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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따금 사라진 달동네를 생각한다

조회수 2017. 7. 11. 15:47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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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점점 내 옛것들과 유리되어가고 있다.

사람의 때가 탈만큼 타서 낡아 버린 것. 색은 바래서 무채색이 되어버렸고 어느 한구석은 허물어져서 종종 누군가의 힘으로 지탱해줘야 버틸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어떤 낡은 소품은 종종 반짝거리고 예쁜 것들보다 더 큰 영감을 준다.


생존을 관찰하는 것은 유의미하다. 정처 없이 비행기에 올라 도착한 이국에서, 사람 속으로 숨어버릴 때가 있다. 누군가의 생존이 역동적이든 혹은 게으르든 나름의 의미는 있다. 적어도 관찰자의 시선에선 말이다.


굳이 의미를 찾아보려 애쓰는 자들에게 무엇인들 의미되지 않을 것이 있을까 하는 냉소적인 덧붙임을 하지 않더라도 나의 세계와 타인의 세계를 섞어보려는 시도는 어떻게든 사소한 결과물을 만들어 낸다.

어릴 적 <서울의 달>이라는 드라마를 본 것 같다. 드라마의 줄거리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지금 기억나는 건 딱 한 장면, 술에 취한 최민식이 비틀거리며 달동네를 헤매는 모습이다.


그 장면이 문득 떠올랐던 것은 꽤 최근의 일이다. 아마 익선동 골목의 쪽방촌이 전시되고 가난이 관광으로서 팔리고 있으며, 사람들이 몰리자 월세도 덩달아 올랐고 그래서 사람들이 쫓겨나고 있다는 내용의 기사를 보았을 때였을 거다. 나는 그걸 보고 달동네가 갑자기 그리워졌다.


재개발의 광풍이 불었던 90년대와 2000년대 초를 지나며 달동네는 거의 사라졌다. 그곳에는 세련되게 칠을 한 콘크리트 아파트가 세워지거나 그보다 더 높은 층수의 주상복합 건물이 채워졌다. 나는 참 그게 멋이 없어보였다. 한강변을 끼고 세워진, 그래서 조망권 만큼의 웃돈을 더 얹어 받는 아파트들이 미웠다.


한강의 소유권은 그렇게 쪼개져 팔려나갔고 나는 내가 팔지도 않은 한강을 그 아파트들에게 빼앗겼기 때문에 강 위에 올라 한숨을 토해내고 싶을 때 마다 저 못생긴 콘크리트 건물도 같이 보아야 함에 짜증이 났다.

달동네가 문득 그리워졌던 이유가 내 어릴 적 가난했던 삶을 추억하고 싶어서는 아니었다. 어렴풋하게 기억은 난다. 몇십 보를 걸어야 보였던 화장실, 뱀 껍질같이 생긴 녹색 고무호스와 빨간색 다라이.


그런 곳과 그보다 조금 나은 곳을 전전하다가 지은 지 십오 년이 넘은 빌라로 이사를 갔던 때는 내가 중학생이 되었을 무렵이었다. 그때의 기억은 겨우 노력해야 몇몇 장면만 떠오를 만큼 인상적인 게 아니었으며, 많이 어리기도 했다. 사실 조금은 구질구질하기도 해서 굳이 추억할 이유는 없었다.


운 좋게도 삶의 질은 지속적으로 괜찮아졌다. 나는 용돈이 모자라 종종 끼니를 굶긴 했지만 다행이 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고 죽네 사네 온갖 하소연을 들릴 듯 말 듯 한 공간에 폭언처럼 퍼붓긴 했지만 어쨌든 취직도 되었다. 그동안 엄마는 비정규직으로 식당일을 전전하던 생활을 멈추고 작은 가게를 냈다. 종종 방에서 혼자 큰소리로 서러워 울던 엄마는 차도 사고 집도 샀다. 그 즈음부터 엄마는 더 이상 울지 않았다.


달동네에서 살았던 기억은 이제 내 삶이 아니게 되었다. 추억도 아니고 내 삶도 아니게 된 그곳이 문득 그리워졌던 이유는, 이제는 사라진 어떤 낡고 이질적인 풍경에 대한 갈망에 가까웠던 것 같다. 이제는 나의 삶에서도, 서울의 모습에서도 아득해진 그 낡은 건물과 그곳에 살던 사람들은 사라졌다.


익선동의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을 써냈던 기자는 그곳에 몰린 사람들이 ‘가난 포르노’를 즐기러 오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나 과한 이름붙이기라고 생각했다.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사람들은 분명히 있었을 거다.


하지만 나는 그들이 떠오름과 동시에, 도시의 매력이 척박한 서울에서, 분에 맞는 소비를 하기 위해 손을 꼭 붙잡고 쉼 없이 조잘대는 연인들도 떠올랐다. 사람들이 그곳을 찾는 이유가 ‘가난을 소비’하기 위함보다 ‘생경함을 소비’하기 위함에 가까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이유 없이 사진에 찍혀대고 삶을 강제로 전시당하는 사람들에게 그 차이가 무슨 상관이 있겠냐마는, 문제의 진단은 분명히 ‘가난 포르노’와는 결이 다를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달동네에 산 적이 있지만 ‘달동네의 대변자’가 되어본 적은 없었다. 이제는 ‘고만고만하게 가난한 청년세대의 대변자’는 되어 있었다. 그래서 나는 달동네의 관찰자로서 내가 당사자이기도 한 청년세대를 애써 변호했다. 그때 그 달동네에 살던 나에게 지금의 나는 타인이었다.

요새 나는 그 청년세대였던 나와도 멀어지고 있다. 이제는 500원을 아끼기 위해 메뉴를 바꾸는 고민은 잘 하지 않는다. 88만원 세대를 욜로족이 대체했던 정확히 그 시점부터 나는 88만원 세대가 아닌 욜로족이 되었다.


가난하고 고통 받는 청년들의 숫자는 여전할 텐데, 사회는 그들에게 별로 관심이 없다. 한 때 많은 말을 쏟아냈던 나도 이제는 불과 몇 해 전인 그 과거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정말 많이 가난해서, 현재를 살아내기도 벅찰 때는 어떤 글도 쓸 여유가 없었다. 현재를 겨우 살아낼 수 있었을 때야 비로소 나는 ‘미래가 없는 청년들’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여전히 불안하지만 그나마 미래에 대해서 실낱같은 상상을 할 수 있는 지금은 이제 타인이 되어가고 있는 나는 그때의 나에 대해 이야기하기가 머뭇거려진다.


가난 포르노라는 말은 종종 가슴 한 구석을 쿡쿡 찌른다. 비단 익선동 뿐만이 아니라 내가 내 세계라고 주장했던 많은 것들은, 말 그대로 나를 위한 세계만은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 때가 있다.


내가 달동네를 그리워함은 거기서 사라진 사람들을 고발하고 싶어서였을까? 아니면 영감을 얻고 싶어서였을까? 나는 지워짐을 경험했던 과거의 내 삶을 지금에서라도 증언하고 싶어서였을까?


아니면 그걸 재료로 사용할 수 있을 만큼의 경험을 한 인간으로서 나의 영감을 전시하고 싶어서였을까? 뒤엉킨 욕망들을 풀어내 어느 하나 버리기도 쉽지 않고, 부정하기도 쉽지 않다.

이따금 사라진 달동네를 생각한다. 반짝거리는 건물 몇 개로 숨겨버린 사람들의 일상을 상상한다. 그들은 어디로 갔을까. 사람들의 죄책감을 덜기 위해 죄다 숨겨버리고 모른척하는 사회는 정상일까?


아픈 것들 투성인 세상에서 모두가 아닌 누구들을 위해 굴러가며 ‘비정상의 삶’을 죄다 쇼윈도 안아 처박아버린 쇼비즈니스의 세상이 몽땅 다 가식 같이 느껴질 때도 있다. 그러면서 그 가식에 휩쓸려가는 나를 보며 씁쓸함을 느낀다.


나는 점점 내 옛것들과 유리되어가고 있다. ‘그런 사람이 되지 말아야지’라고 했던 수년 전 다짐도 아득해져간다. 그저 그때의 감정을 단단히 붙잡고 있기도 벅차다. 나는 어쩌면 지금도 ‘죄책감이 든다’는 말 정도로 갈음하려고 하는 지도 모른다.

원문: 백스프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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