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킬로그램의 역사

조회수 2017. 2. 17. 23:31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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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한 '표준'을 얻기 위한 초정밀기술의 세계

이미 꽤 오래 전 일이 되어버린 밀레니엄. 딱 ‘맞아떨어지는’ 숫자에 사람들은 많은 의미를 부여했다. ‘새천년’ ‘세기말’ 등등. 그에 따라 지구 멸망의 예언 등의 떡밥이 돌기도 했고 여러 일이 있었다. 2012년에도 마야의 달력 운운하며 지구종말설이 퍼졌는데 거기에서 사람들이 간과한 것은 이것이다.

과연 우리는 현재가 언제인지 알고 있는가?

‘2000년에 세상이 멸망할 것이다’라든가 ‘2012년에 세상이 멸망할 것이다’라는 예언의 타당성은 차치하고 과연 그 ‘현재’가 2000년이 맞는지, 2012년이 맞는지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무슨 뜬금없는 소리냐고 반문할지 모르지만 이건 진지한 궁서체로 한 번 생각해볼 만한 일이다.

상남자.jpg

율리우스 카이사르. 그의 공적은 제국을 부흥시킨 것에서 멈추지 않는다. 결국은 사라진 제국, 그 제국의 흥망사는 현재에 교훈이나 추억을 남길 뿐. 그보다 현재까지 우리에게 영향을 미칠 만한 공적은 다름 아닌 그가 만들어낸 정교한 달력이다. 그의 이름을 따 ‘율리우스력’이라 불리게 된 달력. 상당한 정밀성을 가지고 있기에 율리우스력은 이후 1천 년이 넘게 사용된다.



시간을 달리는 소녀


큰 문제없이 사용되던 율리우스력은 1,000년이 넘어가면서 문제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1년을 정확하게 계산하면 365.24219879일이 된다. 이를 근사치로 365.25일로 잡고 있었는데 그에 따라 1년마다 11분 14초가 1300년이 지난 후 10일의 오차를 가지게 된 것이다. 이것이 뭐가 그리 중요하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가 지배하던 중세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기념일인 부활절이 열흘이나 오차를 가지게 된다는 것은 너무나도 불경스러운 일이었다.


그리하여 황제의 연호 대신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연도를 기준으로 새로운 기원을 만들려는 시도가 이루어지는데 16세기에 계산을 한 결과 율리우스력과 실제 천체 운행의 차이가 10일이나 벌어졌다는 것을 알게 된다. 당시 교황이던 그레고리우스 13세는 특단의 조치를 발표한다.

올해 1582년에선 열흘을 삭제한다.

그리고 그레고리우스 13세는 앞으로도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신경을 쓰는 섬세함을 보였다.

1. 그 해 연도가 4의 배수가 아니면 평년으로 2월은 28일만 있다.
2. 만약 연도가 4의 배수면서 100의 배수가 아니면 윤일(2월 29일)을 도입한다.
3. 만약 연도가 100의 배수이면서 400의 배수가 아닐 때 이 해는 평년으로 생각한다.
4. 만약 연도가 400의 배수면 윤일(2월 29일)을 도입한다.

이와 같은 규칙을 통해 400년 동안 97일의 윤일을 더하면, 1년의 길이는 365.2425일이 되어 율리우스력이 보였던 근소한 오차 값을 더 근사하게(그러나 완벽하지는 못하게) 수정할 수 있었다. 이런 역법을 교황의 이름을 따 ‘그레고리력’이라 부른다.

그런데 그레고리력이 10일을 건너뛰고 달력을 만들어 달력과 실제 천체 운행 간 괴리를 분석했지만 여기에는 큰 문제가 있었다. 천체 운행과 달력이 딱 들어맞으면 개혁이 성공한 것이니 좋은 것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사실 심각한 오류가 존재했다.


왜? 딱 맞아 떨어지려면 10일이 아니라 13일을 건너뛰어야 했기 때문이다. 계산해 보자. 율리우스력이 반포된 것이 BC 45년의 일이었다. 그레고리우스의 달력 개혁이 AD 1582년의 일이었으니 양자의 차이는 1627년이다. 당시 율리우스력에서 지구의 공전 주기는 365.25일이었지만 지구의 실제 공전주기는 365.24219879일 즉, 0.00780121일의 차이를 보이게 된다.


그렇다면 그레고리우스력이 반포되기 전까지의 실제 오차를 계산해 보면 1627×0.00780121=12.69일이 된다. 문제는 12.69일의 오차가 발생했으니 13일을 잘라야 하는 것이 맞으나 10일을 잘랐다는 것이다. 좀 충격적인 이야기지만 10일을 잘랐는데도 달력과 천체 운행이 딱딱 맞아 떨어졌다는 것이다. 무슨 소리인가?


오차 값을 10일로 잡았다는 소리는 1582년까지의 오차 값이 9.51일이거나 10.49일 사이라는 소리인데 이것을 12.69일에서 빼보면 최소 2.20일에서 최대 3.18일까지의 오차가 발생했다는 말이 된다. 2.20을 0.00780121로 나누면 282년, 3.18을 0.00780121로 나누면 407년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즉 우리가 2012년으로 알고 있는 지금이 1605년일 수도 있다는 계산이다(혹은 1730년일 수도 있다). 우리는 지금 21세기가 아니라 18세기에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407년(혹은 282년)을 잃어버렸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 과연 우리는 어느 시대에 살고 있는가?

시간을 달리는 너, 나, 우리

소수점 단위의 차이는 거시적으로는 이런 엄청난 격차를 발생시키기도 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단위'의 중요성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본격적으로 소개해보고자 하는 것은 '시간'이 아닌 '무게'의 이야기. 무게란 존재를 상징한다. 엄밀히 말하자면 과학적인 이야기는 아니지만, 죽어가는 순간 21g의 오차가 나타난다며 이것을 '영혼의 무게'라고 부른 일화도 있다.


'무게는 존재 그 자체다'라고 한다면 우리 존재감을 상징하는 무게의 단위는 시간의 단위보다 더 의미를 갖는다. 과연 우리는, 그리고 우리 세상의 존재감은 얼마나 정확하게 측량되고 있는가? 세계 자체를 축소시킬 수도 있고, 확장시킬 수도 있는 '존재'의 단위, 존재의 가벼움과 무거움을 규정하는 킬로그램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1kg은 어느 정도의 무게일까

한국에 킬로그램 단위가 소개되던 순간. 이후 무게의 단위는 점차 근에서 킬로그램으로 바뀌게 된다.

최초의 1kg은 1/10m 길이를 변으로 하는 입방체(1L)의 빗물 무게를 섭씨 4도에서 측정한 값이었다. 물의 밀도가 불안정하다는 점 때문에 1889년 미터 조약에서 1kg에 해당하는 질량 원기를 정했다.


널리 알려져 있듯 물은 상당히 안정적인 물질이다. 그런데 그 밀도가 불안정하다고? 지금 다루는 주제는 물이 불안정하게 보이는 세계이다.


국제 킬로그램 표준(International Prototype Kilogram, IPK)은 영국 은행의 금속 분석 및 정제 전문가 존슨 매티(Johnson Matthey)에 의해 1879년 제조되었다. 금 백금(90%)과 이리듐(10%)을 섞어 만든 가로·세로 각 39mm의 원기둥으로 3중 진공관에 엄밀 보존되고 있으며, 1884년 40개의 복제품 중 34개를 국가 표준으로 미터협약(Meter Convention) 회원국들에 제공했고 품번 K4와 K20은 미국에 인도되었다. 한국 질량표준 킬로그램 원기의 국제고유번호는 No.72이다.

‘Le Grand K’라고도 불리는 질량 원기 프로토타입. 주기적으로 복제본과 질량을 조율하는 협약 하에 엄격하게 관리되고 있다.

그런데 1992-1998년 사이에 있었던 세 번째 검증 주기에서 각 복제품 사이의 질량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지난 세기 동안 약 50µg 가량의 질량이 줄어들었음이 명백해졌다. 질량의 변동은 절대질량이 아니라 (저 원기 자체가 표준이므로) 동일 원기들 간의 비교로 측정하고, 그 정밀도는 0.0000001% 즉 10억분의 1에 달한다. 킬로그램이라는 단위 자체가 표준 원기의 질량으로 ‘정의’되므로, 우주 만물의 질량이 변한 것이다.

19세기 이래 기술 분야에서 대부분을 차지했던 단위의 기준이 흔들린 셈입니다.

국제 도량협회의 Terry Quinn 교수는 사태의 심각성을 힘주어 말한다. 에너지 단위인 1Joule은 1kg 질량을 기준으로 측정된다. 빛의 강도, 즉 광도의 기준 candela 는 동력 단위를 갖는데 동력은 바로 질량을 움직이는 에너지 단위다. 바나나를 사는 데는 나노그램 차이의 기준 변화가 아무래도 상관 없겠지만 태평양을 가로지르는 광케이블을 설계하는 데는 문제가 된다.


왜 이런 일이 발생했는가? 표준 원기의 보존 규정은 40년에 한 번씩, 6명의 감사원(témoins) 입회 하에 알코올과 세미 가죽으로 조심스럽게 닦아내고 증기세척 후 건조하게끔 되어 있다. 하나의 가설은 이 과정으로도 표면의 미세한 부식과 오염을 완전히 방지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또 하나의 과감한 가설은, 진공으로 금속 성분의 탈기체 현상이 발생했다는 설명이다.


상수는 어디에서나 상수여야 한다. 일정해야 한다. 중력가속도는 안드로메다에서건 은하수에서건 동일하고, 빛은 진공에서 초당 299,792,458 미터를 움직인다. 그러나 이제 상수를 정의하는 방식이 뒤집혔다. 미터가 빛의 속도를 규정하는 게 아니라 빛의 속도가 미터의 길이를 정의한다.


시간의 단위 ‘초(second)’는 또한 어떠한가? 세슘 133원자의 진동이 그 기준이 되었다. 다른 모든 기본 단위가 자연 상수를 기반으로 재정의된 현대 과학계에서 인류가 아마도 가장 먼저 느꼈을 질량이라는 물리 현상이 마지막으로 남은 셈이다.


어찌되었건 백금 이리듐 합금의 안전성에 익숙해져있던 도량형의 전문가들은 태양과도 같았던 ‘Le grand K’ 표준 원기가 이제 5만 6,000달러짜리 합금 덩어리로 전락할 처지에 놓였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세계 각지의 과학자들이 새로운 질량 표준을 향한 도전장을 내기 시작했고 개중 유력한 셋이 남았다.



1. 실리콘 등방체(Silicon sphere): 세계에서 가장 둥근 고체


첫 번째 주자는 백금과 이리듐 합금이 아닌 실리콘을 이용하는 것이다. X-Ray 실험을 통해 알려진 결과에 따르면 실리콘 분자는 정규 격자 형태로 배열되기 때문에 일단 정격 중량의 단위체를 제작하고 나면 그것을 구성하는 원자 개수로 기준 질량을 정의할 수 있게 된다. 문제는 측정의 정밀도일뿐 제반 기술의 발전 속도로 보건데 몇 년 내로 유력해질 방안이라고 평가된다.

아힘 라이스트너(Achim Leistner)가 제작한 실리콘 등방체 프로토타입. 석영이라고도 일컫는 이산화규소 피막이 정교히 연마·제거되어 이 구체를 지구 사이즈로 확대할 경우 최고저차가 4m에 불과할 정도의 정밀도로 ‘지구상에서 가장 둥근 고체(Roundest object in the world)’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러나 실리콘 등방체에도 단점은 있다. 바로 동위원소인데, 자연 상태에서의 규소는 92.23%가 Si28이다. 나머지는 Si29와 Si39로써, 중성자가 더 많다. 그러나 인류는 냉전 동안 동위원소를 다루는 방법을 익혔다. 널리 알려진 우라늄 농축 기법을 응용해 라이스트너는 고속 원심분리기를 통해 순도 99.9995%의 Si28을 농축한 실리콘 원기를 제작했다. 그가 하루 여섯 시간 매달렸던 정교한 표면 연마는 이온 에칭으로 더 발전할 것이다.

 


2. 와트 천칭(Watt balance): 정확, 정밀, 초정밀


두 번째 주자는 충분히 정밀한 저울을 이용하는 것이다. 그렇게 제기된 후보가 바로 와트 천칭(Watt balance). NIST(National Institute of Standards and Technology)의 리차드 스타이너(Richard Steiner)가 제시한 전자기와 전압, 전류를 이용한 초정밀 저울이다. 이것은 두 전류 코일 사이에 작용하는 전자기 차이를 이용한 전류 천칭(ampere balance)의 단점인 코일 형상과 치수에 의한 오류를 보정하는 단계를 추가로 포함하고 있다.

저울 그릇에 놓인 시편은 초전도 자기장 속의 구리 코일에 연결된다. 시편을 움직이면 코일에 전류가 유도되고 이를 측정하여 질량을 판정한다. 이 저울은 기본적으로 놀랍게도 흔한 천칭과 같은 원리에 의한다. 다만 기준을 정하는 기준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대응되는 분동이 조금 특수할뿐. 그 구조는 이렇다.

패러데이의 전자기 유도 법칙(UI=mgv). 운동으로 인한 동력이 유도자기에너지로 도출되기 때문에 와트 천칭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조셉슨 효과를 통해 전압 U는 플랑크상수에 무차원 계수 u’와 (전자의) 기본 전하 그리고 측정 가능 주파수 fJ 의 조합으로 구할 수 있다.
그리고 양자 홀 효과를 통해 저항값 R을 역시 플랑크상수의 배수로 구할 수 있다.
두 공식을 조합하면 질량 시편의 질량을 계산할 수 있다.

3. 탄소-12(Carbon-12): 유기화학은 어디서 시작되었나


세 번째 주자는 역시 우리 주위에 흔한 탄소다. 

흔한 탄소덩어리.jpg

탄소는 주기율표 14족에 2주기에 속하는 원소로 원소기호는 C임 동소체로 비결정성 탄소, 결정성인 흑연, 다이아몬드가 있다. 수소, 산소 또는 질소 등과 공유결합을 안정적으로 쉽게 형성할 수 있어 생체분자의 기본요소로 사용되며 석탄과 석유의 주성분이다. 지구상의 생명체 역시 탄소 베이스의 유기화합물을 기본 구조로 하고 있다.


조지아 공과대학의 물리학자들은 화학 분야의 대표적인 무차원 상수라고 할 수 있는 아보가드로 수(avogadro number)를 다시 꺼내들었다. 아보가드로 수는 1811년 이탈리아의 과학자 아메데오 아보가드로(Amedeo Avogadro)가 제안한 것으로 다양한 기체를 구성하는 원자핵의 질량을 동일 온도와 압력에서 비교하는 기준이 되는 자연 상수이다.


우주에서 가장 풍부한 수소 원자는 한 개의 양자(proton)로 이루어져 있으며 중성자는 없다. 때문에 질량의 가장 기초 단위가 되며 자연 상수로 표현된다. 당연히 1kg은 수소 원자 단위로 표현할 수 있다. 0이 23개 필요할 뿐.


그래서 로날드 폭스(Ronald F. Fox)와 테오도르 힐(Theodore P. Hill) 교수는 대신 탄소의 기본 동위원소인 카본-12(Carbon-12)를 선택했다.

탄소-12가 1mol 있으면 12g이 된다. 즉 1g은 1/12몰의 탄소-12 원자의 질량을 의미하게 된다. 그 숫자는 ‘1,407만 4,481^3’의 18배, 즉 501해 8,450경 8,190조 2,290억 6,167만 9,538이 된다. 이러한 접근이 유효하려면 아보가드로 수가 아주 정밀해야 한다.


폭스와 힐이 제출한 논문에 따르면 새로 계산된 아보가드로 수는 ‘8,444만 6,886^3’이다. 계산하면 6,022해 1,409경 8,282조 7,487억 4,015만 4,456으로 우리가 잘 알던 바로 그 숫자 ‘6.022×10^23mol-1’이다. 이 숫자는 미국화학협회(American Chemical Society) 용어표준분과(The Committee on Nomenclature, Terminology and Symbols)의 의장 폴 카롤(Paul J. Karol)의 지지를 얻었다.



초정밀기술의 세계


프랑스 혁명을 전후로 시작했던 무게 단위의 표준. 그리고 218년이 지나 그 새로운 표준의 기준은 전에 없을 정밀도와 기술의 첨단 위에 서 있다. 전술된 다양한 초정밀기술과 이론들은 경마장에서처럼 누군가는 승리하고 누군가는 패배의 비탄을 맛보는 경쟁의 현장이 아니라 상호 보완적이며 독자적인 응용 기술의 세계를 열고 있다.


그로 인해 얻은 경험과 그리고 개척된 사상의 지평면은 지금까지의 문명이 그래왔듯 인류에게 새로운 기회의 장을 제공할 것이다. 진리란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


원문: ㅍㅍㅅㅅ


참고

Georgia Tech. Research
The Economist
The Wired Magazine
한국표준과학연구원
National Institute of Standards and Technology
Bureau International des Poids et Mes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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