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살짝만 고쳐주세요."

조회수 2017. 8. 10. 11:25 수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번역중 Now in translation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다양한 분야의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를 카카오 플랫폼 곳곳에서 발견하고, 공감하고, 공유해보세요.

어떻게 보면 정말 별것 아닐 수도 있는데 왜 디자이너들은 화가 나는 걸까?
“안녕하세요, 몇 달 전에 디자인 부탁드렸었는데요,”

“네, 안녕하세요. 오랜만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조금 수정할 사항이 생겨서요. 살짝만 바꾸면 되는데, 메일 확인해주세요.”

“음… 바꿀 곳이 꽤 많겠는데요.”

“아뇨, 그냥 조금만 바꿔주세요. 살짝만 바꾸는 건데, 그냥 해주실 수 있죠?”


오랜만에 걸려온 클라이언트의 전화. 대부분은 반갑지만, 종종 그렇지 않을 때가 있다. ‘약간의’ 수정사항. 당당하게 서비스를 요구하는 말에 조금 부아가 나곤 한다.


어떻게 보면 정말 별것 아닐 수도 있는데 왜 디자이너들은 화가 나는 걸까? 그리고 왜 클라이언트들은 이러한 요구를 하는 걸까? 어떻게 대응하는 게 옳은 걸까?

디자인 요소들은 관계성을 가진다.


디자이너들이 보통 위의 요구에 화가 나는 것은 정말 ‘작은 수정사항’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지 않아서일 것이다. 가볍게 하는 말에 정말 가벼운 줄 알고 시작해보면, 차라리 처음부터 새로 만드는 게 더 빠른 경우도 있다. 왜냐하면, 디자인의 요소들은 서로 관계성을 가지기 때문이다.

매거진 글

 

“간단하게 해주세요.”에서 언급했던 내용과 같이, 요소들을 배치하고 이들 간의 관계를 이용하는 과정에서 대비나 반복, 레이아웃 등이 생기고, 이러한 요소들이 전체적인 인상을 결정한다. 이 모든 과정을 고려하고 기획하는 과정이 바로 디자인이다.


즉, 그 완성된 관계성의 고리에서 한 개의 요소를 수정하는 것은 다른 요소들 역시 고려해야 함을 의미한다. 어떤 일에서도 마찬가지이지만, 특히 디자인에서 개별적인 요소들이 갖는 인상을 조절하는 것은 매우 신중하게 결정되어야 한다.

 

디자인도 ‘아’ 다르고 ‘어’ 다르다


‘Cat’과 ‘Cap’은 비록 맨 끝의 단 한 글자가 다른 두 단어이지만 그 의미는 고양이와 모자로 완벽하게 다르다. 불과 한 글자의 차이가 음성과 의미에 변화를 주는 것이다. 이를 언어학에서는 최소대립쌍(minimal pair)이라고 하는데, 기저에서의 최소의 변화에 의해 나타나는 형질에서의 차이를 설명하는 것이다.


디자인 또한 마찬가지이다. 소소하고 작은 변화로 인해 결과적으로는 매우 다른 인상을 전달할 수 있는데, 이를 ‘디자인 언어’에서의 최소대립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가장 쉬운 예로 ‘R 값(radius)’이라고 흔히 부르는 모서리의 곡면처리를 들 수 있는데, 이 곡면처리를 3R로 하느냐 5R로 하느냐에 따라 완성된 형태의 인상은 크게 변할 수 있다.

iPhone 5S / iPhone 5C (Apple)

애플 사(Apple)는 아이폰의 5세대 모델을 발표하면서 ‘C’라는 새로운 라인업을 발표했는데, 이 둘은 디자인의 요소 변화가 어떻게 다른 인상을 줄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똑같은 크기와 레이아웃, 버튼의 위치나 카메라 등 구조도 동일한 두 제품은 재질과 색상, 곡면처리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지만 매우 다른 인상을 준다.


비록 위의 사례는 마케팅과 브랜딩의 관점에서 기획 자체를 다른 목표로 진행한 제품이기 때문에 더더욱 큰 차이를 보이지만, 구성요소의 사소한 변화가 사용자에게 전달되는 인상에 차이를 줄 수 있음은 분명하다. 이는 개발과 평가의 과정이 서로 다른 인지적 특징을 가지기 때문이다.


개발 과정은 미시적인 분화의 과정이지만 평가 과정은 통합의 과정이다. 즉, 개발하는 입장에서는 전체를 생각하면서 세부적인 요소들을 하나하나 창작하고 배치한다면, 이를 수용하고 평가하는 입장에서는 세부적인 요소들을 종합적으로 받아들여 어떤 소수의 특정한 인상으로 결론짓는다.


제공자의 입장에서는 수많은 요소 중 작은 스위치를 하나 바꾸는 것으로 생각하더라도 수용자가 받는 전체적인 인상은 그 변화로 인한 대비나 반복, 레이아웃 등의 변화에서 목표와 다른 이미지로 종합될 수 있는 것이다.


모든 경우에 이러한 이유로 세부적인 요소의 변경에 의해 디자이너가 분노하고 절망한다고 보는 것은 비약일 것이다. 그러나 처음에 그렸던 전체적인 그림이 깨지고 새로운 요소를 도입하는 과정에서 많은 디자이너들이 생각보다 많은 고민과 계산을 한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수정사항은 언제나 생긴다.


수정사항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수정사항이 생기는 원인은 크게 세 가지가 있는데, 먼저 프로젝트가 시작할 때 필요한 요소들이 완벽하게 갖춰지지 않은 상태로 시작할 때 그런 경우가 있다. 프로젝트 중간이나 이후에 새로운 요소들이 생겨나면서,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또는 프로젝트 과정 중에 잘못된 부분이 있었을 수도 있다. 주어진 조건에 완벽히 대응하지 못한 상태에서 누구도 발견하지 못한 채로 끝났을 때 문제가 나중에 드러나는 경우가 있다.


마지막으로 모든 조건이 제대로 제시되었고 완벽하게 대응했음에도 외부적인 요인들에 의해 불가피한 수정의 필요가 생기는 경우가 있다.


첫번째는 클라이언트가 제대로 제시하지 못한 것이고, 두번째는 디자이너가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것이라면 세번째는 불가항력적인 이유에 의해서 발생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사회적으로 큰 이슈나 사건이 발생했을 때 대응하기 위해서 생기는 것인데, 어쨌든 언제나 수정사항이 생기는 것은 프로젝트 내부적인 원인에 의해서나, 외부적인 원인에 의해서나 불가피할 수 밖에 없다.


만약 수정사항이 두번째 원인에 의한 것이라면 당연히 문제를 수정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피해를 복구해주어야 할 필요도 있을 수 있다. 문제는 만약 첫번째나 세번째의 원인에 의해 추가 작업이 필요한 경우이다.


위의 이유가 꼭 아니더라도 놓고 있었던 작업을 다시 떠올리고 고민하는 것은 인지적인 부담이 있으며, 끝났다고 생각된 일을 다시 하는 것은 모든 다른 이유를 떠나 귀찮게 느껴질 수 있는 부분이다. 따라서 이를 설득하는 과정은 좀 더 섬세하게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태도가 중요하다.


수정사항이 발생하는 것은 아주 당연한 것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불가피하며, 이는 디자이너들 본인들도 잘 알고 있다. 문제는 정말 ‘아’다르고 ‘어’다른, 태도의 문제이다.


특히 클라이언트 측에서 누락된 부분이나 외부적인 요인에 의해 수정이 필요한 경우 수정작업의 이유에 대한 분명한 설명과 필요한 내용이 명시되어야 하며, 이 과정에서 지나치게 당당한 태도는 배제해야 한다.


흔히 업계에서는 스스로의 잘못을 인정하고 들어갈 경우 책임 소재를 물어 수정작업 자체를 거부하거나 추가비용을 요구할 것을 염려해 잘못을 숨기고 오히려 당당하고 거만한 태도로 ‘당연한 수정작업’을 요구하는 경우가 있다.


어쩌면 이러한 알량한 노력이 소기의 결실을 거둬, 공짜로 수정을 받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대체로 이렇게 진행된 작업은 종종 초기에 의도했던 매력을 잃어버리게 되며, 이러한 문제는 시장에서의 실패로 이어진다.


디자인은 유기적이다.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어떤 사소한 변화로 인해 기획은 망가지고 목표했던 이미지는 멀어지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다고 해도, 기분이 상한 디자이너가 세심한 배려를 해줄지는 의문이다. 그냥 바꿔달라는 대로 바꿔주고 던져버릴 가능성이 크다.


좋은 태도는 잘못이 있다면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현재 상황을 정중하게 전달하면서 수정이 필요한 부분을 이야기하고 그 수정이 다른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를 함께 고민하면서 전체적으로 필요한 작업의 규모를 조심스럽게 판단하는 것이다.


디자이너들 또한 자신의 작업은 자식처럼 아끼는 경향이 있기 떄문에, 망치는 것보다 잘 고치는 쪽을 선호할 것이다. 정말 판단해봤을 때 사소한 변화라면 흔쾌히 비용없이 고쳐줄 수도 있고 만약 비용이 정말 필요하다고 판단된다면 협의하여 적정한 비용으로 고치는 것이 훨씬 낫다.


디자이너들은 수정작업이 언제나 발생할 수 있음을 인정하고 있는 것이 마음이 편하다. 철지난 A/S 요구에 스트레스를 받고 감정적으로 대응하기보다는, 우선 필요한 내용이 무엇인지를 듣고 그 변화가 전체적인 디자인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고민해본 뒤, 조리있게 위의 내용을 이야기하면서 협의하는 것이 현명하다.


클라이언트가 ‘살짝만’ 바꿔달라고 하는 것은 정말 살짝만 바꾸면 되는 줄 알아서 일수도 있다. 모르는 내용은 알려주고, 필요한 내용은 정중하게 요구하면서 자신의 판으로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게 해도 말이 통하지 않는다면 어쩔 수 없지만, 디자이너에겐 정신적인 에너지가 중요하다.


스트레스를 받고 격앙되는 일이 많으면 냉정해지기 어렵고, 이러한 격정은 추후의 디자인에 그대로 보여진다. 이는 장기적으로 디자이너 본인에게 이롭지 않다. 정 이야기가 통하지 않는다면 차라리 포기하고 심신의 안정을 찾는 것이 스스로에게 더 값지다.


원문: 장영진의 브런치


이 콘텐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