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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 영역의 비즈니스

조회수 2017. 2. 15. 12:5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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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업 아이템이 회색지대에서 이루어진다

합법과 불법, 그리고 비불법의 경계는 참으로 모호하다. 많은 사람이 스스로를 ‘법 없이도 규칙 잘 지키고 사는 합법적 인간’으로 규정하지만 그것은 사실 그 영역을 잘 몰라서 하는 생각들이다. 합법의 영역은 생각보다 좁다.


특히나 비즈니스에선 규제가 트렌드와 비즈니스를 따라가지 못하고 부처별로 만든 규정이 서로 상충하는 경우가 많은 데다 고질적인 공공부문 현장인력 부족(사실 이 부분 때문에라도 공공 고용을 늘려야 한다고 보는 입장이다) 탓에 많은 사업 아이템이 합법의 바깥지대인 회색지대에서 이루어진다.

예를 들어서 카페 테라스 영업은 대부분 불법이다. 건축법상 공지를 상업용으로 점용하는 것은 금지하고 있으며 도로를 점용해서 테라스화 하는 경우 도로법에 걸린다. 또한 테라스 영역이 건물의 전용면적에 포함되어 있어야만 가능하다. 일반음식점과 휴게음식점의 경우는 영업을 위해 영업면적을 지자체에 신고해야 하는데 보통은 실내 영역만 신고를 한다. 이후 확장한 테라스는 당연히 신고 영역에 포함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봄, 가을과 여름 밤에 주로 이용하는 편의점 테라스도 마찬가지다. 많은 사람이 편의점에서 밤에 맥주 까는 걸 일상의 즐거움 중 하나로 여기는데 이것도 사실 엄밀히 따지면 불법에 해당한다. 편의점의 테라스는 편의상 휴게음식점 취급인데 휴게음식점에선 주류 섭취가 불법이다. 이 문제를 교묘하게 피하기 위해서 그냥 파라솔만 깔기도 하는데 이 경우엔 도로 취급이라 음주나 흡연을 해도 사실상 이를 규제할 규정이 없다. 다만 이 경우 위의 카페 테라스와 마찬가지로 도로를 점유한 케이스로 걸리긴 한다.


전주의 관광상품(?) 중 하나가 되어버린 ‘가맥집(가게맥주집)’도 이 때문에 가격이 오른 케이스다. 소매점이 술을 팔고 먹을 수 있게 했을뿐더러 음식까지 조리해서 내놨으니 말 다했다. 가정용 주류와 업소용 주류는 세금 문제로 납품단가부터 다르다. 주류 섭취가 금지된 일반 소매점이 좌판 깔고 술 마실 수 있게 한 다음에 음식까지 만들어 파는 건 식품위생법 위반+탈세에 해당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때문에 전주 가맥집들이 일반음식점으로 업종을 전환하면서 가격이 오르고, 배가 불렀다며 불만 가진 사람 또한 제법 많았던 걸로 안다. 사실은 그게 아니었다.

출처: 위키트리

국내의 주류 판매/섭취 관련 규정이 얼마나 까다로운지 알면 아마 깜짝 놀랄 것이다. 주류의 테이크아웃도 불법이다. 주류판매/섭취는 일반음식점 등에서만 가능한데 여기서 판매된 주류는 그 가게의 영역 내에서 소비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래서 번화가 등에서 볼 수 있는 테이크아웃 맥주 같은 것들도 합법의 바깥에 위치한다.


작년 가을 시즌의 인기였던 루프탑의 경우도 역시 합법의 바깥에 있긴 마찬가지다. 옥상의 경우는 공용면적에 해당하는데 여기다 루프를 올린 것은 불법건축물에 해당한다. 불법건축물에다가 영업장 외의 장소이므로 당연히 여기서 영업하는 것도 법의 영역 바깥인 셈이다.


플라워카페의 경우는 어떨까? 식품위생법상 서로 다른 업종은 칸막이를 통해 구분 짓게 되어있다. 즉 공간을 완벽히 구분 지어 꽃 등 식물은 식물대로, 카페 공간은 카페 공간대로 구분하도록 한 것이다. 표면적 이유는 위생 문제 때문이라지만 사실 일반 카페에서 꽃을 잔뜩 쌓아둔 경우에는 또 문제가 되지 않는다. 때문에 많은 플라워카페들은 위생 감독을 먼저 받고 이후에 업종을 추가하는 방식으로 우회한다.

출처: 조선일보

이렇게 얘기하니 사업하는 사람들이 모두 악당 같지만 사실 모르고 하는 경우도 있고 지자체 담당자도 규정 간의 상충을 모르거나 혹은 해석하기 나름으로 그땐 허가가 났는데 담당자가 바뀌면서 불허되는 경우도 있다. 당장 소비자도 열심히 이런 합법 밖의 사업모델을 좋아하고 열심히 이용했으니 어떤 의미에선 공범이기도 하다.


참 애매하다.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은 계속 탄생하지만 규정은 매우 까다롭고 철저하기에 규정이 비즈니스 모델을 따라가지 못하고, 혹은 난립한 규정끼리 서로 상충해 여기선 합법인데 저기선 불법인 경우도 종종 일어난다. 또한 너무 복잡하고 많다 보니 지자체의 담당자들이 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그렇다고 지자체 담당자를 비난하고 싶은 생각은 일절 없다. 당장 내가 예전에 은행에서 일할 때를 생각해봐도 예금 관련, 부동산 관련, 투자 관련, 실명법 관련해서 규정들이 매번 업데이트되니 사실상 거의 월마다 핵심적인 내용이 바뀌어서 새로 살펴보고 배워야 할 지경이었다. 그나마 우리 쪽은 규정 간의 충돌은 별로 없었는데도 그 정도였으나 그쪽이야 오죽할까.

그러다 보니 과거의 철저한 꼰대니즘에 입각했던 시절엔 이러한 회색지대의 영업들이 참 못마땅해 보였으나 이제는 그렇게 보지 못하겠다. 오히려 네거티브 식 규제가 아닌 ‘그냥 걸리지 마세요’라는 식의 현행 규제를 탓하는 것이 차라리 속 편한 방법인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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