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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적 측면에서 본 안철수 대선 포스터

조회수 2017. 4. 23. 10:4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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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벽보 디자인은 전략적 측면에서 3번 안철수 캠프가 가장 잘했다.

1.


선거 벽보 디자인은 전략적 측면에서 3번 안철수 캠프가 가장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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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벽보의 목적은 정보 전달이다. 이를 위해 기호, 이름, 얼굴 세 가지가 우선된다. 기호의 경우, 벽보가 나란히 붙어있기 때문에 맨 앞 1번 후보가 유권자에게 각인 되는 데 가장 유리하다. 그다음 유리한 건 2번 후보. 그리고 3번부터 패널티를 갖는다.


3번 벽보부터 마지막 벽보 사이의 후보들은 순서가 헷갈리면서 기호를 정확히 인지 못 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  멀리서 보면 다들 얼굴을 크게 넣고 기호를 강조하기 때문에 비슷해진다.

3번 안철수 후보의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그런데 안 후보 캠프는 통상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이를 헤쳐 나간다.



3.


선거 벽보는 길거리에 아래 이미지처럼 나란히 붙는다. 행인들은 걸어가면서 곁눈으로 보거나 멈춰 서서 본다. 이때 여러 벽보를 전체적으로 보기 위해 평균 1m 이상 떨어지곤 하는데, 현행 대통령 선거 벽보 크기를 보면 벽보에 담긴 대체적인 정보의 시인성의 한계는 대략 15m 이내다. (물론 디자인과 시력 구분에 따라 더 멀리서도 가능하다.)

우리나라의 한 개 차로 폭은 대략 3m ~ 3.25m 사이이므로, 왕복 2차선 도로 정도면 인도 포함 대략 15m 안팎이 된다. 일상에서 동네 길을 걸으며 우리가 자주 접하는 도로(구도, 군도) 폭이 대략 이 언저리다.


주거지 주변 길을 걷던 행인이 2차선 도로 건너의 벽보를 봤을 때 정보전달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실제로 이 거리를 넘어섰을 때부터 각 선거 벽보의 변별력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보통 그 경계에서 무엇을 전달해야 할지 정할 때 대개는 인물을 알리는 데 주력하고, 결국 멀리서도 알아보도록 얼굴을 키운다. 그런데 안 캠프에선 반대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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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후보 벽보의 특징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텍스트를 강조하기 위해 인물을 작게 묘사하는 걸 감수했다. 큰 얼굴들이 나열되다가 푹 꺼지면서 시선의 닻이 내려졌다. 둘째, 인접한 벽보들과 달리 유채색을 배경색으로 넣음으로써 다른 후보들의 벽보와 대비를 끌어냈다. 명도 차가 생기고 강한 주목성을 얻었다. 그 위에 다시 흰색 이름을 넣어 눈에 잘 띄도록 했다.


세 번째라는 약점을 가진 안 후보 벽보는 오로지 기호와 이름의 주목성에만 집중한다. 인물사진이 작아지는 위험을 감수했다. 일반적 구도인 큰 얼굴 아래 기호와 이름을 붙이는 방식을 고수했더라면 아마 묻히고 말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 방법이 보여주는 소구점이 특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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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령 1번 문재인 후보의 벽보는 기호 1번을 갖게 된 대세론자 벽보의 전형이다. 1번 프리미엄을 얻은 상황을 최대한 활용하여 지지율 선두 주자로서의 목적에 걸맞은 이미지를 각인시키고자 한다. 그래서 기호강조와 더불어 다른 후보들에 비해 얼굴 사이즈가 좀 더 크다.

지난 2012년의 검정 배경 벽보와 달리, 이번 벽보에서는 내가 대세라는 의식을 심리적으로 전파하려 한다. 과거 2002년 이회창 후보의 얼굴이 가득한 벽보와 같은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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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안 후보의 벽보는 양옆의 큰 얼굴들 사이에 안간힘 쓰듯 틈을 벌리는 모습 같아 깜냥이 아닌 것처럼 보일 정도다. 그런데도 대신 확실하게 이목을 끌어서 3번째 벽보에 안철수라는 텍스트가 있음을 알린다. 이건 방법도 그렇지만 목표에서부터 일반적인 경우와 다르다.


기호와 얼굴을 강조했다면 그 벽보는 잘 되어봐야 ‘세번째가 안철수’라는 의미였을 것이다. 그런데 얼굴들이 즐비한 나열에서 느닷없이 녹색 면으로 시선을 끌고 거기에 이름을 강조하므로써 ‘당신이 찾고 있던 안철수는 기호 3번입니다.’라고 외치고 있다. 오로지 안철수는 3번이라는 정보의 전달에 모든 걸 걸었다.


문 후보에겐 지지도에서 상대적으로 열세이고, 벽보 부착 순서에선 패널티를 안은 안 후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7.

이는 정치현황을 잘 파악하고 표심을 정한 이들이 최우선 목표가 아니라는 뜻이다. 어차피 표심을 결정한 지지자들은 자신이 찍을 후보의 기호를 안다. 또한, 합리적 판단이 가능한 신체적 심리적으로 건강한 유권자들은 선거 공보물을 받아 다시금 기호와 이름을 확인한다.


안 후보의 벽보는 자신이 찍을 사람이 어디에 어떤 번호로 있는지 모르는 이들에게 안성맞춤인 컨셉이다. 그래서 사진을 그대로 가져오며 생겨난 초점 안맞는 이름과 안 후보 뒤의 그림자는 큰 의미가 없다. 몇 미터만 떨어져도 그런 건 분별도 안 될 뿐더러 뇌가 알아서 필터링한다. 만약 안 후보가 1번이었다면 아마 벽보 디자인은 꽤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8.


이 전략적 판단은 타깃의 성격을 두 가지로 정의하고 있다. 첫째, 정치적으로 떠돌며 마음 둘 데를 잃거나 정치현황에 어두운 이들이다. 자신이 찍어야 할 후보의 기호조차 헷갈리는 경우이기 때문이다. 둘째, 시각인지 측면에서 색 대비와 시인성이 강해야 원하는 정보를 명확히 습득할 수 있는 이들이다. 이 두 가지에 해당하는 게 누굴까.


중도에서 보수에 이르기까지 보수정당의 와해에 갈 곳을 잃어 표심마저 잃은 사람들과, 정치 관련 인터넷 정보나 전문 자료를 확인하기 어려운 사람들. 즉, ‘중도 보수 우현의 반 문재인 성향 노년층’이 여기에 해당한다. 그래서 필요했던 것이다. 당신이 찾고 있던 안철수는 기호 3번입니다.



9.


이번 대선 벽보 제작에 있어 전략적으로 가장 돋보이는 건 안철수 캠프다. 대권 가도에서 상대적 약체로서의 처지를 엎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안 후보 캠프가 선거 유세 기간 동안 어떻게 움직일지를 명확히 보여준다.



번외)


4번 유승민 후보의 경우 평이한 구도에 주목성 낮은 색 대비로 기호와 이름을 넣어 효과 면에서 취약하다.

심상정 후보의 경우 기호인 5번이 흰 상의와 겹쳐있는데, 이 정도면 거의 최악의 판단실수라고 봐도 할 말 없는 수준이다. 두 후보 모두 잘한 디자인이라고 할 수 없다.


홍준표 후보의 포스터는 상대적으로 무난하다. 기호 2번의 프리미엄을 어느 정도 얻을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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