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워드 휴즈, 성공한 덕후에서 생명과학의 영원한 물주까지

조회수 2017. 4. 28. 18:28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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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한 세대도 못 갈 재산, 자식에게 남겨주느니 이런 데 올인하는 게 효율적이다.

하워드 휴즈 의학연구소(Howard Hughes Medical Institute, HHMI)라고 들어들 보셨는가? 생명과학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들어본 이름이다. 보유 재산이 우리나라 돈으로 대충 20조 원, 작년에만 약 7억 달러의 연구비를 의생명과학계에 투자한 미국 최대의 민간 과학 서포트 재단이다.


HHMI에서는 미국 전역에서 약 300명의 연구자를 선발하여 연간 약 100만 달러 정도의 연구비를 지원한다. 연구비를 어떻게 쓰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간섭도 하지 않는다.

‘너님 맘대로 하고 싶은 거 하셈. 다만 과학적으로 중요한 공헌만 하쇼’

연구비 지원액의 규모도 규모지만 이 연구비를 받는 것은 한마디로 말해서 ‘너님 이제부터 이 업계에서 전국구 스타’ 을 인증하는 것이므로 그 자체만으로 어마어마한 영광이다. 여기 소속 연구자 중 노벨상 수상자는 21명이고, 미국 학술원 회원은 169명이나 된다. 


HHMI의 기본 철학은 다음과 같다:

프로젝트가 아닌 사람에 지원한다
연구자 개인을 믿고 그냥 묻지마 지원하는 거지 쫀쫀하게 ‘너 무슨 연구 하니’ ‘이거 하면 노벨상 언제 받니’ ‘이거 하면 무슨 이익이 있니’ 따위를 논하지 않는다
너님 뭐 연구하든 자유
연구 잘하는 사람들끼리 잘 모여서 해 봐, 기관·분야 이런 거 너무 구애받지 말고
장기적인 관점으로 팍팍 밀어줄게
잘하는 애들만 키울 거임

과학자라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거릴 이런 조직을 만든 사람은 대체 누굴까? 하워드 휴즈(Howard Hughes)? 어디서 들어본 이름인데? 영화를 많이 보신 분들이라면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나온 ‘에비에이터’란 영화를 기억할 것이다. 디카프리오가 연기한 ‘항공기 덕후 영화제작자’가 바로 하워드 휴즈다.

“세상이 꿈꾼 모든 것이 그의 손안에 있었다!”

실제로는 이렇게 생겼었다: 

덕후든 뭐든 일단 잘생기고 봐야…
나이 먹고 은둔하기 직전의 모습

재벌이기도 하지만 일단 덕후짓으로 유명한 사내였다. 

‘Spruce Goose’라는 별명이 붙은 Hughes H-4 Hercules.
현존하는 최대 크기의 비행정(flying boat)이며 현존 최장길이의 날개를 자랑한다. 사진은 H-4의 날개를 운반하던 당시 모습.

그렇다면 어떻게 항공기 덕후/괴짜 재벌이 생명과학계의 영원한 물주가 되었을까? 여기에는 약간의 필연과 우연이 교차한다.

1. 하워드 휴즈는 어째서인지 어린 시절부터 의학연구소를 설립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졌다고 함. 디카프리오가 휴즈로 나오는 ‘에비에이터’를 보면 병적으로 결벽증을 가진 것으로 묘사되고 있는데 이것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름. 실제로 이 사람은 ‘세균공포증’ 비슷한 것이 있어서 여러 가지 괴벽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2. 자신의 세균공포증 퇴치를 위해서인지 세금 회피를 위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1953년 자기 이름을 딴 연구소 (Howard Hughes Medical Institute)를 만듦. 처음 설립했을 때는 1년에 약 100-200만 불 정도의 예산을 가진, 그닥 큰 규모의 연구소가 아니었음. 휴즈가 연구소의 재단의 유일한 이사.
3. 그러다가 자기 자신이 소유하는 휴즈항공사의 주식을 몽땅 연구소에 증여함. 미국 최대의 군수업체가 면세 혜택을 받는 비영리법인이 됨ㅋ 세금회피를 위한 수단이라고 미국 국세청(IRS)과 엄청 싸움.
4. 휴즈가 은둔생활을 하다가 1976년 사망. 자식 없음. 이제 HHMI는 휴즈항공사의 주인이 되어버림. 유일한 재단이사였던 휴즈가 죽었기 때문에 정부에서 과학자들을 HHMI 재단 이사로 선임함. 그때부터 HHMI의 예산이 급증하기 시작.
5. 누가 휴즈항공사의 주인인가에 대해서 약 10년 동안 휴즈의 친척들이 열심히 법정공방을 벌였으나 결국 휴즈항공사의 주인은 HHMI라고 판결. 그 이후에 HHMI는 휴즈항공사를 1985년 GM에 52억 불에 팔아치움. 그래서 그 돈으로 연구 올인ㅋㅋㅋ 그 이후에는 항공기 덕후, 은둔재벌로 알려졌던 하워드 휴즈라는 이름이 엉뚱하게 생명과학계의 영원한 물주가 되버렸다.

현재 HHMI의 문화가 어떻게 설립되었느냐에 대해서는 설립자인 하워드 휴즈의 철학보다는 그저 눈먼 돈을 관리하게 된 과학자들의 역할이 훨씬 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쨌든 오늘날 하워드 휴즈라는 이름을 알리는 것은 이전의 영화, 재산, 항공기, 각종 기행이 아닌 HHMI인 셈이다. 어차피 한 세대도 못 갈 재산, 자식에게 남겨주느니 그냥 이런 데 올인하는 것도 자신의 이름을 자손만대 남기는 데는 효율적인 방법이라는 걸 보여주고 있다.


국내 재벌도 어차피 바리바리 자식들한테 갈라줘 봐야 10년도 못 버티고 다 털어먹을 것이 명약관화인데, 그냥 확실하게 재산 올인으로 자기 이름이나 자손만대에 남겨보시는 것은 어떠십니까? 그냥 모태쏠로 재벌을 미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아니 뭐 꼭 특정인을 지목하는 것은 아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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