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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영화의 미학은 ‘모순’

<옥자>와 함께 다시 돌아보는 봉준호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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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이 기사에는 작품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 <옥자>뿐 아니라 다른 봉준호 감독의 작품에 대해서도 자세한 내용이 기술된 부분이 있으니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옥자>와 함께 다시 돌아보는 봉준호 영화


봉준호 감독의 필모그래피를 돌아보면 그의 영화들은 하나의 장르나 스타일로 규정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장르로는 <플란다스의 개>에서 블랙코미디를, <살인의 추억>과 <마더>에서는 스릴러를, <괴물>과 <설국열차>에서는 SF를 다뤘다.


등장인물도 소시민인 한 가정의 아버지와 어머니부터 형사,검사,교수 등 전문직까지 이야기의 소재만큼 다양하다. 심지어 이번에는 동물이 주인공이다.


그의 영화들이 전하는 이야기와 메시지는 모두 다르지만, 그의 영화들 속에는 공통으로 담긴 코드가 있다. 그게 바로 ‘봉준호 스타일’로 불릴 수 있는 몇 가지 특징들이다.


‘봉테일(봉준호+디테일)’이란 별명답게 매우 세심한 연출과 ‘삑사리의 미학’이라고 불리는 순간적인 실수가 자아내는 웃음 등이 그 특징들인데, 오늘은 그의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또 하나의 코드 ‘모순’에 초점을 맞춰 그의 작품들을 돌아본다.

 

#1 <옥자>


강원도의 산골에서 미자(안서현)는 슈퍼돼지 옥자와 함께 자랐다. 어느 날 세계 최대의 식품업체 ‘미란도’에서 옥자를 뉴욕으로 데리고 간다. 미자는 옥자를 구하기 위해 혈혈단신으로 산골을 떠나게 된다.

<옥자>는 흔히 우리나라의 3대 멀티플렉스라고 불리는 상영관에서 개봉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흥행몰이를 하고 있다. 봉준호라는 브랜드의 힘과 함께 수많은 헐리우드 스타들의 이름값도 큰 몫을 했으리라. 봉준호 감독은 신작 <옥자>에서도 군데군데 모순된 설정들을 심어놓았다. 한 번 살펴보자.


미자는 옥자를 지킬 수 있다면 지구 끝까지라도 쫓아 갈 만큼 옥자를 사랑한다. 미자의 할아버지 희봉(변희봉)은 옥자를 떠나보낸 손녀 미자를 달래기 위해 손녀가 가장 좋아한다는 요리 닭백숙을 끓여준다. 옥자에 대한 사랑과 동물 그 자체에 대한 사랑은 조금 다른 것일까. 옥자를 그 누구보다 아끼는 미자가 제일 좋아하는 게 닭백숙이라니.


그리고 영화의 절정부에서 옥자를 구하기 위해 미자는 돼지모형 순금을 제시한다. 자본주의와는 거리가 멀던 시골 소녀가 자본주의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한다는 점 또한 인상적이다.

그 외에 동물 프로그램 진행자 조니(제이크 질렌할)는 옥자의 고기 샘플 추출을 직접 진행하는 모순된 잔인성을 보여준다. 옥자를 구하기 위해 미자를 돕는 동물보호 전선의 리더 제이(폴 다노)는 조직의 원칙을 어긴 조직원 케이(스티븐 연)를 무차별 폭행한다. 그들의 모토가 정확히 나오진 않지만 ‘모든 생명은 소중하다’와 같은 근원적인 문장이지 않을까 싶다. 인간은 이렇게도 위선적이고 모순적이다.

 

#2 <지리멸렬>


1994년에 나온 봉준호 감독의 두 번째 단편영화 <지리멸렬>을 본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이리저리 흩어지고 찢기어 갈피를 잡을 수 없음’이란 사전적 의미를 지니고 있는 제목처럼 영화는 31분이란 짧은 러닝타임 속에서 앞뒤가 맞지 않는 세 명의 인물을 그려낸다.

명문대에서 사회심리학을 가르치는 고상한 이미지의 한 교수는 도색잡지를 즐겨보는 자신만의 취미를 가지고 있다. 한 신문사 논설위원은 아침마다 조깅하며 남의 집 앞에 놓인 우유를 늘 훔쳐 먹는다.


촉망받는 엘리트 검사는 술에 만취해 노상 방뇨를 하려다가 경비원에게 들키게 된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에는 이 세 명이 TV 토론 프로그램에 나와 사회에 만연하는 문제들에 관해 이야기를 나눈다. 이 얼마나 지리멸렬한 모순인가.

 

#3 <플란다스의 개>


동명의 애니메이션 <플랜더스의 개>는 주인공 네로가 강아지 파트라슈와 함께 비극적 결말을 맞이하지만, 영화 <플란다스의 개>에서는 윤주(이성재)와 현남(배두나)이 위기에 빠진 강아지를 구출해낸다. 두 작품의 교집합이라고 한다면 같은 제목이라는 것을 제외하고는 찾기가 힘이 든 설정이다.

네로의 파트라슈에 대한 사랑과 현남의 강아지를 구출해내겠다는 애정은 비슷해 보이긴 하지만 그 방향이 매우 다르다. 


네로와 파트라슈는 마치 미자와 옥자같이 언어를 초월하는 공감 능력을 갖추고 있지만 현남은 그 강아지를 구출해서 TV에 나와 유명해지는 것이 목표다. 현남은 강아지가 아닌 화제의 인물에 오르는 본인의 모습을 사랑한 것이다.

 

#4 <살인의 추억>


박두만(송강호) 형사는 미신,직감을 믿고 그에 따라 구타로서 용의자에게 위압감을 주는 전형적인 구식 형사다. 서울에서 온 서태윤(김상경) 형사는 가방끈도 길고 수사도 과학적으로 하는 새로운 세대의 형사를 상징한다. 영화는 화성연쇄살인사건의 범인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두 형사의 계속된 대립을 그려낸다.

하지만 극이 흘러감에 따라 가장 유력한 용의자로 나오는 박현규(박해일)의 DNA 검사 결과를 보고 서태윤은 분노를 억누르지 못하고 감정적으로 박현규를 구타한다. 오히려 박두만이 그를 이성적으로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보인다(그 유명한 “밥은 먹고 다니냐?”라는 대사가 나오는 그 테이크다).


봉준호 감독은 두 주인공의 이미지가 상호역전되는 모순의 순간을 그리며 관객들의 몰입도를 높인다. 영화 초반부 박두만이 취조실에서 짜장면을 입에 머금은 채 TV 드라마 <수사반장>의 음악을 흥얼거리는 장면 또한 <살인의 추억>의 상징적이고 모순적인 장면 중 하나다. 구타와 직감에 의존하는 구시대의 산물인 형사들이 독재정권 속 실추된 이미지를 회복하기 위해 기획된 <수사반장>을 즐겨보는 점 또한 아이러니하다.

 

#5 <괴물>


“근데 사망…. 사망잔데요, 사망을 안 했어요.” 괴물의 바이러스 보균자로 의심되는 박강두(송강호)는 괴물에게 잡혀간 딸 현서(고아성)로부터 온 전화를 받고 격리실에서 경찰과 의사에게 아직 딸이 죽지 않았다고 자초지종을 설명한다.


하지만 강두에게 돌아오는 대답은 정신과 치료도 추가로 받아야 한다는 진단. 영화에서 한국 정부와 미군은 괴물을 잡기 위해 그들 선에서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것처럼 묘사된다.

그러나 현서의 가족에게는 국가 자체가 ‘괴물’인 셈이다. 아무도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주지 않는다.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힘을 가진 가족이 괴물을 찾아 나선다. 괴물을 잡으려고 하려는 이들이 괴물이 되어버린 상황.


본의 아니게 우리는 영화가 개봉한 지 한참 지난 2014년 4월의 참사 때 영화가 아닌 실제로 ‘국가는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가’에 대한 질문에 봉착하기도 했다.

 

#6 <마더>


엄마 혜자(김혜자)는 아들 도준(원빈)을 끔찍이도 아낀다. 아들이 지적으로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떨어지는 부분이 있어서 그런지 그 애정은 더욱 크다. 어느 날 동네의 한 소녀가 살해되고 아들이 범인으로 몰리게 된다. 아들을 위기에서 구해내기 위해 엄마는 변호사도 믿지 않고 직접 일을 해결하려 나선다.

하지만 억울한 아들을 구해주려 했던 엄마는 충격적인 사실에 당도한다. 아들이 정말로 범인이었던 것. 엄마는 아들에게 어려서부터 바보란 말을 들으면 참지 말라고 강조했다.


엄마의 말을 잘 따르는 착한 아들은 실제로 피해자인 소녀에게 바보라는 말을 듣게 되고 우발적으로 살인을 하게 된다. 아들이 주눅 들지 않고 당당하게 살게끔 하기 위해 시작된 선의의 교육이 비극을 불러일으킨 셈이다.

 

#7 <설국열차>


머지않은 미래의 지구는 지구온난화에 대한 대책으로 살포했던 냉각제의 부작용으로 다시 빙하기를 맞게 된다. 자급자족 시스템을 갖춘 거대한 열차에 탑승한 사람들만이 지구상의 유일한 생존자가 되었다는 설정으로 영화는 시작한다.

기차의 설계자이자 주인인 윌포드(에드 해리스)는 인류가 존속하기 위해 설국열차를 계속해서 달리게 해야 한다. 열차 앞칸의 사람들은 부유하고 모든 쾌락을 즐길 수 있다. 꼬리 칸은 반대다. 폭력과 억압을 당하고 아이를 빼앗기기도 한다.


인류의 존속과 균형을 위해 윌포드와 그의 세력들은 불평등과 불균형을 수반시킨다. 봉준호는 그들이 말하는 아름다운 균형이란 가진 자들의 만족과 안정을 위해 누군가의 희생과 불균형이 뒤따르는 것이라는 ‘균형의 모순’을 드러낸 것이다.

 

모순적이지만 인간적인


결국, 우리는 봉준호 감독의 영화들을 통해 우리네 인간 군상이 모순된 개인 또는 사회의 모습을 인식하지도 못한 채, 때로는 인식을 하고도 모른 채 살아가고 있다는 점을 읽어낼 수 있다.


그렇다면 이 모순됨이 인간들의 전형이고 일반화된 이미지라고 했을 때, 인간답게 산다는 것과 모순된 삶을 사는 건 어느 정도 동치 되고 양립될 수 있는 말일까? 봉준호 감독의 영화는 관객들에게 계속해서 이 질문을 다른 방식으로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원문: 고덴의 영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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