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왜 나를 사랑하지 않는가

조회수 2017. 7. 8. 12:06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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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시차는 아픔을 낳기 마련이다.

현대 사회에서 가장 잘 팔리는 가치는 ‘사랑’이다. 사랑의 상품화는 낯설지 않다. 밸런타인데이부터 픽업 아티스트까지 사랑은 다양한 형태로 생산되고 소비돼 왔다.


기본적으로 사랑은 대중과 동떨어질 수 없는 가치로, 형태는 사람마다 다를지 몰라도 누구나 사랑을 갈구하고, 사랑을 한다. 보편화된 가치이기에 감정이입이 쉽다. 감정이입이 쉬운 만큼 사랑의 상품 가치는 올라간다.


사랑의 상품 가치가 극대화되는 영역은 무엇일까. 한국 드라마는 돈 냄새를 맡고 멜로를 쫓는다. 추세가 많이 달라졌다 해도 사랑 요소가 빠진 드라마는 찾기 어렵다. ‘멜로는 어떻게든 끼워 넣는다’가 공식이 된 지 오래다.


멜로가 닳고 닳은 영역이 됐을지라도 한국 드라마는 국경을 넘어 인기를 끈다. 주인공을 앞세워 시청자의 감정이입을 끌어올리기 때문이다. 드라마뿐이 아니다. 영화, 소설 등 주인공이 있는 창작 콘텐츠에서 사랑은 더 빛을 발한다.

백영옥 작가의 장편소설 『애인의 애인에게』도 감정이입을 통해 독자를 유혹한다. 한 명의 남자 ‘조성주’를 사랑하는 세 명의 여자가 이야기를 끌고 나간다. 남자를 짝사랑하는 ‘정인’, 남자와 결혼했지만 사랑은 받지 못한 ‘마리’, 그런 남자의 사랑을 받는 또 다른 여자 ‘수영’.


백영옥 작가는 자신의 소설이 읽히는 이유를 이렇게 진단했다.

저는 놀랐던 게 독자 반응이에요. 저는 이 책이 (독자들에게) 안 읽힐 거라 걱정했거든요. 스토리가 강한 것도 아니고, 캐릭터가 튀는 게 아닌데 사람들이 (제 소설을) 쉽게 소화하고, 공감할 수 있는 게 뭔지 생각해봤어요. (독자들이) 어떤 특정 인물에 감정이입을 해서 제 소설이 읽히는 것 같아요.



‘사랑의 시차’로 나뉘는 관계의 정의


지난 3월 15일 홍대 빨간책방에서 인터파크가 주최한 백영옥 작가의 북콘서트가 열렸다. 이날 북콘서트를 통해 소설 『애인의 애인에게』 등장인물의 관계 속을 더 세밀하게 들여다볼 수 있었다. 

‘백영옥 작가와의 만남’ 현장.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하는 일이 동시에 가능할까’. 이 소설의 카피다. 생텍쥐페리의 소설 『어린 왕자』에서 따왔다고 한다. 소설 카피가 등장인물의 관계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관계의 방향은 ‘사랑의 시차’로 설명할 수 있다. 누가 누구를 먼저 사랑했는가. 네 사람은 사랑의 시차에 따라 엇갈리고, 움직인다.

소설의 결론만 말하자면 이 소설 속 주인공 모두 다 안 돼요. 다 어긋나거든요. 사실 서로 동시에 좋아하는 일은 잘 일어나지 않아요. 사랑은 시차가 생기기 마련이거든요. 먼저 좋아하는 쪽과 나중에 좋아하는 쪽이 있고. 먼저 끝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나중에 끝나는 사람이 있어요.

사랑의 시차에 따라 등장인물이 놓인 상황은 달라진다. 우리는 우리가 축적해온 삶의 경험에 따라 등장인물 중 누구라도 될 수 있다. 누군가를 짝사랑 한 기억이 있는 사람은 ‘정인’이, 누군가를 온전히 가지지 못한 결핍이 있으면 ‘마리’가, 누군가에게서 엇나간 사랑을 받아 본 기억이 있다면 ‘수영’이 될 수도 있다.



빛을 보려면 어둠으로

인간은 각자의 사랑을 할 뿐이다. 나는 나의 사랑을 한다. 그는 그의 사랑을 한다. 내가 그를 사랑하고, 그가 나를 사랑할 뿐, 우리 두 사람이 같은 사랑을 하는 것은 아니다. 그 사실을 깨닫자 너무나 외로워 내 그림자라도 안고 싶어졌다.
『애인의 애인에게』를 낭독하는 백영옥 작가.

사랑의 시차는 아픔을 낳기 마련이다. ‘어둠 속에서 어둠을 보는 법에 대한 책’, 작가가 내린 이 책의 정의다. 각자 다른 방향을 보는 사랑에 지친 네 남녀의 서사는 어둠을 향해 치닫는다. 소설은 독자들에게 어둠 속에서 어둠을 볼 줄 알아야 더 밝을 빛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을 깨우치게 한다.


무엇이 어둠이고, 무엇이 빛인지 아는 것. 그리고 알면서도 고통 속으로 들어가는 일이 필요하다. 독자들의 감정이입은 여기서 최고조에 이른다. 현실에서는 누구나 어둠으로 들어가길 꺼린다. 하지만 주인공과의 감정이입을 통해 자연스럽게 어둠과 접하게 된다.


작가는 “빛을 보려면 어둠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어떻게 보면 우리가 쉽게 할 수 없는 일이지만 소설을 읽으면서 못해본 걸 끝까지 해보는 것”이라며 “그걸 체험하면서 (독자들이) 느끼는 카타르시스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소설 속에는 어둠을 극복한 이후의 그들이 등장하지 않는다. 그들은 행복해질 수 있을까. 작가는 “그들이 새로운 걸 찾아내거나 방법을 찾아낼 거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아직 부족하다면, 우리는 소설 속 한 구절을 통해 결말을 짐작할 수 있다.

사랑이 끝난 후에야 우리가 사랑의 시작을 가늠해볼 수 있다는 것, 사랑이 끝났을 때야 우리가 사랑에 대한 오해를 넘어 이해의 언저리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 사랑이 끝났을 때만이 우리는 정확한 사랑의 고백을 남길 수 있다는 것 말이다.

원문: BOOKLOUD / 필자: 김다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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