게 받아들일 것이다.


가끔 “가난했지만 행복하다”라는 표현을 듣곤 한다. 이것은 잘못 연결된 문장이다. 가난과 행복은 전혀 상반 관계에 있지 않다.


굳이 열을 내어 설명하지 않더라도, 지구상에서 가장 행복한 국가가 1인당 국민소득 최하위권 국가인 방글라데시인 점이 시사하는 바가 있지 않은가. 우리 집이 잘살지는 못했지만 그것 때문에 행복하지 않은 적은 단연코 없다. 지금 꾸린 가정의 행복도 또한 내 재산의 증식 추세와 그리 큰 상관관계에 있지 않다.


가난, 빈곤은 상대적인 개념이다. 누군가에 비해 잘 살지 못하는 상태를 이르는 것일 테다. 머리가 굵어지면서 몇몇 잘사는 친구, 친척들과의 접촉과 다양한 매체를 통해 우리 집이 평균 이하의 삶의 질을 누리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대개 비슷한 형편의 이웃들과 함께 지내다 보니 무뎌지더라.


같은 논리로 내가 잘사는 편이라도 누군가는 나보다 잘 살기 때문에 가난해서 불행하거나 상대적으로 부자라서 행복하다는 논리는 성립되기 어려울 것이다.


가난함은 “창의성의 원천”이다. 돈이 있다면 원하는 것을 가지면 되므로 상상할 여지가 상대적으로 적다. 내가 어릴 적엔 부루마불, 인생 게임 등의 보드게임이 유행이었는데, 그것들을 살 형편이 되지 않는 나는 어깨 너머로 보고 상상하여 종이에 만들고 친구들에게 보여주고 함께 놀곤 했다.


희한하게도 친구들은 내가 만든 게임들을 좋아해 주었고, 즐거움에 매일 그것에 나만의 상상력을 더하였다. 피아노 소리를 좋아해서 당시에 쉽게 구할 수 있던 종이 피아노로 연습하곤 했는데, 교회에서 어느 날 내 피아노 연주를 들은 성가대 형과 누나들이 칭찬을 아끼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고흐나 이중섭처럼 빈곤이 예술가들의 상상력의 원천이 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가난하기 때문에 더 나은 “배움”을 얻었다. 음악과 미술을 잘했지만 포기해야 했다. 중학교 때 재능이 있는 내게 선생님들은 가정 형편상 할 수 없는 것을 분명히 해주었기 때문에.


국영수는 과외하는 친구들만큼 성적을 내지 못했기 때문에 다른 친구들이 하나하나 소질을 찾아가는 동안 나는 결국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아무 재능을 찾지 못했다.


이름난 대학의 문과에 합격했지만, 생계를 이유로 공대에 진학하게 된다. 꽤 오랫동안 어린 나이에 재능을 찾지 못했기 때문에 떠밀려왔다고 생각해왔지만, 핑계 대며 물러설 구석은 없었기 때문에,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분야를 배울 계기가 되었고, 조금이나마 노력한 결과, 오늘날의 나를 살아가게 하는 밑거름이 되었다.


가난은 “꿈”을 꾸게 한다. 어차피 이룰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는 현실적인 상상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이룰 수 없는 꿈일지라도 남들이 이룰 수 있는 것들과 같은 수준으로 보게 된다. 고등학생이 될 때까지 우주비행사가 되겠다거나, 불치병을 치료하는 의사가 된다거나, 하늘을 나는 자동차회사 사장이 된다거나 하는 허황한 꿈을 가지고 있었다.


거기다 백신의 아버지 안철수가 우리 학교에서 강연하는 것을 듣고 난 이후엔 컴퓨터 프로그래머가 될 거라는 것으로 최종 결정. 우주비행사와 같은 맥락의 생각이었고 프로그래밍은 당연히 전혀 몰랐다.


오락실에서 살던 그 시절, 주위 친구들에게 미래에 오락을 만들어서 엔딩 크레딧에 내 이름이 올라오게 하겠다고 수년간 말하고 다니기도 했고. 대학 친구들에겐 미국에서 살 것이라 수백 번을 이야기했다.


어느 동상 앞에선 자유의 여신상 앞이라고, 부산 국제영화제 행사장에선 헐리우드라며 농을 치기도 할 정도. 아무런 근거도 없이 내뱉은 말들이 현실이 될 줄은 누구도 몰랐을 거다.

가난은 선택의 폭을 제한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맞는 말이다. 부는 다양한 시도를 허용하고 실패 했을때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좋은 것인가는 이견의 여지가 있다. 시간은 돈으로 살 수가 없기 때문이다.


시행착오를 겪으며 방향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여유 있는 사람은 시간이라는 요소를 희생해야 하지만, 가난한 사람은 물러설 곳이 없기 때문에 기회가 주어졌을 때 결과가 어떻게 되던 끝까지 밀어붙일 수밖에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끝까지 간 사람은 살아남고 정복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더라.


앞서 말한 다양한 이유로 가난 한 자는 동정의 대상이라기보다 오히려 재화로 가질 수 없는 중요한 경험과 가치를 가지거나 가질 사람이며, 그래서 자식에게로 가난의 대물림을 고민하고 있다.


원문: F monolog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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