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을 가리고 책을 팔아보자!

조회수 2017. 4. 3. 12:07 수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번역중 Now in translation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다양한 분야의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를 카카오 플랫폼 곳곳에서 발견하고, 공감하고, 공유해보세요.

독자가 알 수 있는 것은 페이지 수, 가격, 키워드 뿐.
출처: backpackme

마음산책 편집자, 은행나무 편집자와는 지금까지 몇 차례인가 함께 여행을 가곤 했다. 종종 어울리다가 “이번 연휴에 시간 어때” 하는 얘기가 나오면 후다닥 짐을 싸서 다녀온다.


책을 만들어 먹고사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과 해외에 나가면 누가 먼저 제안하지 않아도 들리는 곳은 뻔하다. 서점이다. ‘이 나라에서는 책을 어떻게 만들고 팔리는가’ 하는 것은 늘 궁금한 대목이니까. 그래서 우리끼리는 이 모임을 ‘떼거리 서점 유랑단’이라고 부른다.


작년 가을 무렵에는 일본에 다녀왔다. 그때 교토의 어느 서점에 들렀다가 흥미로운 광경을 목도했다. 매대 하나에 같은 책이 여러 권 쌓여 있었는데 책 표지에 제목 대신 다음과 같은 문구가 적혀 있었다.

죄송합니다. 저는 이 책을 어떻게 추천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하면 ‘재미있다’, ‘매력적이다’라고 느끼게 할 수 있을지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책 제목을 숨기고 팔기로 했습니다.

이 책의 이름은 ‘문고X’로, 책 전체를 전면 띠지로 가리고 랩핑하여 책에 대해 알 수 없게 만든 채로 판매하는 문고본이다. 내용을 추측할 수 있는 힌트라고는 (1) 500페이지가 넘는다는 것, (2) 가격이 810엔이라는 점, (3) 띠지에 쓰인 소개 문구뿐이었다. 기획자는 ‘사와야 서점’ 페잔점의 직원인 나가에 다카시 씨였다. 그는 무크지 <이 문고본이 대단하다 2016>에 다음과 같은 글을 기고한 바 있다.

2016년 7월 21일, 맨 처음에 60권을 매대에 진열했다. 솔직히 말해 팔릴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시간이 걸려도 좋으니 30권이 팔릴 때까지는 매대에서 치우지 않을 거야’라고 생각했다. 그 정도로 자신이 없었다. 표지도 제목도 알 수 없는 데다 문고본치고는 810엔이나 하는 살짝 비싼 책이다.

이 60권이, 설마 5일 만에 매진될 거라고는, 게다가 똑같은 형태로 전국에 퍼질 거라고는 상상할 수도 없었다. 그 책은 현재 ‘문고X’라 불리고 있다.

아사히신문과 모리오카 경제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사와야 서점의 페잔점에서 이 책의 판매는 한 달에 두세 권 정도였다고 한다. 그런데 ‘문고X’로 이름 붙이자 불과 일주일 만에 60부가 팔렸다. 이에 페잔점의 점장인 다구치 씨는 잘 알고 지내는 다른 서점들에게도 이 같은 상황을 알렸고 곧 전국 650개 이상의 서점들로 ‘문고X’ 기획이 퍼져 나간다. 이 대목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점은 이 책을 구입한 독자들의 반응이었다.


“표지가 보이는 상태였다면 절대 사지 않았을 테지만, 아무것도 모른 채로 이 책을 사서 읽게 되어 정말로 좋았다”는 소감이 많았다. 게다가 독자들은 ‘SNS에 제목을 공개하지 말아달라’는 문고X 기획자의 당부를 흘려듣지 않았다. 책을 구입한 독자가 “나는 ‘문고X’뿐만 아니라 ‘문고X’ 기획의 취지까지 함께 구매했다”는 내용의 포스팅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는 사이에 ‘문고X’는 전국적으로 11만 부가 팔렸다.

한편 ‘떼거리 서점 유랑단’과 함께 올 1월에는 영국에 다녀왔다. 옥스퍼드의 ‘블랙 웰’ 서점에 들렀을 때의 일이다. 우리는 매대 한켠에서 이런 문구와 마주할 수 있었다.

A NOVEL SURPRISE!

거기에는 미국, 프랑스, 영국, 일본 등 각 나라에서 출간된 소설 중 블랙 웰 서점의 스태프들이 엄선한 책이 ‘제목과 저자의 이름이 가려진 채 진열’되어 있었다. 알 수 있는 것은 출간 국가와 가격뿐이었다.


알아보니 유럽의 여러 서점들에서는 『블라인드 데이트 위드 어 북(Blind Date with a Book)』이라는 제목으로 봉인된 포장지 앞면에 소설의 첫 문장만 적어둔다든가, ‘기괴함’, ‘유머러스함’, ‘달콤함’ 같은 키워드만 인쇄해 놓는 등 서점의 특색에 맞는 제각각의 방식으로 독자들의 흥미를 유발시키기 위한 이벤트를 지속적으로 하고 있었다. 이들 이벤트에는 ‘좀 더 다양한 방식으로 독자에게 다가가고 싶다’는 노력 같은 것이 담겨 있었다.

‘문고X’와 ‘서프라이즈 노벨’을 목도하며 ‘만약 이런 이벤트를 출판사에서 진행한다면 어떤 형태가 될까’ 하고 생각해 보았다. 한국에서 이런 이벤트를 시행한다면 독자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도무지 짐작이 되지 않았다.


우리는 마침내, 어떤 결과가 초래되든 해보기 전에는 알 수 없다는 당연하기 그지없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리하여 마음산책, 북스피어, 은행나무의 2017년 출간 예정작 가운데 ‘지금까지와는 다른 신선한 방식으로 독자들에게 다가가고 싶은 책’을 선택하여 동시에 출간해 보자는 데에 이르게 된 것이다.


내친김에 세 권의 책을 몽땅 구입하는 독자들을 위한 부록을 만들어 보자는 데도 의견을 모았다. 서점에서 얻은 아이디어니까 서점에 관한 무언가를 줄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구체화시켰더니 <내 맘대로 세계서점X>(떼거리 서점 유랑단 지음)라는 제목의 대충 철저히 만든 비매품으로 귀결되었다. 함께 다닌 서점 가운데 뭔가 스토리가 있거나 특징적이거나 ‘나중에 내가 서점을 차린다면 한번 써먹어 봐야지’ 싶은 여덟 군데를 골랐다.

하지만 두 개 출판사도 아니고 세 개나 되는 출판사가 막상 컨셉을 잡고 실무를 진행해 나가는 것은, 생색을 내자는 건 아니지만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잔치국수 재료로 해산물 파스타를 만드는 것 같았다고 할까(저렴한 비유). 한데 이 과정이 또, 뜻밖에 재밌는 거다. “이렇게 하는 게 더 흥미로울 것 같아”, “아니지, 저렇게 하는 게 더 낫지”라며 다들 안 돌아가는 머리를 굴리고 열을 올리는 동안 주옥같은 아이디어들이 쏟아졌다. 매일 화상통화...까지는 아니지만 회의+회의를 거듭하며 두 달에 걸쳐 준비했다.


이제 남은 걱정은 ‘우리끼리만 재밌으면 어떡하나’라는 것 정도. 날이면 날마다 오는 것도 아니고 담배 하나쯤, 아니 이런 이벤트 한 번쯤은 괜찮을 것 같기도 한데, 글쎄, 어떨지. 모쪼록 함께 즐겨 주시면 좋겠다.



간단요약



  1. 마음산책, 북스피어, 은행나무가 제목과 저자를 가리고 신간을 파는 이벤트를 합니다. 이름하여 ‘개봉열독 이벤트!’ 
  2. 각 도서는 ‘마음산책X’, ‘북스피어X’, ‘은행나무X’라는 이름으로 (1) 가격 (2) 페이지 (3) 관련 키워드만 공개해요. 
  3. 예약판매는 4월 1일~4월 24일까지 교보문고, 알라딘, 예스24, 인터파크에서. 
  4. 예약판매 이후, 4월 25일부터 5월 16일까지는 오프라인 서점에서, 물론 이때도 제목과 저자를 숨기고 팔죠. 
  5. 그러니까 예약판매로 일찌감치 책을 받은 형제자매님들께서는 5월 16일까지 제목을 공개하지 말아주세요. 플리즈. 제목과 저자는 5월 16일 자정에 공개합니다. 


원문: 위풍당당 북스피어의 의기양양 편집부


이 콘텐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