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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대가 왜 있어야 해?"

조회수 2017. 6. 5. 17:25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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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차별이 실존하는 국가일수록 여대가 더 필요하다.
‘이화여대 극혐’ 운운하던 이 시위는 나중에 어떻게 되었냐면…

다른 분 담벼락에서 ‘여대의 필요성’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개인적으로 남자들이 왜 여자들끼리만 몰려있는 공간에 그토록 반감을 갖는지 잘 모르겠다.


지하철 여성 전용칸도 그렇고 각종 ‘여성 전용’의 어떤 것에 강한 거부감을 갖는 모습을 많이 봤다. 여자들이 ‘비혼 비출산 선언’을 하는 데 대해서도 엄청난 조롱을 하거나 반감을 보이기도 하고. 


그렇게 욕하고 무시하는 ‘메퇘지년들’이 결혼도 안 하고 애도 안 낳고 그냥 우리끼리 잘 먹고 잘살겠다는데, 그럼 늬들도 좋고 우리도 좋은 거 아닌가? 아무튼 연장 선상인지는 모르겠으나 재학시절부터 졸업할 때까지 여대에 강한 반감을 품은 이들도 많이 볼 수 있었다.

요즘 세상에 여대를 왜 가?
시집 잘 가려고 가는 거 아닌가?
여대가 왜 있어야 해?
남녀차별 아닌가?

여대에 갖는 불만들을 보면 이유들도 대부분 모호하다. 싫긴 싫은데 왜 싫은지를 ‘구체적으로는’ 모르는 거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싫은 것이다

사실 나도 다니기 전에는 몰랐다. 그리고 싫었다. 학창시절 내내 논스톱 같은 거 보면서 대학 가면 조인성 닮은 선배랑 CC 할 뇌내망상으로 고된 수험생활을 견뎠는데, 막상 수능점수가 잘 안 나오고 전혀 생각도 안 해본 여대에 가게 되니 미칠 노릇이지. 


나의 경우 당시 원서를 잘못 써서 지원한 곳에 전부 합격을 해버렸다. 다른 대안이 몇 있었으나 부모님의 권유로 결국 여대를 선택했다. 지금은 여대를 선택한 것을 정말 잘한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정치성향과 아이덴티티는 인생의 큰 굴곡마다 수차례 변화를 거쳐왔지만 그중에서도 대학 시절을 기점으로 가장 크게 변화했다.


남성들이 들으면 기분 나쁠 수도 있겠지만 여성에게 있어 여대의 최대 강점은 말 그대로 남성의 존재를 아예 지워버릴 수 있다는 데에 있다. 학생회도 전원 여성, 총학생회장도 여성, 과대도 여성, 선배도 여성, 후배도 여성, 동기도 여성, 기타 등등. 오히려 남성이 없기 때문에 여러 가지 선택의 순간에 있어 젠더적인 요소를 아예 무시하고 편견과 선입견 없는 사회를 경험해볼 수 있다.


이를테면 공학에서는 과대표를 선출하는 과정에서도 남성과 여성이 후보로 나올 경우 개별적인 인간성과 능력을 고려하는 동시에 젠더적인 요소도 선택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물론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혹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누군가를 뽑지는 않겠지만 그런 요소를 아예 무시하거나 부정하는 것도 불가능할 것이다.

2016년 8월 이화여대 졸업생·재학생이 모여 진행된 미래라이프 사업 반대 시위. 이화여대 시위는 박근혜 탄핵의 단초가 되었다.

반면 여대 안에서는 친절하고 상냥한 친구도, 짜증 나는 인간도, 불쾌한 인간도, 프리라이더도, 싸가지없는 후배도, 멋진 선배도, 날라리도, 모범생도, 고시 패스한 능력자도 모두 여성이다. 성별을 기준으로 특정인을 판단하는 잣대가 아예 없어진다. 살면서 무수히 경험하고 들었던 ‘여자가 어떻게’ ‘여자라서’ 혹은 ‘여자니까’ 의 이유가 무의미해지는 것이다. 


물론 그래서 겪는 단점도 있다. 그렇게 여성들만 있던 공간에서 남성들이 실존하는 현실 세계로 나오게 되면 많은 수는 상당한 혼란을 겪는다. ‘여자라서’라는 명제가 아예 성립 불가능하던 공간에 있다가 ‘여자니까’ 해야 하는 의무가 생기고 ‘여자기 때문에’ 해서는 안 되는 규칙들 속에서 엄청난 고통과 내적 갈등을 겪게 된다.


여대 나온 애들은 ‘이기주의’에 ‘개인주의’라고 욕을 먹는 것도 비슷한 이유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회생활, 즉 남자들이 존재하는 기존 세계의 룰에 잘 적응을 못 하는 것이지. 적응을 못 하는 건 곧 그들 기준으로 이기적이고 개인적인 것이고.


사실은 이 단점이 사회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 생각보다 크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그나마 외국계 회사, IT 기업 등 기업 문화가 비교적 자유로운 곳에 다녔으니 망정이지 국내 기업에 다녔다면…? 아마도 산에 끌려가 엉덩이에 빠따 맞고 우울증 걸려 1년도 못 다니고 도망 나왔을 것이다.

출처: tvN
드라마 ‘미생’ 속 안영이의 가장 큰 시련은 직장 내 성차별이었다.

내가 신입사원일 때 처음 만난 대리가 했던 말을 기억한다. 

어우… 나 이대생 진짜 싫어하는데. 난 여대 다니는 애들은 다 싸이코 같더라.

진상에다 성격파탄자 성희롱범이 한 얘기가 아니다. 회사에서 업무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고 선후배들에게 참 괜찮은 사람이라며 인망도 두터운 사람이 처음 만난 25살 신입사원에게 한 말이다.


그때는 열 받지만 대리에게 개길 방법이 없어 그냥 꾹 참았으나 (그리고 10년 가까이 된 지금까지 기억하다가 적음ㅋ) 지금 생각해보면 그의 기준에서는 여대 나온 사람들은 싸이코에 이기주의자로 보였을 법도 하단 생각을 한다. 남성 사회의 규칙에 저항하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역설적으로 그렇기 때문에, 성차별이 실존하는 국가일수록 여대가 더 필요하다고 본다. 우리 사회에는 저항하는 사람이 더 많이 필요하니까. 그리고 젠더의 구별이 없는 사회의 경험이 한 여성의 인생에 있어서 미치는 영향력은 정말 엄청난 것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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