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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등생과 문제아는 없다

조회수 2017. 8. 8. 20: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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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한 모범생 출신의 교사가 성적이 낮은 학생에게 어떻게 피드백을 줘야 학생이 신뢰할까?"
독일 출신의 미국 심리학자이며 사회심리학의 창시자인 쿠르트 레빈(Kurt Lewin 1890~1947)

1.


1990년대 초 미국 스탠퍼드 대학교 대학원생 조지프 브라운과 대학생 미켈 졸렛은 저명한 사회심리학자 클로드 M. 스틸 교수의 지도 아래 한 실험을 진행했다. 아래 실험에 관한 내용은 클로드 M. 스틸의 <고정관념은 세상을 어떻게 위협하는가(2014)>를 바탕으로 발췌・요약하였다.


3년 전 미켈이 졸업한 로스앤젤레스의 저소득층 거주 지역의 고등학교에서 실시한, 학생들의 시험 성적에 미치는 ‘인종적 고정관념의 영향’에 관한 실험이었다.


그들은 빈 교실에 백인과 흑인 고등학생들을 모아놓고 30분간 어려운 시험(미국 수학능력시험인 ‘SAT’의 언어 시험 일부)을 치르게 했다. 흑인 학생 그룹에 인종적 고정관념의 압력을 부여하기 위해 언어 능력을 측정하는 시험이라고 소개했다. 스틸 교수에 따르면 이런 언급만으로도 흑인 학생들은 자신의 성적이 자기 그룹의 지적 능력에 대한 고정관념을 확증할 수 있는 시험이라고 느끼게 된다고 한다. 다른 흑인 학생 그룹에는 고정관념의 압력을 주지 않기 위해 일반적인 문제 해결을 연구하기 위한 시험으로 소개했다.


브라운과 미켈은 학생들이 학업에 얼마나 적극적이고 얼마나 공부를 잘하고자 하는지 등의 변수까지를 고려해 실험을 실시했다. 결과가 어떻게 나왔을까?


학업에 적극적인 흑인 학생들은 시험이 지적 능력 용도로 소개되었을 때, 즉 자기 그룹에 대한 부정적 고정관념을 확증할 위험에 처했을 때 동일한 기량을 가진 백인 학생들보다 훨씬 낮은 점수를 받았다.


그러나 지적 능력에 관한 고정관념을 확증할 위협에 처하지 않았을 때는 동일한 기량의 백인 학생들과 비슷한 점수를 받았다. 상대적으로 학문적 기량이 낮은 흑인 학생들에게서는 결과가 다르게 나왔다. 학업 관심도가 낮은 흑인 학생들은 고정관념 때문에 당황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들은 실험이 지적 능력을 측정하기 위해 치러진다고 알고 있을 때도 그렇지 않은 경우와 같은 점수를 받았다. 같은 경우 백인 열등생들도 똑같은 결과를 냈다.


스틸 교수에 따르면 소수 인종 학생들의 학교 성적이 낮은 이유에 관한 ‘통념’은 단순하다. 그들은 학업 기량과 의욕이 낮고 학교생활에 불충실하다.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순환 사고법에 따른다. 가난한 가정, 지역 사회 출신이다. 학교에서 받는 교육이 불충분하다. 자신감이 부족하고 기대치가 낮다. 학교생활이 게을러진다. 학문적 기량이 낮아진다. 학교생활이 더욱 게을러진다. 가족이 방임한다. (주류적인) 또래문화에서 소외된다.

저소득층 거주 지역의 고등학교에 다니기는 했으나 이런 문제들에서 어떻게든 비켜나 학교생활에 충실히 임하는 학생들에게는 일반적 통념이 들어맞지 않았다. 미켈의 실험에서 그들의 점수를 갉아먹은 유일한 요소는 부정적 고정관념의 압력, 즉 그 고정관념을 확증할 위협 또는 확증하는 것으로 보일 위협뿐이었다. (중략) 그들 모두 압력이 제거되었을 때는 자기 기량을 최대한 발휘했다.

– <고정관념은 세상을 어떻게 위협하는가(2014)>



2.


고정관념 위협에 시달리는 아이들이 많다. 불안하고 가난한 집안 출신이라는 이유로, 사회・경제적으로 낙후된 지역에서 살고 있다는 이유로 스스로 낙인을 찍는다. 어떤 하나의 ‘일’ 때문에 ‘문제아’가 된 후 지속해서 문제아의 삶을 산다. 이들을 어떻게 도와야 할까.


스탠퍼드 대학교에 다니던 대학원생 제프리 코헨이 이런 질문을 던졌다.  

백인 교사는 흑인 학생에게 비판적 피드백을 줄 때 어떤 방식으로 해야 학생이 그 피드백을 신뢰하고 동기를 부여받을까?

나는 이 질문을 이렇게 바꾸고 싶다.  

우수한 모범생 출신의 교사가 학업 의욕이 낮고 성적이 낮은 학생에게 피드백을 줄 때 어떻게 해야 학생이 피드백을 신뢰하고 동기를 부여받을까?

코헨은 스탠퍼드 대학교의 흑인과 백인 학생들을 불러 좋아하는 교사에 관한 에세이를 쓰라고 했다. 잘 쓰인 에세이가 있다면 새로 발행될 교내 교육 관련 잡지에 실릴 예정이라고 했다. 글쓰기를 마친 학생들에게는 에세이에 대한 피드백을 받으러 이틀 후 찾아오라고 했다. 그사이 제프리와 동료들은 에세이를 모두 읽고 문법적으로 틀린 곳을 고치고 비판적 피드백을 작성했다.


코헨은 이틀 후 찾아온 학생들에게 3가지 방식 중 한 가지 방식으로 비판적 피드백을 주었다. 그다음 해당 피드백을 얼마나 신뢰하는지, 에세이를 고쳐 쓸 동기를 얼마나 부여받았는지 확인했다.


실험 결과 3가지 방식 중 두 가지는 흑인 학생들에게 별로 효과가 없었다. 중립적인 피드백, 구체적이지 않은 긍정적 진술들이었다. 흑인 학생들은 이런 형태의 피드백이 인종 편견을 감추려는 의도라고 여겼다. 백인 학생들은 구체적이지 않은 긍정적 진술을 신뢰했다.


스틸 교수가 ‘토머스 오스트롬 전략’(‘토머스 오스트롬’은 스틸 교수의 대학원 지도교수였다. 그는 고정관념의 위협 없이 스틸 교수를 공평하고 합리적으로 가르쳤다.)이라고 부른 나머지 형태의 피드백은 백인과 흑인 학생 모두에게 효과적이었다. 이런 식이었다.


피드백 첫머리에 잡지에 실을 만한 에세이를 고르기 위해 ‘높은 기준을 적용해’ 평가했다고 설명했다. 그런 다음 어떤 학생의 에세이를 읽어보니 조금만 더 노력하면 그러한 기준을 충족할 수 있겠다고 평가했다. 스틸 교수는 이런 형태의 피드백이 높은 기준에 들어맞도록 학생을 돕기 위한 비판이라는 것을 넌지시 암시한다고 평가했다.

흑인 학생들은 백인 학생들만큼이나 이런 피드백을 신뢰했으며 에세이를 더 잘 고쳐 쓸 동기를 부여받았다. 흑인 학생들에게 오스트롬 전략의 피드백은 메마른 땅 위의 물 같았다. 그 전략의 피드백은 매우 받기 어려울 만큼 희귀하지만, 일단 그런 피드백을 받으면 비판을 통해 의욕을 얻을 정도로 신뢰감을 회복할 수 있는 내용인 것이다.

(중략) 위 실험에서 평가자는 높은 기준을 적용해 에세이를 평가했고 학생들이 그 기준에 부합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고 말했기에, 학생들은 자기 그룹의 지적 능력에 관한 부정적 고정관념에 따라 평가받지 않았다고 믿을 수 있었다.

– 위의 책, 218p.
출처: parentingforhappyfamilies.com



3.


‘자기 가치 확인’ 방법이 있다. 자기 가치 확인 이론은 스틸 교수가 1980년대에 전개한 이론이었다. 이 이론은 스스로를 선하고 유능한 존재로 간주하려는 욕망, 즉 ‘양심이 있고 능력이 충분’한 존재로 간주하고자 하는 욕망을 인간의 기본 욕구로 전제한다.


가령 어떤 사람이 중요한 문제에서 자신이 부정되었다는 것을 나타내는 자아상 위협을 느꼈을 때 한발 뒤로 물러나 더 크고 소중한 자아상을 확인할 기회를 준다면 부정적인 자기 합리화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때 “한발 뒤로 물러나 더 크고 소중한 자아상을 확인”하는 것이 ‘자기 가치 확인’이다.


사회심리학자인 제프리 코헨과 훌리오 가르시아가 자기 가치 확인 이론을 바탕으로 한 실험을 진행했다. 학업 능력과 관련해 낙인이 찍힌 학교 학생들이 대상이었다. 새 학기 시작 무렵, 그들은 교사들에게 일군의 실험 대상 학생들의 이름이 적힌 봉투를 건네달라고 부탁했다.


봉투 안에는 안내문이 들어있었다. 그중 무작위의 절반은 학생들에게 자신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예를 들어 가족 관계, 우정, 능숙한 악기 연주 등) 두세 가지를 적고 간략히 그 이유를 한 문단가량 적게 했다. 말하자면 자기 가치 확인 과정을 거치게 한 것이다. 나머지 절반은 그렇지 않았다. 그들에게 가장 중요하지 않은 가치와 왜 타인이 그것을 중시하는지 이유를 적으라고 적혀 있었다. 가치관에 대해 생각할 기회는 있었지만, 자신의 개인적 견해를 밝힐 수는 없었던 것.


연구자들은 학기 후반부에 후속 작업으로 몇 번 더 비슷한 글쓰기 시간을 가졌다. 그것이 전부였다고 한다. 자기 가치 확인은 성적에 영향을 주었을까?

그랬다. 그것도 매우 큰 영향을 끼쳤다. 자기 가치 확인 활동 3주 후가 지나자 흑인 학생들의 성적이 올랐다. 특히 학기 초에 가장 낮은 성적을 낸 학생들이 가장 큰 폭으로 향상했다. 자기 가치 확인 활동을 했던 수업에서뿐 아니라 다른 수업에서도 전보다 더 잘했다.

또 학기 전체 기간 동안 인종적 고정관념을 생각하는 빈도가 줄어들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통제 집단의 흑인 학생들에게 나타난 결과를 통해서도 자기 가치 확인이 낮은 성과를 극복하는 데 어떤 역할을 했는지 드러났다. 자기 가치 확인은 흑인 학생들의 성적 하락을 막거나 둔화시켰다.

– 위의 책, 231p.



4.


고정관념화한 학생들을 돕는 교사들의 ‘특별한’ 교육 방식이 있을까?


스틸 교수의 아내 도로시 스틸과 일군의 사회심리학자, 문화심리학자들이 관찰 실험을 했다. 33%의 라틴계, 32%의 아프리카계 미국인, 17%의 백인, 12%의 아시아인으로 이루어진, 대다수가 저소득층 가정의 자녀들이 다니는 한 초등학교 3, 4학년 학생들이 대상이었다.

관찰 결과 학생에게 정체성 안전을 느끼게 하고 학년 말 표준 시험에서 더 높은 성적을 내게 한 교사의 방식과 교실 문화 특성이 무엇인지 뚜렷이 드러났다. (중략) 효과를 낸 교사의 교육 방식은 다음과 같았다. 학생들과 적극 관계를 맺는 것, 더욱 학생의 입장에서 가르치는 것, 획일적인 엄격한 방식 대신 인종의 다양성을 교육 자원으로 활용하는 것, 가르치는 기술, 따뜻함, 학생들이 요청할 때 늘 시간을 내어주는 것 등이었다.

흥미롭게도 기초 실력을 강조하거나 하향식으로 의사를 결정하는 방식은 효과가 없었다. 도로시의 말에 따르면, 학생들에게 정체성 안전을 느끼게 하고 성적을 향상시킨 교사들은 “학생들에게 고정관념 위협감을 예시하는 신호들을 방지하고 그 대신 인종이나 성별과 관계없이 모든 학생이 스스로를 가치 있는 존재로 느끼게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 위의 책, 238p.



5.


멀리 돌아왔다. 학교에 ‘열등생’과 ‘문제아’는 없다! 그런데 그들은 왜 열등아와 문제아로 살아가는가. 우리 교사들은 이미 그 ‘정답’을 알고 있는지 모른다.


원문 : 정은균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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