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닥의 '불편한 제약', 신중함과 설렘을 만들다

조회수 2017. 8. 28. 14:26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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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장이라도 정말 찍고 싶은 것만 남기게 되는 마음

앱스토어 유료 앱 인기차트 1위를 5주, 한국을 넘어 대만, 태국,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필리핀 등 해외 8개국의 유료 앱 1위를 기록하고 중국, 핀란드, 베트남 등에서 카메라&비디오 카테고리 1위. 1위에 오른 국가를 모두 포함하면 17개국에 달하는 카메라 앱 ‘구닥(gudak)’ 이야기입니다.

최근 이 앱을 아는지 모르는지로 ‘옛날 사람’과 ‘요즘 사람’이 구분된다고 합니다. 도대체 어떤 앱이기에 ‘기준’이 되고 출시하자마자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받았을까요? 우선 필름 카메라를 닮은 이 카메라 앱의 특징을 간단히 설명드리면,

1. 일반적인 카메라 앱처럼 ‘스마트폰 액정’ 전체가 아닌 필름 카메라의 뷰파인더처럼 작은 화면을 통해 피사체 확인이 가능합니다.

2. 1개의 필름으로 24장의 사진을 찍을 수 있고

3. 24장을 모두 찍으면 1시간 뒤에 1개의 필름을 받아야 다시 사진을 찍을 수 있습니다.

4. 찍은 사진은 바로 확인이 불가하며 72시간(3일)이 지나서야 확인이 가능합니다. 마치 사진관에 인화를 맡겨두고 3-4일 뒤에 찾는 것처럼요.

1개의 필름으로 24장의 사진 밖에 못 찍고, 더 사진을 찍으려면 1시간을 기다려야 하고, 3일이 지나야 찍은 사진 확인이 가능한 ‘불편함 끝판왕’ 사진 앱인데도 2017년 8월 20일 기준 42만 명이 1.09달러를 지불하고 다운받았습니다. 단순하게 계산하더라도 벌써 4억 이상의 매출이 발생한 셈입니다.

출처: 구닥 페이스북
8월 20일 기준 42만 명이 설치했다.

도대체 10-20대들은 어떤 심리로 이 앱을 유료로 다운받고 SNS에 ‘구닥’으로 찍은 사진임을 자발적으로 알리는지 궁금해졌습니다. 그래서 일본 오키나와 여행을 하기 전 구닥 앱을 스마트폰에 탑재한 뒤 출발할 때부터 귀국할 때까지 구닥과 함께 3박 4일을 보내봤습니다. 동행해 본 결과 구닥은 그만한 가치가 충분한 카메라 앱이었습니다.


 

젊은 세대에게 아날로그는 복고가 아니라 ‘새로움’


우선 구닥을 처음 사용하면서 옛날 생각이 많이 났습니다. 작은 뷰파인더로 사진을 찍고, 찍은 사진을 바로 확인할 수 없고, 사진을 찍고 필름이 돌아가는 사운드를 들으면 추억에 잠겼습니다. 처음에는 구닥이 유행하는 ‘복고 트렌드’의 일환으로 성공하게 된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날로그 감성을 느끼며 ‘이땐 이랬었지!’라며 대화의 소재가 되죠.


하지만 이 앱은 현재 10-20대에게 큰 인기를 얻고 아이돌이 즐겨 쓰는 카메라 앱으로 알려지기도 했습니다. 이들은 필름 카메라를 만져보지도 못한 세대입니다. 즉 ‘옛날’을 회상하면서 추억에 젖어 들 세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출처: Instagram @arenakorea
과거의 일회용 필름 카메라.

그들에게 구닥의 아날로그 감성은 ‘새로운’ 재미고 필름 카메라 느낌의 사진은 ‘새로운’ 필터가 입혀진 사진입니다. 게다가 24장의 사진만 찍을 수 있고 1시간 뒤에 충전되며 3일이 지나야 찍은 사진을 확인할 수 있다는 ‘특별한 콘셉트’가 젊은 세대에는 새로운 놀이로 다가갑니다. 


아날로그의 불편한 기능이 지금 디지털 세대에게는 ‘새로움’이고 ‘색다른 콘셉트’로 만들어진 또 다른 디지털 서비스라고 인식하는 겁니다. 아날로그 시대의 제품이 지금의 젊은 세대에게 독특한 콘셉트의 서비스로 어필됨을 구닥이 증명했다고 생각합니다.

출처: 구닥 페이스북

신중하게 한 장 한 장


스마트폰 및 디지털 시대에서 사진을 생산하고 지우는 행위는 전혀 어렵지 않습니다. 용량만 허용된다면 한 장소에서 같은 피사체를 무제한으로 찍어서 기기에 담을 수도 있고 그중에 맘에 드는 사진만 남기고 지우는 것도 매우 자유롭습니다.


이런 디지털 시대의 자유로움은 궁극적으로 편리함을 가져왔지만 사진의 희소성은 사라지게 되었고 여행을 다녀오면 수백, 수천 장의 사진이 기기에 남아 정리되지 못한 채 남습니다. 구닥 페이스북에 올라온 코멘트처럼 ‘수많은 사진이 추억이 되지 않고 용량이 되어가’던 것입니다.


하지만 구닥으로 3박 4일간 여행 사진을 찍을 때는 달랐습니다. 구닥으로 생산할 수 있는 사진의 양이 제한되는 큰 불편함이 있지만 그 불편함이 오히려 사진 한 장이라도 신중히 찍게 했습니다. 꼭 남기고 싶은 장면만 사진을 찍게 된 거죠. 평소라면 보이는 것마다, 기록하고 싶은 것마다 모두 사진으로 남겼을 테지만 구닥은 무한 셔터 욕구에 ‘브레이크’ 역할을 했습니다.

사진으로 기록하고 싶은 것 중에서 꼭! 찍어야 할 것들만 찍자.

그 결과 3일 동안 총 4개의 필름을 사용했습니다. 필름 1개 당 24장이니 총 96장의 사진으로 3박 4일의 여행을 기록한 셈입니다. 스마트폰이 생긴 이래 여행을 가서 100장 이내로 사진을 찍어본 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기본 300장, 최대 1,000장까지도 찍어본 적이 있습니다. 그랬던 여행 사진 패턴이 100장 이내로 ‘확’ 줄어든 셈이죠. 사실은 약간 불안했습니다. 여행을 잘 담을 수 있을까, 괜한 모험을 하는 것은 아닐까 말입니다.


여행을 다녀온 뒤 시간이 지나 찍었던 사진을 확인하면서 기우였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오히려 제한된 자유가 여행 기록을 콤팩트하게 만들어주었고 꼭 필요한 사진만 간직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여행 사진을 따로 정리할 필요 없이 필름 별로 사진이 구닥앱 내에서 정리되었습니다. 4개의 필름만 확인하게 되면 3박 4일의 여행을 ‘모두’ 확인할 수 있게 된 셈입니다.

오키나와의 필수 코스 ‘국제 거리’
아메리칸 빌리지의 관람차
오키나와의 낮은 하늘

색다른 필터 효과와 특별한 감성이 담긴 ‘자랑거리’


현재 인스타그램에서 #gudak 해시태그로 검색하면 10만 건 이상의 사진들이 나옵니다. 8월 25일 기준으로 42만 명이 넘는 사용자가 이 앱을 유료로 결제한 뒤 다운로드 받았는데 10만 건 이상의 사진들이 나온다는 것은 단순 계산으로 하면 4분의 1 이상의 사용자가 구닥으로 사진을 찍은 뒤 인스타그램에 올렸다는 것입니다. 해시태그 이벤트를 해도 사진을 유도하기 힘든데 이는 대단한 기록입니다.


구닥 사용자는 필름 카메라처럼 사진이 인화되며 필름 카메라 느낌이 입혀진 듯한 경험으로 사진에 특별한 가치를 느낍니다. 3일 전에 찍었던 사진을 하면서 사진뿐 아니라 사진을 찍었던 그 순간을 다시 회상하게 되는 거죠. 색다른 사진 필터 효과에 특별한 감성까지 담기자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은 뽐뿌가 옵니다. 그 결과 사용자 개개인이 모두 자발적인 마케터가 되어 #gudak 해시태그와 함께 구닥으로 찍은 사진을 SNS에 업로드합니다.


사진을 본 팔로워는 ‘나도 이렇게 찍어보고 싶다’는 생각에 앱스토어에서 유료 결제 후 다운로드를 받게 됩니다. 그렇게 퍼지고 퍼져 출시 한 달 반 만에 40만 명이 넘는 사용자가 유료로 앱을 구매 후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공항 가는 길. 필름 카메라만이 낼 수 있는 빛 효과를 구닥에서 만날 수 있다.
여행객 누구나 한 장씩은 찍는다는 비행기 창문
오키나와의 밤
선셋 비치에서 선셋을 보려고 기다렸으나 구름이 많아 보지 못했다.
하루 종일 풍성한 구름을 볼 수 있었던 날

마치며


아직 iOS 앱만 출시된 구닥은 현재 안드로이드 버전을 개발 중이라고 합니다. 국내 점유율이 높은 안드로이드 앱까지 출시 되면 구닥의 인기는 더 높아질 것으로 보입니다.


문제는 굉장히 낮은 개발 진입장벽입니다. 벌써 비슷한 필터 효과를 주는 앱이 출시되었습니다. 대표적인 앱이 칼라(Collar)입니다. 구닥처럼 필름 카메라 필터 효과를 줄 수 있는 앱으로 무료인 덕분에 현재 앱스토어 무료 인기차트 1위에 올랐습니다. ‘필름 카메라’ 필터의 인기가 증명된 이상 비슷한 효과를 줄 수 있는 사진 필터 앱은 앞으로도 많이 출시될 겁니다.


또 다른 문제는 지금까지의 많은 사진 필터 앱처럼 잠깐 뜨고 마는 ‘반짝 앱’이 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를 구닥 개발팀도 잘 알고 있고, 그러기에 구닥을 디벨롭해서 앱 내에서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기보다는 구닥처럼 새롭고 재미있는 다른 앱을 준비합니다.


별도 본업이 있는 기획자, 마케터, 개발자 등이 모여 1주일에 1번, 재미있는 서비스를 만들기 위해 아이디어 회의와 개발을 진행합니다. 밥벌이가 되지 않아야 기발한 서비스를 계속 낼 수 있기에 본업을 그만두고 이쪽으로 전향할 생각은 전혀 없다고 합니다. 앞으로도 구닥과 같이 시험적이고 기발한 서비스로 앱 생태계를 풍부하게 만들어주길 기대해봅니다.


원문: 생각노트


참고

“사진 보려면 사흘 기다려라” 느리고 불편한 카메라 앱 ‘구닥’, 42만 명 사로잡은 비결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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