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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신의 섭리가 아니다: 『펭귄 블룸』

조회수 2017. 4. 12. 11:13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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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인간에게, 혹은 동물이 인간에게 전달하는 기적의 이야기다.

펭귄 블룸』, 이 책을 읽기 전에 미리 알아야 할 사항이 있다.


첫째, 제목의 ‘펭귄 블룸’에서 ‘펭귄’은 진짜 동물 펭귄이 아니다. 이 새가 가진 검은색과 흰색 깃털의 유려한 조화에 이 집의 아들들이 헌정한 고유명사이다. 이름이 펭귄이지만 까치다. 좀 이상하긴 하지만 그렇다. 둘째, ‘블룸’은 피어난다는 뜻을 가진 영단어 Bloom이 아니다. 이 글을 쓴 작가의 이름 캐머런 블룸에서 따온 것이다.


즉 ‘펭귄 블룸’은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등장인물인 까치의 풀네임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펭귄이 아니다.

증거. 닝겐처럼 편안해 보이는 저 까치가 주인공인 펭귄 블룸입니다.

그리고 이것 외에는, 이 책을 읽기 전에 참고해야 할 사항은 없다고 보아도 좋다


만약 당신이 서점을 거닐다 예쁜 표지에 이끌려 이 이 책을 구입했다면 크게 고민하지 않아도 좋다. 이 책에는 이해하지 못할 구석도 복잡한 단어도 없다. 하지만 이 책에서 다루는 메시지는 거의 모든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가장 보편적인 사랑의 이야기 말이다.


덕분에 이 책은 영국과 일본, 독일, 호주의 아마존에서 베스트셀러 분야에 올랐다. 호주에는 나오미 왓츠 주연의 영화로 제작된다고도 한다. 저자의 인스타그램 팔로워는 14만 명이 넘는다. 그러나 책에는 그의 SNS에서 보이지 않는 아프고 감동적인 이야기가 담겨 있다.

 


1. 프롤로그


책은 세상에서 가장 로맨틱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나는 파이를 먹다 샘과 사랑에 빠졌다. 샘은 물 빠진 청바지에 흰색 티셔츠를 입고 여기저기 밀가루가 묻은 감청색 앞치마를 두르고 있었다. 코끝에도 밀가루가 살짝 묻어 있었다. 샘은 키는 작지만 용감하고 넋이 나갈 만큼 귀여웠다.

- 13쪽

프롤로그가 이 단락으로 시작하는 순간, 독자들은 순수하고 아름다운 로맨스에 대한 기대를 갖게 된다. 그리고 저자는 그 기대를 배신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아내인 샘 블룸이 얼마나 생기 넘치고 매력적이었는지, 자신은 그 매력에 어떻게 사로잡혔는지 서술한다. 그들이 결혼했으며 10년이나 결혼생활을 함께했고 기운 넘치는 남자아이를 셋이나 낳았다고 해서 그 매력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펭귄과 함께 있는 샘 블룸

이토록 아름다웠던 묘사 때문에, 어느 한 단락에서 샘이 맞이하는 비극은 더욱 충격적으로 다가온다. 

샘은 안전펜스에 기대어 서 있었다. (…) 갑자기 기대고 있던 울타리가 무너져서 경악한 샘은 균형을 잃었다. 샘은 아주 찰나의 시간 동안 그 가장자리에 그대로 서서 허공에 몸을 기울인 채, 가느다란 팔을 허우적거렸고, 손가락들은 마치 허공을 잡으려고 하는 것처럼 길게 뻗었다가 하늘로 날았다.

그리고 그녀는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 24쪽

다행히 그녀는 목숨을 건졌다. 그러나 더 이상 그녀는 척추를 쓸 수 없다. 이제 평생을 휠체어에 의지해야 한다. 미각 또한 거의 사라졌다. 그 외에도 그녀가 삶에서 잃어버린 것들은 수없이 많다.


이전의 샘의 삶이 아름다웠던 만큼, 남은 샘의 삶은 아주 어두워 보인다. 가족들은 그녀가 조용히 절망 속으로 침잠하는 모습을 바라본다. 그렇게 저자는 ‘내 인생 최고의 사랑’을 잃어가고 있었다고 서술한다.


그러나 삶은 어느 순간 기적을 맞이한다. 책은 단 한 문장으로 그것의 등장을 알린다.

그때 펭귄이 왔다.

- 31쪽

 

2. 그때 펭귄이 왔다


반려동물을 키워본 사람이라면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전에는 접촉해본 적이 거의 없던,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까만 눈의 동물이 자신의 집에서 이불 위를 돌아다닐 때의 경악스러우면서도 경이로운 감정을. 그 동물이 자신의 가족과 함께 얽히고설키며 불러오는 일상의 독특한 균열을.


게다가 펭귄은 좀 특이한 방식으로 이 가족과 만나게 된다.

노포크 섬에서 지상 20미터 높이로 우뚝 솟은 소나무 위에 있던 둥지에서 거센 해풍에 휘말려 나뭇가지들을 부러뜨리며 밑으로 곤두박질친 이 새끼 까치는 차디찬 아스팔트에 쿵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 이미 크나큰 비극을 목격한 우리 가족은 그냥 두 손 놓고 보고만 있지 않을 작정이었다. 샘은 노아가 그 작은 새를 안아 올리게 허락했고, 할머니가 차를 운전해서 모두 급히 집으로 왔다.

- 39쪽

앞서 설명한 프롤로그 부분에서는 사진이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2부가 되어 펭귄이 가족에게 스며들기 시작하는 순간, 페이지를 가득 채우는 풍부한 사진들이 등장한다.

저자의 본업은 사진작가다. 그가 약 2년간 1만 4,000여 장의 사진을 찍으며 들여다본 프레임 속 펭귄은 동물이라기보다는 사람에 더 가까워 보인다. 아이와 입을 맞추고, 자신의 키와 맞먹는 곰 인형을 끌어안고 뒹굴거리며 때로는 화를 내는 것처럼 렌즈를 공격적으로 바라본다. 즐거운 순간만 있는 것도 아니다. 펭귄은 청소년기를 맞아 무척 못생겨지는 순간을 맞이하기도 하고, 다른 까치들에게 따돌림을 당해 심한 상처를 입고 돌아오기도 한다.


이 까치의 일대기를 바라보는 캐머런의 모습은, 귀여운 반려동물을 바라보는 인간의 시선이라기보다는 막 자라나는 딸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시선에 더 가깝다. 실제로 저자는 펭귄을 종종 ‘아가씨’로 칭한다. 그래서 펭귄의 이야기는 블룸 가족이 펭귄을 집에서 독립시키려는 순간 클라이맥스를 맞는다(펭귄이 동의하지 않아서 그다지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그러나 사실 이 책이 진짜로 다루고 있는 것은 펭귄과 함께 살아가는 알콩달콩 가족 이야기가 아니다(그런 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왜냐하면 이들의 이야기는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샘에게로 이동하기 때문이다. 눈치챘을지도 모르지만, 심하게 다친 상태에서 가족의 보살핌을 받아 다시 삶으로 돌아오는 펭귄의 이야기는, 말하자면 샘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둘은 엄마와 딸이자 간호사와 환자이기도 했다. 그리고 강하지만 동시에 연약한 두 자매가 ‘위로’라는 한 단어로 묶여 있는 사이이기도 했다.

샘은 똑바로 일어나 앉고 자신의 두 발로 서고 싶었고, 펭귄은 나무들 위로 그리고 구름 너머로 날아오르고 싶었다. 

- 131쪽

샘은 펭귄을 돌본다. 펭귄은 샘 옆에 붙어서 그녀를 위로하고, 때로는 그녀를 대신해서 소리를 내기도 한다. 일상을 펭귄과 같이 보내기 시작하면서 샘은 눈물이 줄고 웃음이 늘기 시작한다. 그녀는 가족들에게 다시 요리를 해줄 수 있는 기력을 얻고, 새로운 운동인 카약을 배우기 시작한다. 이윽고 그녀가 남편과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다치기 전 자주 들르던 산에 올랐을 때, 그녀는 온전히 일상으로 복귀하게 된다. 이 이야기 속에서 그녀가 맞는 클라이맥스다. 


펭귄과 샘, 이 둘의 이야기는 완전히 분리할 수 없다. 크게 다쳤던 것은 까치인 펭귄이기도 하고, 인간인 샘이기도 하다. 가족과 함께 살아가며 삶의 아름다움을 깨닫는 것은 펭귄 이야기이기도 하고, 샘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긴밀하고 촘촘히 연결된 이 부활의 이야기가 어느 누구의 것이라 확언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이 책은 ‘펭귄 블룸’의 이야기이고, 동시에 ‘샘 블룸’의 이야기이다.

출처: ABC NEWS
카약을 타고 있는 샘 블룸의 모습.

3. 이것은 신의 섭리가 아니다: 사진 저편의 남자


때론 사진 한 장이 백 마디 글을 대신한다. 이 책 또한 그렇다. 포토 에세이인 만큼 책의 절반 정도는 사진이 차지하고 있는데, 사진 초반에는 펭귄이 블룸 가족에게 적응해가는 신기하고 매력적인 면모를 읽을 수 있다.


까치에게도 표정이 있다는 것을 이 책을 읽기 전에는 몰랐다. 저자의 렌즈를 통해서 우리는 이 동물의 표정을 읽을 수 있고, 이 동물의 장난스러운 의도를 이해할 수 있다.

까치 주제에 뒹굴거림의 참맛을 아는 녀석

그리고 펭귄이 블룸 가족에게 전한 기적에 독자가 천천히 감화되어갈 즈음, 사진에서 보이지 않던 샘이 점차 프레임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한다. 사진 초반에서는 뒷모습으로만, 다리 등 일부 신체 사진으로만, 혹은 글 속에서만 이야기를 드러내던 샘은 이야기가 진행되어갈수록 점점 카메라 안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샘이 삶으로 완연히 돌아온 파트를 다룰 때 우리는 그녀가 카약을 타며 활발히 물살을 가르는 모습을 사진으로 볼 수 있다. 저자의 독백을 차근차근 따라온 독자들이라면 분명 이 부분에서 가슴 벅찬 감동을 느낄 것이다. 


그러나 책의 말미에서 내가 주목한 것은 다른 것이었다. 바로 이 ‘렌즈 뒤의 관찰자’, 사진 속에서는 거의 드러나지 않는 저자 캐머런 블룸이다.

그의 사진에서는 그의 애정이 절절히 느껴진다. 아들들과 펭귄, 그리고 샘에게 가진 애정 말이다. 이런 면모는 샘의 회고에서도 드러난다.

남편의 그런 지대한 노력 덕분에 저는 사랑받고 있다고 느꼈을 뿐 아니라 제 삶의 질이 높아졌고, 결과적으로 우리 가족의 삶도 나아졌습니다. 남편은 제가 영웅이라고 부르면 쑥스러워하겠지만 전 정말 남편이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 216쪽

저자는, 그리고 샘은 이 장애를 결코 신의 섭리라 부르지 않는다. 실제로 샘은 자신이 두 다리로 걸을 수 있던 때를 절절히 그리워한다. 읽는 사람이 자기도 모르게 자신이 누리고 있는 것들을 떠올리게 될 정도로 아픈 그리움이다.


그러나 삶은 이어진다. 미각은 잃었지만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가족에게 주는 즐거움은 느낄 수 있다. 카약 국가대표가 되어 2020 도쿄 장애인올림픽에는 나갈 수 있다. 신이 그녀의 두 다리를 앗아간 것을 그들은 절대로 긍정의 신호로 읽지 않으나, 가족들과 펭귄의 사랑은 결국 그녀를 일으킨다.

그래서 이것은 신의 섭리를 다룬 책이 아니다. 이것은 한 남자가 여자를 사랑하여 그를 다시 삶으로 돌려놓는 사랑의 이야기이고, 장애인이 된 한 여자가 다시 한번 자신의 손으로 삶을 일으켜 세우는 이야기이고, 작은 동물이 한 가족 속으로 불어넣은 작은 희망의 이야기이다.


이것은 인간이 인간에게 베푸는 기적, 혹은 동물이 인간에게 전달하는 기적의 이야기인 것이다.

YES24 / 알라딘 / 인터파크 / 교보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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