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만 있고 '그남'은 없다
1.
‘그’와 ‘그녀’는 삼인칭대명사다. 각각 주로 남자와 여자를 가리킬 때 쓰인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말하는 이와 듣는 이가 아닌 사람”, “앞에서 이미 이야기하였거나 듣는 이가 생각하고 있는 사람”을 지시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나는 사전 유의 문법적 쓰임새에 관한 설명과 별개로 ‘그’와 ‘그녀’를 구별해 쓰지 않는다. 남자든 여자든 제3의 인물을 가리킬 때 ‘그’로 통일해서 쓰려고 노력한다.
‘그녀’가 있다. ‘그’는 ‘그남’이어야 한다. 그러나 ‘그녀’만 있고 ‘그남’은 없다. 쓰이지 않는다. ‘그’와 ‘그녀’는 영어 단어 ‘he’와 ‘she’의 번역어다. 근대 일본을 거쳐 20세기 초에 우리나라에 도입되었다. 소설가 김동인이 처음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수용 초창기에는 ‘그’와 ‘그녀’의 구별이 없었다고 한다.
2.
남녀 차별적인 언어의 사례는 차고 넘친다. ‘의사’가 있고 ‘여의사’가 있다. ‘의사’는 ‘남자 의사’를 지칭하거나 의사 일반을 총괄 지시하는 폭넓은 쓰임새를 갖는다. ‘교사’와 ‘여교사’, ‘기자’와 ‘여기자’ 역시 마찬가지다.
어떤 전문적인 일에 능한 여자를 가리키는 말로 ‘여류(女流)’가 있다. ‘남류(男流)’는 없다. ‘여성주의문학’, ‘페미니즘문학’, ‘여성해방문학’을 두루 일러 ‘여성문학’과 같은 말을 쓴다. ‘여성주의’, ‘페미니즘(feminism)’ 같은 고유 개념이 있으니 쓰일 수 있다.
‘남성문학’은 없다. ‘남성주의(masculism)’가 있으니 쓰일 법한데, 과문한 탓인지 찾기 힘들다. ‘남성주의’ 담론의 출현 시기가 지금으로부터 그다지 오래되지 않아 그런 것일 수 있다. 앞으로 쓰일 수도 있겠으나 내가 보기에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3.
미국 미시간 주립대학교 사회표준연구센터의 로런스 부시 특훈교수는 『표준: 현실을 만드는 레시피』(2014, 한울)에서 ‘표준’이 권력이라고 보았다.
이렇게 바꿔 말할 수 있다. 권력은 ‘표준’으로 만들어진다. 권력자들은 ‘표준’에 집착한다. 가령 박근혜 정권이 국정 교과서에 집착한 것은 역사 서술의 표준을 획득함으로써 그들이 강조하려는 역사를 권력의 자리에 놓기 위한 것이다.
부시는 르네상스 이후 지난 3백 년 간의 시간이 인간과 사물에 대한 고도의 표준화 작업이 성행한 시기였다고 보았다. 시간, 군대, 식민지 건설, 사회운동, 의료, 농업, 학교 교육, 시민종교, 가정, 패션, 공장, 조직의 커뮤니케이션, 경영, 법률과 정치, 지식 등 세상 거의 모든 분야에 걸쳐 표준화가 진행되었다. ‘표준화 기획’의 결과는 ‘표준화한 인식’이었다.
4.
말은 권력이다. 말은 권력관계를 표상한다. 남자와 여자를 지칭하는 많은 단어들이 그렇다. 단어들은 표준과 비표준을 나누고 정상과 비정상을 가른다.
'그’가 표준이고 ‘그녀’가 비표준이다. ‘의사’가 정상이고 ‘여의사’가 비정상이다. 비표준과 비정상은 ‘특별한 예외’, ‘특수한 사례’가 된다. 소외, 배제, 차별의 근거로 작동할 수 있다.
5.
'남학생’과 ‘여학생’을 구별해 쓰지 않으려고 한다. ‘그’들은 모두 학생이다. ‘학생’ 앞에 ‘남’을 붙이니 남자 학생 일반에 관한 모종의 부정적인 꼬리표가 자연스럽게 연상된다. ‘학생’ 앞의 ‘여’자가 여자 학생 일반에 관한 어떤 차별적인 낙인의 근거로 작동하는 것 같다.
부시는 이렇게 말했다.
언어의 ‘표준 담론’은 민주주의에 역행한다. 언젠가 박근혜를, 혹은 박근혜 유의 여자 사람을 ‘그녀’로 지칭하려다 문득 든 수선스러운 생각들이다.
원문: 정은균의 브런치