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쪽 눈으로는 정말 반쪽 세상만 보일까?
건장한 40대 남성인 그분은 처음 만난 자리에서 많은 이야기를 쏟아냈다.
매우 절박한 모습이었다. 지금 가지고 있는 1종 면허가 갱신이 안 되면 무면허 운전으로 택배배달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나도 짧게나마 같은 이유로 숨이 턱 막혔던 적이 있었다. 나는 태어날 때 의료사고로 평생 오른쪽 눈 없이 살아왔지만, 왼쪽 눈으로 세상을 보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다. 가끔 얼굴을 자세히 보는 누군가가 놀라거나 인상을 쓰기도 했지만 상관없었다.
시골살이로 생계형 운전면허가 필요했던 나는 대입시험을 마치자마자 바로 운전면허를 땄다. 1종 보통 운전면허를 희망했지만 어찌어찌 2종 보통 운전면허를 가지게 되었다. 운전은 신세계였다. 더 이상 매일 통학하는 버스에 왕복 3시간 혹사당하지 않아도 되고, 동생들을 학교에 태워다 주면서 언니 노릇도 톡톡히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무사고 7년 운전행진을 이어가던 어느 날, 사법연수원 2년 차였다. 경찰서에서 왠 우편물이 왔나 싶어서 뜯어보았다. 7년 무사고 운전이니 1종 보통 운전면허로 무상 업그레이드를 하라는 안내문이 와 있는 것이 아닌가!
마침 헌법재판소에서 시보로 있었던 때라 몹시 바빴지만 1종 보통 운전면허를 간단히 취득할 수 있다는 생각에 열일 제치고 강남경찰서로 향했다. 접수방법도 간단했다. 수수료 내고 서류 적어 내고 신체검사 받으면 끝이었다. 기대감에 일사천리로 진행하고 신체검사실로 들어갔다.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지만 아깝지 않았다. 간단한 신체상태 검사 후에 시력검사대 앞에 섰다. 한쪽 눈을 가리는 큰 수저를 들고 나는 늘 하던 대로 이렇게 말했다.
그랬더니 검사하던 공무원은 짜증을 내며 나의 서류를 북! 찢었다. 순식간의 일에 너무 당황해서 사색이 된 나를 지켜보던 머리가 희끗희끗한 다른 공무원은 급하게 나를 데리고 나간다.
몹시 당황스러웠지만 다른 사람들이 신체검사를 기다리고 있고 찢긴 내 서류는 온데간데없어서 일단 자리를 나왔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얼른 법전을 펼쳤다. 도로교통법에 따르면 한 눈 시각장애인은 아예 1종 보통 면허시험에 응시조차 불가능했다. 내가 왜 2종밖에 딸 수 없었는지 그제야 기억이 났다.
택배 기사님과 비슷한 일을 겪으신 분은 생각보다 많았다.
왜 이런 규정이 생긴 걸까? ‘눈이 하나밖에 없다면 세상이 반쪽밖에 안 보인다’는 편견이 낳은 규정이다. 한쪽 눈만큼 좁아 든 시야를 가진 사람이 트럭 같은 큰 차를 몰고 다닌다면 도로가 위험해질 것이라는 장애에 대한 무지와 편견은 버젓이 우리 법 안에 뿌리내리고 있었다.
헌법재판소조차 몇 년 전에 ‘한쪽 눈이 안 보이면 시야가 반쪽’이라는 모 병원장 의견서를 받아들여 이 규정이 합헌이라고 결정한 적이 있다. 그렇지만 한쪽 귀가 안 들리는 장애인에 대한 1종 보통 운전면허 응시제한은 10년도 전에 없어지지 않았는가! 그래! 시각장애인에 대한 부당한 편견도 바꿔보자!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와 함께 국회의원실을 통해 도로교통법과 시행령 개정안을 발의했다. 한참 동안 감감무소식이었다. 택배 기사님도 수시로 전화로 하소연을 하셨다. 계속 법 개정을 위하여 노력한 끝에 드디어 2016년 11월 30일부터 한 눈 시각장애인도 1종 보통 운전면허에 응시할 수 있게 되었다!
몇 년이 걸린 법 개정 과정 동안 시각장애인의 직업선택의 자유와 행복추구권 등 거창한 이야기를 반복했지만, 정작 택배 기사님이 뛸 듯이 기뻐하는 모습이 더 귀해 보였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더불어 살만한 세상이란 상대방 입장에서 생각해보는 역지사지(易地思之)가 잘 작동되는 세상이 아닐까.
원문: 조우성 변호사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