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ㅍㅍㅅㅅ

기왕 뭔가를 샀다면 죄책감은 버리자

언제까지 내가 번 돈을 내가 쓰면서 죄책감만 느끼며 살 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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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사람과 함께 있어 보다 커지는 경우도 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같이 봐 주는 사람이 있다, 그 하나로도 나는 운전을 아무리 오래 해도 좋고 저금이 바닥나도 좋다는 기분이 들었다.

- 요시모토 바나나, 「바다의 뚜껑」 中

가계부를 쓰지 않는다. 한동안 지출 기입하기만 하면 카테고리별로 분류되는 네이버 가계부를 쓰다가 몇 달 전부터 그마저도 쓰지 않고 있다. 쓰면 뭐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계부를 쓴다고 딱히 절약을 하는 것 같지도 않고 돈이 모이는 것도 아닌 것 같고… 또 이상한 반항심리가 끼어들었나 보다.


내 팔자는 돈이 아주 많은 팔자는 아니라고 했다. 살면서 재미 삼아 몇 번 점을 봤는데 그때마다 점쟁이는 돈이 없지도 많지도 않은 사주라고 했다. 없이 산다는 것보단 나은 건 맞는데 어딘지 모르게 찝찝한 사주다. 그만큼 내가 노력하지 않으면 와르르 무너져 내릴 것 같다.

어릴 때부터 돈 모으는 성격이 아니었다. 언니는 주머니에서 돈이 안 나오는 사람이었다. 용돈이나 세뱃돈 같은 걸 받으면 그대로 저금통에 넣었고 나는 손에 들어오는 족족 써야 직성이 풀렸다. 돈이 생기면 찜 해놓은 필통을 사러 문방구에 갔다. 유전자의 힘이란 대단해서 어릴 때의 행동 패턴이 성인이 되어서도 똑같이 이어졌다. 가끔 보너스를 타거나 예상치 않은 곳에서 원고 청탁이 들어와 공돈이 생기면 다만 얼마라도 빚을 갚은 게 (이론상으론) 우선일 텐데 그대로 써버렸다. 공돈이니까 빨리 써야 한다는 자기합리화를 내세워서.


 

공돈은 빨리 써야 된다는 합리화


연말정산 시즌이라 회사에서도 오늘까지 관련 서류를 제출하라고 공지가 올라왔다. 직장 생활 몇 년째인데 매년 해도 매년 모르겠는 이 연말정산. 제대로 한 건지 아닌지도 모른 채 어쨌거나 출력해서 간추려 보니 작년에도 돈을 참 많이 썼다. 내 월급 다 어디 갔나 했더니 여기 모여 있었구나. 죄 어디로 증발하고 흔적만 남아서는… 들여다본다고 뭐 아는 것도 아니지만 출력한 걸 한 장 두 장 넘겨보니 유독 눈에 들어오는 거액의 주택담보 대출. 상환된 이자액을 보니 말문이 막힌다. 고작 이것밖에 못 갚다니. 내 아들한테 빚을 넘겨주진 말아야 할 텐데… 쩝.


아이가 태어나면서 이사 다니는 것도 힘들 것 같아 좀 무리해서 집을 장만했는데 이자를 따져 보니 집을 산 건 아닌 거 같고 은행에 월세를 주고 사는 게 분명하다. 대출이 억 단위가 넘어가면 자포자기 심정이 된다. 언제까지 얼마를 저축해서 얼마를 갚고 이런 계산이 안 선다. 일단 꼬박꼬박 이자 안 밀리고 원금 상환하는 게 우선이다. 언젠가 다 갚을 날 오겠지라는 막연한 생각은 하고 있지만 딱히 피부에 와 닿진 않는다. 정말 다 갚는 날이 오긴 올까?

출처illust by 윤지민

이렇게 돈 걱정하면서 여전히 사고 싶은 건 많다. 최근 집 여기저기를 정리하면서 물건 줄이기를 실천해 가고자 노력 중이긴 하나 두꺼운 점퍼에 흘러내리지 않는 크로스백이 사고 싶고 롤업 팬츠에 신을 수 있는 앵클부츠가 사고 싶고 가끔 여성스러운 룩을 연출할 수 있게 롱 원피스도 사고 싶다. 이 세 가지가 최근 나의 가장 큰 관심사다. 나이 서른여덟에 가장 큰 관심사가 가방, 구두, 옷이라니. 사람이 어쩜 이렇게 이중적일 수 있는지 빚을 갚고 돈을 모으고자 한다면 10만 원 안팎의 돈도 아낄 줄 알아야 하건만.


내 이상한 경제관념은 이렇다. 다달이 이자 안 밀리고 잘 내고 큰 목돈이 생기면 그때 갚고, 어차피 이렇게 자잘한 돈은 갚아도 티도 안 나니 그냥 쓰자. 평생 빚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넉넉하고 여유롭게 살아 보지 못할 팔자여.


 

사고 싶은 물건을 샀으면 기분 좋게, 잘 쓰면 된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내가 번 돈을 내가 쓰면서 죄책감만 느끼며 살 순 없다. 그렇게 산다면 내가 돈 버는 기계와 다를 게 없지 않은가. 사고 싶은 물건을 샀으면 기분 좋게, 잘 사용하면 된다. 그 정도 보상은 있어야 살아갈 일말의 기쁨이라도 느끼지 않겠는가. 과하지만 않으면 된다. 적당한 소비는 생활에 활력을 준다.

37년을 이렇게 살아왔는데 머리에 벼락 맞는 대형 사고가 일어나지 않는 한 나는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살 것 같다. 소심하게 대출 걱정은 하면서도 잠들기 전 스마트폰으로 좋아하는 쇼핑몰에 들어가 새로 입고된 가방을 둘러보며 ‘할부로 살까?’ 이런 고민도 하면서. 불안하지만 그 불안을 완전히 잠재워 버릴 방법도 (이론상으론) 알고 있지만 그렇게 하기는 싫다. 무료하고 재미없을 것 같다.


한편으론 내가 한 살이라도 더 젊고 예쁠 때 더 잘 꾸미고 사는 것과 젊을 때 죽어라 고생해서 옷도 안 사 입고 신발도 안 사고 아등바등 돈 모아 늙어서야 평화롭게 사는 것 중 주저 없이 전자를 택하겠다. 사람들은 앉아 있을 때 서 있을 생각을 하고 서 있을 때 걸을 고민을 한다는 얘기가 있다. 나는 서 있을 땐 서 있고 앉아 있을 땐 앉아 있는 사람이 맞는 거 같다. 안정적이고 풍족한 미래도 좋지만 짜릿하게 행복해서 살맛 나는 지금도 포기할 수 없다.


 원문: 이유미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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