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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복제양 ‘돌리’가 태어났다

돌리의 탄생과 생명복제의 윤리 문제
ㅍㅍㅅㅅ 작성일자2017.07.12. | 469  view

1996년 7월 5일, 세계 최초의 포유동물 복제로 새끼 양 돌리(Dolly)가 태어났다. 영국 로슬린연구소의 이언 윌머트 박사와 키스 캠벨은 6년생 양의 체세포에서 채취한 유전자를 핵이 제거된 다른 암양의 난자와 결합시킨 뒤 이를 대리모 자궁에 이식하여 세계 최초로 포유동물을 복제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돌리는 여섯 살짜리 핀란드의 양의 유선(乳腺) 세포 체세포를 스코틀랜드 양의 난자와 핵을 치환해서 만들었다. 수정란 착상을 276번이나 시도했지만 계속 실패하다가 277번째 수정란 착상이 성공해서 돌리가 태어났다.


스코틀랜드 양의 가슴에 있는 세포를 이용했다고 해서 큰 가슴으로 유명한 미국의 컨트리 가수 돌리 파튼(Dolly Parton)의 이름을 붙였다.

 

돌리의 탄생과 생명복제의 윤리 문제

미국 가수 돌리 파튼

신의 영역으로 알려져 왔던 생명의 탄생에 인간의 과학 기술이 관여함으로써 이루어진 생명복제는 적지 않은 윤리적 문제를 야기할 수밖에 없다. 유전자 복제의 기술로 동일한 유전 형질을 가진 생명체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이 기술은 마침내 인간복제라는 금단의 문제까지 논의 선상에 끌어냈다.


수정란을 나누어 생명을 복제하는 방법은 이미 1981년부터 쥐를 시작으로 양, 토끼, 소 등을 복제하는 데 성공한 바 있었다. 그러나 완전히 자란 다른 포유동물의 세포로부터 복제된 포유동물은 돌리가 처음이다. 마침내 ‘체세포를 이용한 복제기술’이 성공한 것이었다.


이듬해인 1997년 2월에는 이 체세포 이용 복제 기술을 응용하여 인간 유전자를 지닌 몰리(Molly)와 폴리(Polly)를 복제하여 화제를 모았다. 이를 통하여 젖에서 혈우병 치료제를 생산하는 양을 만들 수 있었는데 로슬린연구소의 복제기술은 동물을 복제하여 인간의 질병을 치료할 가능성을 연 셈이었다.


난치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점에서 복제기술은 매우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지만 이에 수반되는 윤리 문제는 만만치 않은 것이었다. 동물복제에 관한 실험과 시도는 마침내 인간복제에 대한 논쟁으로 치닫게 된 것이었다.


종교계를 중심으로 확산된 인간복제에 관한 논쟁은 논란의 여지가 없는 윤리 문제였다. 생명의 탄생은 신의 영역인데 그것을 인간이 조작할 수 있느냐는 근본적 문제 제기부터 인간 복제로 벌어진 복잡한 문제(인간의 존엄성 훼손, 상속 등의 법적 문제) 등에 대한 답을 찾기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것이었다.


돌리가 같은 실험을 거친 난자 277개 중에서 유일하게 성공한 케이스라는 점도 인간복제 실험을 반대하는 논거가 되었다. 이런 논란은 결국 유네스코는 복제기술 이용에 대한 윤리협약을 마련했고, 미국 등 여러 나라에서도 규제 법령을 마련하게 되기에 이르렀다.


돌리는 2003년 2월 노화에 따른 폐 질환으로 복제한 지 6년 6개월 만에 안락사 시켰다. 돌리의 탄생으로 생명 복제에 대한 문제가 강력히 환기되었던 것 때문일까. 2006년, 이언 윌머트 교수는 자신이 “돌리를 만들지 않았다”고 고백해 과학계에 파문을 던졌다.

안락사 시킨 돌리의 시신은 스코틀랜드 국립박물관에 기증되어 박제되었다.

윌머트는 자신이 “양 복제와 관련한 기술을 개발하거나 실험을 직접 실행하지 않았고, 단지 전체 연구를 감독하는 역할을 했다”고 실토하고 “논문의 공동 저자인 노팅험대학 케이스 캠벨 교수가 돌리 탄생에 66% 정도 기여했다”며 자신에게 쏟아진 찬사는 과장된 것이라고 말했던 것이다.

 

한국, 황우석 사건의 경우


우리나라에서 생명 복제 문제는 2005년에 일어난 이른바 ‘황우석 사건’으로 절정에 치달았다. 이 사건은 그해 11월 MBC의 사회고발 프로그램 이 서울대학교 교수 황우석의 2004년 <사이언스> 게재 논문에서 사용된 난자의 출처에 대한 의문을 방송하면서 촉발되었다.


그러나 피디수첩이 문제 삼은 것은 생명복제의 윤리에 관한 문제라기보다 연구자의 윤리 문제였다. 1999년 체세포 복제 방식을 통하여 세계에서 5번째로 복제젖소(‘영롱이’)를 만드는 데 성공(1999)한 황우석은 2004년과 2005년에는 각각 사람의 체세포를 복제한 배아 줄기세포 배양에 성공하였다고 <사이언스>에 발표하여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았다.


2005년, 황우석은 동료 이병천 등과 함께 스너피(Snuppy)라는 이름의 아프간하운드 종 개를 최초로 복제했다고 과학잡지 <네이처>에 발표하면서 또다시 세계적 관심을 모았다. 다른 포유류에 비해 어렵다고 알려져 있는 데다 인간과 유사한 유전병을 가진 개의 복제가 가능해짐에 따라 난치병 연구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되면서 그는 일약 과학 영웅으로 떠올랐다.

연구원의 난자 이용을 시인하며 책임을 지겠다고 발표하며 대국민사과를 하고 있는 황우석.

그러나 피디수첩의 보도를 통해 논문조작 의혹이 제기되면서 그의 명예와 권위는 서서히 추락하기 시작했다. 조사에 착수한 서울대에선 2006년 최종보고서를 통해 황우석이 <사이어스>에 발표한 ‘인간 체세포 복제 배아 줄기세포 배양’이 허위라고 발표한다. <사이언스>도 잇따라 두 논문을 취소했고 황우석은 서울대 교수직에서 파면되었다.


그는 검찰에 의해 사기, 업무상 횡령, 난자 불법매매(생명윤리법 위반) 등으로 기소되었지만 법원은 사기는 무죄, 횡령은 일부 유죄, 생명윤리법 위반은 유죄로 판단하여, 최종 징역 2년 집행유예 1년 6월을 선고하였다.


황우석은 지금 일부 지지자들의 도움으로 해외에서 연구 활동을 다시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3년 5월 10일에는 내셔널 지오그래픽 채널에서 황우석의 매머드 복원 프로젝트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방영하기도 했다. 좌절을 거듭했던 그의 연구는 지금도 진행 중인 것이다.


2006년 서울대에서 파면된 뒤 황우석이 제기한 파면 취소 소송은 9년여의 공방 끝에 2015년 12월 대법원의 최종 선고로 확정되었다. 대법원은 한 차례 파기환송 끝에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를 파면한 서울대의 처분은 정당하다고 판결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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