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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베스의 '21세기 사회주의 혁명'은 끝나지 않았다

조회수 2017. 8. 24. 14:42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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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두로 정부를 악마로 몰아 비난만 하는 분위기가 과연 올바른 것일까?

지금부터 100년쯤 전에 베네수엘라에서 석유가 발견되면서, 미국의 석유자본은 참으로 기뻐했다. 미국의 석유자본은 냉큼 베네수엘라로 진출해 파이프를 꽂아 베네수엘라 석유에서 나오는 부의 상당 부분을 가져갔다.


물론 이 미국 석유자본에 빌붙어 부를 챙긴 베네수엘라의 기득권층도 존재했다. 자국의 석유를 미국에 팔아넘기고 거기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챙겨 기득권을 유지하는 매국노들이다.


하지만 이 매국노들이 바로 베네수엘라의 지도층을 형성했으며 정치권에서도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베네수엘라의 정치는 이 기득권층을 대변하는 보수 양당이 번갈아 가며 집권하는 체제였으며, 이 체제 하에서는 어떠한 변화도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때문에, 산유국임에도 국민의 대다수가 빈곤계층을 형성할 정도로 사회적 모순이 심한 나라였다.


이 모순이 한꺼번에 터진 사건이 1989년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를 중심으로 터진 민중항쟁, 이른바 카라카소 사건이다. 


당시 베네수엘라는 어려운 경제 상황으로 인한 외화 부족으로 IMF의 긴급차관을 받아들였는데, IMF가 차관을 제공하는 대가로 베네수엘라 강요한 신자유주의적 정책들은 베네수엘라 민중들에게는 정말 가혹한 것들이었다(우리나라의 IMF 시절보다 훨씬 심각했다고 생각하면 된다).

화가 머리 끝까지 난 민중들이 봉기했고 정부는 군대를 투입해 시위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수 천명의 사람들이 사망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베네수엘라의 민중들은 더 이상 지금의 보수 양당 체제로는 베네수엘라에 미래가 없음을 깨닫게 된다.


당시 직업군인이었던 우고 차베스는 군대 내에서 좌파 사상을 가진 군인들을 규합해 조직을 만들고 있었다. 정부의 명령을 받고 어쩔 수 없이 국민들에게 발포했지만, 군인들 역시 정부에 대한 분노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결국, 1992년에 차베스를 중심으로 뜻 있는 군인들이 결의해 국민의 신임을 잃은 정부를 전복하는 쿠데타를 시도했다. 하지만 쿠데타에 실패하고 차베스를 포함한 핵심 군인들은 감옥에 간다. 민심은 이미 정부를 떠났다.


국민 대다수가 쿠데타를 지지하는 분위기였으며 쿠데타 지도자였던 우고 차베스에 대한 인기가 하늘을 찔렀다. 정치인들 역시 노골적으로 쿠데타를 지지하며 페레스 대통령을 비난했다. 결국, 페레스 대통령은 의회에서 탄핵되고 새로운 대통령을 선출하는 선거가 실시되었다.


이미 기존의 보수 양당은 신뢰를 잃었기 때문에, 보수 양당에서 탈당한 낡은 기회주의 정치인들은 당시 국민에게 인기가 높았던 우고 차베스가 감옥에서 자신을 지지하고 있다고 서로 주장하며 새로운 정치를 펼칠 것처럼 유세를 했다.


그 기회주의 정치인 중에서 라파엘 칼데라가 당선되어 쿠데타를 시도한 우고 차베스와 군인들을 사면했다.


감옥에서 나온 차베스는 베네수엘라를 근본적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정치개혁이 필요하다는 판단으로, 좌파 세력의 총단결을 이끌어내어 1998년 대통령 선거에서 압도적인 차이로 당선된다. 


이때 차베스가 내세운 대통령 선거 공약이 ‘제헌의회 소집’이었고 지금 마두로 대통령이 추진하고 있는 ‘제헌의회 소집’과도 궤를 같이 하고 있는 것이다.


‘제헌의회 소집’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1970년 칠레의 좌파 정부였던 아옌데 정권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1970년 칠레에서는 사회주의자 살바도르 아옌데가 이끄는 좌파세력이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했다.


하지만, 당시 칠레 의회는 보수 세력이 반수 이상의 의석을 점유하고 있었고 아옌데가 이끄는 정부의 정책에 일일이 훼방을 놓았다.

아옌데가 임명한 장관을 남김없이 탄핵시키고 아옌데 정부가 추진하는 복지정책을 무산시켰다. 아옌데 정부는 결국 피노체트 장군이 이끄는 보수세력의 쿠데타에 무너졌다. 피노체트의 배후에 미국이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미국은 아옌데 정부가 실시한 구리산업 국유화 조치가 미국의 이익을 크게 침해한다고 판단해 피노체트를 은밀히 지원하고 쿠데타를 원조했던 것이다.

 


차베스가 당선된 당시의 베네수엘라 역시 칠레 아옌데 정부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의회는 보수세력이 이미 틀어쥐고 있는 상황에서 차베스 정부가 개혁조치가 제대로 실행될 가능성은 무척 낮았다. 바로 이런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 내세운 공약이 ‘제헌의회 소집’이었던 것이다.


제헌의회는 말 그대로 헌법을 제정하는 의회다. 헌법을 새로 제정한다는 것은 기존의 헌법을 폐기한다는 의미다. 차베스는 당선되면 기존의 헌법을 폐기하고 새로운 헌법을 만들겠다고 공약한 것이다. 기존의 헌법이 폐기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기존의 국가기구가 모조리 해체된다.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는 모두 헌법에 근거해서 존재의미를 가지게 되는데, 헌법이 폐기되니 존재 근거가 사라지는 것이다. 낡은 헌법이 폐기되면 기존의 국회의원들은 더 이상 국회의원이 아니게 되고, 기존의 판사 검사도 더 이상 판사 검사가 아니며, 차베스 역시 더 이상 대통령이 아닌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새로운 헌법을 만들고 그 새로운 헌법에 근거해서 새로 국가를 만들어야 한다. 차베스는 1999년에 취임해 국민투표를 통해 국민에게 제헌의회 구성을 승인받고, 제헌의회를 구성할 의원을 뽑기 위한 전국적인 선거를 치른다.


차베스가 압도적인 차이로 대통령에 당선되는 상황이다 보니 제헌의회 선거 역시 좌파가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게 된다.


이렇게 구성된 제헌의회에서는 자신들의 좌파적 사상을 구현할 수 있는 구체적인 헌법을 만든다. 무상의료 무상교육을 헌법에 명시하고 베네수엘라의 석유산업을 국유화하기 위한 근거 조항을 만든다. 350개 조항에 이르는 베네수엘라의 헌법에는 좌파들이 만들고 싶은 진보적인 국가의 상이 고스란히 담기게 된다.


 

새로운 헌법이 국민투표를 통해 발효되고, 이 새로운 헌법에 근거해서 대통령 선거도 다시 치르고 국회의원도 새로 뽑게 되었다. 


이 선거를 통해 차베스는 다시 대통령에 당선되고, 베네수엘라의 의회는 좌파가 압도적인 다수를 점하게 된 것이다. 베네수엘라를 근본적으로 바꾸려는 좌파 세력이 정치 권력을 장악하게 된 계기가 바로 제헌의회다. 하지만 정치 권력의 절반의 권력일 뿐이다.


진짜 권력을 먹고 사는 것을 통제하는 경제 권력이다. 베네수엘라 경제 권력의 핵심은 석유인데, 사실상 미국이 배후조종하는 베네수엘라 기득권 세력의 손아귀에 있었으며 그 핵심은 바로 베네수엘라 국영석유회사 PDVSA였다.


이 국영석유회사는 당시 사실상 기득권 세력의 호주머니를 채워주는 역할만 하는 무늬만 국영인 회사였는데, 차베스는 이 국영석유회사의 부패한 임원들은 전부 해임하는 조처를 했다.


바로 이 사건이 계기가 되어 2002년에 차베스 정부를 축출하는 보수군인들의 쿠데타가 발생한 것이다. 당시에도 베네수엘라의 기득권을 틀어쥔 보수세력들은 끊임없이 사회불안을 조장하고 정부의 경제정책을 훼방놓으며 차베스 정부를 무너뜨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그러다가 결국 차베스를 싫어하는 미국의 원조 하에 쿠데타까지 일으킨 것이다. 하지만 쿠데타는 실패했고, 같은 해에 석유산업을 마비시켜서 차베스 정부를 공격하려는 의도로 ‘자본 총파업’이 벌어지지만 그것마저 차베스 정부의 현명한 대응으로 무산되면서 상황은 역전된다.


쿠데타와 석유산업 부문의 ‘자본 총파업’을 이겨낸 차베스 정부는 석유산업을 제대로 국유화시키면서 거기에서 나오는 재원으로 무상의료 무상교육 등의 복지정책을 실시하기 시작한다. 일자리가 없는 이들에게는 일자리를 만들어주고 대기업을 국유화하며 협동조합적 기업들에 지원을 하는 등 시장경제의 틀을 넘어 사회주의적인 정책들을 실시하기 시작한다.


이때부터 베네수엘라의 빈곤층이 격감하고 심지어 우파들조차 차베스 정부의 복지정책을 칭찬하는 분위기로 바뀐다. 차베스는 2006년에 압도적인 표차이로 대통령에 당선되며 ‘21세기 사회주의’를 베네수엘라에 구현하겠다는 포부를 밝힌다. 차베스는 ‘21세기 사회주의’가 베네수엘라만의 힘으로는 추진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오랜 기간 중남미는 미국의 뒷마당이었고 중남미 각 나라에는 미국과 연계된 기득권 세력들이 사회엘리트층을 형성하고 있다. 이들은 언제든지 자국의 진보세력들을 무너뜨리기 위해 미국의 지원 하에 사회불안을 일으킬 준비가 되어있다.


역사적으로 수많은 중남미의 좌파정부들이 이런 미국의 개입으로 무너졌다. 차베스는 이런 미국의 개입을 뚫고 베네수엘라의 혁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중남미의 진보적 세력들이 단결해야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중남미 좌파 정권들의 연합체를 만들고, 다른 차원으로는 중남미 국가연합을 만들어 중남미 국가들끼리 사회경제적 군사안보적 교류를 높여나가면 미국의 개입에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차베스가 중심이 되어 중남미 국가연합이 만들어지고 베네수엘라의 석유를 중심으로 중남미 국가들이 뭉치게 되면서 미국은 이런 차베스를 눈엣가시처럼 생각하게 된다.

 


상황은 2013년에 차베스가 암으로 사망하게 되면서 급변한다. 그동안 베네수엘라는 차베스라는 걸출한 인물의 카리스마에 기대어 혁명이 진행되어 왔지만, 그것은 베네수엘라 혁명의 취약점이기도 했다. 차베스가 부재한 상황에서는 구심력이 급격히 약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쿠바의 카스트로 역시 차베스에게 이런 취약점에 대해 조언했고 차베스 역시 동감하고 있었기 때문에, 혁명을 수행할 정치조직인 당을 제대로 건설하고 강화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었다.


개인의 카리스마가 아닌 당을 중심으로 한 대중의 힘으로 민주주의를 통한 사회주의 혁명을 수행해야 한다는 분명한 목표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차베스가 생각지도 않게 암으로 사망하고, 이를 틈타 미국과 베네수엘라의 보수세력은 총공세를 펼치기 시작했다.


지도자가 사망한 틈을 타 베네수엘라의 보수세력들은 경제영역에서 자신들이 여전히 갖고 있는 영향력을 이용해 사실상 ‘자본 파업’을 끊임없이 시도했다.


유통 영역을 교란시키거나 생산에서 사보타지를 하는 등의 식이었다. 게다가 예상치 않게 석유가격은 사상 유래가 없을 정도로 폭락을 했다. 차베스가 석유만 믿고 설치다가 망했다는 식의 비난이 많은데, 정말 상황을모르고 하는 얘기다.


역대 정부 중에서 차베스 정부 때 최초로 정부의 세금 수입 중에서 비석유부문의 세금 수입이 50%를 넘었다. 그만큼 차베스 정부는 이전 정부에 비해 석유 외 산업 부문을 성장시켰다. 하지만 한 때 배럴 당 100달러를 넘던 유가가 이정도로 빠질 것이라고는 누구도 예상할 수 없었다.


게다가 미국은 이런저런 방식으로 베네수엘라에 대한 경제제재를 강화하며 끊임없이 베네수엘라를 압박하고 있다. 마두로 정부는 차베스가 시작한 ‘21세기 사회주의’ 혁명을 이어나가기 위해서 미국과 국내 기득권 세력의 공세가 힘겹게 맞서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우리는 외신을 통해 마두로와 베네수엘라의 21세기 사회주의를 추진하는 사람들의 얘기를 접할 기회가 없다. 왜냐면 우리나라에 들어오는 외신은 모두 그 소스가 미국 언론이기 때문이다.


만약 외국 사람들이 우리나라의 상황을 조선일보를 통해서만 접한다면 우리나라의 진보세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할까? 조금만 입장 바꿔 봐도 알 수 있는 것이다. 물론 마두로 정부의 실책들도 있을 것이다.


나 역시 미국의 경제 재제에 대응하고 국내 산업을 일으키기 위한 목적으로 달러에 대한 고정환율제를 실시한 것은 오히려 베네수엘라의 상황에 독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이 지금 베네수엘라가 이렇게 어려움을 겪고 있는 근본적인 이유는 아니다. 베네수엘라는 여전히 기득권 세력과 혁명 세력이 판갈이 싸움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마두로 정부의 ‘제헌의회 소집’은 이런 어려움을 돌파하기 위한 승부수다. 보수 세력이 의회의 과반수를 점하고 있는 상황을 역전키시고 다시 혁명을 전진시키기 위해서 배수진을 치고 마지막 카드를 던졌다. 이 싸움에서 마두로 정부가 이길지 질지 필자로서는 알 수 없다.


다만 이런 얘기는 하고 싶다. 미국 발 외신에 놀아나며 베네수엘라 기득권 세력의 사보타지를 민주주의 진영의 투쟁으로 오인해 마두로 정부를 악마로 몰아 비난만 하는 분위기가 과연 올바른 것일까? 


백 번 양보해 베네수엘라 혁명 세력이 이런저런 정책적 오류를 범해 어려워졌다 하더라도 그것이 이렇게 베네수엘라 정부를 악마화하면서 비난할 근거가 될까?


쌍용자동차 노조가 정부와 사측의 탄압에 어렵게 싸우다가 힘에 밀리고 투쟁전략에서의 실수로 패배했는데, 패배했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을 욕하고 비난한다면 얼마나 황당한 것인가. 동학농민운동도 독립운동도 그 시절에는 폭도이고 테러리스트였다. 이것이 주류의 시각이고 지배계급의 시각이다.


나는 진보 진영 일부에서까지 이런 시각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 정말 개탄스럽다. 어려움을 이기도록 응원하지는 못 할망정, 베네수엘라 기득권세력을 응원하고 그 배후에 있는 미국의 제국주의적 개입에 힘을 실어주는 분위기를 만드는데 일조하면 어떡하는가….


원문: 북클라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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