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울함'이란 감정은 사람을 망가뜨린다

조회수 2017. 6. 25. 22: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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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탁기 속에 넣은 돌처럼 모든 것을 부수고, 부순 후에도 멈추지 않는다.

페이스북에서 ‘세탁기에 돌을 넣은 결과’라는 동영상을 본 적이 있다. 한 남자가 야외의 너른 잔디밭에서 전원을 연결한 드럼세탁기를 한 대 갖다 놓고 돌덩어리를 집어넣는다. 그리고 스위치를 넣고 멀찍이 물러난다.


기계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빈 세탁조 안에서 돌덩어리가 구르고, 그 힘은 점점 커져 세탁기 전체가 요란한 소리와 진동에 휩싸인다. 내부에서 회전하는 무서운 원심력에 부딪힌 세탁기는 점자 견디지 못하고 흔들리다가 뒤판을 시작으로 양옆과 상판이 차례로 부서져 나가떨어진다.


몇 분도 지나지 않아 세탁기의 네모난 형체는 간 곳도 없이 모든 부속이 폭발하듯 떨어져 나간 후에도, 텅 빈 벌판에서 세탁조만이 남아 멈추지 않고 굉음을 울리며 굴러다니고 있었다. 전원이 연결된 이상 그 파괴적인 힘은 도저히 누가 멈출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것을 유머 동영상으로 분류하고는 세탁기가 어이없이 부서져 나가는 모습에 웃음 섞인 반응을 달아 게시물을 공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웃을 수 없었다.



나는 웃을 수 없었다


그 영상의 마지막 장면이, 멈추지 않는 세탁조가 꼭 나의 마음과 같다고 생각했다. 영상을 보기 전까지 내 마음을 지배했던 한 단어는 ‘억울함’이었다. 억울함은 그해 나를 지배하는 키워드였다. 한동안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자신의 잘못이 아닌 데도 곤경에 빠져 억울함을 호소하는 사람들)에 나 자신의 억울함이 겹쳐져 그 단어는 내 안에서 계속 커져만 갔다.


‘억울함’이라는 하나의 감정이 참으로 여러 가지 영역에서 일어난다는 것도 그때 알았다. 의심, 오해, 소문, 인간관계에서 본의든 아니든 주고받는 상처. 의심만큼 사람을 억울하게 만드는 일도 있을까. 모두 알겠지만 의심이란 곰팡이처럼 한 군데서 일어나도 전체로 퍼지기 십상이다.


아무리 애를 쓴다고 해도 부패가 일어나기 이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의심에서 비롯된 하나의 의문을 해명한다 해도 곧 다른 의혹은 꼬리를 물기 마련이며, 의심 혹은 의심에서 비롯되는 오해를 받았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마음을 상하기에는 충분하다.

소문이란 잔혹하다. 특히 요즘 같이 SNS로 촘촘히 묶여 있는 시대에는 누군가 던져놓은 타인의 스토리에 감정을 이입하고 나만의 해석을 곁들여 유통시키기 아주 쉽다. 그 과정에서 타인의 인간성은 원래 없었던 것처럼 취급된다.


인간관계에서 일어나는 일들, 관계는 분명히 쌍방이 맺은 것일터인데 그 사이에서 불편한 결과가 빚어졌을 때 나의 잘못인지 타인의 잘못인지 측량하기가 애매한 일들, 저울눈을 재어보는 과정에서 ‘억울함’은 무게추가 조금이라도 내 쪽으로 넘어와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흔히 사람들은 가까운 사람이 억울한 지경에 빠지면 “기운을 내라,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대부분의 경우에 그 말들은 진심이며 사실상 타인이 해줄 수 있는 것의 전부기도 하다. 우리는 그런 사실을 충분히 알고 있으면서도 직접 곤경에 빠진 처지가 되면 위와 같은 말이 형식적이라고 생각하고 흘려 넘긴다. 심지어 서운함이 지나쳐 화를 내기도 한다.


나 역시 막상 내 일이 되어 보니 ‘극복할 수 있다’는 말이 전혀 현실적으로 와 닿지 않았다. 스스로에게 ‘괜찮아질 것이다. 마음이 풀릴 것이다’는 암시조차 걸지 못하고 무력하게 손을 놓고 있었다. 이때 누군가 나에게 “억울함이라는 감정은 사람을 망가뜨린다”라고 말했다면 그 말을 신뢰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세탁기 동영상’을 보았을 때 추상적인 말보다 눈으로 확인한 사실이 강렬한 환기 효과를 불러 왔다. 억울함은 세탁기 속에 넣은 돌과 같아서 지금처럼 쉬지 않고 진동하다가 나를 산산이 부수어 버릴 것이다. 모든 것을 부수어 버린 다음에도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가장 무서운 부분이기도 했다.



전원 차단하기


돌아가는 세탁기의 문을 열고 돌을 끄집어 낼 엄두가 나지 않는다면 전원이라도 차단해야 한다. 나는 스위치를 내리기로 했다. 처음에는 강제적으로, 의도적으로 생각을 멈추어야 했다. ‘진동이 온다’는 신호가 울리면 플러그를 잡아 뽑듯이, 생각으로 흐르는 에너지를 멈추었다.


시간이 흐르자 조금 더 자연스럽게 나를 사로잡은 ‘억울함’이라는 감정에서 분리될 수 있었고 한 걸음 떨어져서 지켜보는 것이 가능해졌다. 무기력한 방치가 아니라 관조가 가능해졌다.


다시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고 나서, 내가 발견한 ‘세탁기의 비유‘를 현명한 두 사람에게 들려 줄 기회가 있었다. 한 사람은 “그 돌을 집어넣은 사람은 굉장히 효과적으로 세탁기를 망가뜨린 것이로군요.”라고 말했다. 또 한 사람은 “그 돌을 넣은 것이 타인이 아닐 수도 있겠지요.“라고 말했다.

돌을 집어넣은 사람도, 돌아가고 있는 나 자신도 어느 쪽도 사실은 파괴되는 결과까지는 원하지 않았을 수 있다. 두 번째 조언처럼 그 돌을 집어넣은 사람이 사실 타인이 아닐 가능성도 존재한다. 어느 쪽이 참인지는 지금, 앞으로도 알게 될 것이라 확신할 수 없다. 그러나 세탁기의 전원을 차단했던 것이 좋은 선택이었음은 확신할 수 있다.



누구도 부서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어쩌면 그때 돌이 밖에서 온 것이라고 확신하고 진동을 차단하는 시도조차 억울하게 여겼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진동이 커지는 것을 스스로 방관하고 가속되는 파괴적인 정서에 몸을 던졌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 돌이 밖에서 왔는지 안에서 왔는지의 여부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문제는 내가 부서지지 않는 것이었다. 또한 내가 부서지면 ‘그것을 원했던 사람이 기뻐할 것‘이라는 승부의 서사보다, 누구도 원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 더욱 내 마음을 자극했다.


마음 속에서 무언가 달그락거리며 굴러가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면 먼저 진동을 멈춰야 한다. 사실은 누구도, 당신 자신도 부서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마음에 새겨야 한다.


원문: Women In Wri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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