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혐오와 비속어: 악의 없는 것들에 대해서

조회수 2017. 8. 8. 08:28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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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담이 아니라 진짜 많은 사람이 '여성혐오'라는 개념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1.


농담이 아니라 진짜 많은 사람이 ‘여성혐오’라는 개념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자신은 이성애자 남성이고 여자를 보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하는데 무슨 여성혐오냐고 반문하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그냥 좀 안타깝다.


모두가 뻔히 알고 있을 이야기. 여성혐오라는 개념은 ‘여성에 대한 확고한 편견’까지 확장되어 사용되고 있다. 말하자면 여성을 그냥 동등한 인간으로 보는 게 아닌 모든 행위를 포함한다. 심지어 여성숭배 또한 여성혐오라는 동전의 뒷면에 불과하다.


‘아름다운 뮤즈’로 찬사를 보내는 것은 상대를 대상화해서 착취하는 행위일 수 있고, “오오, 모성이여 어머니여!”라며 숭배의 대상으로 삼는 것 또한 여성을 동등한 인간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재생산의 수단, 자궁으로만 치환하는 행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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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상세히 알려주고 싶기도 하지만, 동시에 “자신이 이 단어를 제대로 된 맥락으로 사용하고 있는 건지 한 번쯤 확인해 보실 생각은 없으시냐”고 물어보고 싶기도 하다. 요새는 이 정도의 지식을 얻기 위해 굳이 여성민우회나 일다까지 접속할 필요도 없다. 한국어 위키백과에만 접속해도 나오는 정보 아닌가.


비슷한 이야기. “여성이 약자라는 말이야말로 양성평등에 반하는 이야기 아니냐. 우리는 동등한 존재고 동등하게 대우받아야 하는데, 여성이 약자니까 더 챙겨야 한다는 것부터가 시대착오적인 이야기다.”라고 이야기하는 분들은 당위와 현실을 헷갈리시는 것 같다.


실제로 그런 세상이 되어야 한다는 건 당위다. 그러나 지금의 세상에선 제도, 문화, 사회적으로 여성이 동등한 대우를 받는 것을 방해하고, 동등한 지위에 오르는 걸 가로막는 요소들이 허다하기 때문에 그 유리 천장을 깨기 위해 그들에게 힘을 실어줘야 하고 연대해야 한다는 건 현실이다.


사법제도를 이야기하고 있을 때 “인간에게 인간을 벌할 권리는 누가 주었는가”라며 종교의 영역으로 점프하면 급 피곤해지는 것처럼, 현실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거기에서 당위를 이야기하면, 아무래도 지칠 수밖에 없다.


더 화가 나는 건, 이렇게 특정 단어의 사회적 용법/개념에 대해 착각하거나, 당위와 현실을 헷갈려 하는 사람 중 대부분은 그저 해당 정보를 찾아보고 자신의 논리의 정합성을 점검하는 노력을 조금 게을리했을 뿐, 대단한 악의는 없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이다.


나쁜 뜻으로 한 말이 아닌데 비판을 받으니, 당장 내가 뭘 잘못 했는지 고민하기 전에 일단 화부터 나는 거겠지. 난 나쁜 사람이 아닌데 왜 다들 나보고 뭐라고 하는 건가 싶고.[1]

너무도 선량한 눈빛과 목소리로, 진심을 담아서, 뭔가 심각하게 잘못 알고 있는 이야기를 열심히 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고 있자니 그냥 지치고 슬프고 설명해 줄 힘도 없고 그렇다… 남자인 내가 이런데 생물학적 여성들은 어떻겠는가…

 

2.


‘병신’이라는 비속어를 쓰는 사람들에게 불편함을 호소하며 내게 장애인 가족이 있다고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은 “장애인을 비하하려는 의미가 아니었고, 그냥 순수한 의미로 비속어를 쓴 것이다.”라고 화급하게 해명을 하신다.


물론 혹시라도 내게 상처를 주었을까봐 화급하게 자신의 악의 없음을 해명해주는 이들에겐 감사함과 미안함을 같이 느낀다. 내가 괜히 악의 없는 걸 알면서도 분위기를 싸하게 한 건 아닌가 싶어서.


하지만 누가 그걸, 악의 없다는 걸 모르나. 뻔히 알지만 그럼에도 “병이 든 육신”에 비장애인을 빗대는 용법이 비속어가 된 것 자체가 그 단어를 ‘장애인은 열등하고 비장애인은 우월하다’는 가치판단에 기반해 사용하고 있는 걸 반증할 뿐이다.


아주 곱게 돌려 말해도 “장애인이라면 이런 부분에서 조금 서툰 걸 이해하겠지만, 넌 비장애인이면서 왜 그러냐”라는 내용을 두 글자로 거칠게 압축한 게 ‘병신’이란 단어고 ‘애자’라는 단어다. 그러니까 장애인은 당연히 비장애인들이 성취하는 ‘정상’ 수준에 미달하고 미숙한 존재라는 전제를 깔고 있는 것이다.


해서 그 단어로 장애인을 비하하려는 적극적인 의도가 없었다고 한들, ‘병신’이란 단어를 욕으로 소비하는 순간 이미 그것은 비장애인의 장애인에 대한 경멸과 멸시, 비하를 담는 일이 되어 버린다. 내가 설마하니 적극적인 의도가 없는 걸 몰라서 불편하다고 하겠는가. (요샌 아주 그냥 ‘장애인이냐’라는 표현 자체가 경멸의 언어가 됐더라만서도.)


아주 거칠게 비유해보자면 이렇다. 코카시안 인종인 누군가가, 운전을 못 하는 다른 코카시안인에게 “아오, 이 아시안아”라고 말한다면 어떨 것 같나.


“아시아인을 경멸하고 비하할 의도가 없었다. 하지만 아시안들이 평균적으로 운전을 못 하는 건 사실 아니냐”라고 이야기를 하면 당장 기분 나빠하실 분들이, ‘병신’이나 ‘애자’ 같은 단어들을 쓸 때는 꼭 “장애인을 비하할 적극적인 의사는 없었다.”라는 말씀들을 하시더라.

아시아인이 평균적으로 눈이 찢어진 건 사실이지 않느냐?

그러니까 당위와 현실, 개념과 맥락을 헷갈리지 말자고, 지친 마음으로 간청하고 싶다… 그냥 오늘 든 생각들이 그렇다. 대단한 악의 같은 거 전혀 없으신 거 알겠는데, 그래서 더 슬프고 아프다고…


원문: I AM TINTIN


1. 이러한 이유로, 여성을 뮤즈로 비유한 것에 대해 누군가가 불편해하자 자신이 틀렸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꾸준히 배워야 한다는 생각에 그 불편함의 이유는 무엇인지를 적극적으로 묻고 성의있게 경청한 다음 스스로의 오류를 수정하겠다고 이야기한 샤이니의 종현이 정말 대단한 것이다… 나도 그렇게 살아야 하는데 ㅠ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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