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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종보다 더 걱정되는 것은 학종 다음의 셀프학종

조회수 2017. 6. 30. 09:1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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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대학교는 생활기록부도 없고, 담임 선생님도 없다는 것이다.

나는 학종(학생부 종합전형)에 대해 긍정적이다. 그런데도 나에게는 학종에 대해 우려가 있다. 여기서 내가 우려하는 것은 대학 입학을 위한 학종이 아니다.


학종은 대학 입학 이후에도 계속된다. 이미 우리 사회가 특정 대학에 들어갔다고 해서 대단한 프리미엄이 생기지 않는 상황이 되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대학 졸업한 다음 취업을 하려 할 때 , 공무원 시험을 제외하면 결국 대부분 괜찮은 기업의 신입사원 선발방식은 학종과 매우 비슷하다는 것이다.


어쩌면 기업이 먼저 하고, 이게 학종으로 내려온 것일 수도 있다. 어쨌든 대입과 신입사원 선발방식은 동기화될 수밖에 없다. 80년대의 신입사원 선발방식 역시 학력고사 방식의 일제고사였다.


지금은 학종의 시대. 일자리를 얻으려면 좋건 싫건 학종 방식에 익숙해져야 한다. 문제는 대학교는 생활기록부도 없고, 담임 선생님도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취업을 하기 위한 스펙 관리와 자신을 드러내 보일 각종 자료와 기록은 본인들이 알아서 챙겨야 한다. 셀프 학종이라고 할 수 있다. 기업이 이런 방식으로 사원을 뽑는 까닭은 시험과 실력의 상관관계를 이제 믿지 않기 때문이다. 기업은 오래된 관행, 오래된 믿음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도와주고 이끌어주는 선생님이 없는 이 셀프 학종에서 학생들은 비로소 가정의 사회적 경제적 지위가 얼마나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지 실감한다. 자소서 한번 쓰기 위해, 면접 대비하기 위해, 그리고 각종 스펙 디자인하기 위해 거액의 컨설팅을 받고 레슨을 받는 것은 흔하디흔한 일이다.


그걸 뒷받침할만한 경제력이 안 되는 가정의 학생은 결국 이 땅에 남아있는 마지막 학력고사 모델 ‘공무원 시험’에 매달린다. 신림동 고시촌과 노량진 고시촌의 그 엄청난 차이….. 물론 기업은 기업대로 학생의 역량을 평가하고 싶지, 부모의 서포트 능력을 평가하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경제력으로 치장된 후광을 벗기기 위한 갖가지 압박 면접 기법 등을 개발하지만, 썩 성공적인 것 같지는 않다.


그런데 공무원 중에서 유독 교사는 학종 방식으로, 아니 수능 정시+학종 방식으로 선발한다. 교사가 되기 위한 길은 실로 장대하다.


중학교 때 부터 진로를 세워 두고 대학 졸업할 때 까지 지속적으로 관리하고 준비하지 않으면, 또 대학교 가서도 사교육까지 받지 않으면(이게 또 엄청 비싸다), 교사 되기 어렵다.


공무원 시험하고는 아예 그 출발부터 다르다. 대학교 졸업할 무렴, “그래, 난 교사가 되겠어” 이렇게 결심하고 머리 싸매고 공부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다.


결국, 저 기나긴 코스에 필요한 정보를 많이 얻고, 그 과정에 들어가는 비용을 충당할 수 있는 집안의 자녀들은 교사라는 일자리를 차지하고, 안되는 집안의 자녀들은 기간제 교사를 전전하는 장수생이 될 가능성이 크다. 학교의 정규교원/비정규교원의 문제가 자칫 잘못하면 계급문제와 중첩될 위험까지 있다.

좋지 않다. 삼성전자 직원이야 출신계층이 무엇이건 상관없다. 일만 잘하면 되니까. 하지만 교사는 다르다. 교사는 공화국을 대변하는 존재이며, 세속의 성직자다. 그러니 교사 집단 자체가 그 사회를 대변할 수 있는 보편성을 가져야 한다.


특정 계층, 그것도 상류 계층에 치우친 교사집단을 가진 나라는 국회 대신 귀족원을 가진 나라만큼이나 위태롭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어느새 그런 현상이 점점 심해지는 것 같다. 더군다나 명색이 국립인 교대는 일반 대학보다 각종 기회 균등 계통 선발 비율이 절대 높지 않다.


교사는 참여정부 시절에는 공공의 적 취급을 받았고, 정부의 실정을 가리기 위해 화살을 돌리던 동네북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3~4년 전부터 그런 목소리가 쑥 들어갔다. 참여정부 시절에는 주요 언론이 교사 디스에 앞장섰는데, 요즘에는 마이너 언론이나 댓글 찌질이들이 주로 교사 디스에 앞장선다.


주요언론과 정부 고위직, 그리고 여론주도층들이 교육의 중요성을 인식해서일까? 교사를 존경하는 마음이 생겨서일까? 그럴 리가 없다. 다만 그들 중 귀여운 자신들의 아들딸을 교사로 만들었거나 만들고 있는 사람들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즉 교사는 어느새 여론주도층이 자기 자녀들을 위해 챙겨주어야 할 희소 자원이 되어버렸다.


한 마디로,

“여기는 내 새끼 자리다.”

이게 내가 걱정하는 부분이다. 어쩌면 이미 잔인한 진실이 되어버렸을지도 모른다. 부디 가설이기만을 바랄 뿐이다.

원문: 권재원의 부정변증법의 교육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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